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1절
포덕문(布德文) : [종교] 천도교에서, 덕을 펴는 글이라는 뜻으로, '경전(經典)'을 이르는 말.
포덕사(布德師) : [종교] 천도교에서 둔 교직의 하나.
또는 그 직책을 맡은 사람. 30호의 교인을 교화하고 수도를 장려한다.
평천하(平天下) : 천하를 평정함.
치천하(治天下) : 천하를 다스림.
류찬명(柳贊明, 1866~1931) : 본관 전주(全州), 병인(丙寅, 1866)년 3월 15일
지금의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金山面 淸道里) 청도에서 부친 류경술(柳敬述)과
모친 박(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작을 주면서 농사로 생계를 이었고,
키는 약간 크고 수염은 구레나룻 수염이었으며,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에 학식이 많은
학자였다고 하는데 글을 잘 써서 상제님께서 공사 보실 때 붓글씨를 대신 쓰게 하기도 하셨다.
맏아들과 함께 상제님을 잘 모셨다. 모악산의 서쪽 줄기에 싸리재가 있는데 당시에는
이 길이 정읍, 김제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로 이 고개와 구릿골 사이에
류찬명의 집이 있었다.
상제님께서 외처로 출입하시는 길에 자주 들르셨을 뿐 아니라 여러 종도들과 함께
며칠씩 머무르시면서 많은 공사를 보셨다. 같은 마을에 김송환이 살았고, 맞은편 모악산
주봉 쪽으로는 백운동이 바라다 보인다.
상제님 화천 후에는 교단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자택에서 개인 신앙을 하였다.
당시 류찬명의 집이 넓어서 상제님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오시면 방에 빽빽이 들어앉혀
공부를 시키셨다. 이 때 류찬명의 맏아들과 부인이 식사와 빨래 시중을 많이 들었다.
류찬명이 작고한 후에 그의 아내가 시중을 들 때 고생을 많이 한 것이 한이 맺혀 남편이
남긴 글과 기록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 조선시대 국영여관인 청도원이 있던 마을이다.
김자현(金自賢, 1875~1927) : 본관 안동(安東). 본명(족보) 언회(彦會), 갑술(甲戌, 1874)년
4월 9일 전주 우림면 동곡(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에서 부친 김원장(金元長)과
모친 박씨(朴氏)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 곳에서 생을 마쳤다.
안동 김씨의 종가(宗家)집 장손(長孫)이며 김형렬과는 사종형제(四從兄弟)이다.
김자현이 15세 연하이다.상제님을 따르기 전에는 농사를 지었으며 학식이 많은 선비였다고 한다.
임인(壬寅, 28세 1902)년 4월에 청도리 제비창골(하운동) 안동 김씨 재실에서 친척(10촌)인 김형렬의
인도로 상제님을 따르게 되었다.
정미(丁未 : 1907)년의 고부화란 때에도 믿음을 변함이 없이 김형렬과 함께 9년 천지공사에
가장 오래 수종 하였다. 상제님 화천 후에 집안 살림이 바람이 불면 지붕에 실같이 엮어서
덮어 놓은 짚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어려웠다. 사람들의 병을 많이 고쳐 주며 포교를 하러
다닐 때 금산사 미륵전으로 수백 명이 모여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오해를 사서 원평에서 잡혀 전주 형무소에 들어갔었으며, 한번은 두승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부 경무청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생을 하였다.
순천 장기동은 상제님 화천 후 김자현에게 상제님 말씀을 전해 듣고 구릿골에 와서 살았다.
그 때 김자현의 막내딸이 상제님 신앙을 잘해서사돈을 삼자고 하여 장기동의
며느리가 되었고 장기동의 딸은 김형렬의 며느리가 되었다.
/ 다리에 습종이 돋아 고생한 지 삼 년에 만 가지 약이 무효하여 다리를 영영 베일 지경에 이러러
김형렬의 안내로 상제님께 보여 15일 만에 나았다 그후 따르게 됨. /.
정묘(丁卯, 1927)년 11월 10일, 53세로 작고하였다.
김자현이 작고하기 전에 이상호 씨가 상제님 성적을 들려 달라고 수차례 간청을 했으나
이상호의 속마음이 야심이 많고 다른 일을 꾸미려고 하는 기색이 보여서 얘기를 전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호씨를 만나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며 만날 장소인
주막에 가서 이상호씨에게내가 서울 남대문에 가서 무슨 일을 보고 와야 될 텐데
음력 10월 17일에 출발해서 5일 후 21일에 내려오려고 하니 돈이 있으면
1원만 달라고 해서 빌려 가지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와서 며느리에게 서울을 갈 테니 의복을 지어 놓으라 하고 가족을
다 불러 태어난 해의 띠에 따라 부적을 그리고, 이름을 쓰고, 점을 찍어 불사르고 나서
10월 17일 아침 세수를 하다가 숨을 거뒀다 한다.
이 때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자 이상호와 몇 명이 와서 5일 만에 오신다고 했으니 5일 장을 하라고 하며
양식을 대서 집에서는 3일장도 못할 형편이었으나 6일 만에 출상을 했다.
3장 32절
이해 七월 초에 : 을사년 1905년 7월
월여(月餘)=달포 :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임파군 둔리 : 지금의 전북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고상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군항 : 군산의 옛이름. 군항이라고도 불리웠다.
김성화(金性化, 1873~1931) : 본관 김해. 1873년 1월에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에서
부친 김덕원과 모친 백씨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 『대순전경』에는 金性化라 하였으나
족보에는 聖化로 되어 있다. 임피 둔리에 살고 있음
(지금의 전북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고상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임피 둔리=임피 군둔리
익산 만중리 : 전북 익산군 만중리 현재 전북 익산시 오산면 영만리 진흥 북쪽 들에 있는 마을.
정춘심(鄭春心, 1859~1925) : 본관 나주(羅州)
상제의 부친 : 강문회(姜文會, 1846년~1911에서 1917년 사이 사망) 행록 1-8. 5-37.
생부 한중(漢重). 큰아버지(두중(斗重))가 장손이나 자식이 없어 양자로 입양됨.
이웃 이평면 서산리 안동 권씨 권양덕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둠(강영학, 선돌부인).
구천상제님의 부친, 병오(丙午)생이며 자(字)는 흥주(興周)요 얼굴은 범상에 우렁찬
음성을 가진 분으로 그의 위엄은 인근 사람만이 아니라 동학의 의병들에게 까지 떨쳤다
3장 33절
병오(丙午)년 十월 : 1906년 10월
[예수교(Jesus敎)=기독교 :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에서 갈려 나온 개신교를 이르는 말
교의(敎義) : .종교 어떤 종교의 신앙 내용이 진리로서 공인된, 종교상의 가르침.
서학(西學) : 조선 중기 이후 조선에 전래된 서양사상과 문물(文物).
좁은 의미에서는 가톨릭교를 의미하며, 그 때문에 이를 서교(西敎) 또는
천주학(天主學)이라고도 하였다.
3장 34절
광인(狂人) : 미친 사람.
3장 35절
정미(丁未)년 : 1907년 4월 5일
사관(舍館)=하숙(下宿) : 일정한 방세와 식비를 내고 남의 집에 머물면서 숙식함.
또는 그런 집.
태인현(泰仁縣) :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태인면․옹동면․산외면․감곡면․칠보면․산내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신원일(辛元一) : 전북 부안군 부안읍 사람(당시는 부안군 동도면이나 하동면이 된다
1914년 군면통합때 부령면이 되었다가 1943년 부안읍이 되었다),
김형렬의 막내 여동생과 결혼한 이환구의 추천으로 상제님을 따름
(1905년 정월 그믐날, 제생 16), 궁감(宮監)이 되어 궁도조를 사사로이 써기도 하였고,
그 후 병오년 겨울에 건재약국을 차리고 약을 사러 공주 약령시장에 갈 때
김보경의 집에 계시는 상제님을 뵙고 길이 질어 교통 불편을 이야기 하니 길을 얼게
하여 편하게 해 주시기도 하였다(권지1-24). 성질은 급한 편이고 상제님의 공사에 많이 참여하였다.
(辛 : 메울신, 맵다, 매운맛, 고생하다, 살상하다. 元 : 으뜸원, 근본 一 : 한 일, 한번, 처음)
3장 36절
한산면(韓山面) : 충남 서천군 남동부에 있는 면.
음풍(陰風) : ① 흐린 날씨에 음산하고 싸늘하게 부는 바람. ② =삭풍(朔風
소부(小婦) : 결혼한 여자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
작배(作配) : 남녀가 서로 짝을 지음. 또는 배필을 정함.
천노(天怒) : ① 하늘의 노여움.폭풍이나 질뢰(膣雷)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②천자(天子)의 노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