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가사령~한티재(11.07.28)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이 정다운 여름밤
고즈넉한 옛 향기 가득담은 세심마을이 잠들 때
청개구리 폴짝 폴짝 타관 손님에게 길을 내어주는 들녘을 따라
늦은 산책길에 나선다.
14회차 산행
○ 일 시 : 2011.7.28. 05:00~17:55
○ 구 간 : 가사령~사관령~배실재~침곡산~태화산~한티재
○ 구간진행시간 생략
올해는 모든 것이 극성이다. 겨울은 유난히 추운 혹한, 삼한사온이었고 일찍 온 장마는 기록적인 폭우였다. 이제 본격 여름, 그냥 더위가 아니라 불볕더위, 폭서다. 여름휴가를 대원 각자 2일간을 투자한다. 장마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산행일정기간 날씨는 아주 맑음 아니 폭염으로 절묘하게 맞췄다. 3일간 산행에 따른 베이스캠프는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세심마을로 정하고 민박을 예약해두었다.
건천휴게소 차량2대의 량데뷰.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탁자에 앉는다. 그런데 옆 탁자에는 영화상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의 사나이들이 출연한다. 바로 어깨부대 형님들이시다. 새카만 양복에 깍두기 머리 웬지 분위기가 좀 으스스 하다. 그 모습에 우리가 주눅들까 하는 포스로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들끼리 대화하며 음식 먹는데 열중을 해본다. 계속해서 들리는 “예! 형님!~” 소리에 모두들 살짝 눈동자 위치만 바꿔 옆 눈질 한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대원중 한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을까?”하고 고개를 둘레둘레 살펴보니 공사 중인 화장실 모퉁이에서 먼 산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처해져 있는 광경에 겁을 먹었나? 하기야 마음 약한 사람인데 오죽할까? 그 모습에 마냥 웃음이 나온다. 그들이 차를 나눠 타고 떠났다. 그때서야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한사람과 동시에 모두 말문이 열렸다. ‘그누마들 조직이지’, ‘봤나. 첫 번째 차 안에 여자와 아이, 저기서 나오니까 어디서 한 놈이 뛰어 오더만 어느새 두 놈이 양 옆에서 보디가드로 차 문을 열어주고 고개를 90도 꺾더라’ ‘차는 좋은 것 타고 다니데’ ‘저게 조직의 순서다’ ‘차는 좋은 차인데 조직 중에서도 동네 깡패 정도겠다며 각자 느낌과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한다.(조직 무서운 것은 알아가지고....)
건천IC로 빠져나와 안강을 지나 포항시 죽장면 한티 터널 앞에 승용차를 주차해 두고 스타렉스로 이동 죽장면 소재지가 있는 입암리를 지나 상옥을 잇는 69번 도로가 관통하는 고갯마루 가사령까지 바로 질주한다. 지난주 마지막 한 고개를 등지고 임도로 우회해서 인지 모두들 긴가민가다. 가사령 마루를 적시는 청아한 아침바람이 쏴~하게 폐부를 파고들어 청명한 날씨와 함께 산행예감이 좋다.
잠시 등산준비로 분주하다. 대장님 출발신호와 함께 가사령절개지 위에 올라선다. 밋밋하게 올라서는 길을 힘있게 잘 나아간다. 잠시 후 삼각점이 박혀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멀리까지 조망되고 발 아래로 지난 계절의 낙엽이 살포시 밟히니 감촉이 그냥 그만이다.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선다. 유순하게 이어지던 오붓한 길이 잠시 고개를 치켜드는가 하더니 짧은 오르막 끝에 작은 봉우리 하나에 올라서고 바로 앞으로 성법령 갈림길인 봉우리가 올려다 보인다.
평지 길을 단숨에 달려 시멘트로 반듯하게 닦여진 헬기장에 이른다. 왼쪽 바로 아래가 921번 지방도로가 기북에서 상옥을 넘어서는 성법령이다. 저 멀리 향로봉, 비학산을 이루는 능선들이 완만한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다. 헬기장에선 정맥이 슬며시 오른쪽 남서로 꺾어든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쾌 높아 보였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상옥일대의 너른 분지가 내려다보이고 조망이 그런대로 터지는지라 이곳이 오늘의 최고봉인 796봉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783봉이고 796봉은 좀 더 나서야 했다. 짧은 날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암릉이라 하기에는 좀 부족한 듯한 작은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는 796봉은 딱히 어디가 정점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하게 이어지지만 어째든 오늘의 최고 표고점에 이르렀다.
남서로 살짝 휘어 내려서는 길로 진입한다. 완만한 내리막이후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서 이어지는 오름길 뒤로 사관령으로 올라선다. 음습한 그늘 나뭇잎 사이로 계란버섯, 집게버섯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버섯들의 향연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계절이다. 힘들게 올라서니 보도블록이 깔려있는 헬기장. 이곳이 사관령이다. 상옥일대가 더욱 또렷이 보이고 비학산 쪽으로는 완만한 곡선을 긋는 하늘금이 제법 준걸한 품세를 갖추고 있다. 어쩌면 침곡산으로 이어지는 특징 없는 정맥의 주능선보다 훨씬 기개 있게 펼쳐져 있다.
사관령에선 방향이 왼쪽으로 급선회하여 내려서게 되고 줄곧 비학산 일대를 좌측으로 두고 가게 되므로 다양한 각도로 비학산의 좌우 날개를 살펴보며 이어진다. 산등성 밋밋한 부분으로 허름한 무덤 2기를 지나치고 길은 완만하게 내려서고 있다. 발아래로는 해묵은 낙엽들이 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깔려있다. 계절이 여름인데 산행 길에 이런 낙엽 숲을 밟게 되니 새삼스럽기도 하거니와 바닥을 비집고 올라오는 향긋한 흙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니 기분 좋다. 삐죽 올라온 비비추는 낙엽 밑거름에 영양 보충을 듬뿍하고 연보라의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길을 터 준다. 여름산의 청량한 소리의 주인공 검은등뻐꾹새는 오늘도 "Hardakbus, Hardakbus" 지저귐이 정맥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는 듯하다.
평평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내려서는 부분에 세월의 이끼가 다닥다닥 묻은 석물이 있는 "여강이씨묘"가 자리하고 있다. 배실재 직전 봉우리에 올라선다. 왼쪽 아래로 덕동일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잠시 내려서던 길이 넓은 임도로 변하는가 싶더니 산자락 하나를 오른쪽으로 휘어 돌며 떨어져 펑퍼짐한 안부를 이루고 있는 배실재에 이른다. 운동장 같이 넓은 배실재는 낙동정맥 440여km중 절반지점이다. 지도에는 야영가능이라고 해놓았는데 물은 있는지 모르겠다. 태백 천의봉 피재를 떠난 지 6개월 만에 도달했는데 감회가 새롭다. 절반종주기념으로 사진 찍고 맛있는 점심식사도 여기서 널찍하게 펼쳐본다. 중간지점 기념 酒가 빠져서야 되겠나. 자축도 겸한다.
편안하게 잘 쉬었던 자리를 털고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다. 눈높이만큼 키를 세운 잣나무와 잡목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나선다. 완만한 오르막이 끝나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다. 이후 길은 사정없는 된비알로 팍팍한 오름의 연속이다. 한 바탕 땀을 쏟아 내고서야 정상 앞 전위봉에 오른다. 바로 코앞에 침곡산 정상이 있어 단숨에 이를 것만 같았지만 얼 반 사람을 잡는다.
한티재를 향하여 나간다. 내리막길 아래로 거대한 송전탑을 지나 내려선 잘록이 안부에서 갈림길인 서당골재를 지나친다. 정면으로 꽤 높은 봉을 향해 허덕거리고 올라서니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601봉이다. 이후 고개를 숙이던 내리막이 무덤을 지나치더니 급경사로 치닫고 있다. 그 내림이 끝날 즈음 또 하나의 무덤을 지나치면서 길은 밋밋한 안부 하나를 이어가고 무덤 하나를 더 지나친다.
태화산 정상은 사방이 완전 틔어 조망은 일망무제다. 동쪽 저 멀리 포항제철 공단까지 보여주고 서쪽으로는 보현산 천문대 돔까지 희미하게 보여준다. 뙤약볕이 바로 내리 쬐이는 한 낮에 산불감시초소만이 우두커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채취의 달인 늦여름의 고사리가 빼곡히 있다며 허리 굽혀 마구 감싸지는가 하면, 카메라를 들고 기록을 남기려는 일념으로 땡볕을 마다하고 셔터를 눌리는 분께 칭찬을 한 표 던집니다. “대단한 열정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오름길을 올라 나무 그늘 밑에 그대로 멈춰서 시원한 얼음물과 콜라를 배낭에서 바로 끄집어낸다.
억새는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군락을 만들기 잎 날칼을 세워 주위를 빼곡히 포진을 하고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그 사이 술패랭이꽃 들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게 세력 다툼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한번 해보자는 모습을 하고 있고, 엉겅퀴는 손톱 발톱을 세워 화려한 색을 펼치더니 이제는 한풀 꺾여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칡넝쿨은 널찍하게 영역을 쳐 놓고 그네들을 지켜보고 있다, 저 멀리 잔잔하게 보이는 산 그리매가 아름다운 곡선을 긋고 있다.
태화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갑자기 내리쏟는 경사로 이어지니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잠시 후 자세 교정하고 내리 달려본다. 후다닥거리며 바닥에 내려서니 마치 계곡처럼 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고갯길 먹재다. 성황당 흔적이 우측으로 보이고 갈림길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선 곳에는 삼각점이 있다. 곧 이어 한티재로 오르는 도로가 드러나는데 어느덧 종착점에 다가서는 듯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낙동구간도 어김없이 마지막 진을 빼는 봉우리 하나를 남겨두었다. 한티재 고개로 넘어가는 봉우리는 고도표 상에 나타난 오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올라선다. 희미한 길을 따라 나아가니 차량소리가 들려온다. 산을 거의 수 십 미터 이상을 파 헤쳐 절개한 한티터널 위로 넘어간다. 터널 위에 선다. 지나는 차량 행렬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난다. 많은 리본이 걸려있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된다.
갈림길 좌측이냐 우측이냐 아님 직진 한 봉우리를 더 넘느냐의 귀로에서 그저 지친 몸과 정신에 편안하게 잘나있는 왼쪽 길을 택하여 내려선다. 아니다. 길은 돌아 아침에 한티터널 앞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흐름이라 다시 발길을 돌려 내려온 길을 오른다. 마지막 길을 잘 택하자는 일원에서 터널 외벽을 가로질러 내려선다. 처참하게 망가뜨려 놓은 공사후의 마무리 처리 부분들이 보이는 곳곳마다 파헤쳐져 있어 분노를 발산시킨다. 조금만 더 차후를 생각해 주변을 깔끔하게 포장처리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옛 비포장 길 임도와 마주친다, 그러고 보니 직진으로 한 봉우리를 더 나와야만 깔끔하게 길이 바로 이어지는데 그 마지막 한 봉우리를 무시하고 벗어나 내려섰다. 여름의 저녁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고 한티터널 언저리에 세워둔 차량이 보인다. 튼실한 대원 2명 차량 회수차 가사령으로 떠나고 남은 대원들은 풀밭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의 만들어내는 여러 형상을 즐기면서 술을 벌컥 인다.
스타렉스와 승용차가 도착되고 여름날 더위와 잡목으로 힘겨웠던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한층 더 업(Up)된 종주산행 또 한구간 마무리 하산주 건배를 한다. 주변을 아니온 듯 흔적을 남겨 놓지 않고 안강읍 옥산리 세심마을 영미네 민박집으로 차를 돌린다. 어둑해져가는 거리에는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텁텁한 바람을 즐기면서 신나게 달린다.
세심마을 체험장 사무국장과 연락을 취하고 영미네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통화음은 계속 가지만 받지 않는다. 마을 어귀를 돌면서 주민들에게 민박집 위치를 문의해 보았지만 손으로 저쪽이라고 지시를 하지만 도시의 네온사인 빛과는 달리 시골 논둑길 건너 집이라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마을 초입으로 다시 나가 가게에 물어 본다. 역시나 손짓으로 가르치지만 아니다. 다시 사무국장과 통화를 해보지만 사무국장 역시 민박집 위치를 모른다며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한다. 배는 고파오고 집 찾기는 쉽지 않고.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개구리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오고 지나가는 인적은 없다. 밤하늘에 별들이 우리들을 주시하면서 길을 가리켜 주지만 당체 의사소통이 되어야지요. 주민들의 위치 설명으로 영미네 민박집을 무조건 찾아 보기로 한다. 논둑길 사이로 잘나있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가 보니 너른 주차장과 불 끄진 집들이 서너 채가 있다. 차에서 모두 내려 삼삼오오 그룹을 형성해 물어보기로 한다. 오른쪽 편으로 간 대원이 “찾았다.” 소리를 친다.
주인아주머니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마당 아래채 방을 사용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늦은 시간 저녁 대용으로 김치에 라면, 술안주로 야간의 안주 함께 먹거리를 평상에서 펼쳐 요기를 한다. 꿀맛이 따로 없다. 더위와 맞선 한 구간을 마친 기분은 급상으로 오른다. 이러다 일치지 싶은 시간을 잠재우시는 한분이 있다. 모든 것은 원만하게 길이 터였다 하지만 내일 가야할 길이 있으니 기분을 잠시 내리고 마무리를 하잔다. 내일 오전5시 기상이다. 대충 밀어 놓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