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맑음
메디나 골목길은 깨끗하다. 교회(Immaculate Conception Church)건물이 보여서 신기했다. 스페인 교회 또는 La Purísima라고도 알려진 무염시태 교회는 1880-1881년 모로코 탕헤르에 지어진 로마 가톨릭 교회다.
그것은 1788 년에 설립 된 스페인 공사관의 이전 부지에 서 있다. 건축가 마누엘 아니발 알바레스 아모로소 (Manuel Aníbal Álvarez Amoroso)가 스페인 프란체스코회 신부 호세 마리아 레르 훈디(José María Lerchundi)의 주도로 설계했다.
최근에는 자선 선교사 (Missionaries of Charity)가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단다. 이 부근 골목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다.
랍비 아키바 회당(Synagogue Rabbi Akiba)은 원래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라레도(Laredo)가문 회당으로 1912년에 재건되었다.
최근에는 탕헤르의 유대인 공동체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탕헤르에 유대인의 존재는 무슬림이 영국으로부터 도시의 통제권을 되찾은 17세기 후반까지 있었단다.
18세기까지 유대인 인구는 더 많아졌다. 영국의 의사 윌리엄 렘프리에르는 1789년에 "무어인과 유대인은 탕헤르에 섞여 살고 있으며, 지구상의 이 지역의 다른 지역보다 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그 당시 유태인 공동체는 학교, 병원 및 기타 자선 단체를 설립하고 위생 위원회(Comission of Hygiene)와 같은 시민 단체에 참여했다.
1925년, 유태인들은 탕헤르의 통치 기관인 국제 입법 회의의 26석 중 3석을 할당받아 어느 정도의 공식적인 정치권력을 부여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는 탕헤르의 유태인들에게 황금기였으나, 꾸준한 이민으로 이어졌다. 현재, 탕헤르에 남아 있는 유대인은 100명 미만이라고 한다.
다른 골목 안쪽에 있는 회당(Moshe Nahon Synagogue)을 찾아가 보았다.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고 세파르딕(유대-스페인) 유대인에 대한 역사가 많은 회당 내부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문 앞에서 만난 남자는 매우 친절했다. 입구에는 방문자용 모자(키파)가 있다. 유대인 가문의 저명한 교육자이자 학자인 모이즈 나혼(Moïse Nahon)에 의해 지어졌단다.
회당은 20 세기 후반에 활동을 중단했으며 1994년에 복원 될 때까지 파손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단다.
회당 내부는 안달루시아 스타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대리석 기둥, 삼엽 아치, 꽃과 기하학적 모티브가 있는 아라베스크를 특징으로 하는 반복되는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다.
정교한 장식 아래 직사각형의 조각 된 나무 패널이 늘어서 있다. 중앙은 정교하게 장식된 천장으로 열리며 중앙에는 큰 채광창이 있다.
나무로 된 방주와 그 위에 있는 판넬은 히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나무 벤치에는 여전히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놋쇠 명판이 있다.
화려한 램프가 회당 전체에 매달려 있고 촛대가 목조 구조물에 놓여 있다. 입구 포털 위의 반원형 창과 양쪽의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에 꽃무늬가 있다.
액자 자수, 태피스트리, 현수막 및 탕헤르의 유대인 공동체가 기증한 기타 유물이 보인다. 유대인의 삶을 생각하며 나왔다. 골목길을 걸어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3층으로 된 커다란 레스토랑이 보인다. 3층 테라스 옥상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오래된 성문 밥 다르 드바그(Bab Dar Dbagh)가 나온다.
주랑이 있는 테라스(Terrasse belle vue)에 올라섰다. 항구의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매우 아름다운 테라스다. 쇼핑을 하다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긴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탕헤르의 수호자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조용하고 온유하게 쉬어가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고 있단다. 테라스에서 전망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숙소로 올라왔다.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신다. 테라스 타일 바닥 위에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돌아다닌다. 이제 탕헤르를 정리한다. 모로코 여행을 정리한다.
지갑을 살펴서 남은 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골목 시장으로 들어가 포도, 복숭아, 자두, 사과를 샀다. 정든 빵집으로 가서 사모사 10개를 샀다. 물도 하나 구입했다. 하얀색 누가(nougat)를 파는 작은 가게에 사람들이 줄 서있다.
누가는 설탕 반죽에 견과류나 과일조각을 섞어서 만든 엿 같은 사탕의 일종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유래했다. 주로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열매로 맛을 내고, 향과 색을 위해 과일 설탕 절임을 곁들이기도 한다.
벌꿀을 견과류와 계란 흰자와 저어서 햇볕에 말리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오다가, 현대에는 벌꿀과 설탕, 계란 흰자를 낮은 온도에서 굳어질 때까지 놔두었다가 설탕 시럽과 옥수수 시럽을 섞어 만든다고 한다.
어른들이 줄 서 있는 것이 신기하다. 탕헤르의 자랑이고 특산물 전문 매장인가보다. 우리는 다시 전망대에서 쉰다. 탕헤르 메디나의 모든 여행 스폿은 지브롤터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카스바(도시의 성채)’에 모여 있다.
카스바의 북쪽 성벽에 기대선 사람들은 또 다른 대륙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30km 너머가 스페인이다.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탕헤르 빌 포트(Tanger Ville Port)’에서 페리를 타면 1시간이 채 못 돼 스페인 ‘타리파(Tarifa)’에 닿게 된다.
바다를 마주한 이 도시의 위치가 끊임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하기에 “숨이 멎는다”는 말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범세계적 도시, 탕헤르. 페니키아, 로마가 지배한 탕헤르는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차례대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탕헤르는 문화적 도시로 영화와 음악 페스티벌의 본고장이면서 예술과 정치가 잘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곳을 거쳐 가는 아티스트와 화가들을 꿈꾸게 하는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앙리 마티스, 들라크루아, 롤링 스톤스, 이브 생 로랑이 이곳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찬바람에 아내가 배탈이 났나보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누룽지를 끓여서 사모사 3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e메일을 통해 타리파 숙소의 출입문 번호와 방 키 번호를 받았다.
*9월 17일 경비 – 빵 17, 우유 10, 치약 5, 아르간오일 70, 사모사 50, 과일 46, 물 6. 계 30,600원 누계2,980,000원. *모로코 1디르함=1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