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당 풀 뽑기
김 종 환
90순의 어머니는 바람이 부는 날에도 햇살이 쨍쨍한 무더운 날에도 호미를 꼭 잡고 마당에서 풀을 뽑고 계신다.
평생을 함께한 호미자루가 반질반질하고 이제는 무디어져서 한번, 두 번, 세 번을 찍고 또 찍어야만 풀이 뽑힌다.
우두거니 앉아 계시지 못하는 어머니는 집 밖을 나오시면 호미부터 잡으신다.
밭에서 잡초를 뽑으시던지 그늘에서 쉬는 것이 좋으시련만 지금은 늘 마당에 풀만 뽑으신다.
자식으로 그 모습이 좋을 리가 없기에 이제 그만 호미를 놓으시라고 하니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늘에서 좀 쉬자고 하신다.
내가 왜 마당에 풀을 뽑는지 아느냐고 물으시며,
환갑 지난 아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미를 알려면 더 살아야겠구나 하시며 웃으신다.
이제는 늙어서 밭을 매려면 눈이 침침하니 곡식인지 풀인지 분별하기 어려워 곡식을 뽑을 때가
많고, 철푸덕 앉아 풀매면 곡식이 부려지니 내가 밭에서 풀을 뽑으면 곡식에 이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해가 더 많으니 곡식을 심은 밭은 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당은 곡식인지 풀인지 걱정할 필요 없이 모두 뽑기만 하면 집 밖 구석구석이 깨끗해지니 좋고, 남들 보기에도 좋으니 우두거니 앉아 있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며 웃으신다.
풀이 언제 어디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듯이 사람도 살아가다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풀이 곡식과 섞여 있듯이 사람이 사는 것도 나에게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이 섞여 있지만,
밝은 눈으로 똑바로 보며 분별할 줄 알아야 네가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고, 네 자신도 깨끗해지며 윤택해 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절반 이상을 남을 위해 살아야 하고, 남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옛말대로 어떤 일도 남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일을 하듯이 본인도 남을 도울 줄 알고 살아가야 한다.
농군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삽질과 호미질 말고는 별로 없다.
모든 일들을 서로서로 도와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삽질을 할 수도 없고, 허리 구부리고 다니며 곡식을 심을
수 없는데 이제는 늙어서 시골에 살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생을 해온 호미질 밖에 없다
요새는 동네에 늙은이가 죽으면 빈집이 여기저기 늘어나는데
마당에 풀이라도 뽑아 놓으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할 것이고,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더라.
궁뎅이로 마당을 쓸고 다녀도 옷은 빨아 입으면 되지만 풀을 제때 뽑지 않으면 내 힘으론 호미로 열 번을 찍고 잡아 댕겨도 뽑히지를 않는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적기에 씨앗을 심지 않으면
크는 것도 시원치 않고 거둘 것도 별로 없는 것이다. 때에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듯이 무엇이 됐던 때를 지켜야 순조롭게 살아갈 수가 있다. 인사하고, 혼내고, 칭찬하는 일들도 때를 맞춰 해야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알고, 무엇을 잘 했는지도 아는 것처럼 때를 맞춰 해야 효과가 있듯이,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풀이 크기 전에 뽑으려고 틈만 나면 호미질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경로당에 오는 사람들은 다 늙은이덜인데 내가 가면, 동네에서 경로당에 오는 중에서는 제일 어른이라고 놀다가도 전부 일어나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를 양보해 주니 경로당에 가기도 부담스럽고, 방에서 텔레비전보다 누웠다만 하자니 답답하고, 움직이기는 더 힘들고 해서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죽을 때까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마당에 풀이라도 풀을 뽑는 것이다. 사람은 움직일 때가 살아 있는 것이고, 내가 누워만 있으면 네가 어미 수발들기 여간 고생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자꾸 움직이려고 하는데 밖에 나오면 마당에 풀 뽑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어서 풀이라도 뽑는 것이다
이것도 내가 힘들면 뽑다, 쉬다 할 것인데 일 같지 않은 일거리조차 못하게 하면 내가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니 그것도 일이라고 하지 말라고 안했으면 좋겠구나.
시부모님을 모시고 칠남매를 키우시면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녀회 일을 앞장서서 맡아 하시고,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수의 마름질을 위해 즉시 일손을 놓으시고 제일 먼저 상가에 가셔서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입고 가실 옷의 마름질과 바느질을
하시던 구순의 어머니께서는 마당의 풀을 뽑는데도 이와 같이 많은 생각을 하시고, 환갑 지난 자식을 교육시키는 목적까지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 쉴 만큼 쉬었고 조금 더 풀을 뽑아야겠으니 풀 뽑아 놓은 그릇을 비워다오. 하시며 호미를
들고 뜨거운 햇살 가득한 마당 쪽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나가신다.
구순의 연세에도 움직이실 수 있고,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시면서
풀을 뽑으시는데 말릴 수도 없고 말려서도 아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어머니 손이 닿는 곳에 제가 늘 있을 테니 지금처럼 14명의 손자 손녀와 계속해서 태어나는
증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며 오래오래 사시라고, 쉬엄쉬엄 하시라고.....
늘 좋아하시는 참외를 사다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