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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5권[2]
[화정 화상] 華亭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고, 소주蘇州에서 살았다. 휘諱는 덕성德誠이었는데, 성도 알 수 없고, 그의 생애도 짐작할 수 없다.
선사와 운암雲巖과 도오道吾, 이 세 사람은 함께 약산의 비밀한 법을 깨달았다. 약산이 입적한 뒤에 세 사람은 많건 적건 가지고 있는 양식과 도구를 가지고 예원澧源의 깊은 골짜기, 인적이 끊긴 곳을 찾아가 세상을 피해 도를 기르면서 여생을 보내기로 동의하였다.
세 사람은 의논을 마치고 새벽에 떠나기로 하였다. 이 세 사람 중 화정華亭 선사가 가장 연장자이고, 도오가 막내였는데, 밤중이 되자 도오가 3의衣를 갖추고 두 사형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까 의논한 일은 우리들세 사람의 본뜻에는 꼭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석두石頭의 종지宗枝가 끊기는 일은 없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끊긴다고 하는가?”
“두 사형과 내가 깊은 산, 인적이 이르지 않는 곳에 숨어 도를 닦으면서 여생을 보낸다면 어찌 끊기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제에게 이제 보니 그런 뜻이 있었구려. 그렇다면 산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제각기 흩어져서 갑시다. 그러나 사제께 부탁할 일이 있소. 나는 헤어진 후 소주蘇州의 화정현花亭縣으로 가서 조그만 배를 구해 물 위에 띄우고 즐길 터이니, 그동안 영리한 이를 만나거든 그를 내게로 보내 주시오.”
“사형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이로부터 세 사람이 제각기 나뉘어서 길을 떠났다.
도오가 세상에 나온 지 몇 해가 지났건만 영리한 이를 전혀 만날 수 없더니,
어느 날 새로 온 스님이 문안 인사를 하기에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천문산天門山에서 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던가?”
“아무개 화상입니다.”
“어떤 불법 인연이 있으시던가?”
이에 그 스님이 두세 가지 인연을 들어 전하니, 도오는 이 말에 몹시 기뻐하면서 있을 곳을 정해 주고는 밤중에 원주院主를 불러내어 말했다.
“내가 천문산으로 가려는데 이런 소문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
그리고는 그날 밤으로 길을 떠났다. 어느덧 천문산에 이르러 삼문三門에 막 들어서는데, 화상이 멀리서 도오를 보고는 이내 내려와 법당으로 맞이하였다.
모든 수인사의 절차를 마친 뒤에 물었다.
“화상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도오가 대답했다.
“특별히 장로를 뵈러 왔습니다. 듣건대 내일 개당開堂을 한다는데 사실입니까?”
“개당은 무슨 개당입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이에 도오가 다그쳤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이 오늘 저녁에 속히 개당하십시오.”
주인은 굳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서 법상에 올라 두어 가지 화두를 설파했는데,
어떤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참 부처입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참 부처는 형상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법안法眼입니까?”
“법안은 티가 없느니라.”
도오가 이 대답을 듣고는 귀를 막았다. 경구京口가 법당에서 내려와 도오를 불렀다.
도오가 방에 이르자 경구가 물었다.
“내 대답 어디에 허물이 있기에 귀를 막고 나가 버리시는 것입니까?”
도오가 대답했다.
“스님의 뛰어남을 살피니 참으로 법기法器입니다만 마땅한 인연을 만나지 못했음이 아쉽습니다. 우리 사형께서 지금 소주蘇州의 화정현에서 작은 배를 강 위에 띄우고 즐기시니, 장로께서 거기에 가시기만 하면 꼭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영리한 사람이 있거든 두 사람만 데리고 가시되, 좌주(座主:강사)의 복장을 입히고 가십시오.”
주인이 그날 밤으로 길을 떠나 곧장 강가에 이르러 서 있자,
선사가 두 좌주를 보고 물었다.
“좌주께서는 어느 절에 머무시는가?”
좌주가 대답했다.
“절이라면 머물지 않고, 머무르면 절이 아닙니다.”
“어째서 머무르지 않는가?”
“눈앞에 절이 없습니다.”
“어디서 공부를 했는가?”
“눈과 귀로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한 구절의 의식적인 말[頭意]은 만 겁의 나귀 매는 말뚝이니라.”
그리고는 몇 차례 때려 주었다. 선사가 비록 때리긴 했지만 그의 근성이 영리함을 보았기에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말을 의심하지 말고 배에서 내려라.”
천문(天門:좌주)이 배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날마다 곧은 낚시로 고기를 낚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천 길의 실을 드리움은 그 뜻이 깊은 못에 있나니, 유有와 무無를 평정하고 세 치의 혀를 여읜 구절을 그대는 어째서 묻지 못하는가?”
천문이 화상에게 물으려 하는데, 선사가 삿대를 갑자기 휘둘렀다.
이에 천문이 피하면서 말했다.
“말은 현묘함을 띠었으되 나아갈 길이 없고, 혀는 말을 하되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선사가 말했다.
“날마다 곧은 낚시로 고기를 낚다가 오늘에야 한 마리 낚았도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나무 끝의 실이야 맘대로 희롱할 수 있지만 함부로 물속에 넣지 않음은 뜻이 다를까 봐여서이니라.”
선사가 다시 천문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떠나려는가?”
“가겠습니다.”
“가기는 마음대로 가라마는 그 일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풀을 보았습니다.”
이에 선사가 당부하였다.
“그대는 이후부터 몸을 숨기는 곳에서는 자취를 없애고, 자취가 없는 곳에서는 몸을 숨겨라. 이 두 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진실로 나의 가르침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화엄華嚴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몸을 숨기는 곳에서 자취를 없애는 것입니까?”
“협산夾山이 친히 화정花亭의 수기授記를 받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자취가 없는 곳에서 몸을 숨기는 것입니까?”
“오늘 아침 홀연히 어리석은 사내를 만난 것이니라.”
화엄이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몸 숨길 때 자취 없애라 스승이 당부하니
자취 없는 데 몸 숨길 줄 스스로 알았네.
지난날에는 종종 검객을 만나더니
오늘 아침에는 시시때때 멍청이를 만난다네.
도오가 협산에게 스승을 찾으라고 지시한 일을 택擇 선사가 읊었다.
경구京口는 현묘한 이치 말한 일로 이름 높아
도오와 협산이 애써서 먼 길을 떠났네.
법안法眼에는 티가 없다 하기는 해도
그 사람 귀를 막고 들었음을 어이하랴?
배우려면 모름지기 참 종장을 찾아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사기 치는 이들은 들을 필요 없다.
이 길로 또다시 스승을 찾아가려 하면
반드시 잠시 형체를 바꿔야 한다네.
지난날 도반과 서로의 뜻 깊이 맞아
노승이 오늘 와서 입 쓰도록 당부한다.
운수雲水의 선지식들에게 특별히 고하나니
한 가을의 외로운 달이 화정花亭 물에 잠겼도다.
또 협산夾山이 갑자기 화정花亭을 만난 일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작은 배 띄운 지 몇십 년 동안
바람과 파도 따라 인연因緣에 맡기었네.
그저 종자기鍾子期가 풍류를 안다는 말을 할 뿐
좌주座主가 선을 참구할 줄이야 뉘 알았으리오.
눈앞에 절이 없대서 말뚝이 되었으나
말끝에 서로 계합한 일은 그렇지 아니하였네.
푸른 못에 낚시 드리운 늙은이를 멀리서 가리키니
스승의 호된 꾸지람에 순간 방편 법을 모두 버렸네.
[비수 화상] 椑樹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다. 실록實錄을 보지 못해서 생애의 시종을 기록할 수 없다.
도오道吾가 누워 있는데,
선사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뚜껑을 덮습니다.”
“누워 있는 쪽인가, 눕지 않은 쪽인가?”
“그 양쪽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뚜껑을 덮고 있으니 어찌하랴?”
이에 도오가 소매를 털고 나가 버렸다.
복선福先이 어떤 스님에게 들어 물었다.
“뚜껑을 덮는다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스스로 양구良久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선사가 도오에게 물었다.
“무엇 하러 왔는가?”
“인사차 왔습니다.”
“인사차 왔다면 주둥이는 왜 놀리는가?”
“빌리는 법이야 어찌 없겠습니까?”
“빌려준 일이 없는데 무엇을 빌린단 말인가?”
이에 석상石霜이 말했다.
“이는 남의 입이니라.”
선사가 마당을 쓰는데,
조주趙州가 물었다.
“반야般若는 무엇이 바탕이 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그저 그러하니라.”
조주는 이튿날 선사가 마당을 쓰는 것을 보고 어제처럼 그렇게 물으니, 선사가 말했다.
“그 질문을 되레 그대에게 물으면 대답해 주겠는가?”
“물으십시오.”
이에 선사가 물으니, 조주가 손뼉을 치면서 물러갔다.
[도오 화상] 道吾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고, 유양현劉陽縣에 있었다. 휘諱는 원지圓智, 성은 왕王씨로서 종릉鍾陵의 건창建昌 사람이다.
열반涅槃 화상의 지시에 따라 약산을 찾아뵈었을 때, 약산이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했다.
“법신法身이 4대大를 갖춘 일을 누가 설명하겠는가? 누군가 설명할 수 있다면 그에게 바지를 한 벌 주리라.”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성지性地는 바람이 아니요, 바람은 성지性地가 아니니, 이것이 풍대風大요, 지대地大ㆍ수대水大ㆍ화대火大도 그러합니다.”
약산이 인정하고 약속대로 바지 한 벌을 주었다.
석상石霜이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누군가가 갑자기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그에게 무엇이라 대답하리까?”
이에 선사가 사미沙彌를 불렀다. 사미가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깨끗한 병에 물을 담아 두어라.”
그리고는 되레 석상에게 물었다.
“아까 무엇을 물었던가?”
석상이 아까같이 다시 물으니, 선사가 곧 일어나 자리를 떴다.
선사가 산을 내려가 오봉五峯에 이르니,
오봉이 물었다.
“그곳의 노숙老宿을 아십니까?”
“모른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모른다, 몰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家風이십니까?”
선사가 평상에서 내려와 절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멀리서 온 것은 고마우나 아무것도 대답할 것이 없소이다.”
“만 리에 구름이 없다 해도 이 역시 곁가지의 해[日]입니다. 어떤 것이 본래의 해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하였다.
“오늘은 보리 말리기에 딱 좋구나.”
위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보리菩提는 무엇으로 자리[座]를 삼습니까?”
운암이 대답했다.
“자리 없음을 자리로 삼는다.”
운암이 되레 위산에게 물으니,
위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모든 법이 공함으로 자리를 삼습니다.”
이에 위산이 다시 선사에게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앉을 때에도 그의 말을 듣고 앉으며, 누울 때에도 그의 말에 따라 눕는다. 어떤 사람은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나니, 빨리 말해 보아라.”
선사가 삿갓을 가지고 나가니,
운암이 물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 하려 하십니까?”
“쓸 데가 있다.”
“검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어찌합니까?”
“뚜껑을 덮는다.”
“그가 뚜껑을 덮으려 합니까?”
“비록 그렇다 하나 오히려 새지는 않는다.”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지금 힘을 써야 할 곳입니까?”
“천 사람이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相應할 몫이 조금 있느니라.”
“갑자기 불이 났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온 누리를 다 태울 수 있느니라.”
비수椑樹가 불을 쪼이는데,
선사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화합和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에 해탈을 얻겠구나.”
“막힌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소매를 떨고 나가 버렸다.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란 어떤 것이오?”
운암이 대답했다.
“마치 어두운 밤에 베개를 잡고 있는 것과 같소. 당신도 아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도 압니다. 나도 알아.”
운암이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압니까?”
“온몸이 눈입니다.”
이에 신산神山이 말했다.
“온몸이 눈이었다.”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말했다.
“세상에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모두가 세상에 나온 쪽에서 하는 말이다.”
이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설사 인정하지 않더라도 역시 곁가닥이니라.”
선사가 위산을 하직하니, 위산이 “지智 두타頭陀여” 하고 불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 안의 일이 어떻습니까?”
위산이 또 “지 두타여, 지 두타여” 하니, 선사가 말했다.
“참으로 졸렬하군.”
선사가 새로 참문 온 스님을 보자, 북을 치고 방장으로 돌아가니, 그 스님도 북을 치고 승당僧堂으로 들어갔다. 이에 주사(主事:책임자)가 선사에게 와서 책망을 했다.
“화상께서 북을 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새로 온 이는 어째서 까닭 없이 북을 칩니까?”
선사가 말했다.
“법답게 차와 떡을 준비하라. 내일 내가 그를 감정해 보리라.”
이튿날 차와 떡을 준비해서 그를 불러 먹이다가 선사가 동자에게 지시하여 그 스님의 곁으로 가라 하니, 동자가 얼른 가서 그 스님의 곁에 섰다. 그 스님이 동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상께서 부르십니다.”
이에 선사가 방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주사主事는 다시 화상에게 와서 말했다.
“그가 어제 까닭 없이 북을 친 것만으로도 꾸중을 들어야 하거늘 어째서 아까 되레 동자의 머리를 때립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를 위해 꾸짖었고, 또 감정도 끝냈느니라.”
어느 고승이 비를 무릅쓰고 상당하니, 약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 왔는가?”
고승이 대답했다.
“오줌 속입니다.”
“흠뻑 젖었겠군.”
“그러한 북 피리 장단은 치지 않습니다.”
이에 운암이 말했다.
“가죽도 없는데, 무슨 북을 친다는 말인가?”
이에 선사가 말했다.
“뼈도 없는데, 무슨 가죽을 친다는 것이오?”
약산이 말했다.
“매우 좋은 곡조로다.”
태화太和 9년 을해乙亥 9월 11일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4대大가 고르지 못하면 몹시 아프실 터인데, 그 아픔을 줄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아프지 않은들 무엇 하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 몸으로 다 갚을지언정 악도惡道에 드는 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했느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갚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이가 있는 줄 아는가?”
“그렇다면 물이 파도를 여의지 않고, 파도가 물을 여의지 않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갑자기 얼굴에다 침을 뱉고 양구良久했다가, 다시 대중에게 물었다.
“몇 시경이나 되었느냐?”
“미시未時입니다.”
“그러면 종을 쳐라.”
종을 세 번 치자 홀연히 입적하니, 춘추는 67세였다.
선사가 떠나면서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비록 서쪽으로 가나 진리는 동쪽으로 옮겨가지 않으리라.”
다비茶毘한 뒤에 사리舍利 하나를 얻으니, 뛰어나게 맑고 밝았으며, 그 빛은 금과 같고, 그 소리는 구리와 같았다. 석상산石霜山에 탑을 모시니, 시호는 수일修一 대사요, 탑호塔號는 보상寶相이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탄하였다.
장사의 도오道吾 선사는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셨건 나오시지 않았건
나무 쓰러지면 등나무 넝쿨도 마른다.
싸늘한 바위 위 오래된 전나무
푸른 은하수에 금까마귀
가르침을 내리심이 높고도 험준하나
석상石霜이 그것을 감당했다네.
[삼평 화상] 三平
태전太顚 선사의 법을 이었고, 장주漳州에서 살았다. 휘諱는 의충義忠이요, 성은 양楊씨이며, 복주福州의 복당현福唐縣 사람이다. 태전 선사에게 입실하여 깊은 계합을 얻은 뒤에 무종武宗의 사태沙汰를 만나 삼평산에 은닉해 있었다.
나중에 선종宣宗이 다시 불법을 드높이는 때를 만났으나 그 바다 어귀에 찾아오는 도반은 아주 끊어졌다.
나중에 서원西院의 대위大潙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 가운데 일 벌이기 좋아하는 열 몇 사람이 가서 굳이 청하니, 비로소 현묘한 관문을 열게 되었다.
이때 특별히 황대구黃大口라 불리는 어떤 스님에게 선사가 물었다.
“대구(大口:입이 크다는 뜻) 화상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스님이시오?”
그 스님이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선사가 말했다.
“입이 얼마나 큽니까?”
“온몸이 입입니다.”
“그러면 똥은 어디로 누시오?”
그 당시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이로부터 선사의 명성이 천하에 퍼져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전염병[瘴癘]을 꺼리지 않고 멀리서 모여들었다.
선사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였다.
“요즘 출가한 이들은 모두가 널리 구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안목으로 삼으니, 상응相應할 시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대들이 현묘한 진리를 배우고자 한다면 여타의 것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에게 본분의 일이 갖추어져 있으니, 직접 체험해 얻지 않고 무엇을 하는가? 마음을 분주히 하거나 입을 중얼거린다고 거기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분명히 말하나니, 수행하는 방법이나, 여러 성인들이 교화를 펴시던 길은 대장경에 자연히 들어 있다. 다만 종문宗門의 일은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배울 길이 있습니까?”
“미끄럽기가 이끼와 같은 길이 한 가닥 있기는 하다.”
“학인學人도 밟을 수 있습니까?”
“마음에 의탁하려 하지 말고 그대 스스로 보라.”
다시 물었다.
“3승의 12분교는 학인이 의심하지 않거니와 화상께서는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大德아, 거북 털의 불자拂子와 토끼 뿔의 지팡이는 어디에다 숨겨 두었는가?”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나무랐다.
“살덩이는 천 근이나 되지만 지혜는 한 푼의 무게도 안 되는구나.”
이에 하옥荷玉이 송했다.
거북 털의 불자와 토끼 뿔의 지팡이를
들고 와서 아무 데나 둔다.
옛사람의 일을 말끝에 알아들으면
유有뿐만 아니라 무無까지도 없어진다.
왕王 시랑侍郞이 선사에게 물었다.
“검정콩이 싹이 트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부처님들도 모르신다.”
선사가 이에 대해 송했다.
보리 지혜의 해는 아침마다 비치고
반야의 시원한 바람, 저녁마다 분다.
여기에는 잡된 나무는 나지 않나니
산에 가득한 밝은 달이 선법禪法의 나무라네.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아직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다면 안 될 일이고, 만일 이미 만났다면 의당 조금이라도 그 의도를 알아차려 깊은 골짜기 우아한 봉우리 바위 밑에서 외로이 잠을 자고, 나무뿌리를 먹고 풀 옷을 지어 입을지니, 그렇게 해야만 조금 상응相應할 수 있으리라. 만일 여전히 설치면서 알음알이로 뜻과 말만 구한다면 만 리 밖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격이리라. 진중珍重하라.”
선사가 게송 세 수를 남겼다.
이 견문이 견문이 아니고
그대에게 바칠 빛과 소리도 없다네.
그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소식 분명히 안다면
체와 용이 나뉘든, 나뉘지 않든 무방하리라.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본래 티끌 아니나
심식心識의 바다에 파도가 일면 절로 자신을 잊나니
그 형상은 푸른 못이 얼음과 거품에 덮인 것 같고
영특한 왕이 도리어 나그네 신세된 것과도 같네.
又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본디 원인이 아니니
그 자리는 비고 깊어서 망妄도 진眞도 끊겼네.
성품 보아 어리석은 업 짓지 않으면
훤하게 밝고 희어서 자기의 소중한 보배이리라.
선사가 함통咸通 13년 11월 6일에 입적하니, 춘추는 92세였다. 이부시랑吏部侍郞 왕풍王諷이 탑명塔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