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하면 떠오르는 황철봉 너덜 지대. 설악의 북주능선을 마음껏 밟으며 장쾌한 조망을 즐기고 싶었는데... 예보와 달리 강한 바람과 설악을 넘나드는 구름 속에서 한편으로는 웅장하고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설악을 온 몸으로 느꼈다.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함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번째 황철봉 도전이다. 지난 번과 코스, 계절이 같고, 날씨도 비슷하다. 하지만 역시 같은 산은 없는것 같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강했던 지난 번과 달리 조금은 여유가 생겼고 너덜도 그 때만큼 무섭지 않았다.
황철봉과 마등봉을 오르며 웅장한 설악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하는 두근두근한 설렘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미시령. 826m. 설악을 외설악 내설악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고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을 잇는다. 강한 바람과 궂은 날씨, 단속때문에 늘 맘 졸이며 지나는 곳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파른 고개라는 뜻의 미시파령에서 유래했단다.
미시령에 도착하니 바람은 좀 차갑지만 하늘에 별이 총총해서 좋다. 대원들의 랜턴 불빛은 곤히 잠든 사위를 밝힌다.
앞서 오른 대원들은 중간중간 후미가 올라오는지 확인하며 숲에서 대기한다. 랜턴을 끄니 가을을 재촉하는 스르라미 소리가 잔잔한 배경 음악처럼 들린다. 오늘 산행이 왠지 즐거울것만 같다.
드디어 우리나라 최고 너덜지대 시작이다. 아직 주위는 어둡다. 커다란 바위덩어리들이 서로 엉키고 설키며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자연이 빚은 신비로움이다. 안개가 없어 다음 야광봉까지 환하게 보이고 바위도 미끄럽지 않다. 덕분에 최적의 길을 그리며 슥슥슥슥 올라선다. 놀이동산에 온듯 신나고 재미있다. 오르면서 뒤를 돌아본다. 속초 시내의 불빛 위로 구름이 띠처럼 바다 위에 걸쳐있다.
잠시 분비 나무 숲에 들었다. 숲길의 등로는 너덜보다 더 난해하다. 이런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다시 너덜로 나왔다.
상봉과 울산바위의 검은 형체가 거대하게 드러난다. 동해에는 오지어잡이 배 불빛이 별처럼 빛난다.
날이 밝아오니 대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된다.
미시령 너머 상봉은 더 선명해지고 구름이 상봉에 걸렸다. 신선봉도 상봉 우측으로 빼꼼히 보이고 용대리 방향도 선명하다. 마산인 듯한 평평한 산봉우리가 상봉 능선 왼쪽으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몸이 휘청한다. 놀라 소리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하늘은 여명이 물들고 있다.
삼각점이 있는 황철북봉에 도착했다.
설악이 깨어난다. 가야할 저항봉 능선의 암봉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다행히 저 암봉들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겠지만 걸어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도마뱀 전망바위에 올랐다. 이곳에서 대청과 서북 능선 그리고 마등봉 저항봉을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마등봉과 저항봉 뒤로 대청과 귀때기청은 아직 구름 이불을 덮고 있다.
숲에 비를 머금은 비구름이 몰려온다. 안된다고 속으로 외치는데 비구름은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어느새 황철봉 정상이다. 누군가 황철북봉이라 적힌 돌기둥의 '북'자를 지웠다. 지도를 보니 황철봉으로 나온다.
황철봉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속초시 설악동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높이는 1,381m이다.
황철봉 명칭은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자철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숲에서 나와 바람 불고 비오는 미끄러운 너덜 내림길이 시작된다. 소위 황철남봉도 지났겠지만 구름 덕에 어느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금강 초롱꽃이 초롱 불 밝혀 산객의 안전한 걸음걸이에 힘을 보탠다. 이곳의 금강초롱은 거의 흰색이다. 오리떼 진범은 진자주색이 많다.
진한 향기가 난다 싶으면 등로 주변에 배초향이 피어 있다. 바람소리와 배초향 향기가 오감을 자극한다.
오리떼들과 인사하며 내려오니 저항령이다.
저항령은 인제군 용대리와 속초시 설악동을 잇는 고개로 설악동 쌍천의 설원교까지 6.3키로. 수렴동 계곡과 합류하는 길골 5키로. 도합 11.3키로이다. 계곡이 길게 늘어져 늘목으로도 불리웠단다. 해발고도가 1,100미터나 된다. 곰취가 많이 나고 가까이에 샘도 있어 비박지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설악동에서 저항령 길골 백담사로 이어지는 산행 루트를 제법 많은 사람이 탔던것 같다. 일행 가운데 6명도 이곳에서 백담사로 바로 내려간단다.
저항봉을 향해 오른다. 뒤돌아본 황철봉은 동해쪽으로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거대한 바위가 드러나고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저항령 계곡의 깊은 골이 드러난다. 설악동 주차장에서 보면 V자로 깊게 패인 저항령고개와 좌측 황철봉 능선 우측 저항봉 능선이 웅장하게 보인다. 멀리 달마봉과 권금성이 있다.
저항봉 올라가는 길의 너덜은 황철봉 너덜보다는 바위덩어리가 작아 부담이 덜하고, 분취 바람꽃 산오이풀 개쑥부쟁이 솔체 등이 피어 있어 천상의 화원을 산책하는 기분마저 든다.
강렬한 바람이 저항봉 정상에 잠시도 머물수 없게 한다. 저 암봉 너머로 마등봉과 대청봉이 있는데... 서북능선의 옆면만 보여주는 구름이 야속하기만 하다.
저항봉 정상에서 밧줄타고 내려오니 개쑥부쟁이 세상이다. 절정의 쑥부쟁이가 바람에 흔들린다. 거대한 암봉 줄기를 사면으로 길게 우회한다.
구름에 갇힌 서북능선을 더듬고 마등봉과 대청을 찾으며 너덜보다 더 까다로운 미끄러운 돌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빨간 새며느리밥풀꽃, 까치고들빼기, 참취꽃과 미역취꽃을 보며 오르고 내린다.
나무 사이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솔나리가 열매를 맺었다.
서북능선에는 두꺼운 구름이 내려앉아 있다. 길이 순해지면서 좌측으로 황철봉과 울산바위가 보인다.
가을을 맞아 함박꽃나무, 백당나무, 참조팝나무, 쉬땅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있다.
솔잎처럼 가느다란 잎을 가진 고본이 계속 보이고 진범과 미역취, 오리방풀은 숲을 완전 점령했다. 꼬리진달래도 피어있고, 마등봉 가는 숲에 오랜만에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암봉 뒤로 황철봉 사면이 보인다.
드디어 마등봉 올라가는 너덜이다. 작은 돌들이 쌓여 있는데 흘러내리지 않는다는게 신기하다. 마치 누가 길을 내 놓은 듯 길이 선명하다. 뒤를 돌면 저항봉 능선과 황철봉 그리고 멀리 매봉산이 있을테다. 구름 속의 산그리메를 상상하며 한발한발 오른다.
마등봉 정상 도착.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설악동에 걸진 1327m 봉우리. 360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또 오라는 뜻이려니한다.
마등봉에서 조금 기다려보지만 구름이 벗겨날 기미가 없어 하산하기로 한다. 귀여운 잔대랑 구절초가 또 보자며 활짝 웃는다. 마등봉삼거리로 내려가는데 구름이 잠시 흘러가며 화채능선, 범봉과 천화대, 신선봉에서 1275봉 큰새봉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을 보여준다.
마등령삼거리에 왔다. 때마침 후미도 내려온다. 설악은 수고했다며 깨끗한 조망을 보여준다. 칠성봉 화채봉 범봉 천화대 공룡능선 1275봉...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제 미련없이 비를 맞으며 백담사를 향해 내려간다. 오세암에서 장터국수랑 비빔국수를 주셔서 맛나게 먹고 루루랄라 하산한다. 발바닥에 불이나고 이제 그만걷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질 즈음 눈빛승마가 계속 따라오며 다시 올거지? 하며 다음을 약속받는다.
식당에 가니 저항령에서 길골을 거쳐 백담사로 바로 하산한 팀도 밝은 얼굴로 식사 중이시다. 황철봉이라는 큰 숙제를 완수했다. 산행을 위해 힘써주신 많은 분들께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오늘도 설악은 설악다웠다~
첫댓글 진심 어린 산마음을 갖고 있는 카푸치노님 입니다.
멋진 산행기 잘 봤습니다..
좋은 후기 잘보고감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