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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 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 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 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소 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1절] 엘레아학파의 제논과 아리스토텔레스 Zénon d’Elée et Aristote 153
[2절] 아르키메데스 Archimède 156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3절] 비에뜨 와 케플러 Viète et Kepler 160
[4절] 카발리에리 Cavalieri 162
[5절] 파스칼 Pascal. 167.
[6절] 라이프니츠의 발견 La découverte leibnizienne 171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7절] 접선들의 위한 방법들 Les Methodes pour les tangentes 177
[8절] 무한 급수/계열 Les séries infinies 182
[9절] 뉴턴의 분석, L’analyse Newtonienne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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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미분(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1절, 엘레아학파의 제논과 아리스토텔레스 Zénon d’Elée et Aristote 153
§95. [데모크리토스의 자르기(물체 쪼개기) 대 제논의 자르기(선의 궤적의 자르기): 단위의 설정, 아톰, 수, 불가분의 단위(단위), 이 셋째의 단위가 영혼일 것이다. 제논은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따라서 존재라 불렀다.]
무한소 사상의 가장 오랜 흔적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우리 정보의 현실적 상태에서 우리는 이미 소개되었던 것 같이 보이는 수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수학자들의 반대자이었을 것 같이 보이는 사상가들에게 스스로 말 걸어야 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설명에서] 수학자들이란 원뿔의 체적과 원기둥의 체적 사이에서 관계의 정리를 처음으로 발설했던 데모크리토스이든지,비합리적 크기들을 발견했고 다루었던 퓌타고라스학자들이든지를 말하며, 사상가란 엘레아학파의 제논을 말한다. 제논이 이분법(la dichotomie)의 논증을 정식화하였을 때, 그가 이 선 전체를 지나가려면 이 선의 절반을 운동체가 먼저 지나가고, 다음으로 그 절반의 절반을 지나가고, 계속해서 무한히 지나 가야하는 필연성을 제시하였을 때,그는 조이텐(Zeuthen, 1839–1920)의 관찰에 따라서 계열(la Série, 급수)을 생각한 것이고,
1 = 1/2 + (1/2)2 + (1/2)3 + …
그는 이 계열로부터 구성되어 있는 정신적 조작작업을 마치 단위(unité)처럼 파악된 어떤 길이(une longueur)에 적용한다. (154)
게다가 그러한 조작 작업이 완전히 자연적이라는 것, 이 조작 작업이 추리적 활동성의 법칙을 표명한다는 것, 이것은 17세기이래로 더 이상 의심이 없다. 마치 유한한 공간들에 동등한 무한한 길이의 도형들의 발견 같은, 불가분성들의 기하학의 파라독사들의 광경에서 벨(Bayle, 1647–1706)은 진솔한 의미에서 아이러니(l‘ironie)를 촉진시켰다. [이런 표현을 한] 벨에게 라이프니츠는 응답한다. “이런 점에서 무한한(infinies) 계열들에서보다 더 예외적인 것은 없다. 이 무한 계열에서 사람들은 1/2 + 1/4 + 1/8 + 1/16 + 1/32, etc. [계열들]이 통일성(l‘unité)에 동등하다는 것을 보게 한다.” (154)
또한 고대 사유와 근대 사유 사이의 구조의 차이를, 지적 명석함의 모델이 될 운명에 있었던 같은 계열에 대해, 엘레아의 제논에 의해 만들어진 용법보다 더 잘 증거 한 것은 없다. 그의 손안에서, 계열[급수]는 변증법적이고 파괴적인 무기이다. 급수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관계들에 관한 수학자들의 초기 사변들(les spéculations, 생각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급수는 부분들의 척도[측량]에 의한 총체적 양의 지성을 얻기 위하여 인간 정신에게 금지한다. 왜냐하면 한 엘레아학자의 실재론을 위하여, 그것[계열]은 항들의 총체성의 재현[표상]이기 때문이지, 급수[계열]의 현존을 보증해 줄 수 있는 형성작업 법칙의 규칙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적 직관 속에서 기하학적 진행의 모든 [구성] 부분들[구성조각들]을 명백히 하고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이때에 기하학적 부분들의 합계는 선(線) 전체와 동등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상상작용의 재원들[재료들]은 이런 궁극적 표상의 추구[뒤쫓기]에서 다써버렸다. 궁극적 표상은 해체해야할 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필연적일 것이다. 그 선은 운동체가 관통하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95. [데모크리토스의 자르기(물체 쪼개기) 대 제논의 자르기(선의 궤적의 자르기): 단위의 정초: 아톰 대 점 - 자연에서 대상인 아톰이 수와 더 잘 대응하는데 비해, 점은 수보다 적은 무한소를 제기한다. 그러면 언어논리에서 항목의 흩어짐과 유한함 대신에, 자연배후학 또는 제1철학에서 연속함(le continu)과 무한함(l‘infini)의 잠재성(la virtualité)을 살렸다.]
이런 명제로부터 두 가지 모순된 귀결들이 나올 수 있다. 두 모순 귀결들은 전적으로 엘레아학파의 제논에게 두 가지 속성들처럼 할당되었다. 하나는 운동은 현존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운동의 현존은 요소들의 불연속적 다수성의 가설을 반박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의 [사유의] 대상에 무용하므로, 두 해석들 사이에서 선택할 미묘한 문제를 항변할 여지가 없는 증거들이 없어서 옆으로 밀쳐둘(제쳐둘) 것이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단지 공통의 요소만을, 즉 이분법 논증의 요약이 될 원리만을, 달리 말하면 공간의 용어에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 직관의 두 형식들의 근본적 분리만을, 유지할 것이다: 하나는 전체적 선(線)의 표상이고, 다른 하나는 요소적 부분들의 표상이다. 공간적 경험은, 유한한 선들의 유한한 수를 병치하면서, 재구성하기에 주어져 있던 전체에게 주어져 있던 부분들을 지나가기를 배운다. 그 경험은 척도(la mesure)의 법칙들을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편하고 가장 자연적인 같은 이런 조작작업의 상호성은 고대인들이 문제를 제시한 조건들에서 진실이 아닌 것으로 있다. 이분법만큼이나 단순한 절차의 도움을 받고, 주어진 선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요소적인 부분들로 해결책을 마무리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55)
뜻밖의 비대칭은 공간적 직관의 중심에서 터져 나오고, 그리고 고대인들의 논리학의 경계표들(les bornes)을 표시하였다. 고대인들의 논리학은 항상 표상된[재현된] 대상의 자연[본연]에 관한 추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는 소위 말하는 제논(전490경-430경)의 궤변(sophisme)은 결코 반박되지 못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전384-322)는 엘레아학파 학설의 변증법에 의해 깊이 파해진 구덩이를 메울 수 없었으리라. 한편으로 정신이 무한한 항들을 거쳐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과학의 구성은 어떤 한계(une limite)의 자리에 연결되어 있다고 선언할 것이다. 다른 한편 작동중인(en acte, 현실태로서) 우주의 작동중인 과학에 마주하여, 그는 비결정(indéterminé)과 무한계(illimité)로 나타나는 생성의 잠재성(la virtualité)을 대립시킬 것이다. 이 후자의 관점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모리츠 칸토어(Moritz Cantor, 1829–1920)가 불러온 “모든 근대인들의 어법들(les locutions, 관용구)”이 설명될 수 있다. “무한은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증가 그 자체이다. 연속(le continu)이란, 부분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같은 도달점에 서로 서로 소유하는 계속적인(consécutives) 부분들의 성질이다.” 모리츠 칸토어는 덧붙인다: “사람들은 무한소 계산의 논문의 입뭉에 마주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가?” 이 정식들은 수학자들을 위한, 심지어 실증과학을 위한 어떠한 용도도 아니라는 것을 단지 잘 보아야만 한다. 이 정식들은 가장 높은 점에서 형이상학적 성격을 갖춘[지닌] 물리학 논문에 속한다. 과학적 문제를 제시할 수단을 주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선견지명(divination)은 사실상 문제를 해결하는데 불가능하는 것을 제시하게 쓰인다. 만일 무한소 영역 안에 아리스토텔레스 사유를 개입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백과전서파 천재들과 분류학자의 권위는 여러 세기 동안에, 과학을 위하여의 참여론(partage, 분유론)에 헌신하였다. 그런데 그 참여론은 과학의 조합들[결합방식들]에게 흩어짐(le discret, 불연속)과 유한함(le fini)을 포기시켰고, 형이상학적 사변들에게 연속함(le continu)과 무한함(l‘infini)의 잠재성(la virtualité)을 유지시켰다. (156)
2절 아르키메데스 Archimède 156
§ 97 [그리스 삼대 난문제 중의 하나: 원의 사각형화. ]
그리스 기하학이 이론 속에서 이런 균형의 법칙에 종속하는 체 남아있는 한에서, 실천 속에서 인위적 장애물을 우회하기 위하여 지성의 운동을 따라가는 것이 보다 교훈적이다. 원의 사각형화(la quadrature du cercle)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지성의 운동은 초기 주도권들 안에 그려졌다. 분명히 브뤼손(Bryson d'Héraclée, Βρύσων Ἡρακλεώτης, 기원전4세기)은 원의 면적이 내접 다각형과 외접 다각형 사이에 매개라고 확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잘못을 범했는데, 이 원의 면적이 [다각형의] 두 면적들의 산술적 중간(moyenne arithmetique)이라고 결론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음처럼 취급하기 위해서 인데, 그것은 다각형의 두 면적들이 이런 결론을 생겨나게 한 고찰들[계산들]을 가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이행과정(le passage, 두 면적 사이의 이행)은 소위 말하는 수학에게 궤변적이라 수상쩍은 논증작업이 곧 바로 열릴 것이다. 사람들은 주어진 두 도형사이에 매개적인 크기들 전체가 마치 동등한 것들처럼 더 이상 다루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두 도형의 틈을 측정할 것이고, 사람들은 극서을 점진적으로 줄여갈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규칙적인 다각형의 변들의 수를, 내접(inscrits)에서든 또는 외접(circonscrits)에서든, 끊임없이 배가해 나간다면, 그것들의 면적은 원의 면적에 끊임없이 좁혀질 것이다. 그리고 차이는 주어진 어떤 양보다도 더 작게 된다. (156)
이리하여 새로운 과학이 구성될 것이다. 줄어드는 비동등성의 도움으로, 새로운 과학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좁혀진 근사값을 동등성으로 제공할 것이다. 이리하여 총체의 논리학(une logique de l’intégralité, 적분 논리학)이 구성될 것이다. [기원전] 5세기의 기하학자들은 이 적분 논리로부터 나무랄데 없이[완전무결하게] 깔끔한 원리들 구해냈다. 이들의 방법은 소진법(méthode d’exhaustion 去盡法, 거진법)이라 불리며, 원론들의 10권 제1정리 속에 표현되어 있다. “동등하지 않은 두 [양이] 크기가 주어지고, 만일 사람들을 보다 큰 양의 절반보다 더 많이 자른다면, 그러고 나서 나머지 양도 절반 보다 더 많이 자른다면, 항상 이렇게 행하면, 그러면 주어진 양들 중 더 큰 양의 나머지는 이 양의 더 적은 양보다 더 적을 것이다.” 이 정리는 원론들의 5권에서 정의 자격으로 도입된 매우 주목할 만한 성질에 근거한다. 이것은 마치 힐버트가 이것을 알게 주었듯이, 기하학의 구조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두 크기들은 연관을 허용한다고 말해진다. 곱해지면서 두 크기는 서로를 넘어서게 된다(λόγον ἔχειν πρὸς ἄλληλα μεγέθη λέγεται, ἃ δύναται πολλαπλασιαζόμενα ἀλλήλων ὑπερέχειν.) (157)
그리스인들의 논리적 미묘함이 그들의 논리적 엄격성이 불러일으켰던 장애물에 대해 이렇게 승리했던 것 같다. 교활한[재바른] 전술 덕분에, 논증의 의미와 범위는 마치 뒤집어진 것 같았다. [합계의] 전체적 운동을 재조성하기 위하여, 초기 요소(un élément initial)를 소유해야만 했고, 이분법은 이 초기 요소를 고정시키는 것의 불가능성만을 제시했다. 반대로 사람들은 주어진 두 크기들 사이의 차이를 자기 앞에 가졌다는 것, 사람들은, 이분법의 절차로부터 모방된 가시적인 리듬에 따라서, 이런 차이에게 자기의 대부분을 빼앗고, 그리고 나머지에게 자기의 대부분을 빼앗는다는 것, 즉 이런 조작 작업의 무제한적 반복은 사람들이 문제의 정확한 해결을 바라는 만큼이나 접근하게 할 것이다. 지적인 가루내기(pulvérisation, 빻기)의 동일한 진행 방식은 운동의 직관과 너비의 부분들의 직관 사이에 심연을 창조했었는데, 이 방식은 원의 표면(les surfaces circulaires) 또는 둥근 물체들(les corps ronds)에 관여하는 정리들의 계열에 논리적 정당화를 가져다준다. (157)
§ 98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의 승리: 적분법은 기하학적 방법(발견의 방법)에서보다 역학적 방법(발명의 방법)에서 응용되었다.]
그러나 이 승리가 어떤 값으로 구매되어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소진법(méthode d’exhaustion)의 창조자들인 안티폰(Ἀντιφῶν, 전480-410)과 에우독소스(Εὔδοξος ὁ Κνίδιος, 전408–355)가 제논의 추론적 변증법을, 수학과학의 직접적인 발전으로부터 태어난 발견물들의 전시[전개]에, 적응하는데 성공했던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이 인위적인 것은, 그 진보의 주의를 전시[전개]의 외적 형식 위에 옮겨 놓기 위하여, 정신의 내적 진보의 주의를 우회하게 했다. 불편함은 지성에 의해 해결된 문제에 담론만이 관여하는 둘째 문제를 중첩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지성을 담론에 깔끔하게 종속하게 하는 것이, 스승들 자신들에서는 아닐지라도, 스승들의 작품들 연구에 의해 탐구의 길로 전수 받았던 제자들에게서는 마찬가지였다. (157)
이로부터 두 국면이 나온다. 이 두 국면들 하에서 아르키메데스(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의 사유를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확실히 지적 추상작용의 능력을 더 높이 올리는 어떤 것도 없다. 아르키메데스는 사각적분법(quadrature) 또는 입체적분법(cubature)의 문제들을 기본적인 표면들과 입체들의 두 가지 합산작업(deux sommations) 사이에 포함된 면적(une aire) 또는 체적(un volume)의 규정작업으로 이끈다. 그는 이런 합산작업들 자체들을 관계들의 근거하게 만든다. 그 자체로 파악된 관계들은 분석적 질서가 된다. 예를 들어, 이처럼 아르키메데스의원추체(원뿔)과 구체론(전225경)에서 그는 뒤따르는[이어지는] 동등성을 개입하게 했다. 이 이어지는 동등성은 오랫동안 등차수열들(等差數列, progressions arithmétiques)로 알려진 성질들로 끌어낸 것이다.
n2/2 h < h + 2h + 3h + … + < (n + l)2/2 h .
이러한 정식은 조이텐(Zeuthen, 1839–1920)이 진실한 적분법(une intégration véritable)이라 불렀던 것에 길을 연다. 만일 사람들이 포물선을 그것의 축의 주위를 돌게 한다면,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가 타원 원뿔(conoïde parabolique)이라 이름붙인 물체 얻는다. 나는 그 축에 수직의(perpendiculaires) 평면들과 등거리의(équidistants) 평면들을 그리고, 나는 일련의 기본적 체적들을 규정하고, 나는 그 체적들에게 같은 높이의 일련의 원기둥들을 내접하게 또는 외접하게 할 수 있다. 타원 원뿔(conoïde parabolique)의 체적은, 하나는 내접하고 다른 하나는 외접하는, 두 원기둥들의 합계들 사이에 포함된다. 그 체적은, 두 합계의 차이가 외접하는 보다 큰 원기둥에 동등가치 이게 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원기둥의 높이가 게다가 비결정 되어 있어서, 그 체적은 주어진 양(量)보다 더 작게 될 수 있다. (158)
거기에서 단지 첫 발들 내딛을 뿐이다. 포물선의 적분법론 속에서 아르키메데스는 전체적 도형에 동질적으로 머물러있는 요소 대신에, 전체 보다 적은 차원을 지닌 요소를 대체 한다. 이때에 한 표면의 연구는, 사람들이 이런 표면에서 그릴 수 있는 선들의 고찰[검토]들로 이끈다. 이렇게 기하학적 직관의 경계표들을 건넜기에,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 그 자체의 영역을 넘어선다. 적분법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정력학의 검토들에, 즉 여기서 몽뛰클라(Montucla, 1725-1799)가 사용한 호기심 많은 표현에 따라서 “완전히 지적인 정태”의 검토들에 호소한다. 예를 들어, 그는 타원선분과 삼각형을 비교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이상적 지렛대(un levier idéal)를 생각하고, 그 지렛대의 고정점은 다음 방식으로 선택되며, 어떤 방향을 따라서 삼각형에서 그려진 직선들의 각각은, 선분 속에서 취해진, 그리고 고정점의 규정된 거리에 옮겨진 것으로 가정된 평행하는 직선들의 각각에게 균형을 이룬다. 이 두 직선의 합은 비교하기에 중요한 도형들의 양편에 동등가일 것이다. 지렛대의 고정 점에서 그것들의 중력 중심[중심무게]들의 각각의 거리는 표면들의 연관을 측정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발명적 [재치]천재성을 더 멀리 밀고 나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의 방법이 운수의 미봉책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이 발견의 일반적 절차라는 것을 완전히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의 설득력 있는 예를 제공했던 포물선의 적분법론의 출판 이후에, 그는 새로운 논문을, 즉 쇠네(Schöne, 1870–1942)와 하이베크에 의해 이제 막 재발견되었던 논문을 썼다. 이런 것은, 방법의 생산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고, 이 방법을 “현재와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159)
그러나 목록에는 그의 대응물(contre-partie)이 있다. 그런데 방법론의 「서문」에서, 그는 발명을 위하여 증명의 힘(la vertu)을 권장했던 방법을 거절하는 것 같다. “기하학적 방법”의 도움으로, 소진법의 절차가 각 정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세부사항을 제시하면서 그는 “역학적 방법”이 그에게 확실하게 진리를 깨닫게 했던 명제들을 다시 다룰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는 중세에 알려진 작품의 일부에서 훨씬 더 강조되었다. 그리고 그 작품의 영향은 근대 수학의 재탄생에서, 그리고 특히 포물선의 적분법론에서 직접적으로 연습되었다. 발명의 방법은 여기서 분명하게 전시의 방법에 종속되었다. 라크르와(Lacroix, 1765-1843)가 말했듯이, 그 방법은 [잘못을] 입증하는 자에게 밝히는 것이 고민이다. 17세기 전과정을 통해서 적분법에 대해 “진솔하게 왕도”를 열고자 하는 자들은, 마치 교회의 공식적 교리[독단]에 부딪히듯이, 아르키메데스라는 이름의 권위에 부딪히게 된다. (159)
(8:23, 59N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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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90 제논(Zénon d'Élée, Ζήνων, 전490경-430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제자. 파라독사(paradoxes: παράδοξος, « contraire à l'opinion commune ») 또는 아포리아(aporie, ἀπορία, « absence de passage », « difficulté », « embarras »).
480 안티폰(Antiphon, Ἀντιφῶν, 전480-410), 연설가, 정신 치료사, 수학에서 원의 사각형화(la quadrature du cercle)의 문제를 다루었다.
460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d'Abdère, Δημόκριτος « choisi par le peuple », 전460-370년) 그리스 철학자. 유물론자, 우주는 원자들과 빈 것으로 되어 있다.
420? 브뤼손(Bryson d'Héraclée, Βρύσων Ἡρακλεώτης, 전5세기후반-전4세기), 고대 그리스 수학자. 원의 사각형화(la quadrature du cercle)를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 전5세기 원의 사각형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de Chios, Ἱπποκράτης, 전470-410), 안티폰(Antiphon, Ἀντιφῶν, 전480-410) / 브뤼손(Bryson d’Héraclée), 히피아스(Hippias d'Élis, Ἱππίας. 443-399) [Cf.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de Kos, Ἱπποκράτης, 460경-377경)]
408 에우독소스(Eudoxe de Cnide, Εὔδοξος ὁ Κνίδιος, 전408–355), 그리스 천문학자, 의사, 철학자. 아르키메데스가 그의 작품을 알렸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기원전 335년에 뤼케이온을 설립(플라톤 별세후 13년 만에)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아테네의 반마케도니아 운동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인 칼키스(Χαλκίς)로 갔다. 거기서 그의 시신은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로스로 옮겨졌다고 한다. - 로도스 섬에서 부흥은 안드로니코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편집덕분이라 한다.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Sur la sphère et le cylindre, Des conoïdes et des sphéroïdes, Des Spirales, La quadrature de la parabole
O
1584 생 벵상(Grégoire de Saint-Vincent, 1584-1667) 플라망드 출신 제수이트, 수학자, 기하학자. 선분의 길이의 로가리즘.
1598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lat. Cavalerius, 1598-1647)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피사와 볼로냐 대학 교수.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서신교환으로 학문적 동료.
1608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기압계(baromètre) 발명. Opera Geometrica, 1644(De dimensione parabolae in Opera geometrica.)
1644 푸셰(Simon Foucher, 1644-1696), 신부, 프랑스 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와 서신교환.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1725 몽뛰클라(Jean-Étienne Montucla, 1725-1799), 프랑스 수학자. Histoire des mathématiques, 1758(1758년 2권으로, 1799-1802년에는 4권으로 출판) 여기 인용은 1799판본이다.
1765 라크르와(Sylvestre-François Lacroix, 1765-1843), 프랑스 수학자, 차이계산과 적분계산(Traité du calcul différentiel et du calcul intégral)
1790 브란디스(Christian August Brandis, 1790-1867), 독일 언어학자, 철학자. 정치가-상원의원, 프러시아 왕립아카데미 회원. Scholia in Aristotelem (1836)
1816 게르하르트(Carl Immanuel Gerhardt, 1816-1899),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작품들 편집자.
1829 칸토어(Moritz Cantor, 1829–1920),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 열거 기하학(the enumerative geometry of conic sections, algebraic surfaces, and history of mathematics.)
1854 하이베르크(Johan Ludvig Heiberg, 1854-1928, 덴마크 수학사가, 문헌학자. Euclidis Opera omnia, 9 Bände, 1883 bis 1916, mit Heinrich Menge.
1855 로젤(Léonce Laugel, Armand Louis Léonce Henri Philippe Auguste Laugel, 1855-1925), 프랑스 수학자, 번역가.
1858 밀오(Samuel Milhaud, Gaston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수학자.
1860 레나쉬(Théodore Reinach, 1860-1928) 프랑스 고고학자, 법률학자, 문헌학자. 금석학자, 역사가, 음악학자, 정치가.
1862 힐버트(David Hilbert, 1862-1943) 독일 수학자. 수학의 형식주의자 Grundlagen der Geometrie 1899 (Les fondements de la géométrie)
1870 쇠네(Hermann Schöne, 1870–1942), 독일 고전문헌 학자, 고교 교사. 학위논문: De Aristoxeni Peri tes Herophilu aireseos: libro tertio decimo a Galeno adhibito. Dissertation. Bonn 1893.
1872 마스까르(Jean Mascart, 1872-1935), 프랑스 천문학자,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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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Achille Ἀχιλλεύς) 트로이 전쟁에서 전설의 영웅. fils de Pélée, roi de Phthie en Thessalie, et de Thétis, une Néréide (nymphe marine). Il est fréquemment appelé « Péléide »[1] ou « Éacide », épithètes qui rappellent son ascendance.
(10:26, 59NLJ) (8:39, 59O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