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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4/ 20. 4.
기쁜소식 선교회의 문제점과 기도
(중복: 보완)
요즘 기쁜 소식 선교회에 대해서 문제 삼는 분이 많습니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이단 집단이라고 하며, 일인 독재 체제라고 비난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2년 정도 있다가, 나온 지가 십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잦은 모임과 저의 육신적인 면으로 인해 나왔습니다. 마치 겨우 걷는 아기에게 마라톤을 시키는 경우인 것을 후에야 알았습니다. 거기에서는 잘 따르면 자신을 꺾어서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자유 의지를 존중하고, 자발적인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나오고 보니 그곳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울러 저도 나오고 난 후 그곳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있었었습니다. 자제하다가 다시 그곳의 문제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나 hhaak3695님이나 지나친 자료 공개나 인신공격은 삼가도록 조심하십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곳은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의 행위, 종교를 경계하고 하나님만 믿는 믿음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성경 기준 문제; 장로교의 각종 절기나 의식 답습 문제; 말씀도 중시하지만 목자 박 옥수 형제님의 개인마음의 진로에 따라 각종 일이 진행 되는 문제; 지나친 교회당 건축이나 반강제적 돈 작정 문제; 병 고치는 일이나 육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일; 세상과 섞는 각종 단체 설립과 행사 등으로 부풀었습니다. 그 곳은 너무 발효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은 배울 점이 많다고 봅니다. 멀리하였었지만, 지금은 경계하면서 말씀을 듣곤 합니다.
그곳에서는 구원 받으면 죄가 없다고 합니다. 죄를 흰 눈같이, 양털 같이 깨끗이 하셨는데, 어찌 죄가 있느냐? 그래서 죄가 있다 하면 구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죄를 주님께옵서 덜 씻으셨다는 것이니, 주님의 피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따라서 다시 구원(?) 받는 경우가 많죠. 다른 교파나 모임에서 이미 구원 받은 분들도-심지어 목자 분들도-죄가 있다고 하면 구원이 아니니, 다시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들은 다 사함 받았지만, 현실적인 죄는 가지고 있고, 죄를 짓는다고 하십니다(1 Joh. 7~10: Rom. 7장). 믿음으로 죄가 사함 받은 것이지, 문자적으로 예수스님께옵서 죄를 지고 가셔서 없애버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실은 이 세상이 하늘의 불로 원소까지 녹고, 주님께옵서 재림하실 때 문자적으로도 완료되는 것이죠. 사도 파울도 주님과 함께 죽었지만 매일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죽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Gal. 2: 20). 죄를 덜 씻으신 것이 아니라, 죄로 타락한 본성 속에 예수스님의 대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죄 있는 육신 속에 성령님께옵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옵서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심으로, 이미 완전히 부활한 시점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안에서, 곧 예수스님의 피 안에서는 이 세상 자체가 이미 끝난 것입니다. 물속에 아가미, 산소통을 주신 것과 같을 것입니다. Noah가 방주 속에 있었지만, 그 주위에 심판의 물이 있었습니다. 새 땅에 내려야만 비로소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구원 받아도 육신, 세상으로 말미암아 죄가 항상 있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변호자로 계실 필요도 없고, 죄와 싸우라는 말씀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1 John 2: 1, 2). 질그릇 속의 보배를 주신 것입니다. 육신의 타락한 본성은 그대로 있습니다. 썩은 연못에 샘을 파거나, 맑은 물의 호스를 연결한 경우입니다. 항상 샘, 호스 주변에서 맑은 물을 먹어야지, 위치에서 벗어나면 오염된 물이 가득한 것입니다. 양심: 성경 율법으로 완전한 죄인이 되어, 죄의 통증으로 아파하고 탄식하고 통회하여 주님의 보혈로 죄를 완전히 사하심을 믿으면, 성령님께옵서 들어오시고 죽은 영이 다시 날아나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지은 죄로 형벌, 심판, 지옥불이 양심에 인한 사람만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 받아도 현실적인 죄는 늘 주님의 피를 의지한 자백으로 현실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교제가 필요하죠. 믿음으로, 주님 안에서 죄가 없고 영원히 용서되었죠. 이때에도 죄는 한 번 흘리신 나무 십자가의 예수스님의 보혈로 인해 ‘현재형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기쁜 소식 선교회의 문제입니다. 침례인 John이 죄를 넘겼다는 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는 죄를 넘긴 것이 아니라, Jesus님께옵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증언을 했습니다. Johh 복음 1: 29~ 34에서 하나님께옵서 성령님께옵서 내리는 이를 보면 그가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요흔[John]이 예수스님 위에 비둘기와 같이 내려오시는 성령님을 보고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죄를 넘긴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을 10일 날 취해서 흠이 있는지 없는지 14일까지 검사한 기간이 주님의 3년 반 공개적인 사역이신 것입니다. 침례인 John은 세상 죄를 안수하여 넘기는 고성직자[high priest]가 아닙니다. 예수스님께옵서는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육신을 입으신 죄 헌물 사람으로서 회개의 침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침례인 John은 자기 죄를 자복하는 자에게 회개의 침례를 주었습니다. 주님께 죄를 정죄한 사람은-곧 죄를 알지도 못하시며 죄가 없으신 어린 양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사람은-주님 돌이가시기 전 고성직자가 공개적으로 하였습니다(Mat. 26: 65, 66). 기쁜 소식 선교회의 구원관의 오류입니다.
푸른 나무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그곳은 복음 열정은 대단하지만, 문제가 아주 많죠. 하나님의 말씀이 이른바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거치면 교회의 가는 길이 되죠. 목자의 마음에서 일어나서 나온 말은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하죠. 그곳에서는 성도들의 개인 의지를 말살하고 의지 박약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구원 받으면 성령님이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믿음, 능력, 사랑, 영생 등이 들어왔다고 하십니다. 전기 시설을 한 집과 같습니다. 믿음에 따라서 무료로 전기기구를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통신 회사에서 전화를 개통한 것과 같습니다. 개통하였더라고 개인 기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어느 회사에 가입하여 휴대폰을 구입하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즉각 전화로 통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 선교회에서는 개인의 성경 지식, 개인의 깨달음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의 믿음에 배치되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설교를 들으면 은혜롭고 성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의지를 말살합니다. 하나님께옵서는 인간의 자유 선택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그 자체가 창조하신 인간의 본연의 자아인 것입니다. 믿으라, 들어라, 지켜라 하시지, 로봇처럼 강제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인간이 죄가 들어와서 육체가 되어 사탄의 속임으로 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문제였지, 자유 선택 의지는 인간 고유의 자기 자신입니다. 하물며 개도 자기 자아가 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인간의 의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죄로 썩었고(Isa. 1장), 모든 것들 위에 거짓된 상태이며 절망적으로 사악하였지만(Jer. 17: 9), 구원 받으면 성령님께옵서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님께 의해서 마음속에 뿌려짐으로서 믿음에 따라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And hope maketh not ashamed; because the love of God is shed abroad in our hearts by the Holy Ghost which is given unto me(Rom. 5: 5). 구원 받으면 비로소 양심과 의지가 죄에서 해방 받아 제 기능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육신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하여 말씀에서 벗어나면, 옛 사람이 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으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Phil. 4: 13). 사도 파울처럼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쁜소식 선교회처럼 할 수 없는 옛사람에 매여 자책하지 말고, 성령님이 들어오시고, 또한 살아난 새사람이 말씀을 믿고 달려가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교만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에 의해서 살아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Rom. 2: 17, Gal. 3: 11, Heb. 10: 38). 성령님이 내 속에 계시고, 내 영이 살았으므로, 내 의지를 사용하여 열심히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나약한 옛사람은 내버려두고, 타락한 내 의는 부인하고, 말씀을 믿고 힘차게, 열심히[diligently] 달려 나가십시다.
가장 먼저 구원 받은 후에도 하나님과의 성도 사이에는 죄가 문제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는 철저히 죄를 싫어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싸워 이겨서 버리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앉아 있고, 거꾸로 갈 때도 있지만, 그 때마나 하나님께 죄를 솔직히 자백하여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어 교제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구원 받을 때처럼, 십년 이상을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안 돼!, 나는 육신적이야! 하고 옛사람에 빠져 영적 무기력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옵서는 구원 받으면, 말씀에 순종하여 할 수 있다!, 행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방향을 바꿔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훈련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았다면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믿음으로 사랑하고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저도 성도님들도 또한, 잘 안 되더라도 성도부터, 가족부터 지금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떤 형태로든 Jesus님의 피로 인한 죄 사함의 복음 전도를 하여야 합니다. 구원 받았다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믿고, 모든 것들을 할 수 있고, 하여야 합니다. 그 출발은 아주 작은 죄도 싫어하고 버리려는 의지와 시작입니다. 나는 나를 강하게 하시는 Christ님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ich strengtheneth me(Phil. 4: 13)].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그 곳에는 지나친 교회당 건축: 복음을 이유로 세상과 야합하는 문제: 세상과 섞는 각종 단체 설립 등으로 발효제로 부푼 측면이 강합니다. 저는 성경 KJV를 믿는 사람으로, 가장 기본 문제는 성경 기준 문제라고 봅니다. 문제가 있는 성경으로 잘못 깨달아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 것입니다. 잘못된 성경으로 잘 가면 그것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 곳에 계신 분들은 자신들은 잘 한다고 하지만, 밖에서 보면 문제가 많고, 이단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단에 속한 분들의 한결같은 소리는 주님과 사도 파울도 이단 소리를 들었다고 위안하며 정당화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곳은 금지한 십일조도 내고, 크리스마스, 부활절도 지키고 십자가 형상도 달죠. 주님 안에서는 모든 때와 절기는 완전히 끝났습니다(Gal. 4: 10, 11/ Col. 2: 16, 17). 주님 안에서는 유월절, 부활절, 무교절, 초실절, 장막절 등은 모두 끝났습니다. 안식일도 끝났습니다.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도 주님 안에서 끝났습니다. 물론 주님 밖에서는 세상, 죄와 같이 죄를 깨닫기 위해 현실적으로 존재합니다.
문제가 또 있습니다. 그 곳은 주입식으로 죄를 지적하고, 은연중 사역자에게 죄를 고백하게 합니다. 저도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죄를 성경적으로 설명하여서 양심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통회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지은 죄를 통해서 심판, 형벌, 지옥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마음을 꺾어라 하고 다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양심에서 지은 죄로 인해 깊은 후회와 아픔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죄로 아파하고 자기 삶을 후회하지 않는 마음에는 마음 중심에 말씀이 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지은 죄로 완전히 죄인 된-세리와 창녀라고 시인된-마음에 원래 죄인이라는 것이 믿어지고, 구원을 받아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Adam으로 인해 죄가 들어 온 것을 Jesus님께옵서 피를 흘려 용서해 놓으신 것을 믿는 것은 지식 구원이 됩니다. 들어온 죄로 인해 자기 자신이 정말 마귀 자식으로 추악하고 은밀하고 음란하고 추잡한 죄를 지었다는 고백이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생각, 말, 행동으로 지은 죄로 인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후회되고, 양심에서 팥죽같이 타는 지옥 불 한가운데서 타는 자기 자신을 발견, 인정해야 합니다. 원래 가시나무에 뿌리도 있고, 줄기도 있고, 가지도 있고, 잎도 있고, 꽃도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시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가시도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지은 죄로 완전한 죄인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지은 죄로 정말 뼈저린 통회의 아픔이 있어야 원래 가시나무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James 5: 16절에는 '죄[sin]가 아니라 잘못[fault]'을 서로 기도를 위해 '서로 고백'하라 하십니다. 굳이 고백하려면 사역자도 죄를 고백해야 흉악하고 은밀하고 음란한 죄들을 성도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Psalms 32: 5에서 "죄는 하나님께만 고백"하는 것입니다. 드러난 죄도 덮어주는 것이 성경적일 것입니다. 사람은 남의 은밀한 죄를 들추거나 아는 것에 솔깃한 본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자유지만, 사람에게 죄 고백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당사자 간에 죄를 지어서 문제가 된 경우에는, 서로가 풀고 용서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기쁜 소식 선교회의 좋은 면도 있습니다. 잘못된 성경으로 깨달아 발효된 것은 문제지만, 그곳의 복음 열정과, 이론이 아닌 실제 믿음의 삶은 분별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곳의 복음 열정은 오랜 세월 훈련 받아서 이어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을 욕만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령, 한 집에 여러 아들이 있는데, 장애가 심한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열심히 순종하는 경우와, 장애가 다소 적은 아들이 심한 장애 형제를 비판하면서 빈둥빈둥 노는 경우에, 누가 아버지께 칭찬 받겠습니까?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은-특히 그곳에서 나온 분들은-그분들의 눈의 티와 더불어 우리들의 눈의 들보도 보아야할 것입니다. 인간의 썩은 의를 버리고, 하나님만 믿는 믿음과 복음 전도의 삶은 높이 사야 합니다. 잘 분별하면 됩니다. 성경적으로 완전한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모양, 정도 차이지 모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또 그곳에는 성도들의 헌금 돈으로 너무 세를 확장하여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풀었습니다. 대학 설림, 세상과 연합하는 대규모 단체 등을 만들었습니다. 신학교도 운영하는데, 그것들이 얼마 후 되돌아와 그곳의 나쁜 교리 위에 세운 누각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 그곳의 교리들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인지 드러날 것이고, 우 ~~형제분들의 경우처럼 자기 발등을 찍을 것입니다. 면면히 이어져온 주님과 사도분들, 로마와 카톨릭의 잔혹한 박해를 받으며 지켜온 재침례교 성도 분들과. 그분들의 성경을 피로 지킨 믿음을 그곳은 벗아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영적 거성 분들의 글들을 보겠지요. 정도를 떠난 독자적인 믿음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으로부터 사도분들 박해 성도분들, 재침례 성도 분들 17, 18세기의 선진들의 믿음을 이어 받고 배워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독단적인 교리는 언젠가는 바른 성경 앞에 비추어져서 무너질 것입니다. 딕 욕 형제님으로부터 떨어진 순간 바른 믿음의 가지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딕 욕 형제님은 지금도 성경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곳은 처음에는 문제가 적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옵서도 기뻐하셨으나, 이제는 너무 발효되었습니다. 세상 유명 인사처럼 발을 넓히고, 좋은 벤츠 차를 타고 화려한 교회당 건축: 병에 지친 환자들과 삶에 찌든 분들을 지나친 병 치유나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찾도록 만들어 죄, 심판, 형벌, 지옥, 구원의 복음을 등한시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굳이 복음을 전하려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해야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할 필요가 있는지? 이것은 박해와 순교의 피를 흘리며 현실에서 참혹한 고난을 당한 재침례교 성도 분들의 길에서 아주 벗어난 것입니다. 왜 굳이 교회당 건물을 거창하게 지어야 합니까? 복음 전도는 교회당 건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성도나 교회를 돕는 것입니다. 사도 파울도 어려운 Jerusalem 교회를 돕는 지역 교회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지체를 돕기 위해 헌금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이나 복음의 일을 하는 복음 전도자 분들을 위해 헌금을 정직하게 사용하여야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 받으면 결코 강제하면 안 됩니다. 권고, 책망도 필요하지만, 자발적, 곧 자원하여, 자진해서 활수하게 연보, 헌금을 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종이에 적어서 작정 헌금하는 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Daniel이나 그의 친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믿음을 위해 결심하는 믿음의 행위에 확고한 결심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십일조도 전혀 성경적이 아닌데, 빚을 내서 헌금을 강요하여 빚쟁이를 만드는 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작정을 하려면 하나님 앞에서 지체 개개인이 정하는 양심의 문제이지 다른 이들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헌금은 원칙적으로 무기명으로 하나님만 알도록 헌금함에 넣어야 합니다. 이름이나 액수를 아는 것은-물론 법은 아니지만-성경적이 아닙니다. 성도는 개개인의 양심과 자유 의지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결코 강제적으로 작정시켜서는 안 됩니다. 힘에 부치게 믿음대로 헌금, 연보할 수 있으나, 그것은 분위기에 휩쓸려 빚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나친 모임, 집회, 이동 집회로 지체들은 기계처럼 되었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아닙니다. 목자 분들의 설교도 말씀을 여기 저기 찾는 것보다는 거의 간증 일색입니다. 말씀이 우선이지 깨달음이 우선은 아닌 것입니다. 결국은 돈을 묵시적으로 강제 헌금하게 해서 해외 전도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능력 내에서 자발적인 헌금으로 가까운 어려운 곳에서부터 해외에 순리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무슨 기업 확장처럼 복음을 해외로 퍼뜨려서, 오히려 정통 복음을 흐리고 있습니다. 왜 교회 건축으로 성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자꾸 수준을 낮추어서 이사를 하게 하는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모두 욕심으로 목회자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힘드니 그곳에서 대우 받는 목사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목자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은사로 복 받는 일이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도 좋은 점은 배우고 있으나, 너무 부풀고 변질되었습니다. 대학교, 신학교, 대안 학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세상 세상 신학교처럼 세속화 되는 지름길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 그 신학이나 확장된 단체들이 분열의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구원 받으면 사랑하고 의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주님 안에서 폐하여졌지만, 새로운 사랑의 법이 있죠. 사랑은 복음 전도에 있어서도 기본이며, 구원 받았다면 반드시 사랑이 나오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저도 신앙생활이나 사랑의 행함이 안 되어 신음, 탄식하며 늘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성경 KJV에 마음을 쏟습니다. 저는 죄의 정욕에 늘 매이고, "더러운 본성"하고 자책하곤 하였는데, 죄 사함을 받아 성령님께옵서 주어지실 때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뿌려졌다는 말씀으로-곧, 사랑이 이미 들어왔음을 발견하고-마음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Rom. 5: 5). 죄로 썩은 인간의 선과 의가 아니라, 거듭난 사람의 의지를 사용하여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위해 늘 기도하고 성경 KJV를 중시합니다. 성령님이 계심을 믿고 말씀으로 자라면서 주님의 사랑과 선을 행해야만 합니다. 거듭 난 것은 로보트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말씀으로 인해 바로 사용되는 것일 것입니다. 마치 사나운 들개를 구출하여 집에서 보살피면-개의 본성은 여전히 있지만-주인을 따르는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하늘의 영원한 몸으로 새 하늘들과 새 땅에서 살 때까지, 육신의 본성과 늘 힘든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생각, 죄, 악성 교리로 늘 속임으로 바른 기준, 잣대의 성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기쁜 소식 선교회가 완전히 잘못만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의 대형 종교교회보다는 나은 점이 많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부르는 곳과, 인간을 하나님으로 추앙하는 곳, 육신의 병 고침이나 방언이라고 하는 것으로 믿음을 재는 곳보다는 낫습니다. 대형 교파 교회나 인물 본위의 종교 교회는 그나마 복음도 없다고들 합니다. 기쁜 소식 선교회에서 저도 나왔지만, 나온 것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며,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무조건 그곳을 욕할 처지도 아니었음을 십 년을 통해 배웠습니다. 나와도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은 성경을 변개하고, 교회를 공격하는 사탄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나온 분들과 교제를 가지려해도 일부 나은 면이 있지만, 더 못한 면도 많습니다. 성경 기준이 잘못 되었으니, 결국은 “거기서 거기”더군요. 여전히 7년 대환란과 1,000년 왕국을 믿고, 십일조를 내고, 각종 절기를 지키고, 십자가 형상을 달고, 부활절도 지키고, 심지어는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부활절 계란도 먹는 등...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 KJV 진영이라고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접 기도식 구원, 지식 구원, 이론 구원으로 복음교회보다 못한 곳도 많습니다. 형제 교회 류에서는 성경에 있는 영적 인도자를 무시하고, 여럿이 머리가 되는 기현상이 있고, 지방 교회 류에서는 성경 보다 특정 인물의 믿음에 목을 매는 것을 봅니다. 성경 KJV 진영이 그나마 나은 면이 있지만, 여전히 성경에 없는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군림하고 있으며, 양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목양자는 드물고, 성경 진리,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자만 난무”한 상태입니다. 결국은 어딜 가나 종으로서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에는 결코 은사로서 사도[최초 전도자: apostle]들, 대언자[선지자: prophet]]들, 목자[pastor]들, 복음 전파자[evangelist]들, 교육자[teacher]들이 있을 뿐입니다. 결코 호칭으로 스승인 목사는 없습니다. 영어의 ~er, ~or은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성경에는 형제[여자 형제=자매=누이]만 있을 뿐입니다. 원로[장로: elder]도 호칭은 아닙니다. 감독[bishop], 집사[가령: deacon]도 직무이지 호칭은 아닙니다. 권사, 권찰, 강도사, 전도사, 여자 목사, 여자 집사는 아예 언급조차 않아야 합니다.
결국은 기쁜 소식 선교회만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나으냐? 아닙니다. 저는 영적 장애아로 태어나서 성경 KJV를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밥만 축내고 앉아서 바른 길만 찾는 앉은~~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바른 성경부터 찾아야 합니다. 느리더라고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잘못된 뿌리의 성경으로는 잘 가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국내에 성경 KJV를 번역한 곳이 여러 군데에 있고,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자유지만, 여러 가지를 보든지, 하나만 보든지 우선 성경 KJV로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최종 잣대는 영어 성경 KJV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왜 성경 KJV가 하나님의 성경인지 사이트가 넘쳐납니다. 성경의 증거와 역사적으로 검증된 성경은 오직 한 성경, 영어 성경 KJV뿐입니다. 물론 Greek[그리스어]나, Hebrew[히브리어]에 능통한 분들은 참고로 하면 정확하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언어에 능통한 대학 교수였던 성경 KJV 번역자분들보다, 우리나라에 더 능통하신 분이 있겠습니까? 결국 구유언과 신유언을 하나로 묶은 성경은 성경 영어 KJV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곧 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로 모였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성경입니다. 외국의 영적 거성 분들은 모두 성경 제임스왕역만 믿었습니다. 딕 욕 형제님도 성경 KJV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글들은 보면서, 이분들의 성경 믿음은 외면합니다. 이분들의 글보다 이분들이 믿은 성경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구원을 너무 받는 것에 치중하는 면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입장에서 부활까지 내포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건설 구원같이 구원을 점차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아니죠. 성경에서 구원을 받으면, '이미 받은 구원'을 성취하는 것[성장; work out]과, 구원의 완성[부활]이 전체적인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것은 태어난 것입니다. 구원 받으면 애기처럼 아무 것도 모르다가, 말씀으로 자라면-믿음의 분량에 따라-주님을 닮아서 사도 파울이나 순교한 재침례교 성도 분들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원만 받고, 낙태되는 경우, 어릴 때 죽는 경우, 장애를 입는 경우처럼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구원 받아도 죄의 본성은 육신의 날까지 그대로 있고, 그래서 죄는 가지고 있고 짓죠. 질그릇 속에 보배처럼...구원을 받은 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미리 믿는 것으로, 출발입니다. 성화, 영화라는 신학적 단어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태어나서 청년이 되듯 Jesus님을 닮아가는 것이, 구원 후의 성장 과정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해서 열매를 맺어야죠. 구원 받음, 구원의 성취[성장], 구원의 완성[부활]의 구분으로 구원에 대한 혼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원히 죄 사함 받은 '구원'과, 하나님의 아들 된 신분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현실적인 죄와 해결의 '교제'의 구분이 필요합니다(Rom. 7: 24, 25/ 1 John. 1장).
나아가 반말 번역으로 인해 Jesus님을 안하무인의 오만하신 분으로 만든 것도 목사라는 계급으로 군림하는 현 세태에 원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옵서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육신을 입으신 사람으로서, 겸손하시고 다정다감하시고 온순하신 분이십니다. 하물며 대언자, 사도 분들도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반말을 사용한 번역은 교만을 낳게 합니다.
기쁜 소식 선교회뿐만 아니라, 사탄의 성경 공격과 교회 공격으로 모든 곳이 장애를 입고 있습니다. 성경 KJV 진영도 저도 문제가 많습니다. 모든 곳이 매춘부 카톨릭의 악성 교리와, 바른 성경보다 인물: 교파 중시로 인해 오염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박해로부터 시작된 사탄의 성경과 교회 공격은 지금은 카톨릭에서 파생된 세대주의, 곧 칠년 대환란과 천년 왕국 등으로 모든 교회를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문자적인 7년 대환란과 천년 왕국이 없습니다. 예수스님께옵서는 이 죄의 땅에 재림하시어 문자적으로 천년을 통치하실 수 없으십니다. 단 1년도 통치하실 수 없으십니다. 계시록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진행될 역사이며 고난 그 자체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특정 사건이 아닙니다. 이제 계시록은 Daniel서와 연결되어 조금만 남아 있습니다.
기쁜 소식 선교회에 나온 우리들은, 그곳이 양육해준 곳으로 고마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성경적으로 잘못은 지적하지만, 인신공격에는 조심하십시다. 복음 외적인 조직, 단체 등의 설립 등으로 너무 팽창되어, 막대한 비용과 연결되면서 지탄을 받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복음에만 열중했을 때는 그나마 좋았는데, 너무 부풀다보니 문제가 생겨 보입니다. 종교교회와 구분되어 장애가 있지만, 복음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복음 전도라는 이름으로 너무 비대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변질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는 교파 교회(가 더) 문제이지만...기쁜 소식 선교회가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만 복음이 전해지고, 부푼 외적인 단체는 다 정리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론이 아니라, 검증되고 훈련된 믿음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바른 성경과 바른 구원의 뿌리 위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 전도의 길을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