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산행후기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그동안 1년 3개월 꾸준하게 산행을 이어왔지만 고작해야 3~4명정도였고 혼자 다녀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일주일전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며 둘토산행에 대한 문의와 참가신청이 이어졌다.
이번 산행은 제갈공명이 기다리던 남동풍이 진짜 불어오려나보다.
성당 만남의 방, 오랜만에 봄처럼 화사한 자매님들로 가득하다.
모두 합이 11명으로 이 정도면 축구팀도 꾸린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성모상앞에서 출발전 기도 드렸다.
서울둘레길 1-1코스, 6.3km, 2시간 50분(도봉산역~당고개공원)
5호선 둔촌동역에서 7호선 도봉산역까지는 43분 소요된다.
도봉산역 2번출구, 수락산 입구 생태공원 창포원에서 시작이다.
날이 풀려서인지 산행인파들이 많다.
걷기 전 간단하게 몸의 긴장을 풀기 위해 준비운동을 했다.
마음의 긴장도 풀겸 성함과 나이를 여쭈어본다.
76세 레지나자매님을 비롯하여 73세, 71세 2분, 70세, 69세등등 7명이 지하철 무료다. 나머지 4명만 유료다.
바람이 아직 차지만 햇볕은 따스하다. 산수유 노란꽃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나오고 있다. 봄이 시작되는 느낌이 좋다.
둘렛길이 잘 되어 있지만 그래도 소장파가 앞장을 서고 내가 맨뒤에 서서 걷기로 했다.
창포원 생태공원을 지나 중랑천을 건넌다. 길은 아파트 단지뒤 수락 리버시티공원으로 이어진다. 공원은 인공호수와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이 든다. 호수 건너편에 중랑천 야외 음악당도 보인다.
생각보다 주변이 대체로 잘 정돈되고 자연과 문화가 겸비된 곳이다. 호수공원끝 무렵 팔각정에서부터 수락산 등산로로 진입한다.
처음 여유있는 시작과는 달리 다소 가파르게 올라간다. 조용하게 걸으시던 분들이 천천히 가신다며 나보고 먼저 가라신다. 그러나 내가 먼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쉬었다 가시자며 천천히 오른다. 그러고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이 난이도 중상코스다.
그래도 수락산 정상 3.1km까지는 안가서 다행이다.
‘거인 발자국 바위’를 지난다. 이곳은 옛날 이곳에 거인이 살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과 동식물을 지켜주었는데 개발의 영향으로 수락산이 파괴되고 자연이 파괴되자 이곳을 떠나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자연과 환경보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잠시 ‘벽운동천’에서 약수를 마시며 한숨 돌린다. 아마 수락골이라 불리는 벽운계곡이 이곳에서 시작되는 모양이다.
천천히 산을 오르지만 힘들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좋다고도 하신다.
12시에 맞춰 식사를 했다. 5명, 6명 두그룹으로 나눠서 앉았다. 먹을걸 별로 안싸가지고 오셨다더니 자매님들이라 역시 다르다. 건강식이 다모여 뷔페가 따로 없다.
반면 옆자리에서 나이드신 남자 2분이서 식사를 하시는데 달랑 사발면만 있다. 남자, 여자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이리 다를까? 그분들도 10:1 청일점인 내가 엄청 부러웠을거다.
오르면서 점포를 못만나 막걸리 준비 못한 것이 다소 아쉬운면도 있었지만 안전산행을 위해서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잘 먹었더니 또 걸을 힘이 생긴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노원골 유아 숲체험원 공원’이 있다. 입구에 ‘절구 시래기’라는 음식점에 시레기 국밥, 곤드레 솥밥이 7~8,000원이다. 다음에 또 걷는다면 이곳에서 식사해도 좋겠다.
이제 데크 길과 함께 계단이 시작된다. 데크 길은 전동휠체어도 오를 수 있게 만든 고마운 길이다.
한참을 오르니 ‘귀임봉 채석장 전망대’, 일명 ‘1코스 전망대’다. 뒤에 커다란 암벽바위가 귀임봉이다.
이곳에서는 서울시내가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미세먼지만 없었더라면 멀리 롯데타워, 남산타워까지 깨끗하게 보았을텐데 아쉽다. 우리들이 전망에 취해있는 모습을 보고 로마나 자매님이 잠시 뒤를 돌아보라며 한컷 찍었는데 작품이다.
채석장을 지나 내려가다 또 잠시 쉬었다.
쉬는 동안 76세 왕언니 레지나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21살에 복자수녀원에 들어가셨다가 몸이 아프셔서 27살에 나오셨단다. 이후 건강을 되찾으셨고 결혼해서 두딸 키우고 감사하게 산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신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의 역사를 만나는 일’이다.
이제 당산역이 바로 코앞이다. 다들 나이가 드셔서 내려가는게 조심스럽고 더디다.
마침내 오늘의 종착점 당고개 팔각정에 이르렀다. 노부부가 앉아계신다. 물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남은 간식을 먹으며 노부부께 나눠드렸다. 나이가 드신 것은 맞는데 곱고 정정하셔서 궁금해서 여쭤보니 100세, 90세라신다.
마침내 왕언니가 두분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트롯을 틀어놓고 짧은 혼춤을 추셨다.
모두 마지막 한방울까지 맛있고 즐거운 산행이었다. 장수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