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인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자유를 찾는 것이다.
우리 부부. 딸 부부. 아들 부부 이렇게 여섯 명이 자유를 찾아 제주 서귀포로 떠났다 . 숙소는 서귀포 뒷산 자락에 있는 콘도였다. 외관이며 내부며 호텔과 견주어도 좋을 만한 잠자리와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조용하고 포근한 서귀포는 가파르지 않은 능선의 한라산을 뒤에 두고 쉼이 필요한 배들이 머무르는 바다를 앞세우고 있다. 제주 여행 첫날 아들은 가족에게 개인이 가보고 싶은 곳을 한곳씩 신청받게 다고 하였다.
나는 서귀포 곶자왈을 신청하였다. 20여 년 전 여행 탐험가 한 분이 직장 교육차 회사에 왔었는데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곳이 우리나라에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제주도 서귀포 곶자왈이라고 하였다. 노트에 메모까지 하며 곶자왈을 찾아보기로 작정하였던 기억을 살려 곶자왈을 찾아보고 싶었다. 9 월의 곶자왈은 풀과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여름과 가을을 함께 하는 신비한 땅이었다 . 이렇게 경이로운 풍경을 눈앞에서 즐긴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었으나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 사계절은 고사하고 한 계절도 살아 보지 않았으니 , 전에 만났던 여행가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제주 삼 년 살이 못하더라도 1년 살이 는 서귀포 곶자왈에서 꼭 해보아야 할 것이다.
서귀포의 첫날밤은 여행의 피로감이 몰려들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6시경 일어났다. 늦잠이 많은 아내와 자식들은 9시경 일어날 것이니 그동안 동네를 한번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동네 구경은 그 부근에 있는 산에 오르는 것이 최고다. 산 정상이 높다 싶으면 중턱에라도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관공서며 학교며 한눈에 다 들어온다. 그럴 요량으로 숙소를 나오는데 숙소 뒤쪽 감귤밭에 50대 중반의 여인이 귤나무를 배경으로 하여 셀카를 찍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이쁘기도 하여 한동안 구경하다가 연유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여인이 답하길 감귤밭의 주인은 본인이며 넓이는 1.000 평 정도 되고 지금 셀카를 찍고 있는 것은 늦가을에 감귤이 익으면 판매할 홍보용으로 찍는 것이라 하였다 . 바구니에 담겨 있는 노랗게 익은 감귤은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인데 셀카를 찍기 위해 가져온 것이라며 두 개를 맛보기로 주었다. 고맙다며 받아 들고 먹고 싶었으나 아내에게 아침 선물로 줄 생각에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였다.
귤밭에서 100 미터 정도 걸어 나오니 도로가 있고 도롯가에 천막을 치고서 70대 초반의 남성이 누구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사를 건네고 천막을 치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신은 서귀포 어느 성당의 신자로 성당에서 조성한 공동묘지에 자손들이 벌초하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공동묘지가 위치한 자리의 경치가 너무 좋아 산소를 이전하고 그 땅에다 건물을 짓던 귤밭을 조성하든지 땅의 가치를 활용함이 옳다고 판단되어 벌초하기 위해 산소를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장을 권유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공감하였다. 이 넓은 땅은 산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후손들이 찾아가기에 가까운 곳에서 영면하게 함이 옳다고 생각되어서다.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로 대화가 길어지던 차에. 조심스레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내 핸드폰에 입력하라고 하면서 오늘 우리 가족 점심은 자신이 대접해 주겠다고 했다. 주저하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불신을 없애 주려는 듯 자신을 소개해 주었다. 고향은 여기 서귀포며 영화를 좋아하여 조연 배우로 생활하다가 고향이 그리워 객지 생활을 접고 0년 전에 귀항하여 살고 있고 나이는 77 세라고 하였다. 이제는 높은 권세도 많은 재물도 필요가 없고 편한 사람이 좋은데 . 나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치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함이 느껴져 가족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속마음을 이야기해 주셨다 마침, 손녀에게서 전화가 오자 오늘은 손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 내일 가겠다고 하는 통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점심 약속을 흔쾌히 승낙하고 집으로 돌아와 선물로 받은 감귤 두 개를 아내에게 내놓으며 아침 시간에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설명하고서 점심은 큰 형님뻘 되시는 분이 대접한다고 했으니 함께 하자고 하였다. 흔쾌히 승낙 할 줄 알았던 아내는 자식들에게 의견을 들어 보라고 권유하였다. 잠시 후 계획된 일정대로 출발 준비를 하는 딸과 아들에게 아침에 만났던 감귤 여인 이야기와 나이 드신 어르신으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는데 그분은 다만 나와 마음이 통하여 친분을 쌓고자 하는 듯하니 점심을 함께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물어보았다. 자식들은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베푼 것도 없는데 음식 대접받는 것이 부담 가니 가족을 제외하고 두 분만 드시라는 의견을 말하였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서운함이 일어났다. 아침에 만난 분과 밥을 함께 못하는 것보다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큰 것 같았다.
그렇다 하여 자식들 말대로 둘이 식사하는 것 또한 편한 마음이 아닐 것 같았다 . 전화하기가 어려워 문자로 가족들이 계획이 있어 다음에 식사를 함께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문자를 드렸더니 이해한다면서도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답장을 주셨다. 내년에는 저 혼자라도 찾아뵙고 밥을 함께 드시자고 약속하며 죄송한 마음을 전해 드렸다. 가족들과 서귀포 시내며 성산포 일대를 구경하여도 서귀포 형님 생각으로 마음 한쪽은 편치 못하였다. 버스 자리하나 쉽게 내주지 않는 인정이 메마른 세상에서 객지를 찾은 낯선 이에게 선뜻 소중한 내 것인 시간과 돈을 내주시겠다는 그분은 어느새 서귀포 형님으로 내 마음에 자리했는가 보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형님이 계시나 하고 도로가 천막을 찾았다. 천막에는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한라산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귤밭 가에 세워진 전봇대를 서너 개 지나도록 걷다가 숙소로 돌아오면서 발걸음도 씩씩한 50 대 중반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고 나이를 물어보니 환갑을 넘겼다고 했다. 10 년은 젊어 보이는 건강 비결을 물어 보았다 . 매일 서귀포 뒷산을 산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제주도에서 가장 기후가 좋고 살기 좋은 곳이 서귀포라며 서귀포 자랑에 목소리를 높였다. 서귀포 앞 바다 네 개 섬의 아름을 알려 주었고 한라산이 여성이 누워 있는 형태의 여성상이라는 등 서귀포에 대해 너무나 잘 알려주어 문화 해설사가 직업이냐고 물어보자, 직업이 개인택시 기사라 처음 서귀포를 방문하는 손님분에게 알려줄 정보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겸손해했다. 서로 건강히 지내시라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대전으로 돌아가 채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숙소를 떠나오면서 혹시나 서귀포 형님이 계실까 하여 차 안에서 내다 보았는데 마침 천막에 계셨다 .차를 세우게 하고 찾아가 작별 인사를 드렸다. 여든이 다 되어 가시는 나이가 있으신 만큼 언제 나 건강히 지내시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세 사람의 서귀포 인연을 만났다. 귤밭에서 셀카 사진 찍던 여인 . 그리고 개인택시 선생님이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었다면 팔순을 바라보는 서귀포 형님과는 맺은 인연이 될 것이다. 동물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여행으로 맺은 특별한 인연은 서귀포 앞바다를 함께 바라볼 수만 있다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첫댓글 세 사람의 서귀포 인연, 참으로 의미있는 여행이었네요.
화창한 가을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열린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