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같이 미세먼지다. 춘분이 지났는데도 방문을 꼭꼭 닫고 칩거한다. 아직은 아직은 하면서 뭉그적거린다. 더 이상 참기 어렵다. 봄도 슴슴한 흙바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공해 속에서 맞아야 하려나 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성화다. 풋풋하고 청신한 향기가 스멀스멀 스며든다. 오염을 차단하기 위한 두꺼운 커튼도 소용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식욕에 있어서 시각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맛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구미를 당기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냄새다. 어쩌면 사람의 몸은 냄새에 제일 먼저 반응하는지 모른다. 온도가 이끄는 계절변화는 무시할 수 있지만 냄새로 다가오는 봄 앞에서는 그냥 무너진다.
집을 나선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에 앉아 나른한 봄 냄새를 맡는다. 온갖 공해에 찌들어 그런지 별다른 봄 내음을 맡을 수는 없다. 한낮이 되니 황사도 조금 옅어지고 햇살이 쏟아진다. 예전 파란 하늘 아래 수런대던 봄볕은 아니지만 도심의 냄새가 조금씩 바뀐다. 대로변 공터에는 붕어빵 행상이 사라지고 요구르트를 파는 아주머니가 졸고 있다. 곁에는 봄볕에 부푼 이불 파는 장사꾼도 보인다. 알로록달로록 펼쳐놓은 이불들이 도심 속 작은 화단이다. 햇살을 받아 그런지 공원의 나뭇가지도 연초록으로 보인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이불을 늘어놓은 곳도 제법 있다. 칙칙한 회색 풍경을 밀어내고 봄 햇살에 한껏 부푼 이불은 화사한 고향의 산 모습이다. 어릴 적 고향의 봄은 산으로부터 왔다.
가을 산이 만산홍엽이라면 잎과 꽃이 어우러진 봄 산은 갓 시집온 새색시의 양단 공단으로 멋 부린 차렵이불이다. 하늘을 향해 부풀어 오른 이 계곡 저 능선은 부드러운 융단을 깐 듯 둥글고 우아하다. 멀리서 보는 산은 꽃대궐이요 가까이 들면 화단이다. 햇살을 담아 핀 산 벚꽃은 은은하고 두견화는 새색시 도투락댕기처럼 연분홍 빛깔이 곱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꽃은 노랗고 무리 지어 핀 제비꽃이나 현호색 꽃은 신비로운 자색이다. 산꽃들은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파스텔을 칠한 듯 부드럽고 온화한 봄 색깔은 말할 수 없는 생명의 경이를 느끼게 한다. 봄이 주는 축복이다. 봄볕이 따스한 날이면 할머니는 겨우내 손주들이 덮었던 솜 이불 홑청을 뜯어내고 마당을 가로지른 간짓대에 걸어 말렸다. 왕골기직에서 스민 먼지와 탄 냄새가 봄꽃 냄새로 바뀐다. 해거름이 되기 전 작대기로 몇 번 털고 묶어 두었다가 읍내 장터 머리 만복이네 솜틀집에서 새 솜처럼 터셨다.
읍내에 나들이 갔다 봄을 잔뜩 머금은 솜은 다시 부등깃처럼 가볍고 따뜻했다. 눌리고 뭉쳤던 솜은 다시 생명을 얻는다. 솜이 만복이네 가게를 다녀와야 비로소 할머니의 봄이 제대로 왔다. 더 이상 꽃샘추위도 한기도 방문을 넘을 일이 없다는 확신이 섰을 때 솜 이불을 정리하셨음 때문이다. 솜 이불 홑청을 뜯고 털어 말리는 날은 따스한 봄볕이 마루 안쪽까지 깊숙이 밀려들어왔다. 삼베를 날기 위해 북이라도 빌리러 온 마을 아낙들은 뜯어 놓은 솜을 만지며 ‘솜이 참 두툼하고 따습게 생겼다’는 말을 보탰다. 일 바쁜 시골에는 이웃 간 정 붙는 말도 한가한 봄날에나 어울렸다. 솜 이불만 펼치면 구수한 솔가지 타는 냄새와 매캐한 청솔 연기가 함께 이야기를 끌고 왔다. 서로 이불을 많이 덮겠다고 발을 집어넣다 보니 이불은 공중에 뜨고 방구들은 쉽게 식었다. 할머니의 화나지 않은 호통소리가 몸을 웅크리게 했고 그 호통이 오히려 부추김이 되어 더욱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발길질을 해댔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은 얼추 그랬다. 베개도 제대로 없는 잠자리였지만 두툼한 솜 이불은 언제나 가슴을 제대로 눌러 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발이 서로 닿을 때마다 키득거리며 발길질을 해댄 탓에 자고 일어나 보면 무거운 솜 이불은 윗목 구석으로 밀려 있기 일쑤였다.
며칠만 머물다 갈 봄이 성큼 다가왔다. 아이들이 물감을 마구 뿌린 듯 온 산이 화려하다. 봄 햇살은 겨우내 덮었던 솜 이불을 말리고 틀어 계절의 변화를 방안에 끌어들이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 두꺼운 솜 이불을 덮고 사는 집은 없다. 뽀샤시한 극세사 재질에 알록달록 무늬의 홑청으로 만든 오리 털이니 거위털이니 하는 가볍고 따뜻한 이불이 대세다. 가난이 물러가면서 이부자리도 바뀌었다. 아무리 그래도 간짓대에서 따스한 봄 햇살이 스며들어 심심하면서도 향긋한 목화 이불을 이길만한 것이 있을까. 건강을 위해서는 화학섬유보다 벙그러진 꽃봉오리 봄 햇살을 담은 무명 솜 이불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섬진강가 매화가 다 이울었다는 소식이니 곧 온 산야가 알록달록 차렵이불이겠다. 오늘 도심 속 작은 공원에 앉아 이불 장수를 보며 할머니의 봄을 느낀다. 3월의 뜬금없던 대설주의보도 다시 두툼한 페딩을 꺼내야겠다는 것도 지나고 나면 호들갑이다. 어둠이 빛에 밀려가고 진실의 거울이 거짓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은 섭리다. 긴 기다림 끝에 오는 봄이 꽃향기 가득 담은 차렵이불을 펼친다. 추위에 떨며 외치던 외눈박이들의 분노에 찬 음성도 스르르 녹아 사라지면 좋겠다. 횃대 아래 개어두었던 솜 이불을 햇살 좋은 간짓대에 거는 마음으로 봄을 맞는다.<끝>
첫댓글 참 오래전일이지요. 솜틀어 이불을 꿰매던 모습을 본지도 참 아련합니다. // 저도 14년전 자부가 해온 솜이불을 아직도 덥고 있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몸이 냄새를 맞는다. 냄새를 맡았는지 저도 주말엔 외출을 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읍내에 나들이 갔다 봄을 잔뜩 머금은 솜은 다시 부등깃처럼 가볍고 따뜻했다ᆢ ' 옛 추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솜이불은 포근한 어머니의 사랑이 연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글에서 불어오는 고향 내음이 봄 햇살처럼 와닿습니다. 이곳은 봄 없이 여름이 와서 더워졌습니다.
일 년 내내 같은 이불 한 장으로 사는 단출한 생활에 새삼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