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보살경 제5권
[4의법이 다함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의지하는 법이 있어 또 다함이 없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과,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음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요의경이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는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
말이란 세간 법속에 들어가서 말하고,
이치란 세간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아 문자의 모양이 없는 것이며,
말이란 보시와 조복(調伏)과 옹호(擁護)를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보시와 지계와 인욕을 알아 평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이란 생사를 헤아려 말하는 것이요,
이치란 생사에 성품이 없음을 아는 것이며,
말이란 열반의 맛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치란 열반의 성품이 없음을 아는 것이며,
말이란 모든 승(乘)을 해설하여 곳에 따라 편히 머무는 것이고,
이치란 모든 승을 잘 알아 한 모양의 지혜의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이란 모든 버림[捨]을 설명하고,
이치란 베푸는 이와 베푸는 물건과 받는 사람의 세 가지가 청정한 것이며,
말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깨끗한 계율의 공덕과 위의를 받아 가질 것을 말하고,
이치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음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서 모든 깨끗한 계율을 옹호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란 인욕으로 성냄과 스스로를 높임과 교만을 끊어버림을 말하고,
이치란 모든 법을 분명히 통달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지혜를 얻는 것이며,
말이란 모든 선근을 부지런히 행하는 것을 말하고,
이치란 정진에 편히 머물러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며,
말이란 모든 선정과 해탈 삼매와 삼마발제를 말하고,
이치란 멸진정(滅盡定)을 아는 것입니다.
말이란 온갖 문자와 지혜의 근본을 모두 들어 간직할 수 있는 것이고,
이치란 이 지혜의 이치는 말로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며,
말이란 37조도법(助道法)을 말하고,
이치란 모든 조도법을 올바로 알아 수행해서 능히 그 깨달음의 과(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말이란 고통과 쌓임과 도(道)의 진리를 말하고,
이치란 사라짐의 진리를 증득하는 것이며,
말이란 무명의 근본과 나아가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고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무명의 사라짐과 나아가 늙고 죽음의 사라짐을 아는 것이며,
말이란 선정과 지혜 돕는 법을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해탈의 지혜를 밝히는 것입니다.
말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착하지 않은 뿌리가 곧 해탈의 지혜임을 아는 것이며,
말이란 장애되는 법을 벗어남을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걸림 없는 해탈을 얻는 것이며,
말이란 삼보의 한량없는 공덕을 칭찬하여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삼보의 공덕은 욕심을 여읜 법성과 함께 함이 없는 모양인 것입니다.
말이란 발심으로부터 도량에 앉는 데 이르러 닦아 모아서 장엄하는 보살의 공덕을 말하는 것이고,
이치란 일념(一念)의 지혜로 모든 법을 깨닫는 것이니,
사리불이여, 요약하여 말하자면
8만 4천의 법 무더기[法聚]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말이라 하고,
모든 문자로써 말해줄 수 없음을 아는 것을 이치라고 합니다.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알음알이란 네 가지 알음알이에 머무는 것이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물질의 알음알이에 머무르는 것과,
느낌의 알음알이에 머무르는 것과,
생각의 알음알이에 머무르는 것과,
행의 알음알이에 머무르는 것이며,
지혜란 이 네 가지 알음알이의 성품은 머무는 바가 없음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아는 것이고,
지혜란 이 네 가지가 법성에 다름이 없음을 아는 것이며,
알음알이란 눈의 알음알이는 물질에 머물고 귀 코 혀 몸 뜻의 알음알이는 법에 머무는 것이고,
지혜란 안의 성품이 적멸하여 바깥으로 행하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법에 기억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란 오로지 반연한 것을 취하여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이며,
지혜란 마음에 반연하는 것이 없어서 어떤 모양도 취하지 않고 모든 법에 대해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며,
알음알이란 함이 있는 법을 행하는 것이고,
지혜란 함이 없는 법에는 알음알이도 행하는 바가 없고 함이 없는 법의 성품에는 알음알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란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이고,
지혜란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이 없는 것이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이 아닌 것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이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분별하여 도를 따르는 것이고, 요의경이란 과(果)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며,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어떤 업을 짓고 행함에 과보가 있다고 믿는 것이고, 요의경이란 모든 번뇌를 다한 것입니다.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모든 번뇌를 꾸짖는 것이고, 요의경이란 맑고 깨끗한 법을 칭찬하는 것이며,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나고 죽음의 고뇌를 말하는 것이고, 요의경이란 나고 죽음과 열반이 한 가지 모양이어서 둘이 없는 것이며,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갖가지로 장엄한 문자를 찬양하는 것이고, 요의경이란 아주 깊고 깊은 경전의 가지기 어렵고 알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흔히 중생을 위해 죄와 복의 모양을 말하여 설법을 듣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것이며, 요의경이란 모든 연설이 반드시 듣는 자에게 마음으로 조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의경이 아닌 것이란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과 양육과 대장부와 짓는 자와 받는 자 따위의 갖가지 문자와 모든 법에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베풂이 있고 받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요의경이란 ‘공’하여 모양과 원(願)이 없음과 지음이 없고 태어남이 없음과 ‘나’와 남, 중생과 수명, 양육과 장부, 짓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말하면서 항상 한량없는 모든 해탈문을 말하니,
이것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이 아닌 것에는 의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사람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해에 짓는 이와 받는 이가 있음을 거두어 취하는 것이요, 법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해에 짓는 이와 받는 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범부와 착한 사람과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과 법으로 행하는 사람과 팔인(八人)ㆍ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拂)ㆍ보살 등의 사람과, 오직 한 사람이 세상에 나오더라도 이익 됨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안락하게 되며 세간을 가엾이 여겨 대비심을 내어서 사람과 하늘에 많은 은혜를 주시는 이른바 불세존이니, 이와 같은 이름들은 부처님께서 세간의 이치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견해를 받아들여 취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에 의지하는 것이니, 여래는 사람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이를 교화하기 위하여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법성(法性)이란 변하거나 바뀔 수 없고, 지음도 짓지 않음도 없으며, 머물거나 머물지 않음도 없고, 모든 것이 평등하여 평등함 또한 평등하고 평등하지 않음도 평등하며,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바르게 결정함을 얻어 모든 법에 대해 차별과 다름이 없으므로 그 성(性)과 상(相)에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 이것을 법성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 법성에 의지한다면 마침내 한 모양의 법을 여의지 않을 것이며, 이 법문에 드는 자는 모든 법이 한 법성과 같음을 관찰할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의지함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