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
김 학 부
"김 서방, 여기를 줄로 갈 수는 없나? 잇몸이 아파 음식을 씹을 수가 있어야지."
장모님이 틀니를 건네주며 부탁을 하신다. 몇 달 전에도 틀니가 닳아서 음식을 씹으면 얼음 위에 스케이트 날이 미끄러지듯 한다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친분 있는 기공소에 가서 반들반들 닳은 이빨 면에 새 타이어처럼 골을 지어왔다. 그 후 음식을 씹기가 한결 쉽다며 좋아하셨다.
잇몸이 닿는 부분을 줄로 갈아서 될 게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전에 갔던 기공소를 찾아갔다. 틀니를 건네받는 기공사는 '안면이 있는 거네'라며 한참을 고양이 쥐 다루듯 이리저리 돌려보고 전등에 비추어 보기를 반복한다. 오 분쯤 지났을가 선문답하듯 불쑥 한 마디를 던진다. '간다고 해결될 게 아닌데……'
혹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우선 응급조치로 불편한 부분만 손을 봐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의향을 떠봤다. 그제야 꽉 다문 조개 같던 기공사의 입이 열린다. '이 틀니는 내 짐작으로 십 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노인의 잇몸은 줄고 틀니는 그대로이니 헐거워져 아픔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기가 시간이 있으면 방문해서 틀니를 맞추면 좋은데 짬이 없다며 모시고 올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우선 손 봐서 써 보고 불편을 느끼면 그때 모시고 오겠다고 답했다.
'닿는 부분을 갈아내는 것도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지 막연한데.'라며 갈기를 시작한다. 본인이 있으면 입에 끼워보면서 갈아야 한느데 그렇지를 못하니 어림잡아 할 수밖에 없다며 손을 봐주었다. 마치 이웃집에 돈을 꾸러 갔다가 간신히 빌린 기분으로 돌아왔다.
지난 일들이 차창 밖 가로수 지나가듯 한다. 수년 전에는 귀가 들리지를 않아 보청기를 맞추러 갔던 일도 있었다. 청력 검사를 마친 의사는 "할머니는 보청기를 할 수 없는 귀입니다."라며 거절을 했다. 장모님을 보는 순간 실망하는 빛이 역력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상실감이 어떠했으랴. 지금도 의사소통은 종이 대롱을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알아듣는다.
육신도 세월의 풍상을 겪다 보니 성한 데가 없다. 걸음도 지팡이 두 개를 짚어야 옮길 수 있고, 두 무릎은 언제부터 시작된 통증인지 보건소에서 지어 온 약을 하루 세 번 밥 챙기는 것보다 더 챙기신다. 날이 찌부듯한 날은 온몸이 쑤셔 고통을 호소한다.
다행한 것은 안경 없이 바늘귀를 꿰신다. 내 작업복도 무릎이 닳아진 곳을 말끔하게 기워내신다. 사람이 늙어도 시(視), 청(聽), 미(味). 후(嗅), 촉감 중에 한 부분은 온전하게 남겨두도록 한 것이 조물주의 뜻인지, 헬렌 켈러도 시각과 청각은 훼손되었지만 남은 감각으로 훌륭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며 틀니가 잘 맞느냐고 여쭈니 아프지 않다고 하신다. 기공사가 한 말을 장모님께 말씀드리며 틀니 맞추러 가자고 의중을 떠봤다.
"내 나이 구십 둘인데 얼마를 살기라고 틀니를 해."라며 안 가시겠단다. 전에도 치과에서 틀니를 맞추었는데 맞지 않아 고생했다는 말만 후렴으로 덧붙인다.
"장모님, 지금까지 틀니 맞출 돈도 못 모았습니까? 돈이 없어 안 가시는 것이지요?"
사위가 일부러 너스레 떠는 것을 아시고 빙긋이 웃으신다. 식사를 마치고 막내 외손자 결혼식을 언제 하느냐고 물으신다.
"외손부는 보고 죽어야지."
아직도 희망의 끈은 여유가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배변을 잘하는 것이 건강의 잣대라고 한다. 장모님도 이 세 가지가 잘 유지되기를 빌어본다. 장모님은 나의 부모 세대에서 유일하게 생존하신 분이다.
"하루를 살아도 씹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기공사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은 틀니가 없던 시절의 말이다.
장모님이 딸과 함께 사는 것이 혹 틀니를 끼고 사는 것처럼 느끼시지는 않을까. 어찌하면 우리 부부가 장모님 이에 틀니가 아닌 본래의 당신 이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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