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배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땅에 퍼져나가면서 서로 교배했고 결국 두 집단은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유라시아인은 순수한 사피엔스가 아니라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합이다.
마찬가지로 사피엔스는 동아시아로 퍼져나가서도 현지의 호모 에렉투스와 교배했다.
그렇다면 중국인과 한국인은 사피엔스와 에렉투스의 혼합이다.
이와 대립되는 견해는 '교체이론'이다.
교체이론은 전혀 다른 설명을 들려준다
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들은 해부학적으로 달랐으며
짝짓기 습관이나 체취가지도 차이가 났을 가능성이 매우 커서, 서로 성적인 관심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설령 네안데르탈인 로미오와 사피엔스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낳은 아이는 불임이었을 것이다.
두 집단의 유전적 격착 너무 커서 이미 메울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집단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했으며,
네안데르탈인들이 죽거나 살해되자 그 유전자도 사라졌다.
만일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모든 현대 인류의 조상은 하나같이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순수한 사피엔스'다.
이 논쟁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7만 년이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만일 '교체이론'이 맞다면,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대체로 같은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다,
하지만 '교배이론'이 맞다면,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사이에는 수십만 년의 연원을 둔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화약고로서 , 폭발력을 지닌 인종이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최근 몇 십 년은 교체이론이 이 분야의 상식이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상대적으로 더 확고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올바른 것이었다.
(현대 인구집단들에게 유의미한 유전적 다양성이 잇닥 말하면 인종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2010년에 끝이 났다.
4년간의 연구 끝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지도가 발표된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화석에서 충분한 양의 온전한 네안데르탈인 DNA를 얻어서
그것과 현대인의 DNA를 폭넓게 대조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과학자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의 DNA중
1~4퍼센트가 네안데르탈인 DNA로 밝혀졌던 것이다. 이것은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두 번째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2008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손가락뼈에서 추출한 DNA로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 현대 멜라네시아인과 호주 원주민의 인간 고유 DNA 중
최대 6퍼센트가 데니소바인의 DNA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유효하다면
ㅡ이런 결론을 강화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이 있는 추가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ㅡ
최소한 교배이론에 뭔가 근거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체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우리의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에,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의 합병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들 간의 차이가 번식 가능한 성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런 접촉을 매우 드믈게 만들 정도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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