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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마라경 제4권
[바사닉왕이 앙굴마라를 만나다]
그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은 네 가지 병정을 모으고 여러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나찰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천에서 하나가 부족한 많은 사람을 상해하여 그 손가락으로 꾸미개를 만들고 그 피를 몸에 바르며, 용감하고 날쌔고재빨라서 이 나라에 횡포가 심하다는데, 지금 이 성에서 그 거리가 40구로사(俱盧奢:牛鳴)도 못 된다고 하네. 혹시 나와 신하들을 살해하여 그 수를 채울는지도 모르니 지금 함께 가서 살귀(殺鬼)를 없애야겠다.
지금 이 성안에 있는 온갖 남녀들이 그를 찾아 잡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감히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일체 새와 짐승들도 그 나쁜 이름만 들으면 역시 그곳에 가지를 못한다는구나.
그대들은 마땅히 이 명령을 안팎으로 널리 펴되
‘바사닉 왕이 지금 네 가지 병정을 일으키고 저 나찰인 앙굴마라를 토벌하려고 하니 모두들 무기를 지니고 오라.
만일 그와 힘을 다하여 싸우면 상하거나 상하지 않거나 간에 그 공에 따라서 코끼리와 말과 값진 보물과 성읍과 토지로 상을 주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모두 해줄 것이다’라고 하라.”
그러나 모두들 그의 악명을 들은지라,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이렇게 명령을 내렸지만 하나도 그 명령에 응하는 이가 없고 오직 왕의 좌우에 있는 이는 편치 못한 채 왕의 위엄스러운 얼굴만 우러러보고 일거일동을 고분고분 따를 뿐이었다.
그때 여러 왕비들이 울면서 간하여 아뢰었다.
“차라리 나라를 잃을지언정 원하옵나니 직접 토벌하시지 마옵소서.”
왕은 나라의 점치는 이를 불러서 그 길흉을 물었다.
“지금 앙굴마라를 제거할 수 있겠느냐?”
점치는 이들은 모두 아뢰었다.
“그는 지금 곧 사라질 것입니다.”
왕은 비록 이 말을 들었으나 믿지 않고 네 가지 병정을 데리고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부처님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두려운 빛을 띠면서 이마 위에는 땀이 흐른 채로 한곳에 물러나 앉아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로써 온갖 것을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대왕이여, 오늘은 무슨 까닭으로 땀을 흘립니까?”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나찰이 있는데 그 이름은 앙굴마라입니다. 그는 천에서 하나 부족한 인민을 살해하여 그 손가락으로 꾸미개를 만들고 그 피를 몸에 바릅니다. 그가 그 짓을 쉬지 않고서 나와 싸울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다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서 하는 사업이 폐지될 지경이며 온갖 새ㆍ짐승들도 모두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이 네 가지 병정을 데리고 가서 그를 토벌하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대왕께서 그를 벌 주려 하십니까?”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오직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는 것만 만족할 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앙굴마라가 여기에 온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 네 가지 병정들은 모두 다 크게 두려워하는데 오직 왕만은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부처님의 위덕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그가 온다면 한 사람이 옵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왕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저 자가 바로 항상 이기는[常勝] 앙굴마라입니다.”
왕이 앙굴마라를 보니 그는 똑바로 보고 눈을 깜짝이지 아니하며, 그 형상을 살펴보니 붉은 눈에 웅장한 자세였다.
왕은 털이 쭈뼛하게 설 만큼 놀랐고, 사람 아닌 무엇에 홀린 것처럼 용맹한 마음이 사라지고 쥐었던 칼이 저절로 땅에 떨어지며 차츰차츰 여래의 사자좌에 가까이 가서 한마음으로 지성껏 여래에게 귀의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마땅히 우리들을 라훌라와 같이 보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그때 네 가지 병정들은 갑절이나 더 놀라고 겁내어 정신이 헷갈리고 엎어지며 자빠지기도 하며 달아나 도망하여 숨기도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중생을 편히 위안해 주시는 광명을 놓으시어 저 중생들에게 비추어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하셨다.
그때 바사닉왕과 안팎의 여러 권속들과 성읍에 있는 인민들은 모두 ‘지금 앙굴마라는 세존에게 굴복되었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바사닉왕은 이렇게 찬탄하였다.
“신기합니다. 세존께서는 참으로 최상의 말몰이꾼처럼 잘 제어하시며, 참으로 하늘과 사람들의 위없는 스승이십니다. 이와 같이 흉폭하고 크게 나쁜 짓만 하는 이를 방편으로 바른 법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여 찬탄하셨다.
사람이 전일에 방일했다가도
그 후에 그치고 범하지 않으면
구름이 사라져 달이 나오듯
세상을 밝게 비추리.
만일 보살마하살이 먼저는 방일한 짓을 보이고 그 후에는 공덕을 나타낸다면 이는 구름이 사라지자 달이 나타나서 세상을 비추는 것과 같나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여래의 공덕을 나타냅니다.
대왕이여, 알아야 하나니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보살이 되어 좋은 방편을 보인 것입니다.”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뜻에서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먼저는 스승의 부인을 욕보이고 나쁜 스승의 비사차(毘舍遮)와 같은 행위를 받아 행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스승의 부인을 욕보이지 않았으며 저도 또한 그의 스승이 아니나, 그 스승과 부인의 모습으로 보여 그 마음을 고치게 한 것이며, 그 스승의 법을 익히고 좋아했으나 항상 청정했습니다.
대왕이여, 이는 크게 기특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용과 코끼리가 한판 붙으면 나귀는 감당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여래는 사람 중에 큰 용이며 코끼리로서 말씀과 교법을 숨기어 비밀히 말하니 성문과 연각은 모두 다 감당하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감당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 세계에서 남방으로 62항하(恒河) 모래 수의 세계를 지나면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일체보장엄(一切寶莊嚴)이며, 부처님 명호는 일체세간낙견상대정진(一切世間樂見上大精進)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신데 현재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시되 성문과 연각의 법은 있지 않고 순일한 대승뿐이며, 딴 법[乘]의 이름은 없습니다.
저 세계의 여러 중생은 늙음과 병듦과 뜻에 맞지 않는 고통이 없고, 순일한 쾌락뿐이며, 수명도 한량없고 광명도 한량없으며 순전히 미묘한 빛깔입니다.
그 세계는 어느 세간으로도 견줄 수 없기 때문에 그 국토를 일체보장엄이라고 이름했으며, 부처님의 명호를 일체세간낙견상대정진이라고 한 것입니다.
왕은 마땅히 따라서 기뻐하여 합장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저 여래가 어찌 딴 사람이겠습니까. 앙굴마라가 바로 저 부처님이니,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합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여러 점치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모두 다 허망한 말을 하였으니, 빨리 멀리 떠나고 다시는 허망한 말을 하지 말라.”
그때 여러 하늘과 인간 사람들과 용과 귀신과 성문이며 보살과 바사닉왕과 온갖 성읍과 마을에 있는 인민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모두 다 와서 앙굴마라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려 공손히 예배하고 한마음과 한 소리로 게송을 말하여 찬탄하였다.
여래의 가없는 몸에 귀의하오며
방편이신 앙굴마라에게 귀의합니다.
우리는 지금 성인의 발 밑에 예배하며
하늘같이 높으신 부드러운 발에 참회합니다.
우리는 지금 여래께 참회합니다.
앙굴마라는 2생(生)의 몸으로
저희들을 위해 여기에 오셔서
부처님 모습과 수승한 광명 보이시어
모든 중생 비추시고 설법 잘 하시니
저희들은 한량없는 몸에게 자주 참회합니다.
의지할 데 없는 이에게 의지가 된 부처님
친할 이 없는 이에게 친한 이 되셨네.
기특하게도 두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전에 없던 법을 세상에 펴시니
불 속에서 연꽃이 생기는 것처럼
세간에선 희유하게 두 부처님 보게 되었네.
그때 세존께서는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서 북방으로 42항하 모래 수의 세계를 지나면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상희(常喜)이며, 부처님 명호는 환희장마니보적(歡喜藏摩尼寶積)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신데 지금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십니다.
그 국토에도 성문과 연각은 없고 순일한 대승이며 딴 법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리고 늙음과 병듦과 온갖 고통의 이름도 없고 순전히 쾌락만 있고 그 수명도 한량없으며 광명 역시 한량이 없어서 견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국토를 상희라고 이름한 것이며, 부처님 명호를 환희장마니보적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라고 한 것입니다.
왕은 마땅히 따라서 기뻐하여 합장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저 여래가 어찌 딴 사람이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바로 저 부처님입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앙굴마라와 문수사리에게 공경하며 예배하거나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이는 환희 국토 보기를 자기 집 보듯 하리니 저 이름을 들었으므로 네 갈래의 나쁜 문이 항상 닫힐 것입니다.
혹은 웃고 즐기며 혹 그를 따라 순종하며 혹은 명리를 위하거나 외도이거나 혹은 중한 계를 범하거나 5무간(無間)의 죄를 지었더라도 네 갈래의 길이 닫힐 것입니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두 명호로써 보호를 받으면 현재나 미래의 세상에 벌판의 험난한 곳과 온갖 두려움이 있는 곳에서도 모두 다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온갖 곳의 공포가 모두 다 소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ㆍ용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비사사(毘舍闍) 무리들이 모두 다 어지럽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말씀에는 이와 같이 큰 위덕(威德)이 있으며 보살의 행에도 이와 같이 큰 위덕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수사리와 앙굴마라도 이와 같이 큰 위덕이 있으니 두 보살에게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내며 보살의 한량없는 행을 일으켜야 합니다.
대왕이여, 당신은 앙굴마라의 어머니를 받들어야 하고 그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앙굴마라의 어머니는 내가 방편으로 수호하는 분입니다.”
그때 앙굴마라의 어머니는 몸이 허공에 일곱 다라수(多羅樹)만큼 높이 올라서 게송을 말하였다.
여래께서 변화하시는 것을
중생은 모두 알지 못하나니
여래께서 부리시는 환술은
온갖 환술 중의 으뜸이신지라
크나큰 몸과 방편인 몸 이것이
바로 여래가 되는 것입니다.
이 게송을 말하고는 곧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바사닉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눈홀림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변화한 어머니이니 변화한 어머니가 말하듯 보살의 행도 그와 같습니다.”
그때 앙굴마라의 스승 마니발타라(摩尼跋陀羅)도 몸이 허공에 일곱 다라수만큼 높이 올라서 게송을 말하였다.
비유컨대 야간(野干)이라는 짐승이
항상 사자를 따라다녀서
오래도록 사자와 가까이 하였으나
그 소리는 사자 같지 못하며
사자 소리 들으면 놀라 죽는데
더구나 사자의 소리를 하겠습니까.
나는 저 작은 짐승과 같나니
오랫동안 그의 스승이 되었으나
사람 중의 영웅인 겁없는 소리를
감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가 방편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나는 야간이라는 짐승과 같나니
그의 공양을 어찌 받겠습니까.
나는 어리석은 법만 행하여
보살을 모두 멀리하였습니다.
일체 중생에게 대하여
외아들과 같이 평등하게 보는
부처님께서 한량없이 지어낸 환술임을
중생은 알지 못하나니
설령 백천억이나 되는
바라문 스승을 교화하신다 하여도
중생은 그를 모두 알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부처님의 환술 아시리.
부처님께서 온갖 환술사 중에서도
왕이 되심을 알아야 하리.
그때 저 스승인 마니발타라의 부인이 게송을 말하였다.
아, 여러 중생들은
부처님 공덕 알지 못하고
실로 전차(旃遮) 여자라 하여
여래께서 변화 방편으로
내 몸이 된 것 알지 못하나니
눈홀림이란 원래 이와 같네.
대왕이여, 아셔야 하나니
부처님 몸은 불가사의합니다.
저 모든 전타라(旃陀羅)는
오히려 왕에게 접근도 못하며
항상 죽을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상대하여 말을 하겠습니까.
이도 사람이며 저도 사람인데도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모든 하늘 사람들이
친근하여 부처님 마음 굴리겠습니까.
한량없는 하늘ㆍ용ㆍ귀신이
항상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대하면
그는 곧 그 목숨 끊어집니다.
부처님은 교묘한 방편으로
갖가지 눈홀림을 보이시어
미래 세상 온갖 중생들의
한량없는 그릇된 법 제거하시니
부처님 환술은 큰 환술이어서
여래이신 방편의 몸이십니다.
이 게송을 말하고는 곧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바사닉왕은 이와 같이 희유한 온갖 일들을 보고 듣고, 기뻐하여 날뛰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눈홀림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저 스승과 그 스승의 부인과 앙굴마라의 어머니인 저 세 사람은 모두 나의 환술이니 내가 환술로 불가사의한 일을 보인 것은 내가 앙굴마라를 교화하는 일을 통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입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7일 동안 큰 보시를 닦아 행하겠으니, 앙굴마라여래이신 복밭[福田]이 계시기 때문에 지금 복밭을 만들려고 합니다.”
부처님은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오. 그렇게 하시오.”
그때 여러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함께 게송을 말하였다.
환술 부리는 중에서 왕이시며
큰 정진 갖추신 이에게 귀의합니다.
여래께서는 방편이신 몸과
방편의 온갖 모양을 갖추시고
방편으로 열반하시는 것 보이시며
몸을 버리심도 보이시나이다.
여래는 가없는 몸 지니시고
지혜도 또한 가없으시며
가없는 좋은 명칭과
가없는 지혜 힘 지니셨습니다.
여래는 가없는 몸 지니시고
비밀한 자취도 가없으시며
말씀도 역시 가없으시고
비밀도 또한 가없으십니다.
가없이 세간을 비추시고
광명 역시 가없으시며
공덕도 셀 수 없어서
말하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허공처럼 걸림없는 지혜와
여래의 허공 같은 몸으로
문수사리와 우리들을
위안해 주시려는 그 일과
앙굴마라를 위한 그 일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 세계에 오셨습니다.
오시거나 오시지 않는 그것을
우리들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여래께서는 우리 모두를
라후라와 같이 보십니다.
그때 세존께서 이 경을 연설하시니, 여러 하늘ㆍ용ㆍ귀신과 성문ㆍ보살과 바사닉왕과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앙굴마라의 행과 문수사리 보살의 행을 사모하여 저 국토에 나기를 원하면서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마음을 내며 뛸 듯이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