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쿠테타를 통해서 집권한 신군부는 방송을 장악하고 80년 5.18이라는 사건을 만들어 역사의 오점을 만들었다.
전두환 정부는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웠으며 한쪽에서는 삼청교육대를 운영했고 또 한 쪽에서는 축제를 하는데 그곳은 여의도 광장이었다.
여의도 광장은 일본이 건설한 비행장이 있었고 공군의 비행장으로 또한 군용기를 개조한 여객기가 뜨고 내리던 곳이었고 70년대는 군사퍼레이드 장이 었고 반공교육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가요제를 한다는 건 파격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복자율화가 이루어지고 대학에서는 총학생회가 부활된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교련교육도 사라진다.
여의도에서는 대통령선거유세도 하고 100만 인파가 모였었다.
여의도라는 공간에서 개최한 젊은이가요제는 70년대 후반 해변가요제를 이어 만든 가요제였고 이 행사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놓고 한쪽에서는 비난이 있었고 학내 축제도 성향이 바뀌었고 축제가 끝나면 시위로 얼룩졌다.
국풍81이란 로고에 그려진 탈은 별산대 계통의 탈로 과거 한강 주변에서 놀던 놀이에 등장했었다.
국풍81에 나와서 대상을 받은 노래는 '학'이란 노래로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밴드로 훗날 이 밴드 출신으로 유명해진 기타연주자가 장호일(정기원)이다.
그리고 ' 이 용'이 금상을 받았는데 그 노래가 '학'보다 유명했던 '바람이려오(추상)!'이었다.
그리고 연주상이라는 이름의 상을 받은 '을지문덕'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를 연주한 팀은 '시나브로'라는 순우리말의 이름을 썼고 5인조지만 싱어가 기타를 잡았기에 기타가 두대 키보드엔 그 유명한 '김광민'이 담당했었다.
1st Guitar가 2nd Guitar와 속주는 좋았으나 아쉬움이 있고 멜로디 파트와 전주 그리고 간주를 더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강조했다면 더 좋은 상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밴드에서 '문관철'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훗날 솔로앨범을 내서 프로의 길을 갔고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가 부른 노래는 다른 가수가 리메크해 성공을 한다.
을지문덕이란 역사인물은 당시 가요제의 노래가사에서 자주등장했고 젊은이들의 기운을 발산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데 있어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학가 한쪽에서는 민중가요를 부르고 탈춤반이 활성화되기도 했고 최루탄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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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풍81 젊은이 가요제 을지문덕
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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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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