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Silk Road)와 누란(樓蘭)의 미녀<1>
◆역사의 여로(旅路) 실크로드(Silk Road)◆
<1> 신장(新疆) 위구르(維吾尔) 자치구의 지역적 특성
실크로드(Silk Road) / 신장 위구르 자치주(붉은색) / 천산북로, 천산남로, 사막남로
중국대륙의 서북쪽 국경부근인 중앙아시아에 있는 신장위구르(維吾尔) 자치구는 중국에 합병(1884)되기 전 서역(西域)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대부분 타클라마칸(Taklamakan)사막과 고비(Gobi)사막이 차지하는 황량한 사막지역이다.
이 지역은 곳곳에 형성된 작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흉노족(匈奴), 돌궐족(突闕), 몽골족(蒙古) 등 소수민족들이 수립하였던 수십 개의 작은 소국(小國)들이 난립하여 흥망을 거듭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중국의 위구르(維吾尔) 자치구를 보면 동쪽은 깐수성(甘肅省)과 칭하이성(靑海省), 남쪽은 시짱(西藏) 티베트 자치구, 북동쪽은 몽골, 북서쪽은 카자흐스탄, 서쪽으로는 키르키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알타이산맥, 텐샨(天山)산맥, 쿤룬(崑崙)산맥이 가로로 길게 누워 국경선을 이루는 지형이다.
텐샨산맥을 경계로 북쪽은 중가르(准噶尔) 분지, 남쪽으로 타림(塔里木)분지, 동쪽으로 투루판(吐魯番) 분지가 펼쳐져 있으며 신장(新疆)의 강(疆)은 세 산맥(一)과 분지(田)를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또 쿠무타크(庫木塔格) 사막 근처의 둔황(敦煌) 부근은 모래가 많고 모래바람이 심하여 사주(沙州)로, 투루판(土魯番)지구는 분지(盆地)인데 너무 더워 화주(火州)로 불린다. 이곳은 불모의 땅인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사막, 쿠무타크(庫木塔格) 사막 등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곳이다.
<2> 비단길(Silk road)과 옥의 길(Jade road)
실크로드는 글자 그대로 낙타 등에 중국의 비단을 싣고 유럽으로 가고 유럽의 여러 물산이 중국으로 유입되던 낙타 캐러밴(Caravan)의 교역로를 의미하지만 그 이전에도 옥(玉)의 생산지로 유명한 신장성(新疆省) 허텐(和田/和闐)의 질 좋은 옥이 중국으로 유입되던 옥의 길(Jade Road)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한다.
타클라마칸사막 서남단(西南端)의 허텐은 옥과 함께 사금(砂金), 비취(翡翠)의 생산지로도 유명하였던 지역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것은 주로 중국으로 들여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중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옥(玉)을 무척 좋아한다.
이 지역의 명칭은 서역으로부터 옥이 들어오는 관문이라 하여 옥문관(玉門關)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후일 비단이 오가면서 옥의 길(Jade Road)이 다시 비단길(Silk Road)로 이름이 바뀌었다.
<3>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天山南路)
실크로드의 시발점은 중국 본토의 시안(西安), 혹은 더 멀리 뤼양(洛陽:현재의 鄭州)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시는 국경 부근인 깐수성(甘肅省)의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을 지나갔으니 사실상 깐수성이 실크로드의 기점(起點)이었던 셈이다.
비단을 싣고 서역(西域-현 新疆)에 들어온 장사꾼들은 투루판을 거쳐 천산산맥 남쪽을 지나 신장성(新疆省) 서쪽 끝인 카스(喀什:카슈가르)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르는 천산북로(天山北路)를 이용했고 또 하나는 쿤룬(崑崙)산맥의 북쪽을 지나 카스(喀什)로 이르는 천산남로(天山南路)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을 지나는 사막남로(沙漠南路)도 있었다.
둔황(敦煌)과 옥문관은 깐수성(甘肅省)의 란저우(蘭州)에서 시작되는 하서회랑(河西回廊 혹은 河西走廊)의 서쪽 끝부분으로 이곳 대협곡이 황하(黃河)의 서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 하서(河西/강의 서쪽)이다.
실크로드에서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깐수(甘肅)성의 좁고 긴 약 1.000km의 황량한 대협곡(大峽谷)은 마치 긴 복도와 같다고 하여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고, 이 길은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가 천축국(天竺:印度)으로 불경을 가지러 다녀온 길이기도 하며, 그 이야기가 후일 서유기(西遊記)라는 소설로 씌어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이곳을 지날 때 너무나 더웠고, 길 옆에 서있는 서유기의 동상들(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도 보았다.
<4> 교역로(交易路)의 개척역사
BC 2세기,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장군은 이 지역을 지배하던 흉노(匈奴)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왔으나 오히려 흉노족의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장건은 10여 년간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흉노여자와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었지만 결국 탈출하여 고국으로 혼자 돌아가서 이 지역의 지리와 풍습을 기록하여 한무제(漢武帝)에게 바침으로 후일 흉노 토벌의 큰 공을 세운다.
장건(張騫)장군 동상 / 양관(陽關) 봉수대 / 양관고지(陽關故址/뒤는 타클라마칸사막)
그리고 이곳에 국경의 관문인 양관(陽關)을 설치하고 주변 여러 나라와 문물을 교역하는 루트를 개설했으며 대상(隊商)들을 보호하여 실크로드를 있게 한, 실질적인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 서쪽 관문인 양관(陽關)은 글자 그대로 뜨거운 햇볕(陽)으로 가득 찬 불모(不毛)의 땅으로 이곳을 나서면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사막(Takla Makan Desert)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