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2권
1.11. 유식론의 유식의 뜻
외도와 다른 부파에서 집착하는 여러 법45)은 심왕ㆍ심소법과 달리 참으로 자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46) 인식대상[所取]이기 때문이니 심왕ㆍ심소법의 경우와 같다.47)
능히 그것(색법 등)을 취한다고 말하는 인식의 주체[覺:심왕과 심소]도 역시 그것(색법 등)을 반연하지 않는다. 이것은 능취(能取)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식의 주체[覺]와 같다.
모든 심왕과 심소는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역시 허깨비와 같이 참다운 존재가 아니다.
심왕ㆍ심소와 독립적으로 외부에 참으로 대상이 존재한다고 집착함을 막기 위해서 오직 식뿐이라고 말한다.
만약 오직 식만이 참다운 존재라고 집착한다면, 외부대상을 집착하는 것처럼 이 역시 법집(法執)이다.
[법집의 두 종류]
그런데 모든 법집에 대략 두 종류가 있다.48)
하나는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법집[俱生起法執]은, 아득한 옛적부터 허망하게 훈습한 내부의 원인[種子]의 세력 때문에 항상 신체와 함께한다. 삿된 가르침과 삿된 분별을 기다리지 않고 자연히 일어난다.
따라서 구생기법집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항상 상속하고, 제7식이 제8식을 반연하여 자기 마음의 모습을 일으키고 집착해서 실법으로 삼는 것이다.
둘째는 잠시 단절됨이 있으며, 식이 전변된 5온ㆍ12처ㆍ18계의 모습을 제6식이 반연하여, 총체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자기 마음의 모습을 일으키고 집착해서 실법으로 삼는다.
이 두 가지 법집은 미세하기 때문에 끊기 어렵다. 견도 이후의 10지(地) 중에서 뛰어난 법공관(法空觀)을 반복적으로 닦아 익혀서 비로소 없앨 수 있다.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법집[分別起法執]은, 역시 현재 외부 연(緣)의 세력에서도 비롯되기 때문에 신체와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삿된 가르침과 삿된 분별을 만난 이후에 비로소 일어난다. 따라서 분별기법집이라고 이름한다. 오직 제6의식에만 있다.
여기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삿된 가르침에서 말한 온(蘊)ㆍ처(處)ㆍ계(界)의 양상을 반연하여, 자기 마음의 양상을 일으켜서 분별하고 계탁해서 집착하여 실법으로 삼는다.
둘째는 삿된 가르침에서 설한 자성(自性) 등49)의 모습을 반연하여, 자기 마음의 모습을 일으켜서 분별하고 계탁해서 집착하여 실법으로 삼는다.
이 두 가지 법집은 두드러지기 때문에 끊기 쉽다. 초지(初地)에 들어갈 때 모든 법의 법공진여를 관찰하여 곧 능히 없앤다.50)
이상과 같이 말한 모든 법집의, 자기 마음의 외부 법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자기 마음의 내부 법은 모두가 다 존재한다. 이 때문에 법집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사현된 법[似法]을 반연하여 집착해서 실법(實法)으로 삼는다.
그런데 사현된 법의 양상은 연(緣:종자)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허깨비 같은 것으로 존재한다. 집착된 실법은 허망하게 계탁한 것이므로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씨보살이여, 마땅히 알라. 모든 식[見分]의 인식대상[所緣:상분]은 오직 식이 나타난 것이다.
의타기성은 허깨비와 같다. 운운(云云)51)”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외도와 다른 교법[乘]에서 집착하듯이, 식에서 떠난 자아와 법은 모두 실유가 아니다. 따라서 심왕과 심소는 결정적으로 외부의 색법 등의 법을 사용해서 소연연(所緣緣)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연(緣)의 작용은 반드시 실유의 자체52)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타인[彼聚]의 심왕ㆍ심소법은 자기[此聚] 식의 친소연연(親所緣緣)이 아니어야 한다.53) 소연이 아닌 것처럼 타인에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자기[同聚]의 심소도 역시 친소연연이 아니다. 심왕의 자체와 다르므로 소취(所取)가 아닌 다른 것과 같다.54)
이에 근거해서 마땅히 알라. 참으로 외부 대상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내부의 식만이 존재하여 외부대상으로 사현(似現)한다.
그러므로 경전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분별하는 것 같은
외부대상은 참으로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
습기가 마음을 어지럽혀서 혼탁하게 한다.
따라서 그것(외부대상)에 비슷하게 생겨난다.55)
45)
색법ㆍ불상응행법ㆍ무위법을 가리킨다.
46)
다음으로 외도와 소승에서 실유(實有)라고 주장되는 색법ㆍ불상응행법ㆍ무위법은 소취(所取)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며, 심왕과 심소법도 역시 능취(能取)일 뿐 실체가 아님을 밝힌다.
47)
심왕과 심소도 타심지(他心智)의 소취(所取)이다.
48)
이하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법집[俱生起法執]과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법집[分別起法執]을 복단(伏斷)하는 지위를 밝힌다.
49)
수론(數論)의 근본자성 등이나 승론(勝論)의 실체[實]와 속성[德] 등을 말한다.
50)
나머지 일곱 가지 비유를 가리킨다.
51)
『해심밀경(解深密經)』 제3권(『고려대장경』 10, p.723中:『대정장』 16, p.698中).
52)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상분을 가리킨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허망함에 대하여 실유(實有)라고 말한 것이다.
53)
이하 별도로 상좌부(上座部) 등의 주장을 논파한다.
54)
여기서 피취(彼聚)는 타취(他聚)의 것, 즉 타인의 심왕ㆍ심소를 가리킨다.
상좌부에서 비판하기를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가 인식대상[所緣]인 타인의 심왕ㆍ심소를 반연하는 것은, 심외(心外)의 실재의 심법이 아닌가?
어째서 심외(心外)를 반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라고 한다.
본문은 그것에 대한 답변이다. 즉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의 인식대상인 타인의 심왕ㆍ심소[彼聚]는 자기의 심왕ㆍ심소[此聚]에서의 식(識)의 친소연연이 아니다. 마치 인식대상이 아닌 것, 즉 소리가 안식의 인식대상이 아닌 것과 같다.
자체에 있어서도 심왕과 심소는 체성이 다르기[體別] 때문에 자취(自聚)의 심소는 심왕의 친소연연(親所緣緣)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논파한다.
55)
『후엄경(厚嚴經)』에 설해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