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소단장謫所短章
- 노도, 서포 김만중
나를 가둔 게
섬인 줄 알았더니
섬이 내게 갇힌 거라
내가 오기 전에도
금산 설흘산 응봉산에
눈이 감긴 섬이
운무처럼 시름이 깊어졌다
건너편에 보이는 두모마을이
유채꽃을 피워
아궁이 같은 심회를 지필 때마다
오련히 눈 뜬 골무꽃이
맞불 피울 준비를 한다
섬이 갇히면서
벽련포구에서 마주했던 풍광이
내 안에서 노를 젓는다
바깥이 안에 살자 하면
속궁리는 바깥채가 될밖에
이윽히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이
물길을 건너와
앵강만에 떠 있는 처소
발길 닿는 데마다 헤적이면
공연히 나는
안팎을 침범하는 물살을 철벅인다
동백이 지고 나면
가벼이 나무를 닮아가는 마음
내 뿌리는 여태도
시속의 물이 들지 않은 채로
나는 오늘
금산에서 바위 굴러 내리는 소리며
죽방렴 멸치 떼의 수선거림이며
그들을 다독이는
보리암의 목어 소리까지
어두커니 들린다
두 귀가 잎사귀처럼 엷어지고
환해진 것이거니
적소에 든지 삼 년,
머잖아 내가 머문 응달에서
고단한 볕으로
퍼 날라지는 순간이 올 것임을 안다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부지깽이로 긁어모은
내 허명을
뒤란에 묻은 지 오래다
사시장철 끊이지 않는 파도가
내가 풀어나간 글을 닮았다
나는 어쩌자고
눈을 감는 이 순간까지
붓을 놓지 못하는가
섬 이름에 노櫓가 들어간 게
진정 바다의 뜻이라면
이제 노를 그만 저어야 하리
아니, 바다로 돌아가야 하리
내 어미의 설움과
설움이 낳은 이야기와
이야기가 낳은
남해의 섬 노도여,
내가 너를 떠남으로써
너는 온전히
내 정신을 저어가리
비로소 노를 쥔 섬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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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학기행 유배시
심강우(유배시) / 적소단장謫所短章 -노도, 서포 김만중
심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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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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