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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9일 목요일. 맑음, 밤에 비가 왔다.
아침은 참 아름답다. 방문을 열고 정원에 서면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공기도 신선하고 깨끗하다. 그런데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무게가 느껴진다. 풍경이 진하게 보인다. 낮은 구름들은 설산을 가리고 있다. 보일 듯 설산이 신비롭다. 숙소에서 아침을 만들어 먹는다. 불이 나가지 않아 누룽지를 끓여서 먹었다. 창밖에 풍경이 정겹다. 작별을 해야 한다. 오늘은 이 곳 훈자를 떠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간다. 도착은 구 시가지인 라왈핀디에 도착 예정이다. 아마도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될 것 같다.
파키스탄으로 점점 더 들어가게 된다. 파키스탄의 정식 명칭은 파키스탄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으로, 인도 서북방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1,046㎞이다. 면적은 79만 6,095㎢, 인구는 1억 9908만 5847명(2015년 현재), 수도는 이슬라마바드(Islamabad)이다. 종족구성 펀잡인 66%, 신드인 13% 등이다. 언어는 공용어 우르두어 외에 영어가 널리 통용되며, 펀잡어, 신드어, 푸쉬트어 등이 사용된다. 종교는 국교인 이슬람교 95%, 기독교 3%, 힌두교 1% 등이다.
산업은 쌀·소맥·면화 등을 주로 생산하는 농업국가로, 독립 후 공업화에 주력하여 방직·비료·시멘트 및 식품가공업 등 경공업 분야에 큰 성장을 이룩하고 있으나,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압도적이다. 영국 식민통치하 인도의 독립운동 전개로 이슬람교도들은 독립 후 힌두문화의 지배를 두려워하여 1930년대 초부터 이슬람교국가의 분리독립이념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키스탄의 국부로 숭앙받고 있는 지너(Jinnah, M. A.)의 파키스탄 분리독립정책에 따라 1947년 8월 14일 영국으로부터 파키스탄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는 1970년 12월 총선을 실시하였으나, 그 결과 동·서 파키스탄을 분리시키는 사태를 초래하여 부토(Bhutto, Z. A.)가 이끄는 인민당이 승리하고, 동파키스탄에는 라만(Rahman, M.)이 영도하는 당이 대승하여 동·서 파키스탄의 양 지도자간 연립정부 구성에 관한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에 따라 서파키스탄군이 동파키스탄에 진주하고 인도가 동파키스탄에 군사개입을 함으로써 1971년 12월 제3차 인도·파키스탄전쟁이 발발하였고, 파키스탄이 패함에 따라 동파키스탄은 분리되어 라만 영도하의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우르두어: پاکستان, 영어: Pakistan)은 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2억 명으로, 전 세계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인도네시아에 이어 2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이다. 주요 도시로는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페샤와르,퀘타가 있다.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우르두어와 페르시아어로 "신성한 땅"이라는 뜻으로, 파키스탄을 구성하는 5개 지역인 펀자브(Punjab), 아프간(Afghan),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의 앞글자 및 발루치스탄(Baluchistan)의 뒷글자를 따서 만든 PAKSTAN에 발음편의상 i가 추가된 조어이다.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34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약 8.2배이며,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3.7배이다.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해가 있어 바다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이란과 각각 국경을 접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형학적으로 대고원, 발루치스탄 고원, 인더스 평원, 사막지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최북단에 자리 잡은 대고원은 히말라야 및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카라코람 산맥과 파미르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카슈미르 지역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8,611m의 K2와 해발 8,126m의 낭가파르바트와 같은 세계 최고봉들을 포함하고 있다. 서부 중앙의 발루치스탄 지역은 높은 사막 고원지대로 되어 있고, 중앙의 펀자브 지역은 인더스 강이 지나고 있어 파키스탄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일찍 체크아웃을 했다. 배낭을 메고 큰 길로 걸어내려 간다. 차를 만나지 못하면 걸어서 알리아바드로 갈 맘을 몰래 먹었다. 아내가 알면 질색을 한다. 큰 길로 나서니 제법 차들이 다닌다. 사람들이 모여 차를 기다리는 듯이 보이는 장소에서 우리도 기다렸다.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가는 이도 있다. 한참을 기다리니 미니밴이 한 대 선다. 운전기사 창문이 열린다. 낯익은 얼굴이다. 우리보고 타란다. 생각해 보니 중국 국경을 넘어 소스트에 도착한 후 우리가 타고 간 미니밴이었다. 반가웠다.
차를 타고 NATCO(Northern Area Transport Corperation)사무실 앞에 내렸다. 도착 시간이 아침 8시 30분이다. 1시간 먼저 도착한 것이다. 거리에 서서 구경을 한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 여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커다란 살구나무 아래에 있는 계단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다. 학교에 가는 길인 것 같다.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교복을 입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게들도 하나 둘 문을 열고 청소를 한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면서 날씨도 뜨거워지고 거리도 시끄러워진다.
9시 30분이 다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젊은 외국인 커플도 보이고, 중국에서 함께 넘어왔던 꽁지머리 파키스탄 총각과 중국인 아가씨 커플도 나타났다. 반가워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잠시 후에 미니 밴이 한 대 도착하여 우리를 모두 태우고 간다. 버스 타는 곳이 따로 있단다. 알리아바드 마을 초입에 내렸다. 공터에 커다란 파란색 버스가 두 대 주차해 있다. 버스에 사다리를 놓고 짐들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내려서 배낭을 올렸다. 버스가 생각보다 높다. 아주 튼튼해 보이는 버스다.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는 아마도 이 버스 한 편 밖에 없는 것 같다.
차장 아저씨가 카피를 10장 했냐고 묻는다. 아직까지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외국인 젊은 커플이 여권 복사본 10장을 보여 주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가는 길에 검문하는 곳 마다 제출해야할 여권 복사본이 필요했던 것이다. 꽁지머리 총각이 복사하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가다가 좀 큰 도시 길깃에서 복사를 하면 된단다. 일단 차에 올라탔다. 우리 좌석은 맨 뒤에서 바로 앞 36, 37번이었다. 그 건너편에 외국인 젊은 커플도 앉았다. 꽁지머리 파키스탄 커플은 앞좌석에 앉았다. 일찍 예매를 한 것 같다.
잠시 후 오전 11시에 버스는 출발했다. 거의 20시간이 걸린다고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내일 새벽이면 라왈핀디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긴 여정이라 단단히 맘을 먹었다. 드디어 차는 달린다. 엄청 튼튼해 보이는 버스다. 차는 훈자 강을 끼고 달린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에, 또 다리를 건너면 왼편으로 훈자 강이 흐른다. 이 도로도 허접하지만 고속도로다. 중간에 비포장 길도 있다. 굴곡이 심한 도로인데도 엄청 빨리 달린다. 달리는 속도만큼 차는 요동친다. 구로(Jaglot)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가게들이 도로가에 있다. 고기를 매달아 놓은 정육점이 눈에 들어온다. 양고기와 닭고기 등이 매달려 있고 저울도 전등도 매달려있다. 이 나라는 닭도 껍질을 벗겨 팔고 있다. 껍질을 먹지 않는단다. 아침이 아닌 점심 티타임인 것 같다. 식사를 하는 이도 있다. 버드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화덕에서 찹슈로라는 고기만두를 사 먹었다. 길깃 식 피자란다. 금방 구워낸 커다란 만두가 아주 맛있었다. 찹스는 고기, 로는 밀가루 반죽인 난을 가리킨다고 한다. 한국말을 잘 하는 파키스탄 총각을 만났다. 한국식 이름이 영민이란다.
칼리마바드에서 아리랑 식당도 운영하고 있단다. 여행기에서 읽어본 기억이 있다. 한국 음식을 잘 만든다는 총각이다. 신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다음 카페, 웰컴투 파키스탄에 소개되는 스카이라는 분과 복마니라는 분을 통해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식 이름도 지어주었단다. 아리랑 투어도 운영하고 있단다. 이슬라마바드에 여행객을 데리러 간단다. 이분 덕에 여행길이 답답하지 않았고 편안했다. 옆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해 주고, 궁금한 것도 알려주었다. 제일 궁금한 것이 칼리마바드의 식수인 흙탕물이다.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준다. 지금도 자기들은 이 물을 마시고 세면하고 샤워도 하며 빨래도 한단다. 이 물이 장수의 비결 중에 하나란다. 훈자마을은 해발 2500m의 지역으로 높은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살구나무와 사과나무 그리고 수로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며 장수마을이었단다. 장수노인들은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특성상 심장과 폐가 튼튼하여 암, 심장질환 및 다른 퇴행성 질환이 거의 없다고 한다. 100세가 넘은 노인들도 건강하며 80세 의 노인도 밭에서 일 할 정도로 건강하게 살고 있었단다.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그들은 차단된 역사와 문화에서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고속도로는 축복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밝은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자,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데 호수가 생겨난 이후 수확량이 줄어들었단다. 중국에서 기계와 도구들이 들어와 대장장이의 일감도 줄었다고 ㅍ한다. 그리고 전기가 부족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활은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카라코람 산맥은 태고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곳에 고속도로를 내기위해 산허리는 잘리고, 물길은 막히고, 빙하는 내려오고 있다.
태고의 신비는 벗겨지고, 험악한 모습을 드러내어 가고 있다. 세계에서가장 장수하고 가장 친절한 훈자마을 사람들은 험악해지고 위험해진 산과 계곡만큼 이제 병들고 돈에 물들고 험악한 사람들로 바뀌어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장수하는 노인도 거의 없단다. 고속도로를 따라 흘러들어 온 인스턴트식품과 편리한 문명이 수명을 단축하고 있단다. 거기에 상대적인 빈곤감이 이들을 무력하게 했단다.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꼬마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차는 다시 달려 길깃에 도착했다. 파키스탄 꽁지머리를 따라 복사하는 곳을 찾아 갔는데 실패했다. 우리는 차로 돌아왔고 꽁지머리 충각이 다시 우리 여권을 들고 뛰어간다. 무사히 복사를 해 왔다. 복사본을 차장이 갖고 가고 우리는 여권을 돌려받았다. 복사 비용을 받지 않는다. 웃으며 됐단다.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고마웠다. 아내가 내 얼굴을 사진 찍어준다. 3일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았더니 얼굴이 엉망이다. 피포장 길을 한참 가더니 차가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밖으로 나갔다. 앞에도 10여대가 멈추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영민씨가 설명해 준다. 산사태로 인해 길이 없어졌고 겨우 길을 뚫어 일방통행으로 차량이 통행하고 있단다. 지금은 상대편에서 올라오는 차가 지나가는 차례란다. 산사태로 끊긴 길이 엄청 길다. 태양은 뜨겁다. 차에서 내려도 그늘이 없다. 아내는 차에서 잔다. 버스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옆에는 훈자 강이 거칠게 흘러간다. 흙탕물이다. 강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낡은 가옥 두세 채가 보인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몇 개 있다. 바위덩어리 위에 올라가 앉으면 시원하다. 찻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우리 차 뒤에도 이제는 차들이 엄청 줄을 섰다. 세치기해서 앞으로 온 차들과 사람들로 도로는 엉망이다.
치장을 가득한 커다란 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꾸역꾸역 지나간다. 승용차들도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미니밴도 비틀거리며 간다. 커다란 버스도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한참을 쉰다. 멀리 마주 오는 길을 보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차가 오고 있다. 이런 일이 언제나 끝날지 답답해 죽겠다. 이제는 포기하고 그늘을 찾아 앉아 쉰다. 파키스탄 전통 복장을 입은 남자들은 소변보는 것도 쉽다. 한적한 곳에서 그냥 앉아서 볼 일 보면 된다. 여자들이 힘들어한다. 이렇게 시간보내기를 거의 3시간이 넘었다. 갑자기 차에 시동이 걸린다. 서둘러 둑으로 올라가 차에 올랐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말 반가웠다.
차는 비틀비틀 거리며 좁은 길을 간다. 승용차가 겨우 지나갈 좁은 길을 버스가 잘도 간다. 비틀거림이 워낙 심해서 차가 주저앉을 것 같다. 망가지지 않고 가는 것이 신기하다. 의자에 앉아가는 것도 힘들다. 창자가 뒤틀려 배가 아파서 도저히 안자 있지 못하겠다. 할 수 없이 일어서 간다. 아내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과 함께 앉아가자고 신호를 보낸다. 배가 아파서 앉지도 못하는 내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들의 호의만은 감사했다.
거기에 작동이 잘되던 에어컨이 망가졌다.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할 수 없이 창문을 열고 천정문도 열고 간다. 먼지가 엄청 들어온다. 흔들림에, 들어오는 먼지에, 벼랑 끝을 곡예 하듯이 달려가는 아슬아슬함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다. 일방통행을 빠져나온다. 조금 더 달려 주유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모두 내렸다. 저녁을 먹고 간단다. 볶음밥을 사 먹었다. 건포도가 들어있는 기름밥이다. 생양파가 있어서 그나마 먹을 만 했다. 메뉴는 두 가지다 우리가 먹는 볶음밥과 짜파티에 콩 소스를 찍어 먹는 음식이다. 시가당도 크고 먹는 사람도 엄청 많다. 직원이 부지런히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
식당 직원이 나와서 길가에 흐르는 물로 차를 세차해 준다. 날이 어두워진다. 기도 시간인가보다. 몇 몇 사람들이 손과 발을 시냇물에 씻고 낡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처에서 기도를 하고 나온다. 해가 서 산으로 진하게 넘어간다. 강렬했던 태양이 사라지니 좀 서늘해지는 것 같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또 다시 차를 타고 갈 준비를 한다. 갈 길이 아직 멀었단다. 이제 시간으로는 4분의 1정도 왔지만 거리로는 10분의 1정도를 왔단다. 에어컨을 고쳐보려고 해도 에어컨이 작동이 안 된다. 그냥 가기로 작정했나보다. 해는 졌지만 그래도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기온은 뜨겁다. 차는 또 비틀거리며 달려간다.
거의 30년을 배낭여행 다니지만 이렇게 힘든 악조건에서의 이동은 처음이다. 밤이 되어 어두우니 밖의 벼랑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먼지도 보이자 않았으나 코끝으로, 눈으로 느껴진다. 수건을 꺼내 코를 막아보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물을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면 좀 낳다. 밤 길, 좁은 도로에서 차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려간다. 차가 망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참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밤 10시 경에 어두운 길에 차가 멈추었다. 차장이 외국인만 내리란다. 여권을 들고 밤길을 따라 간다. 검문소다. 희미한 등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차례대로 컴퓨터 책상 앞에서 여권을 검사한다. 서로 말이 없다. 외국인이라야 중국 아가씨와 유럽 커플, 그리고 우리 부부다. 별 일 없이 검사를 마치고 또 차장을 따라 우리차로 간다. 우리가 탑승하자 차는 또 출발한다. 살구도 먹고 계란도 먹었다. 맛있었다. 이렇게 또 밤길을 간다. 잠이 들다가 깨고 또 잠이 들다가 깬다.
밤 12기 경에 차는 작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주변이 모두 조용하고 어둡다가 우리 차가 들어서니 하나 둘 불이 켜진다. 가게 문도 올린다. 식당도 불이 켜진다. 또 식사를 하고 간단다. 기사는 계속해서 에어컨을 또 손을 본다. 에어컨이 고쳐진 것 같다. 우리 모두 기뻐했다. 화장실에 후레쉬를 켜고 갔다 왔다. 가게에서 주스를 사서 마셨다. 컴컴한 밤이라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다. 밤하늘에 별만 선명하게 빛난다. 몽골 고비 사막에서 보던 별이 생각난다. 잠시 후에 또 차는 간다. 이제 에어컨이 나와 좀 살 것 같다. 길도 좀 좋아진 것 같다. 잠이 들었다. 의자가 불편해서 자꾸만 뒤로 재껴진다. 그래도 밤은 깊어가고 차는 쉬지 않고 밤길을 달려간다.
2018년 8월 9일 경비- 미니밴 50, 계란 5개 100, 토마토 50, 물, 과자 120,
찹스로 1개 30, 볶음밥 180, 짜파티 150, 사이다 60,
주스 2개 60,
계 800루피*10=8,000원.
누계1,4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