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영(고려대학교 박사수료)
극 단 : 극단 동 작/연출 : 강량원 공연기간 : 4월25-5월2일 공연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일시 : 4월30일
1. 다시, 화두를 던지다 이야기는 진부했다. <샘플 054씨 외 3인>은 가석방 된 재소자 4명의 뒤를 쫓아감으로써 그들을 거부하는 우리 사회의 배타성에 대해 보여주었다. 장애인, 재소자, 혼혈,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에서 경계인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야기들이 재생산된다는 것은 불행히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그들을괴물,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그 반증을 회자시키기 위한 무대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수천가지의 방식 중에서도, 극단 <동>만의 소통 방법이 이 무대 위에 현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들으러 오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생산자의 능력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이야기꾼의 말하기 방식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원소스의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매개 되고 있지만, 동일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일지라도 성공하기도 하고, 혹은 실패하기도 한다. 이것은 매체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생산자가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각 매체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구현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소재와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이야기꾼의 입담으로 새롭게 재창작되고, 때로는 새로운 형식으로 구성될 때, 더불어 생산품에 그 매체만이 발산할 수 있는 매력을 더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샘플 054씨 외 3인>이 그런 연극이다. 연극이 다른 매체와 다른 지점들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2. 연극을 고민하다! <샘플 054씨 외 3인>의 무대는 관음증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샘플을 관찰 카메라로 찍었다며 그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대는 카메라의 프레임처럼 폐쇄적이면서 폭력적이다. 관객들은 자신도 모른 채 어느새 카메라의 시선-실제로 무대 위에서는 영상 스크린이 아닌, 배우들의 연기로 실현되지만-을 쫓고 있다. <샘플 054씨 외 3인>에서는 학회 발제를 하는 연구원들을 무대와 객석 가운데 배치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뚜렷하게 한다. 조명을 통해 관객들은 어느새 학회 발표장에 앉아 있는 참석자들이 되어 동참하고 있다. 객석의 관객들은 무대 위 재소자 4인과는 철저하게 분리된다. ‘엿보기’라는 행위의 쾌감 속에서 관객은 어느새 연구자들의 왜곡된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의 프레임과 다른 것은 역시나 <샘플 054씨 외 3인>이 연극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극장의 불이 켜지는 순간, 영화 속에서 구현했던 현실이 한순간의 환상으로 변질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샘플 054씨 외 3인>에서의 서사극적인 장치들은 연극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긴장시키기도 한다. 또한 서사의 구성도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샘플 054씨 외 3인>은 고전적인 구성을 선택하는 대신, 흩어진 조각들을 퍼즐을 맞추듯 완성시켜 나간다. 이런 기법들이 이 연극을 더욱 연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낸다.
<샘플 054씨 외 3인>의 배우의 연기는 느리고, 샘플 4명을 비롯하여 샘플199의 부인-실제로는 동거이지만-, 여관 주인 등의 연기는 온 힘을 들여 행동하고 발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운 몸짓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 몸짓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무겁고 처절해서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고, 무거운 것은 더욱 압력을 줘서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과중한 힘의 무게가 느껴진다. 어두운 무대 위에 유일하게 밝혀진 가로등 불빛과 오브제인 우산이 주는 축축함, 배우들의 몸부림에 가까운 몸짓이 어우러져 극 전체적으로 축축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의 진행 속도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빨라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막과 막 사이, 무대 위의 조명이 꺼지면서 테라스에서 울려나오는 불세출의 비가(悲歌)는 어둡고 무거운 이 극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이런 압도적인 무거움 속에서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는 씁쓸하고 잔인하다. <샘플 054씨 외 3인>에서 샘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그들이 처음 향했던 곳이 다름 아닌 이발소였다는 점이 이것을 말해준다. 샘플들은 이발소에서 용모를 단정히 하여 수감 생활의 때를 벗고 사회 안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고자 한다. 그러나 샘플들의 평범한 일상은 처음부터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택시기사의 과잉된 행동과 그것과 연계해 촉발된 이발소 사건에서 상징적으로 암시되어 있다. 이들의 과민반응은 색채의 대비로 더욱 확연하게 부각된다. 좀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샘플 2명이 잠시 머문 공원. 샘플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칙칙한 의상과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와 붉은 그넷줄, 따뜻한 나무 느낌을 주는 그네는 동화의 한 장면처럼 ‘예쁘다’. 샘플들을 괴롭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행동마저 장난스럽고 유쾌 발랄하다. 샘플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원색의 무대 장치와 행동들은 흑백 tv속에서 몇 군데에만 칼라를 덧입힌 것처럼 부각된다. 그러나 극단적인 색감의 대비 속에서 정작 부각되는 것은 샘플들이 가지고 있는 생래적인 이질감이다. 무대 위의 색채 대비는, 군중의 무리에 섞여 일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샘플들의 노력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잔인하리만큼 잘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이다.
3. 우리 사회의 노래꾼, 극단 <동> <샘플 054씨 외 3인>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노래꾼이 있다. 노래꾼은 샘플들-우리 사회의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관객들에게 샘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샘플 199와 307이 노래꾼과 함께 차에 오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희망적이기도 하다. 예술의 정치적 역할은 끝났다고 자인하는 이들에게, 극단 <동>의 따뜻한 시선은 연극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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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월요연구실의 최근 몇권의 책을 읽으며 연극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점에 이런 칭찬?을ㅋㅋ 마음이 벅차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