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애경 제4권
12. 요중생소품(了衆生所品)
[제3의 일]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과 배움의 듯이 달라 해탈하지 못함을 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중생들이 사람이나 종류마다 그 좋아하는 것이 같지 않고 배움에 뜻 두는 것이 달라서 해탈하지 못하는 것을 사실 그대로 다 아신다.
어떤 것을 아신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은 탐욕에 머물면서 그 뜻은 성내는 것을 벗어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성내거나 미워하는 데에 머물면서 탐욕을 벗어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어리석음에 머물면서 성냄과 미워하는 것을 벗어나려 하니,
여래께서는 이것을 환히 아신다.
또 어떤 사람은 착한 덕에 머물러 그 착하지 못한 것을 벗어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착하지 못한 것에 머물지만 그 뜻은 착한 도를 믿으니,
여래께서는 이것을 환히 아신다.
또 어떤 사람은 하열(下劣)한 것에 정진하지만 미묘한 것을 믿어 해탈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미묘한 것에 정진하여 그 미묘한 것의 해탈에 마음을 두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하열한 것에 정진하지만 그 뜻은 훌륭하고 뛰어난 이치에 머물며,
어떤 훌륭하고 뛰어나며 초월한 것에 정진하지만 하열한 데를 믿어 떨어지므로 영원히 그릇된 업에 머물러 결정된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결정되지 않은 것을 믿어 바른 업을 성취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바로 결정된 문(門)을 좋아하여 해탈을 얻으니,
여래께서는 이것을 환히 아신다.
또 어떤 사람은 기꺼이 믿어서 욕계(欲界)에서 제도되고,
또 어떤 사람은 기꺼이 믿음으로써 색계(色界)에서 제도되고,
또 어떤 이는 기꺼이 믿어 3계를 벗어나며, 줄어듦을 믿고 기뻐하다가 특수(特殊)함을 이룩하고,
혹은 특수함을 좋아하다가 줄어듦에 이르기도 하니,
여래께서는 이것을 환히 아신다.
또 중생들은 그가 태어나는 처소에 따라 어떤 모습인지,
재산과 하는 일에 서로 차이가 나며 받는 것이 같지 않으며,
혹은 믿음의 즐거움으로 인하여 정수리의 모습을 이룩하고,
혹은 그 한계에 머물기도 하나니,
여래께서는 이것을 모두 환히 아시고,
그에 따라 곧 마음대로 설법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신다.
그러기에 이것을 여래의 제3의 업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세간의 뜻 같지 않고
그 좋아함도 각각 달라
한없는 갖가지 생각을
부처님께서는 남김없이 다 아시노라.
세간 사람의 생각이 미치는 곳
혹은 믿음과 즐거움에 치우치고
탐욕과 성냄에 머물거나
어리석음에 머묾을 부처님께서는 아시고
혹은 어리석음에서 또 탐욕으로
착하고 착하지 않음에 머물거나
그 소행의 수특하고 수특하지 않음을
부처님께서는 다 남김없이 아시네.
또 하열한 데로부터 미묘한 데로
그 유현(幽玄)한 것을 좋아하고
혹은 뛰어나게 특이한 업을 따라
힘써 해탈하려고 정진하려 하는 것.
혹은 하열한 것을 따라 믿어
가장 미묘한 것을 이룩하려 하고
혹은 뛰어나고 훌륭한 행을 따라
곧 뛰어난 지혜를 얻으려 하는 것.
그릇된 업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결정된 문을 믿으려 하거나
3계에 초월하기를 좋아하는
그 모든 뜻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시네.
중생은 태어난 처소에 따라
각기 받는 과보가 각각 다르므로
혹은 정수리의 모습을 낼 수 있고
혹은 신심으로 해탈할 수도 있나니
부처님께서는 3계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 설법하시고
그 근기에 따라 응하시므로
이를 열 가지 힘의 업이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