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 산행이다. 5월, 꽃피는 봄날 시작한 대간길이 뜨거웠던 여름과 짧은 가을을 지나고 이내 겨울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11월 산행을 좋아하지만 사계절 모두 산행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
봄, 연두색 산과 들에는 민들레, 양지꽃, 제비꽃, 바람꽃...
여름, 푸른 산에는 나리꽃, 모싯대와 초롱꽃, 각종 취나물 꽃. . .
가을, 붉은 산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 투구꽃...
흑백의 겨울산에도 꽃은 핀다. 하얀 눈꽃이...
특히 겨울은 산이 드러내는 근육질 몸매와 숲이 있어 보지 못했던 우람한 바위들을 볼 수 있고 매섭게 불어오는 삭풍에도 홀로 푸르름을 유지하고 굳건히 서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새삼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차가운 바람과 눈 속을 걸어도 잠시 쉬면서 보온병에서 따라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의 행복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계절이다.
올 겨울은 어떤 추억이 만들어 질까.....
지난 대간 산행 때 늦은 하산으로 백복령애기를 못했다.
백복령처럼 한자표기가 다양한 지명은 없을 것 같다.
백복령(780m 白茯嶺)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고개이나 지금의 42번 도로는 신흥천을 따라 동해로 향하고 옥계는 남면봉에서 갈라진다.
한글로 백복령이라 쓰지만 이 고개처럼 한문 이름이 다양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척추지』주1)의 두타산기에는 “취병산 서쪽은 신흥(新興)인데 삼척부에서 30리이고, 신흥에서 10리를 더 올라가면 백복령 (白卜嶺)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여지도서』에는희복현(希福峴)은 일명 百福嶺이다“ 라고나와있고, 『해동지도』에는 百腹嶺, 1872년 지방도에는 白伏嶺, 『대동여지도』에는 白福嶺, 현재는 白茯嶺.
『택리지』를 보니 거기에는 대관령 남쪽에 있는 쌍계(雙溪)와백봉(白鳳) 두 고개를 지나면 두타산이 있다.”고쓰여 있는걸 보면 또다른 한자 표기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복령(茯苓)이 많이 나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주1) 『척주지』 : 우의정도 지낸 허목이 잠시 삼척부사로 있을 때 지은 강원도 삼척부(현 삼척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662년에 편찬한 지방지. 읍지.
이 백복령은 정선과 강릉을 오가는 고개인데 정선아리랑 가사에도 이 백복령이 나온다.
엮음편 한대목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헐께 눈에 노가지 나무 뻐덕지게
부끔떡 세 쪼각을 새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냥 웃짐지고 강릉(江陵) 삼척(三陟)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다녀 오세요.
대간 전 구간 중 댓재에서 백복령 구간은 설악산 공룡능선보다 더한 소위 악마의 구간이라 한다. 봉우리도 많고 그 오르내림도 매우 심해서 한 번에 하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어렵다. 이번 대간 프로그램은 현명하게 여러 번 나누어서 하니 그나마 할만하다.
일전에 내린 서설이 마른 풀밭에 잔설로 남아있고 산행은 이내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있는 숲길로 접어든다.
바람이 많이 분다고 했는데 심하지 않고 오히려 급경사 오르막에 힘든 몸을 식혀 준다.
뒤돌아보는 자병산의 모습이다.
보기 싫어 돌아서듯 자병산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남으로 향한다.
이 이정목이 있는 곳인가 보다.
그동안 대간길은 정선과 강릉을 경계로 지나왔다. 이곳부터는 정선과 동해의 경계를 지나간다.
그러니 이곳이 강릉, 정선, 동해가 만나는 지점이 된다.
잔설과 옷을 벗은 나무들 그리고 산꾼들의 복장이 누가 봐도 겨울 산행.
수북이 쌓인 낙엽이 오르막을 더 힘들게 한다.
서학골은 동해시 신흥동에 있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니 서학골 방향임을 알려 주는 이정목인 듯하다.
이 삼각점이 있는 곳이 987.2봉이다.
잠시 전망이 틔여 동해를 바라본다.
달방저수지위 초록봉과 멀리 동해항이 보인다.
이 산죽길을 한참 내려갔다. 이후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또 한없이 올라간다. 그러면
오늘 구간 중 제일 높은 1022봉에 도착한다.
1022봉은 헬기장이라 이곳에서 전원 점심 만찬을 즐겼다.
원방재가는 내리막에서 상월산이 소나무 틈으로 보이는데 동쪽 사면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다.
저 급경사를 두 번 올라야 된다.
원방재(690m)에 도착한다.
1022봉에서 300m를 넘게 내려왔다. 또 상월산을 300m 가까이 올라가야 한다. 힘든 산행구간이기에 이곳에서 부수베리로 탈출할 수 있다.
이곳저곳 사진에 담고 두 분을 탈출시킨다. 여기서 500m만가면 부수베리가 나온다 하니 앗사! 하고 내려가신다.
여기서부터 오늘 최대의 힘든 구간인 상월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쉬엄쉬엄 서너 번 쉬다 보면 오르겠지라고 맘 편히 먹고 발걸음을 옮긴다.
명주목이
교통이 불편했던 옛사람들이 생활필수품을 사러 삼척지방으로 오고 가는데 데바지령을 넘어가는 길목이 아주 잘록한 계곡을 지나가는, 매우 협소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명주목이는 정선 임계면 부수베리 위쪽인데 이 안내문은 동해 신흥동 서학골 쪽으로 있어 찾아보니 원방재 동쪽에도 명주목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부수베리에서 올라오면 이곳이 상월산 들머리다. 그러니 이곳이 탈출로이기도 하지...
상월산 안내문이 상월산에는 없고 이곳 원방재에 서 있다.
백두대간을 남진으로 하다 보면 읽고 올라가라는 뜻이고 북진하면 힘들게 넘고 나서 그 의미를 알라는 뜻인가 보다.
아니면 작업자가 올리기 힘들어서? ㅎㅎ
낡아 기능을 잃은 계단도 겨울 폭설이 오면 조금은 제 역할을 하겠지 하며 발끝에 걸려도 옆으로 돌아가도 그저 불만이 없다.
사람들은 겨울이라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산은 아니 자연은 쉰 적이 없다. 인간의 눈으로 또는 편협한 생각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겨울이 와도 산은 이미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강나무(?)의 꽃망울을 보라.
내년 봄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기 위해 겨울눈을 만들어 놓았다.(동그란 꽃눈, 뾰족한 잎눈)
이렇게 산은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전망이 있어 1022봉 뒤쪽을 보았는데 산 구병이 잘 안 된다. 노추산과 멀리 상원산인 듯도 하고...
멀리 피래산도 보이고
석병산도 빼꼼.
요기가 전망바위인데 올라가 보자.
노추산과 상원산을 당겨 본다.
석병산이 1022봉 뒤에 숨어있고 피래산과 망덕봉도 아스라이...
정확히는 모르지만 괘병산 끝자락의 이름 없는 바위봉인 듯하다.
힘들게 힘들게 급경사를 올라 상월산에 도착.
이 나무의자와 쓰러진 고목이 있는 곳이 상월산이다. 정상석은 없으나 상월산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다. 없는 줄 알았으면 하나 만들어 올걸...
상월산은 ‘높은(上) 산’이라는 뜻으로 실제의 달(月)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월(月)은 우리말의 ‘달’인데 옛적에 이 말은 ‘달(達)’로 표기하면서 의미는 ‘산’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월산(月山)’은 ‘산’의 겹쳐진 표현이며, 상월산은 ‘상산(上山)’, 즉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거나 ‘가장 빼어난 봉우리’를 말한다.
딱히 전망은 그러하니 바로 출발.
동해항에 쌍용 시멘트공장이 보인다.
저기는 옥계항
지나온 지도상 상월산과 헬기장과 이정표가 있는 상월산 인증지 봉우리와 닮았다. 둘 다 동쪽 벼랑에 이런 독립된 암봉을 가지고 있다.
여긴 줄 알았더니 한번 더 올라가야 한다.
이곳 헬기장(962.3봉)에 이정표가 서있다.
이곳을 공식적으로 하기 위해 이전 봉우리(국토지리 정보원의 공식 상월산 970.3m)의 표지판을 없앴나? 인증장소(사실상 모 업체에서 영업 전략으로 인증 지를 만들어 놨을 뿐이고 그 인증에 대하여 공식적인 인정은 없다.)를 확정하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무명봉에 산이름을 함부로 붙이는 짓이나 이런 행위는 아주 못된 짓이다. 나라의 산줄기들을 장삿속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각점을 여기에 해 놨으니 사람들이 여기가 상월산인 줄 알지...
오늘의 대간 구간은 여기까지이다.
재작년 대간 때 비 오는 봄이었을 거다. 2년 반 만에 다시 온 이기령이다.
그때는 이기동으로 하산했는데 오늘은 비교적 수월한 부수베리로 하산한다.
백두대간 강원도 지형은 바다에서 융기된 지형이라 동쪽은 높고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를 이루나 서쪽은 완만한 경사에 고도차이도 별로 없으니 하산길로는 당연히 서쪽으로 해야 수월하다.
옮겨드리지요 ㅎㅎ
한양길(소원성취의 길)
아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괴나리 봇짐과 짚신을 등에 멘 선비 유생들은 청운의 뜻을 품고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등짐과 봇짐을 메고 든 장돌뱅이 보부상들은 거상의 꿈을 꾸며 험하고 험한 이길을
수도 없이 오갔다
한양 천리길은 장원급제의 꿈과 큰포부를 안고 오가던 선비에게는 희망의 길이었고
이 장터 저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 보부상에게는
한많은 애환이 담긴 길이기도 하였다
이 험난한 고갯길을 오고가던 사람들은
여로의 무사안녕과 소원을 빌며
한 두개의 돌탑을 쌓거나 돌을 던졌다고 한다
하나 둘씩 쌓인 돌 무더기는 국시댕이(국시)라 불리며
서낭당과 같은 신령한 장소처럼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국시댕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 옛길은 힐링의 길, 소원성취의 희망의 길로 거듭나게 하고자 한다.
이 부수베리 계곡은 여름이 참 좋다. 오래전에 대간산행 후 이곳으로 내려오면 알탕도 하고 길 옆에서 하산식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것도 추억이 돼 버렸나?
부수베리(火石舃洞)
옛사람들이 일상생활용품으로 오늘날의 성냥 대신 돌과 돌을 마찰시켜 담배 불로 이용하던 부싯돌이 생산되던 곳으로 부수베리골이라 부르고 있다.
계곡의 물도 얼고, 나무들도 앙상하고, 풀들은 초록을 잃고, 바람은 차갑게 콧등을 스친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찬바람에 손이 얼고, 폭설에 발이 젖을지라도 산에 들고 산길을 걸어가 보자. 그래서 또다시 겨울산의 묘미를 느껴보자.
겨울은 계절의 끝이 아니다. 봄을 잉태한 어머니의 따뜻한 뱃속 같고, 화려한 날을 준비하는 시작과 같은 계절이다.
내가 가끔 하는 얘기가 있다. 사람은 같은 산을 두 번 갈 수는 없다고. 그 자리에 있어도 산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이니 이 계절의 산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생강나무 겨울 꽃눈에서 산의 속삭임도 들었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지....
첫댓글 23기 대원들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참
다양한 생각들을 하시는거 같아요~
그 생각들을 공유해주시니
더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초보 산행자로서는 그저 앞만 보며 달리기 급급한데..
연륜이 느껴지는 산행기에 새삼스럽게 눈이 크게 떠집니다~
오늘 대간 산행전 지난 산행 복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