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양원역
[station,
驛]
봉화에는
“왔네
왔네 억지 춘양
나 여기 왔네..”라는
‘억지춘양’이란
민요가 있다 .
사연인즉
,
해방
후 영주에서 태백으로 가는 영동선 선로를 놓는데 , 춘양(春陽)의
양반들이
곧게
설계해 놓은 철길을 면민을
위한다고 억지로 읍내를 에둘러 가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때
나온 말이 억지 춘양이다
.
또한
봉화는 춘양목(금강
소나무)주산지로,
양반들이 춘양목을
마구 남벌하자 나라에서 법으로 제한한다 .
그래도
폼생폼사
[폼生폼死]한
양반들이 소나무로 집을 짓고 , 사람들을
집들이에 초대하여
춘양목
집이라고 억지를 썼다 해서 억지 춘양이다 .
영남의
양반 가운데서도 봉화는 손꼽을 수 있는 유향의 고장이다.
조선
총독부 기록을 보면 1928년
봉화거주 양반 수는 무려 6천5백
명에 달해 전국에서 최고를 기록하는데 ,
인근의
안동,예천,영주를
비롯해,
각지에서 모여든 양반들이 봉화에서 뿌리를 내리고 후손을 번창시킨 결과다.
지금도
봉화의 기관장들이 처음 부임하면 양반들 종가댁을 방문해
인사를 나눌 정도다 .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들어낸 높고 험준한 산들은 봉화를 오랫동안 고립된 산간지방에 머물게 했다.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봉화를 몰랐지만,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봉화라면 교통이 불편하고
살기 힘든 고장으로 고개부터 내저었는데
,
그
덕인지 한약우와
자연송이가 매력적이다.
여행은
낯 설게 하기다 .누구나
한번 쯤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
낯선
곳에 놓여짐은 때론 두렵고 당황스럽지만 , 이내
자기 안의 그 어떤 것들이 꿈틀거리며 ,
낯선
곳에 던져진 자기에게 말 걸기를 시작 한다 . 그리고
마침내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가 된다 .
그
아쉬움 속에서 다시 길을 떠나는 것 , 그것이
여행이다 .
대한민국에는
총50개
노선 722개의
기차역이 있다(2010년
한국철도공사)
.
규모가
크고 화려한 도시의 기차역(驛)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당신은 몇 개의 기차역을 알고 있는가?
여행자의
기준으로 20여
곳의 역을 가봤다면 초급 ,40여 곳을
가봤다면 중급 ,100여
곳을 가봤다면 여행고수다.
고수
중에서도 경북 봉화군에 있는 양원역을 안다면 ,
아니
가보았다면 당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양원역을
자동차로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찍으면 길이 나오지 않는다.
자동차로
가는 길이 보물찾기보다 더 어려운 곳이다.
서울서
양원역을
가려면 서울 –태백-구문소-석포-승부역
까지만 네비는
안내를 한다 .
이후는
철길을 따라 40분
정도를 걸어가던지 ,
울진군
서면 전곡리까지
낙동강상류를 돌아가야 한다.
자동차로
길을 잃지 않으면 1시간
바듯하게 걸리고 당연이 헤매다 보면 2시간 정도
걸리는 환장할 길이다 .
승부에서
양원을 찾아가는 길이 마치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처럼 어렵고 아리송할 것이다.
양원역 에는
정식 역사도 역무원도 없다.
양원역 이라는
손으로 쓴 팻말 하나와 비바람 피하기 위해 슬라브벽돌에 함석지붕을 올린 작은 움막이 전부다.
화장실 물론 없다. 그렇게
빈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무 정차 역이다 .
역에 밤이오면 본인이 배전반을
열고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켠다.
이렇게 쓸쓸하고 소박한 기차역이 있다니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중 하나가 아닐까 ?
네온과 사람과 자동차가 넘쳐나는 도시 문명의 반대편에 서보고 싶다면,
인생에 한번쯤 가장 낯선 곳에 나를 내려놓고 싶어진다면 주저 없이 양원 역으로 떠나보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을 한없이 그리워 하던지 ,
아니면
눈물이 나도록 그리워 해야 한다 .
양원역에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면 역은 당신 인생 정거장에 파란 탑승 신호를 보내줄 것이다 .
이리저리 무리 속에 휩쓸리지만 말고 한번쯤은 당신만의 정거장에 내려보라 .
어쩌면 거기에 당신이 만나야 할 아주 반가운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여차 하면 kbs-tv
1박2일
팀한테 그마저도 빼앗길지 모른다 .
1박2일은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다.
메뚜기 떼가 쓸고 가면 황폐한 사막이 되는 그 무서운 재앙을 아는가?.
방송 한번 타면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조차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 들것이다 .
얼마나 웃기는가 . 아무것도
없는 양원역에서
두리번거리는 청춘들을 상상해본다면 ..
* 양원역은
철도공사가 아닌 주민들이 만든 역이다.
기차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양원
사람들은 달리는 기차차창으로 짐을 던져놓고 승부역에서
하차하여 1시간
정도를 철길 따라 걸어야 했다 . 승부-양원구간을
걸을 때
긴 철교를 지나야 했는데 몇 차례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하자 ,
기차역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민들이
역사를 지었고 철도공사도 비둘기호를
정차시킨다.
작은
역사(驛舍)
이지만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마을의 역사(歷史)다.
기차가
빠르게 지나간다 …
사람들이
빛 바랜 앨범 속으로 사라졌다 .
기차길
-
욜(yol)
욜(
yol
)은
터키말로 “길”이다
.
터키는
투르크족이
80%
,쿠르드족과
기타 종족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 99%가
이슬람이다.
하지만
6세기경,
초기 기독교는 터키를 통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사도
바울이 터키에 2년간
머물면서 “에베소서”를 쓰기도 했다.
유럽문화의
격전지 비잔틴과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종점이었던 이스탄불과 초대교회성지로 잘 알려진 터키는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문화가 통하는 길(yol)이다.
또한
욜(yol)은
터키의
국민영웅 “일마즈
귀니(1937-1984)감독의
영화제목이기도 한데 ,
쿠르드족의
인권탄압,
폭력,
고문등
터키의 전제 정치에 항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체제
인사로 알려진 일마즈
귀니 감독이 “욜”
촬영중
투옥되자,
옥중콘티로 면회 오는 조감독에게 지시해 촬영을 마친다.
촬영이
끝나자 귀니 감독은 간수의 도움으로 탈옥하여 필름을 갖고 스위스로 망명한다.
다락방에 숨어 1년간의
편집 끝에 영화를 완성하여 ,82년 제35회
칸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
제4회
런던비평가협회상 ,세계
가톨릭 영화상 등을 수상한다 .
감독은
영화 프롤로그에서 “꽃들과
새들과 바람처럼 슬픔은 많은 면면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가까운 몇몇 친구 들을 통해서 슬픔과 사랑과 비애를 말하려 했다 .
비록
이해 할
수 없고 믿어지지 않을지라도 ….
“욜
(yol)”은
한편의
영화고,
일마즈
귀니 감독에게는 하나의 인생길 이었다 .
누구에게나
인생의 길은 놀랍고 신비하다. 당신이
찾아가는 양원역
철길도 마찬가지다 .
첫댓글 양원역은 내가 여행일을 하게된 마음의 고향 같은 역이다 . 터키영화 욜은 대학다닐때 국내 상영금지된 영화였고 , 대학을 졸업하고 여짓껏 영화사에서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 영화사에 취직하게된 동기가 욜이란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라 취직 햇다 . 터어키의 소수민족 쿠르드족의 아픔이 양원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욜 (yol) . La strada ,길 ..... 우린 지금 잘가고 있는걸까 ^^?
작년 8월 낭만열차 타고 가다가 양원서 승부까지 트래킹 넘 환상적이었다 프사에 올렸더니 다들 어디 다녀왔냐고 아우성~~또 가고 싶은 곳중 하나~~나만 그런가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