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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람들이 이씨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그들은 버릇없이 이씨를 괴롭히는 철없는 애들을 단속하기 시작하였다. 적과 계선을 나눈다며 이씨를 끌어내 비판할라치면 자식들을 불러들여 눈물이 빠지도록 호통 쳤다. 마을학교에서 주말마다 열리던 투쟁대회도 자취 없이 사라졌다.
“꼭 뒤에 피도 안 마른 눔들이 어른들 일에 참견하지!”
이씨가 인간으로 보이자 허리 편 건 태칠이었다. 유일성분이 색바래지기 시작하였다. 태칠은 일약 마을의 전공으로 발탁되었다. 이쁜인 남편이 전공으로 뽑히자 하늘의 별을 딴 기분에 잠겨 집안일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녀는 전공구럭을 어깨에 걸치고 나서는 남편이 한결 돋보였다.
“이씨 집에 좀 작은 벼슬인감!”
흔하디흔한 들메나무를 찍어다 세운 전기대의 나무가림대가 전깃줄 무게에 찌걱거리기도 하였다. 뚱딴지에 묶인 늘어진 전깃줄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흔들 그네질이었다.
태칠은 벼슬자리에 오르자 동년배인 촌장을 찾았다.
“전기댈 갈게, 일춰. 쇠줄로 늘인 전깃줄도 바꾸고……”
촌장도 전기불 볼 욕심에 임시 방패막이로 대충 세운 전기대가 눈에 시렸으나 당금 파종도 마쳐야 하고 흙돌길에 물오른 나무 찍기가 뭣하여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아퀴 지을 수가 없었다. 태칠이 건의는 농한기로 미루어졌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초여름 어느 날, 벼락 치며 폭우가 내렸다. 세찬 바람에 탈곡장 정미소로 들어가는 전깃줄에 고압선이 걸쳐졌다. 누전된 전기는 집집을 덮쳤다. 흙담벽에서 번쩍번쩍 전깃불이 일었다. 애들은 방구들 복판에 모여 울부짖으며 떨었고, 어른들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허둥대며 쩔쩔매기만 하였다. 손끝도 보이지 않는 밤이라 태칠은 온 벽체가 감전된 걸 알고 마른자리에 꼼짝 말고 있으란 부탁을 남기고 희미한 손전지를 들고 합선 지점을 찾아 나섰다. 평소부터 미심쩍어 눈여겨오던 정미소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저압선에 걸쳐 번쩍이는 곳을 찾아냈다. 그는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긴 전공 막대기로 전기선을 쳤다. 웅웅거리던 소리도 멎었다.
갑자기 누전 현상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밖으로 달려 나왔다. 이슥해서 전공막대기가 뒹구는 빗물 고인 옆에서 흙투성이 태칠이를 찾아냈다. 허리를 몹시 다쳐 운신 못하는 태칠이를 밤도와 병원으로 호송하였다.
천명이 따로 없는가보다. 태칠인 기적처럼 살아났다. 의사들은 불가사의(不可思義)한 일이라며 혀를 찼다. 사선을 헤매는 태칠이 구완에 이쁜이도 반쪽이 되었다. 똥오줌을 받아내고 욕창이 생기랴 육중한 태칠이를 수시로 돌려 눕혀야 하였다. 하루가 열흘 맞잡이로 긴 여름날을 돌아치는 이쁜인 남편을 구원하려는 일념뿐이었다. 그녀는 돈이 무서워 먹는 것도 남편이 남긴 음식으로 버텼다. 병원비가 무척 드니 이쁜이네는 걱정이었다. 촌에서도 은근히 급한 불은 껐으니 집에 돌아와 요양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태칠은 두 달 만에 퇴원하였다. 선대 받은 치료비는 우선 빚장부에 올랐다. 가을분배 때 군중대회에서 토의하자고 미뤘다. 순리대로라면 치료비를 촌에서 큰 몫으로 안아야하건만 하루품삯이 단돈 일 원도 안 되는 생산대에서는 아름찬 액수여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농민신세라 공비치료혜택은 눈꼽쟁이만큼도 없는 세월이여서 이쁜인 속을 바질바질 태웠다. 정부 민정의 많지 않는 구제금도 손발이 닳도록 하여서야 두어 번이지 내년에 보자고 하였다. 이쁜이는 집에서 보일 수 없는 눈물을 남모르게 남수엄마를 부둥켜 안고 펑펑 쏟았다. 그간 태칠이가 아이들과 누이들을 구슬려 새끼를 꼬게 하고 돌림차례로 짠 가마니를 팔아 산 벽시계를 장마당에 내 놓았다. 살점을 떼는 듯 아프게 벽시계를 떼는 아내를 누워 물끄러미 쳐다보던 태칠은 눈시울을 슴벅이며 얼굴을 돌렸다. 아이들이 4대 기물의 반쪽짜리인 벽시계를 사오던 날 제마끔 승강내기로 밥을 준다며 따르륵따르륵 태엽을 감아주던 모습이 눈에 밟혀 이쁜인 휘청거렸다. 철철이 옷 사 입히지 못하는 처지에 손바느질로 헌옷을 기워 입히기도 버금 차다며 석방될 때 시아버지가 받은 15년 옥살이 수당금이랄까 하는 차비와 안치비를 누구도 못 다친다면서 끼고 돌던 “엄마”가 괴춤에서 끌러놓아 산 재봉침도 판지 오래다(당시 중국인들은 가장집물 손목시계, 재봉침, 라디오, 자전거 4가지를 갖추면 부자라고 칭하였다). 두 달이나 병구완에 생산대 일을 못나가 노동공수량(勞動工數糧)은 턱 없이 적어질 것이어서 눈앞이 까마득하였다. 키우던 닭 새끼도 닭곰을 해 먹인지도 오래였다. 이웃에서 한두 마리 보내는 닭은 체면에 손이 떨렸다. 이제는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릴 것 없는 집안에 넘치는 건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애비가 구들장을 지고 앓음소리만 지르니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 쭈빗거리고 눈치만 핼끔거리며 죽어지냈다.
“제일 하다 다쳤남, 떼질이 사촌보다 나아.”
남수엄마가 촌장에게 매달리라고 얼굴가죽 얇은 이쁜이에게 일렀다.
냉산골은 구제량 촌이라 자주 찾기도 난감하였다. 그래도 이쁜인 남수엄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 찾다나니 동냥도 이골이 튼다고 화끈거리던 얼굴도 나아졌다. 촌장이 써주는 손바닥만 한 쪽지가 위력이 있었다. 출납은 군소리 없이 돈을 주었고, 지어는 탯돈을 내어서도 선처하여 주었다. 촌장의 권력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이쁜 동무 고생 많수. 회계에 일렀으니 가 기다리우.”
수심이 잔뜩 낀 아직도 여려 보이는 이쁜이 얼굴을 측은히 보던 촌장이 가볍게 어깨를 다독이며 위안해 주었다. 처음에는 송충이를 털어버리듯 어깨를 옴츠리던 이쁜인 탕개몽둥이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쁜 동무 계슈. 태칠이 좀 어떤가?”
촌장은 제 집일을 제쳐놓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구명은인이나 된 듯 시어머니도 촌장을 반겼다. 일촌지장이라 4백 명 식솔을 먹여 살리는 세대주여서 노친은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고생 많수, 좀 앉수.”
노친은 촌장이 앉을 자리에 빗자루질 하고도 팔소매로 닦았다. 이씨는 도 넘는 노친의 아첨에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는 동정에 눈이 멀기 쉽고 언제 치마끈이 풀리는지 모르기 쉽다.
욕창이 덧나 죽어가는 앓음 소리를 뽑는 남편이 애처로워 촌장 집을 찾아간 이쁜인 눈물을 찔끔거렸다. 며칠 약이 떨어져 갈아 부치지 못하였고 시어머니가 힘에 부쳐 자주 돌아 눕히지 않아 살이 험하게 파였다. 촌장은 촌의 사정도 있겠지만 사흘도리로 찔끔찔끔 비준한 걸 잊었는지 오히려 화를 내는 양이었다.
“앓는 사람 생각해야지 민정에 좀 변통했소. 사무실에 가기요.”
찾아올 줄 미리 알고 장만하여 놓은 듯싶어 이쁜이는 감지덕지하여 났다. 그녀는 촌장이 손목을 끄는 대로 가볍게 끌려갔다.
어둑시그레한 사무실에 들어선 촌장은 독수리 병아리 채듯 이쁜일 안았다.
“이쁜 동무 좀 살려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쁜이 입술에 촌장의 까칠한 수염이 찔려왔다.
“정신 나갔수.”
손사래 발사래 치며 항거하는 이쁜인 미친 황소같이 날치는 촌장을 당해낼 수 없었다. 문방구가 놓인 찌걱거리는 책상에 눕혀진 이쁜인 애기들 주먹만 한 물건이 허리춤에 닿자 정신이 아찔해 나 무엇이 쏟아졌는지 허리깨가 축축해지는 걸 느끼지 못하였다. 심장을 조이는 통증에 반항을 체념한 이쁜인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어느새 허리춤의 물건이 빠져 나갔는지 통증도 멎었다. 환각에 빠진 이쁜인 사나이 허리를 꽉 끌어안고 붕 하늘 높이 떠올랐다. 잊어가던 여성이 살아나는 시간은 짧았다.
이성을 되찾은 이쁜인 훌쩍훌쩍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사내는 그 앞에서 고두사죄하며 허둥댔다. 이쁜인 민정의 보조금을 메칠 힘을 잃고 엽냥에 돈 봉투를 넣고 머리 매무새를 고치고는 어두움을 빠져 나왔다. 떼기 힘든 첫 발자국을 뗀 이쁜일 촌장은 가끔씩 “이쁜 동무, 이쁜 동무” 하며 불러냈다. 부녀 대장도 아니요 식당 밥도 하지 않는 이쁜인 자주 촌장의 호출에 따라 거리에 나갔다. 촌장은 태칠이가 바깥출입을 겨우 하자 그에게 사무실 열쇠를 주며 당직 일을 맡겼다. 일이라고 해봤자 하향(下鄕)한 정부 인원에게 거죽을 참대로 엮어 씌운 보온병의 찬 냉수를 부어주고 식당 집에 손님을 데려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촌민들은 마을을 구한 공신이니 촌장의 결정에 이의가 없었지만 이쁜이까지 배려하는 데는 배가 쏴났다.
무슨 일이나 도가 넘으면 화가 생기는 법이다.
해가 기울어 돼지풀을 한임 이고 온 이쁜이가 되돌아서자 고씨가 태칠에게 눈짓하였다.
“아범, 아 에미 앞들 나갔다. 마중가렴.”
태칠은 세발걸음으로 엉덩이를 휘저으며 아내를 찾아 나섰다. 논머리 버들 숲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캐들거리는 아내의 소리였다. 조심히 버들 숲에 들어선 태칠은 놀라 넘어질 번 하였다. 피가 머리끝으로 치솟았다. 죽어가는 남성에 태칠은 혀를 깨물었다. 자존심이 구겨져 눈물이 흘렀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손이 떨려 담배를 말수 없었다. 그는 떨어진 눈물에 젖은 담배종이를 떨어트리고 연놈의 짓거리를 한 번 더 쳐다보고 돌아섰다.
밑이 구린 이쁜인 언제부터인지 식구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떨쳐버릴 수 없는 촌장과의 정사가 깊어질수록 두려워났다. 능구렁이 촌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착해 왔다. 떨쳐버리려 매정하게 밀쳐내고 욕질을 퍼부어도 초원의 기수가 생마를 즐기듯 성깔이 있어 매력적이라 감겨드니 침을 뱉을 수 없었다. 중이 고기 맛 들이면 절에 빈대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늦깎이 바람둥이 촌장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이쁜인 민망하게 사람들 눈을 피하여 추파를 보내고 몸짓으로 불러내는데 응하지 않으면 한술 더 뜰까봐 냉큼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몸둥이를 찢어버리고 싶도록 미워나기도 하였다. 제일 두려운 건 초롱초롱한 애들의 엄마의 배신에 의한 증오의 눈빛이 몸에 꽂힐 날이었다.
반짝 피어나던 이쁜인 초들초들 말라갔다.
남편은 밤마다 이쁜이 얼굴을 내놓고 몸뚱아리 이곳저곳을 꼬집고 할퀴며 잠을 못 자게 하였다. 젖통을 물어뜯기까지 하여 성한 자리 없는 가슴에는 피멍 든 자국이 생겨났다. 때로는 손가락마저 비틀려 사발깨비도 들기 힘들었다. 오쟁이를 진 남편의 복수는 끝이 없어 보였다. 식구들이 알까봐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이불깃만 곽 깨물고 흐느꼈다. 엄마이기에 참아야 하고 아내이기에 참아야 하고 여성이기에 참아야 하는 고문에 집안은 언제나 살얼음이었다. “엄마”는 양손에 떡을 쥔 처지라 어느 쪽도 편을 들 수 없어 매삼쳤다. 당사자들이 손주들을 생각하여 현명하게 처리하도록 바랐다. 엎질러진 물이 되었어도 손주들 앞날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바랐다.
살얼음이 깨졌다.
귀 달린 자식이 쉬쉬한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를 길거리에서도 크게 부를 수 있게 되어 환해진 얼굴이 다시 까매진 강철이가 씩씩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엄마에게 매달리며 앙탈을 썼다. 글이야 읽든 말든 중학생이 된 강철이도 남녀 관계를 알 만큼 알 나이여서 엄마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기를 썼다. 어려서부터 고운 엄마 같은 색시를 얻겠다며 웃기던 강철이가 아니었다. 손톱에 할퀸 자리에 피가 맺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창피함을 아들에게 받는 이쁜인 가슴이 갈갈이 찢어졌다. 이쁜인 강철의 행패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백지장이 되여 갔다.
“화냥년, 이씨 집에서 나가. 엄마 아냐!”
변태적으로 밤마다 괴롭히던 남편도 뱉지 못한 최후의 통첩이 강철의 입에서 떨어졌다. 강철은 엄마를 밖으로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집안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할아버지 이씨가 성큼 구들에 올라 강철의 멱살을 잡아채 세우고 뺨을 호되게 쳤다.
“버릇없이 엄마께 행패냐.”
난생 처음, 그것도 집안 장손을 친 이씨는 손바닥을 보며 떨었다.
헌데 강철이 놈은 기고만장이었다. 종로에 뺨 맞고 한강에 가 눈 흘긴다고 할아버지에게 맞은 분풀이는 엄마에게 돌려졌다. 그는 장롱에서 엄마의 옷가지를 꺼내 마당에 버렸다.
이쁜이는 배신당한 남편의 화풀이는 참을 수 있어도 아들 강철의 수모에 참을 수 없었다.
“이눔새끼 어미 없이 살아봐라.”
이쁜이는 마당에 널린 옷들을 밟고 단벌 옷차림으로 남수네 집을 찾아갔다.
“언니, 나 어찌 사우?”
두 여인은 서로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다. 마을은 발칵 뒤집어졌다. 큰 회의 작은 회의가 열리더니 마을의 풍기를 다스리는 회의가 열렸다. 깨고소해하는 이들은 개울 창에 가 헌신짝을 주어오고 섬뜩한 가위도 지참하였다.
7
죄는 지은 대로 가는 법이다.
이씨는 다사다난한 칠십 평생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이씨는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채워졌는지 몰랐다. 술이 죄라면 주정뱅이들 모두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그런데 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네거리에 큰 대(大)자로 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든가 술상을 뒤집고 싸움질하여도 이튿날이면 멀쩡히 술상에서 히히닥거리는데 자기는 15년이나 옥살이를 하였으니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술은 죄가 아닌게 분명코 내가 반혁명, 온혁명은 또 뉜고? 한 이불 쓰고 산 노친도 혁명분잔 아닌데.”
며느리사건이 터지자 이씨는 강기슭에 있는 늙은 버드나무를 보고 생각이 깊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가는 비바람을 맞으며 냉산골의 대소사를 보아 온 나무였다. 기쁘면 긴 가지를 흔들며 냉산골 사람들과 춤을 추었고 슬프면 가지를 드리우고 그네들을 대신하여 울어 주었다. 처녀총각들이 꽃쌈지를 주고받는 애틋한 사랑 놀음에 흐뭇하여 웃어 주던 나무였다.
이씨는 며느리의 보살핌이 그리워났다. 치마폭에 싸서 건네주던 까마치가 삼삼해 났다. 주책없이 찾아갈 수 없어 안타까웠다. 대동강에 배 건너간 셈 치고 잊고 살아가면 될 터인데 아들이나 손자눔이 왜 앙앙불락인지 야속하였다.
살아오다보니 술자리 때마다 노친이 바가지를 긁던 지청구가 새삼스러워났다.
“두상 주책없어라. 허튼 소리에 제명 못살디.”
일생의 비운을 예측한 노친의 정이 듬뿍 담긴 명언을 늦깎이로 깨우쳐 몸이 뜨거워 났다. 그는 처남의 임종 전 편지를 받아들었다. 처남의 고자질이 용서되었다. 이씨는 처남이 실의에 빠져 집식구들이 잠든 밤에 층집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는 전갈을 뒤늦게 듣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처남도 소탈해 보였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세월 탓에 여물지 못하였다고 할까?
선생질하던 처남 고씨는 역빠른 사람이라 민운공작대 학습반을 거쳐 사업 터를 여러 번 옮겨 앉더니 조직부장이요, 부시장이란 요직에까지 올랐었다. 그런데 주자파를 잡아내는 불똥이 고씨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고깔모자를 씌우고 거리돌림을 당하였다. 노천광장에서 수만 명이 모인 앞에 90도 각으로 허리를 굽히고 받는 투쟁을 쐐쎄기를 태우는 비판대회라 했다. 귀안이 먹먹하도록 외쳐대는 구호 소리에 헛대답을 하면 뭇발길질이 쏟아졌다. “고**를 타도하자!” 패쪽을 질질 끌고 집에 들어서면 여편네가 계선을 가른다며 아이들과 한쪽이 되어 몰아 세웠다. 나라의 충신이 되려는 것이 큰 죄였다. 고씨는 몇날 며칠 생각을 더듬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온 것은 완고분자란 혹독한 추달이었다. 그럴수록 가족의 계선나누기 수위는 바깥세상과 동보로 높아졌다. 살을 섞고 살아 온 여편네도 이를진데 철없는 아이들을 탓할 수 없었다.
고씨는 매부 이씨가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며 19년 도형 받은 것이 생각났다. 정신이 붕괴되기 일보직전에 고씨는 매부 이씨에게 휴지조각 같은 7전짜리 공책 장에 편지를 썼다.
“매부, 미안하오. 고문을 받으며 허튼소리 지껄였다고 사정하였지만 받아주지 않았을 때 매부는 얼마나 안타까웠소. 그날 매부의 허풍을 짐작하면서도 긴가민가하여 조직에 반영하여 조사를 부탁한 것이 실책이었소. 매부와 터놓고 이야기했으면 매부도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고 누이네 한 가족이 불행하지 않았을 걸 형제간에 우애를 끊고 살게 하여 낯을 들 수없구려. 용서하우.”
이 편지가 어떻게 이씨 손에 전달되었는지 이씨 자신도 몰랐다. 우연히 심심풀이로 읽던 “심청전” 갈피에서 편지가 떨어져 나왔다. 이씨는 이 편지를 읽고 처남이 썼으리라 믿지 않았다. 괘씸한 처남과 연락을 끊고 살면 그뿐이지 하였다. 며느리 사건이 터지자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고 노친의 예언을 듣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달은 처남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둥이를 잘못 놀려 허풍으로 자신을 과시하던 버릇에 있었다.
이씨는 윗마디가 뭉청 썩고 좀 먹어 부러진 강변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제 나이보다 더 늙은 버드나무의 뻗은 가지에 돋은 새파란 이파리가 눈이 아프게 안겨 왔다. 이씨는 아름드리 밑둥을 주먹으로 툭툭 쳐보았다. 아직 속이 비지 않았다.
이씨는 옆냥에서 큰 종이에 쌌던 꼬깃꼬깃 접은 처남의 편지를 펼쳤다. 성냥을 쭉 그어 편지에 불을 붙여 강물에 띄웠다. 이씨는 처남을 깨끗이 용서하여 주었다. 한창 승진을 꿈꾸었던 처남이여서 그러려니 생각되어서였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아들 내외는 매듭이 풀리지 않아 이씨를 괴롭히는 일만 남았다.
계집질에 촌장은 촌기동지 밭뙈기를 쥐 소금 녹이듯 팔아먹었다. 그는 해마다 모범촌장이 되려 관청에 가 살았다. 사흘이 멀다하게 술을 사 먹이고 만보루나 이름도 모를 담배 값으로 천여 소시나 찔러 주었다. 통이 큰 촌장은 읍내 할아버지였다. 가는 곳마다 상좌에 모셔졌고 제일 먼저 술잔을 받았다. 개어올리는 찬사에 귀가 남대문만하여 벌려놓은 일이 숱하였다. 또한 굴러다니는 것이 돈덩이라 팔만 벌리면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촌놈이 땅을 짚고 헤엄치기인 땅 파는 일은 뒷전이며 은행 대부금이 어렵게 되자 탯돈으로 고무판공장을 세웠다. 그러던 차 반제품을 들고 다니며 헛나발 부는 기술자들이 살맛 만났다며 촌장에게 매달렸다. 하얼빈, 대경에 촌 대리점이 세워졌다. 향진(響鎭)기업이 정돈에 들어가자 우후죽순마냥 일어나던 숱한 촌공장이 문을 닫았다. 고슴도치 오이 걸머지듯 냉산촌은 빚만 잔득 걸머지게 되었고 촌장은 그 빚을 메워보려고 노심초사하였다. 통 크게 탯돈을 내고 사들여 대경에 쌓아놓은 반제품을 본전이라도 건져보려 애간장 태웠으나 가공가치가 없는 폐품이라 하였다. 도시환경부문에서는 벌금을 물지 않으려면 땅속에 깊이 묻으라 했다. 거간꾼에게 속아도 크게 속았다. 큰 공장의 폐기물을 사들였으니 눈뜨고 콧등을 베인 셈이었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쌍으로 덮친다.
빚더미에 숨어 지내던 촌장은 혹시 재기하지나 않을까하여 쓸모없는 촌공장 공인(公印)을 들가방에 넣고 사냥감을 물색하던 중에 호출을 받고 촌으로 돌아왔다. 기미가 심상치 않았다. 촌 입구에서부터 애들이 온역신 피하듯 피하였다. 어른들은 먼발치에서부터 에돌고 부득이 마주친다하여도 눈빛이 차가웠다.
“올 것이 왔나보군.”
정지 문에 들어서자 예전 같으면 며칠씩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색할 여편네가 새침해서 문을 쾅 닫았다.
“집이라고 찾아와!”
촌장은 넝쿨에서 떨어진 조롱박신세가 되었다. 골목마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여편네들까지 곰백 년의 일을 꺼내 복날 개 패 듯하지 못하여 안달아 났다.
촌장은 투쟁회의 후 두문불출이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이쁜이 처지도 별반 낫지 않았다.
8
태칠이네 집은 아내가 나가자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에 어른들은 군말이 없는데 막내부터 반기를 들기 시작하더니 차례로 올라가며 그릇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손주들의 음식투정에 절절 머리를 저으며 침침해오는 눈을 내리깠다. 태칠이가 민망해하는 어머니를 바로 볼 수 없었다.
“먹기 싫음 숟갈 놔!”
애들은 애비의 벼락 치는 소리에 줄행랑이었다. 미처 기워 입히지 않은 째진 바지엉덩이 사이로 땟자국이 보였다. 태칠은 쇠진한 어머니 앞에 소리친 것이 미안하였다. 수라장이 된 방을 치우다가도 주먹으로 자근자근 등을 두드리는 어머니였다. 아내가 시집와 처음 정주간을 떴으니 부엌일이 많이 서툴어져 작식 솜씨가 깔끔하지 않아 애들이 트집부린 걸 왜 모르랴?
이쁜인 남수네 집 윗간을 빌어 살더니 불편한 것이 많은지 남수엄마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흉가라 버려진 오두막을 대수 물매질 하고 이 빠진 사발깨비 두셋에 쟁개비를 걸어놓고 끓여 먹었다. 깔끔해서인지 제 식기는 언제나 깨끗하게 씻어 실겅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막내가 보고 싶어 산기슭에 있는 학교에 가 먼발치에서 눈물이 그렁해서 훔쳐 보군하였다. 그래도 자식들을 찾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자식마저 잊은 독종이라고 삐죽거렸다.
강철이는 할머니 오금이 날따라 굼떠지니 걱정이었고 병신이 된 아빠가 산골 홀아비가 되어 냄새까지 나니 더 싫어졌다. 동생들의 밥투정에 자기도 미칠 것 같아 미운 엄마의 오두막을 찾았다.
“엄마, 집에 와!”
홀쭉해진 엄마의 어깨를 흔들며 쑥스럽게 말을 뱉었다.
“고맙다만 갈 수 없구나.”
이쁜이는 까칠한 아들의 얼굴에서 잠깐 반짝이던 눈길을 내리깔았다.
“갈 수 없어, 할 수 없지.”
강철이도 짧은 대답에 무참해나는지 두말 하지 않고 돌아섰다. 강철이가 돌아가자 이쁜인 문을 걸어 잠그고 서럽게 통곡하였다.
이쁜인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워 병원도 찾지 않았다. 외롭게 먹는 것도 혼자여서 시걱을 건너 뛸 때가 많았다. 몇 번이나 문을 열어 주지 않자 남수 엄마와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섭섭해 난 남수엄마는 입이 부어올랐다.
“매정한 년, 날 어째 잊노.”
나라에 재앙이 생길라면 징조가 먼저 보인단다.
나라 살림꾼이 새해 벽두에 가시고 뒤이어 총사령도 따라가시더니 천진 대지진이 일어났다. 9월에 들어서자 청청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라디오에서 울려났다. 나라님마저 승천한 소식에 냉산촌 노친들이 통곡의 바다에 빠졌다.
“쌀알에 뉜디 돼선사람 어찌사노.”
부모 잃은 자식마냥 수심어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내란이 일어날까 걱정이었다. 조선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전쟁의 참혹함의 표준이 8.15사변 급에 머물러 있었다. 이씨는 집안 어른 틀거지를 차리느라 태칠이와 손주들을 단속하였다.
“사변엔, 입단속 잘해 낭패 없제. 할배 19년 알제!”
그런데 냉산골사람들이 걱정하던 나라사변은 나지 않았다. 나라에 잡혀 나올 연놈들이 잡혀 나와 상하가 들끓었다. 사회주의 “잡초”를 묵과할망정 자본주의 “강낭”이 날벼락을 맞았어도 냉산골 사람들은 변해가고 있었다. 천안문 광장에서 열광하였던 학생들이 총소리가 터지자 뿔뿔이 흩어졌다. 냉산골에도 그 뒷수습 바람이 불어 닥쳤다. 경찰들이 학교에 들이 닥쳐 4.5의 광장에 가지 않은 교장의 부재증언을 조사하러 갔다. 냉산골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랐으나 동네가 무사하고 제 자식들이 연루되지 않아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냉산골에는 일이 생겼다.
돈맛을 알아가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찰떡을 머리에 이고 골목이나 찻간에서 여객들의 주머닛돈을 털어내더니 담이 커져 산에 있는 횡경피 나무껍질을 홀랑 벗겨 샛노란 속을 말려 등짐으로 목단강에 날랐다. 물론 돈이 아까워 도둑차를 탔다. 차표검사에 걸릴까봐 걸상 밑에 숨기도 하고 밤새 구린내 나는 변소에 지내기도 하였다. 미처 껍질을 장만하지 못한 이들은 남의 것을 넘겨받아 되걸이 장사에 동참하였다. 하늘같이 우르르 든 웬만한 월급쟁이 봉급의 둬서 배를 한탕에 벌어 입이 째지게 기뻐났다. 오죽했으면 길목을 지켜 젊은 놈들이 삼림경찰로 자처하며 어리숙한 사람들의 걸 빼앗아 되넘기는 일도 생겨났을까? 이쁜인 돈벌이가 씨글거려도 나돌지 않았다. 치욕스런 과거에 낯을 들 수 없었고 몸이 괴로웠다. 두문불출인 그는 만사가 귀찮았다. 남편과 강철은 지금껏 그녀를 소닭 보 듯 하였다.
손발이 시려 오그라드는 모철이 되었다. 두 고모와 남수엄마랑 모여들어 모를 부어주어 볏모가 잘 자랐다. 강철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여 남수네 돼지 판 돈을 취하여 후다닥 모를 꽂았다. 늦을수록 삯모 값이 오르기에 선참 꽂은 것이었다. 삯꾼들이 감살이가 나빠 자개풍이 났다며 트집이더니 결산 때 돈을 더 내라 하여 논머리싸움이 집에까지 이어졌다. 그때 막내 놈이 올롱히 쳐다보더니 사라졌다. 사라진 줄 몰랐던 막내가 이윽고 돌아와 돈을 내밀었다.
“웬 돈이냐?”
강철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막내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쭈빗쭈빗 떠듬거렸다.
“엄마 돈이야.”
“뭐? 엄마? 당장 돌려! 화녕년 돈 더러워 안 써!” 하며 강철이 막내의 뺨을 때렸다. 남수엄마가 달려와 돼지 판 돈을 또 헐어서야 소힘줄 같이 질긴 놈들을 뗄 수 있었다.
쪼르르 달려와 돈을 내미는 막내를 끌어안고 이쁜인 오열하였다. 돈 나올 구멍 없는 그녀가 최후의 비상금을 털었는데 욕설과 함께 되돌아 온 것이었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새벽 낚시꾼이 다리목 늙은 버드나무가 늘어선 강기슭으로 내려섰다. 아래켠 멀리 물에 닿일 듯 누운 굵은 나뭇가지에 무엇이 걸린 것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선 낚시꾼은 초풍할 만큼 놀랐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물에 흐느적이는 여인의 시신이 보였던 것이다. 윗옷 적삼이 팔뚝 같은 가지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하였다.
“사람이 빠졌소! 빨리 나오우.”
동이 터오는 새벽어둠을 타고 낚시꾼의 겁먹고 조급한 외침소리가 냉산골을 깨웠다. 새벽잠이 적은 노친이 깨어날까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요지부동이던 이씨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강변에서 멀지않은 집이라 이씨가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왔다. 그는 물살에 흐느적이는 시신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언제 옷을 벗을 사이도 없이 풍덩 뛰어들었다. 가슴깨가 넘는 물을 허둥지둥 헤가르며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조심히 시신을 받쳐들고 기슭으로 나왔다. 인색한 사람들이 밀어내 죽은 듯이 살아가던 이쁜이를 강은 넓은 품으로 안아주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참회라도 하라고 멀리 깊이 떠내려가도록 수장(水藏장자가 틀림)하지 않고 쉽게 찾으라고 나뭇가지에 걸어주었다. 이것이 강물의 도량이고 품위가 아닐까! 연통을 받은 남수엄마는 맨발로 달려 나와 둘러선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엎어져 흰 이불안 천에 덮여있는 시신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언닐 보란데 이렇게 갈랴냐? 좀 소리라도 쳐야 가슴속 한을 풀제……”
남수엄마의 넋두리는 끝이 없었다. 동년배 여인들은 남수엄마를 부둥켜안고 훌쩍이며 눈물을 짰다. 남정들도 눈을 슴벅이며 강변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만 뻑뻑 빨았다. 폴싹해진 고씨는 울 맥도 없는지 하얗게 쇤 몇 오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드리워도 치울 염 없이 온기 잃은 며느리의 손만 주물렀다.
“난…… 난 어찌 살랴나?”
고씨는 정신없이 같은 소리만 곱씹었다.
새벽 찬물에 이쁜이 시신을 건져 올린 이씨는 며느리 시신을 정갈한 곳에 반듯이 눕혀놓고 가슴께 귀를 대 보았다. 식구들 중에서도 제일 사람대접을 해준 며느리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흉사라 손주들을 강변에 얼씬도 못하게 단속하고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침이 좀 지나자 영구차가 와 시신을 실어갔다. 태칠이와 동네 사람 여섯이 영구차에 올랐다. 이씨가 반남아 빈 술병을 들고 비칠거리며 차에 오르려하였다.
“며느리화장엔 시아빈 안가는 볍이여!”
늙은이들이 이씨를 말렸다.
“세상일 법도 따른 거 있수. 불쌍한 며늘애기 혼자 못 보낸다.”입에 술을 대지 않던 이씨를 말려 낼 재간이 없었다.
무너진 성(性)의 벽(壁)에 깔려 신음하던 이쁜인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성애는 신성하다. 남녀의 운우지정에 인류는 발전하여 오지 않았는가? 강압이나 교역을 떠나 귀천(貴賤)이 없는 남녀의 자유로운 감정교류와 소통으로 이루어진 성은 위대하다. 인류의 번창과 발전은 성의 발전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물질생활이 보장되고 문화생활이 있고 안정된 환경에서 성은 깨끗하리라. 가치관에 따라 향락적이고 엽기적이고 만족을 위한 희생적인 상납의 성은 광란(狂亂)일 뿐이다. 동물적인 배설의 교접이 타매 받는 이유일 것이다. 인류역사상 성과 관련된 전쟁도 숱하다. 넘지 말아야 할 성벽은 무엇이며 넘어선 성벽과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권력에 의해 상납된 성 앞에 사람들의 심정은 돌덩이로 굳어졌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천륜지락을 누려야 할 이쁜이네 가정의 비극의 실마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옷이 몸에 맞지 않다고 체격을 탓해야 하나? 아니면 체형에 맞지 않는 옷을 탓해야 하나? 이쁜인 남편의 변태적인 성 보복에 희생된 아내인가? 사랑하는 아들 강철의 “화냥년”이란 기시와 모욕에 서서히 죽어간 엄마인가? 수천 년 역사상 성으로 죽어간 여성은 이쁜이로 끝날까?
이쁜이가 왜 강에 뛰어들었는지 누구도 모른다. 죽기 전에 자기가 입고 쓰던 물건을 미리 태워 뒷수습이 간단하였다. 아내가 죽자 태칠이는 부모와 자식들을 버리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엄마를 쫓아냈던 강철이도 돈을 벌어 식구들을 살린다며 떠났다. 낭설에 남방 어느 도시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강철이의 동생들도 모두 성가하였는데 그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눔 독종이야.”
동네 사람들이 꾸짖는 소리가 강철의 귀에 들릴까?
9
올봄에 접어들어 놀랍게 강철이가 고향에 온다고 남수네 집에 전화가 왔다. 고향을 잊고 산줄 안 남수엄마는 강철이가 어떻게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궁금하였다.
오십을 훨씬 넘긴 금테안경까지 건 강철이가 돌아왔다. 에미를 닮아 이목구비가 번듯한 강철은 청명 이틀 전에 내외가 냉산골에 와 남수네 집에 행장을 풀었다. 내외가 장에 가더니 술이며 채소를 가득 사와 동네 사람들을 빠짐없이 모셔서 푸짐히 대접하였다.
“일찍 찾아야 했는데 늦어 죄송합니다.”
양주가 잔에 술이 찰찰 넘게 부어 올린다.
“술잔을 보니 정이 깊네.”
“오래 살다보니 강철이 술을 먹어 보네그려.”
따가운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도 누구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기분 좋은 술에 취하는 사람 없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흩어지자 남수엄마가 강철이를 불러냈다. 세상물정을 알 나이가 된 강철에게 엄마의 아픔을 알렸다.
“고맙다, 갈 수 없구나.”
그렇게도 자식들을 아끼고 감싸던 엄마가 짧은 두 마디로 거절한 이유를 안 강철은 큰 엄마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큰엄마, 엄만 내가 죽였수.”
철없이 쫓아내지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엄마가 아니냐? 멍이 든 가슴으로 아픔을 참아야 하던 엄마가 기신기신 걸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보여 괴로워났다. 한 번도 자식의 따뜻한 품에 안겨보지 못한 서분한 여한을 품고 간 엄마가 보여 괴로워났다. 찬 물에 홑옷차림으로 뛰어든 엄마는 뭘 생각하였을까? 강철이는 환각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강철인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눈두덩이가 부어 일어났다. 잇자국이 난 입술에 퍼런 멍이 보였다. 입술을 깨물고 장밤 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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