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아발다라보경 제1권
9. 공ㆍ불이
[모든 법이 공, 무생, 불이, 자성성을 벗어나다]
이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해 모든 법이 공(空)하고, 생김이 없고[無生], 둘이 없으며[無二], 자성상(自性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과 나머지 모든 보살들이 이 공(空)과 생김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과 자성상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망상을 떠나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이제 너희를 위해 자세히 분별해 말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공공이란, 곧 망상자성(妄想自性)이 처하는 곳이다.
대혜야, 망상 자체에 집착하는 사람은 ‘공이란 생김도 없고 다름도 없어 자성상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공의 일곱 종류]
대혜야, 공을 간략히 일곱 종류의 공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모습이 공한 것[相空], 성자성이 공한 것[性自性空], 행이 공한 것[行空], 행이 없음이 공한 것[無行空], 모든 법이 말을 떠나 공한 것[一切法離言說空], 제일의인 성지가 크게 공한 것[第一義聖智大空], 그곳에 그것이 공한 것[彼彼空]이다.
무엇이 모습이 공하다는 것인가?
모든 성품은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 공한 것을 말한다. 전전(展轉)하여 모여 쌓인 것을 관찰하므로 성품이 없음을 분별하여 자상과 공상이 생기지 않고, 자성(自性)도 타성(他性)도 구성(俱性)도 성품이 없기 때문에 모습이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성의 모습이 공하다고 한다.
무엇이 성자성(性自性)이 공하다는 것인가?
자기의 성자성은 생겨나지 않나니, 이를 모든 법의 성자성이 공한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자성이 공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행이 공하다는 것인가?
음(陰)은 ‘나’와 ‘나의 것’을 벗어났으니, 이루어진 업[所成業]과 지어진 업[所作業]의 방편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이를 행이 공한 것이라 한다.
대혜야, 이와 같이 행이 공하나 전전하여 연(緣)으로 일어나며, 자성의 성품이 없으므로 이를 행이 없음이 공한 것이라 한다.
무엇이 모든 법이 말을 벗어나 공하다는 것인가?
망상자성은 말이 없는 까닭에 모든 법이 말을 벗어나는 것이니,
이를 모든 법이 말을 벗어나 공한 것이라 한다.
무엇이 모든 법의 제일의(第一義)인 성지(聖智)가 크게 공하다는 것인가? 자각성지(自覺聖智)를 얻어 모든 잘못된 견해와 습기가 공한 것이니,
이를 모든 법의 제일의인 성지가 크게 공한 것이라 한다.
무엇이 그곳에 그것이 공하다는 것인가?
그곳에 그것이 없어서 공한 것을 말하니, 이를 그곳에 그것이 공하다고 한다.
대혜야, 마치 녹자모(鹿子母)의 집에 코끼리나 말이나 소나 양 등은 없고 비구들은 없는 것이 아닐 때, ‘저것이 공하다’고 말하면 집[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집과 집의 성품이 공(空)하다는 것이 아니고, 비구와 비구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이 아니며, 다른 곳에 코끼리나 말이 없다는 말도 아닌 것과 같다.
이를 모든 법의 자상(自相)이라고 한다. 모든 법의 자상은 그곳에 그것이 없다.
이를 그곳에 그것이 공한 것이라 한다.
이를 일곱 가지 공(空)이라고 한다.
그곳에 그것이 공한 공이 가장 거친 것이니, 너희는 마땅히 멀리 벗어나야 한다.
대혜야,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니, 삼매에 머무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김이 없다[無生]’고 한다.
자성을 벗어나면 곧 이것이 생김이 없는 것이다. 자성을 벗어나 찰나마다 상속(相續)하며 흘러 들어 다른 성품이 나타나므로, 모든 성품이 자성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성품이 자성을 벗어난다.
[둘이 없다는 것]
무엇이 둘이 없다[無二]는 것인가?
모든 법이 차거나 뜨겁고, 길거나 짧고, 검거나 흰 것처럼 두 가지 법인 듯하나, 대혜야 모든 법은 둘이 아니다.
열반이 저 생사가 아니고 생사가 저 열반이 아니니, 다른 모습인 것은 성품이 있음을 인하기 때문이다. 이를 둘이 없는 것이라 한다.
열반과 생사처럼 모든 법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므로 공하고, 생김이 없고, 둘이 없고, 자성상(自性相)을 벗어난 것임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공한 법을 말하여
단(斷)과 상(常)을 멀리 벗어나게 하니
생사는 환(幻)과 같고 꿈과 같으나
저 업은 무너지지 않는다.
허공(虛空)과 열반(涅槃)
두 가지를 없애는 것 역시 이와 같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망상을 짓고
모든 성인은 있고 없음을 떠난다.
이때 세존께서 다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야, 공하고 생김이 없고 둘이 없어 자성상(自性相)을 떠나면, 두루 모든 부처님의 모든 수다라(修多羅)에 들어간다. 모든 경은 다 이 뜻을 말한 것이다.
모든 수다라는 일체 중생의 희망하는 마음을 따르는 까닭에 그들을 위해 분별하여 그 뜻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니, 진실이 실재로 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갈증 난 사슴이 미치고 미혹되어 사슴 무리를 보고는 그 모습을 물이라고 계착하지만 거기에는 물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수다라에서 말한 모든 법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하여금 환희심(歡喜心)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일 뿐, 진실한 성지(聖智)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뜻에 의지해야지 말에 집착하지는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