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면서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성당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납니다. “If you enter here as a tourist, you would exit as a pilgrim. If you enter here as a pilgrim, you would exit as a holier one.”(“만일 당신이 관광객으로 이곳에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돌아가십시오. 만일 당신이 순례자로 이곳에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십시오.”)
이탈리아 로마에는 4개의 대성전이 있습니다. ‘성 마리아 대성전, 바오로 대성전, 베드로 대성전, 그리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인 교황님의 주교좌성당입니다. 라테라노 성당을 들어가다 중앙 문을 보면 문 상인방에 라틴어로 “Omnium Ecclesiarum Urbis et Orbis Mater et Caput”, 즉 “로마와 전 세계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머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 곧 바티칸 대성당으로 교황좌가 옮겨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원래 황실 가족의 소유였던 라테라노 궁전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교회에 봉헌함으로써 교황님의 공식 거처가 됩니다. 그곳에 딸려 있던 대성당은 처음으로 로마의 주교좌성당이 되고, 그곳에서는 특히 부활 성야에 세례식이 집전되었습니다. 후에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봉헌되어 라테라노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불리게 된 이 대성전은 로마 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여겨지게 됩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전’(聖殿)의 참된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전해 주는 주님의 성전에 대한 장엄한 환시는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성전이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그것을 온전히 누리는 곳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말씀과 성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우리를 되살리고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삶으로 그 생명력을 전할 때, 비로소 교회는 참된 성전이 되고, 우리가 거행하는 전례는 하느님께 올리는 참된 예배가 됩니다.
부활 성야에 거행하는 ‘세례 서약 갱신’ 예절 때에 부르는 성가인 ‘성전 오른편에서’는 오늘 제1독서인 에제키엘서 47장의 내용을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성전이란 외적인 건물이나 경신례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부활의 생명력을 통한 내면의 변화를 체험하는 거룩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과월절이 되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행위를 금하시고 정화시키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성전의 본 의미는 인간이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 내용은 무시하고 외적인 형식으로 변하고, 성전이 이익 집단이 모여 이권 전쟁을 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크게 노하십니다.
파스카 축제는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삼대 축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며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의하면, 파스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객들은 200만 명이 되었고, 그들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양의 숫자도 30만 마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성전에서 제물로 바치는 가축들(오늘 복음에 언급된 ‘소와 양과 비둘기’)은 오로지 성전에서 준비한 것으로만 바치게 하였고 성전세도 세속적인 돈(로마와 그리스 화폐가) 아닌 성전에서만 사용되는 돈으로만 바치게 함으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비리와 기득권층의 횡포가 있었습니다. 성전의 본래의 목적인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성전에 모인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는 유다인들에게 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18절)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9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21절).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성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46년에 걸쳐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몸을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이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ἢ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τὸ σῶμα ὑμῶν ναὸς τοῦ ἐν ὑμῖν ἁγίου πνεύματός ἐστιν οὗ ἔχετε ἀπὸ θεοῦ, καὶ οὐκ ἐστὲ ἑαυτῶν;”: 1코린 6,19) 하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그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와 찬미를 드리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를르의 성 체사리우스 주교님의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대성전 봉헌 축일을 기쁨 속에 지내고 싶다면 우리의 악한 행실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우리의 이 성전, 곧 우리 각자의 영혼과 육신을 파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