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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수행기 3 - 음식
진펑향 (金鋒鄕)이라는 곳을 지날 때였다. 디디지들이 탄 앞 차가 비상등을 켜고 멈추었다. 뒤따르던 우리 차도 멈추었다. 잘 가던 차가 멈춘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전망 좋은 멋진 휴게터가 있든지 과일가게가 있을 경우다. 후자였다. 아래 사진과 같은 입간판이 있었다.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석두과(釋頭果)라고 하는데 현지에서는 스쟈(釋迦)라고 부르는 과일이다.
(스쟈의 종류도 많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구글지도로 검색을 했다. 1월 11일이었고 오후 1시 였다. 타이동에서 하루 머물고 가오슝으로 가는 중이었다. 다다지들이 일부러 서해안 해변도로를 따라 우리를 안내 했던 모양이다. 한참을 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달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참을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우회전하여 비스듬히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가오슝을 향했었다.
(나뭇잎처럼 생긴 대만지도를 놓고 보면 아래쪽은 길게 뻗어있다. 우리는 이를 돼지꼬리라고 불렀다)
이 스쟈를 사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인데 정말 부처님 머리처럼 생겼다. 품종개량을 많이 했는지 입간판의 스쟈 종류도 참 많다. 가게 가까이 가서 한 바구니 샀다. 내가 스쟈를 처음 먹을 때 딱 한 조각을 집었다가 어찌 맛있든지 몇 조각을 더 가져다 먹었다. 속은 유백색의 크림색인데 달기가 설탕덩어리 같았다.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슈가애플'이라는 별칭이 이해가 간다.
과일 가게에 들렀는데 어찌 이것만 사 갈 수 있으랴. 우리는 즉석에서 야자열매를 두 개 사서 뚜껑을 열고 야자수를 마셨다. 젊은 가게 주인은 큰 식칼로 딱딱한 야자열매를 잘 잘라서 속에 있는 물을 쏟아내서 우리가 마시기 좋게 컵을 하나씩 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재미있었다. 가게 주인은 버릴 줄 알았는데 물을 쏟아 낸 야자열매를 도끼질 하듯이 칼을 내려 찍어서 쪼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 쪽씩 또 우리에게 줬다. 다다지와 디디지는 잘 알고 있었나보다. 숟가락을 이용해서 야자열매 안 쪽을 파 먹는 법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이 새하얀 것이 코코넛이라고 했다. 제법 달콤하고 사각사각한 느낌도 좋았다.
(코코넛을 파 먹는 시범을 보여 주신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아난다마르가에 입문하여 데브빨(devpal)이라는 요가명을 받으신 한대수선생님)
야자 껍질은 부숙시켜서 모종을 키우는 상토로 쓴다고 한다. 이른 봄에 집에서 모종을 키우거나 육묘장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이 상토인데 물빠짐과 함께 보습력이 좋은 상토의 재료가 이 야자열매 껍질이 사용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야자수와 코코넛 드시는 것이 익숙하시다)
이처럼 우리는 어디를 가나 과일을 먹었다.
타이완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열대과일과 채소를 농장 근처에서 살 수 있었고 그것을 바로 식탁에 올릴 수 있었던 일이다.
언젠가 일행에게 내가 말했다. "방귀를 뀌어도 냄새가 안 난다."고.
그랬다.
타이완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똥이 샛노랗게 변했고 단단한 된 똥이 되었으며 방귀에서 냄새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바 완벽한 황금똥을 누게 되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마이클 폴란'은 "내일 당신이 어떤 당신이 되어 있을지는 오늘 당신이 뭘 먹는지이다."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눈 똥을 보면, 당신이 뭘 먹었고 어떻게 살았으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드러난다."고.
우리의 식단은 채소다. 곡식도 있고 과일도 있다. 이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한다. 밥, 빵, 카레, 국, 나물 등등. 타이완에서 가끔 밥이 나올 때도 있었고 국수가 나올 때도 있었다. 밥과 반찬 개념이 없는 듯 했다. 20여 일 있는 동안 김치나 밥이 당기지 않았다. 우리보다 며칠 뒤에 도착한 자나키지에게 참기름과 고추장을 부탁해 곁에 있었지만 일 삼아 먹지 않았다.
부루콜리, 압맥, 양배추, 당근, 고구마, 감자 등이었고 과일이 늘 넘쳤다. 오신채가 없는 음식 재료들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다. 우리 밥상에서는 국에 해당하는 것이 있었는데 갖은 야채들과 옥수수를 넣어 푹 고운 것이었다. 우리는 국을 밥과 함께 먹지만 그곳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에 국을 먹었다.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요구르트다. 우리들이 타이완 전국을 돌면서 자동차 트렁크에는 늘 요구르트 만드는 보온통이 함께 했다. 우유에 요구르트 원균(유산균 또는 젓산균)을 넣어 약한 불로 데우는데 섭씨 60도 이하여야한다. 그리고는 보온통에 넣어 두면 8시간 이내에 고형질로 바꾼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다. 우리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타이완시 팅짜우루(汀洲路- 가까운 곳에 완롱萬陵 전철역이 있음)에 있는 자그리티에서도 늘 요구르트가 있었다.
재작년 중국 상하이 앞에 있는 총밍섬과 남미 여행에서 그렇게 해 먹었었다. 칫다다는 아침에 먹는 바나나와 유산균 요구르트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를 누누히 설명했었다.
타이완의 음식들은 대부분 볶거나 데친 것으로 보였다. 기름을 많이 쓰는 것 같아 물어 봤더니 해바라기 기름을 많이 쓴다고 했다.
다다지와 디디지, 그리고 현지의 마르기들이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타이완 여행에서 모든 음식을 직접 챙겨먹은 것은 내겐 익숙해진 것이기도 하다. 작년 초 1월 한 달 동안 남미 수련여행 때도 그랬고 재작년 봄, 3주간의 중국 명상 기행 때도 그랬으니까.
재작년 중국에서였다. 현지식에 관심을 갖는 우리에게 칫다다지는 딱 한 마디로 대답했었다. "Dangerous(위험하다)".
이 말을 처음 듣고 좀 과하지 않냐는 생각을 했었다. 음식을 가려먹어야 한다는 정도로 말 하면 될 것을 ‘위험하다’니 말이다.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으면 삶 자체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과 생각은 물론 정서까지 평화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채식, 요구르트식, 감사식, 과일식, 견과류식, 데친식, 과일즙식, 소식, 정기적인 단식, 나눔식, 전체식 등으로 종합 정리된 내 식사 원칙들은 아난다마르가 수행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육식과 음주는 맑은 정신, 생명평화, 건강한 몸과 절대 같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이다.
칫다다지가 ‘위험하다’고 한 것은 이러한 뜻이리라 여긴다.
식사 때 마다 바바남케발람 만트라를 했다. 우리끼리 먹을 때는 자나키지가 기타 반주를 하기도 했다. 식사 전에 만크라 하는 것은 25년 여 전에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처음 배웠었다. 교회 다니면서 하는 기도와는 전혀 달랐다. 그 뒤로 틱낫한 스님과 함께 하는 걷기명상에 참여 했을 때는 아예 게송(揭頌)을 낭송하기도 했었다. 아난다마르가에서 기타반주까지 동원된 만트라는 처음 접했다.
식사 전에 하는 이런 의식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 음식이 곧 '나'가 되기 때문이기에.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음식들은 사실 온갖 기교를 부렸다고 보면 된다.
생산단계에서 씨앗과 보관, 발아와 모종단계, 영양성장 과정과 생식성장 과정에 인위적 시설과 화공약품의 세례를 받고 자란다. 요리 과정은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언젠가 이른 새벽에 나는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어린 학생들이 자동차에 연료 공급하듯이 패스트 푸드 먹는 걸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음식 만트라는 커녕 연신 잡담과 함께 다음 일정에 쫒기며 입으로 구겨 넣는 햄버그와 토스트. 몸과 정신, 마음이 예민한 학생 때일수록 맑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마지막 날이었다. 뜻하지 않은 식사 대접을 받았다. 타이완에 사는 부부인 릴라지와 타페쉬바라지가 전문 채식점에서 점심을 사 주었다. 이 부부는 25년 전에 자나키지가 타이완에 왔을 때 만났었다고 한다. 25년 전!
당시에 서로 무척 알뜰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25년 만에 이런 재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부부가 당시에 임신을 하고 있었다고 자나키지가 회고했다. 식사 내내 특히 남편 분이 식사 시중을 들어 주었다. 정식이어서 줄줄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음식 소개와 먹는 법, 또 각자의 접시에 덜어 주는 것 까지 해 주셨다
그동안 타이완에서 지내면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이 부부는 잘 설명해 주었다. 문화, 풍습, 채식인구, 젊은이들의 평균 보수, 사회복지제도, 특히 교육비 등등
나중에 계산서를 보고 무척 놀랐다. 고급 식당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를 상회하는 액수였다. 한국에 오시면 우리 집과 거창 디팔지 집에서 거나하게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자나키지에게도 감사했다.
타이완에서 지낸 마지막 날 저녁은 팅짜우루(汀洲路) 근처에 있는 디디지 집에서 초대를 해 줘서 거기서 저녁을 먹었다.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초대 받았다. 그 사이에 우리는 시장 구경을 가서 외식이라는 가벼운(?) 일탈을 했다. 홍보용으로 주는 길거리 음료와 음식을 조금씩 맛 보았다. 자극이 심한 음식들이었다. 냄새에서부터 맛까지.
엄청나게 큰 시장이었고 채식 전문 시장이었다. 채식만 취급하는 이런 시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부러웠다.
타이완에서 우리가 20여 일동안 먹었던 음식은 '타이완 음식'이면서도 '아난다마르가'음식이었다고 말 해야 할 듯 싶다.(끝)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ㄴ다.
네.
몇 군데 수정/보완 했습니다. (단체카톡방과 달리 수정/보완이 되는 카페 글이 이런 점에서 좋군요)
1. 한대수 선생님의 요가명이 잘못 기재되어 고쳤습니다. deepal -> devpal(데브빨)
2. 우리가 먹은 음식에 '버섯'은 없었습니다. 버섯을 삭제했습니다.
3. 마지막 날에 릴라지와 타페쉬바라지가 안내 해 주신 시장은 채식 전문시장이었는데 그 사실을 추가했습니다. 채식 전문 시장이 있다는 것이 중요해 보이네요.
혹시라도 처음 글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이 부분은 보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부분을 지적 해 주신 마르기 님(실명은 밝히지 않음)께 감사드립니다.
오래되어 타성이 되어버린, 어쩌면 공기같아 잊어버리고 있는 아난다 마르가 생활방식과 아차리아들의 고마움을 다시 일깨워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