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고
느티나무
1.필사문장
- 선생이라는 직업
9쪽. 우리 주인은 나와는 좀처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없다. 직업은 선생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재에 틀어박혀서 거의 나오지를
않는다. 식구들은 그가 엄청난 공부벌레인 줄 안다. 그 자신도 공부벌레인
양 처신한다. 하지만 식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가끔
그의 서재를 엿보다 보면, 낮잠 자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때로는
펼쳐 놓은 책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잔다. 그는 위가 약해서 피부가 누리끼리한 데다 탄력도 생기도 없다. 그런 주제에 밥은 무지하게 먹어 댄다. 그렇게 실컷 먹고서는 디카디아스타제를
먹는다. 디카디아스타제를 먹고는 책을 펼친다. 두세 페이지를 읽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든다. 그리고 책 위에 침을 흘린다. 그의 매일 밤 일과는
이렇다. 나는 비록 고양이지만 때로 생각을 한다. 선생이란 실로 편한 직업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선생이 되고 볼 일이다. 이렇게 잠만 자면서도 밥벌이가
된다면 고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 왈, 선생
노릇만큼 고달픈 것도 없단다. 그는 친구들이 올 때마다 뭐라 뭐라 불편을 늘어놓는다.
- 부자연스런 인간
217쪽.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사치스럽다. 날것으로 먹어야 마땅한 것을 굳이 익히고 굽고 식초에 절이고 된장을 바르고, 불필요한
품을 들여가면서 좋아라들 한다. 입는 옷도 그렇다.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이 고양이처럼 1년 내내 단벌로 버티기야 어렵겠지만, 그렇게 잡다한
것을 피부 위에 걸치고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양에게 폐를 끼치는가 하면 누에에게는 신세를 지고 목화밭의
온정까지 구하는 것을 보면 사치는 무능의 결과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입고 먹는 것이야 너그럽게 봐주어
넘어간다 치고,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까지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선 털이 그렇다. 털은
자연스럽게 나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가장 간편하고 당사자에게도 좋을 텐데, 그들은 쓸데없는 짓까지
해가면서 잡다한 모양을 만들어 놓고는 우쭐해한다. 중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늘 민머리다. 더우면 그 위에 갓을 쓰고 추우면 모자를 쓴다. 그럴 것이면 뭐 하러 머리를
박박 밀어 시퍼렇게 해 가지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중략)또 다리가 네 개나 있는데 두 개밖에 쓰지 않는
것도 사치스럽다. 네 발로 걸으면 그만큼 많이 걸을 수 있을 텐데 늘 두 개만 쓰고 나머지 두 개는 선물
받은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매달아 두고만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이란 시간이 남아돌아가
너무도 따분한 나머지 이런저런 장난질을 고안하고 또 즐기는 모양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하면 나도 바쁘다 너도 바쁘다 떠들어 댈 뿐 아니라 그 안색까지 정말 바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칫
분주함에 쫓겨 숨이 꼴까닥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스러워 보인다. 그들 가운데는 나를 보면서
팔자가 저 정도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아등바등하라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니까 좋아
보이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감당도 하지 못할 만큼 멋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는 괴롭다 힘들다 투덜거리는
것은 제 손으로 아궁이에 불을 활활 때면서 덥다고 야단하는 격이다. 나도 머리 모양을 스무 가지나 생각하는
날이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편하고 싶다면 나처럼 여름에도 털옷을 입고 견딜 수 있는 훈련을 쌓는
게 좋다. 그렇게 하지만 역시 덥기는 덥다. 털옷은 너무 덥다.
- ‘나'
483쪽. 과묵한 구샤미 선생이 오랜만에 길게 말했다.「요컨대 요즘 사람들은 자기와 타인의 이해관계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일세. 그런 자각심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루하루 예민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일거수일투족조차 자연스럽게, 마음대로 할 수 없어졌다는 걸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라는 사람이 스티븐슨을
평하기를, 그는 방에서 거울 앞을 지날 때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을
정도로 한시도 자신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추세를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지. 눈을 감아도 나, 눈을 떠도 나, 이
나란 것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도처에 따라다니까 인간의 행동거지가 인위적이고 좀스러워진 거야. 스스로도
답답하고, 세상도 숨이 턱 막히고. 아침부터 밤까지 맞선을 보는 남녀
같은 심정으로 지내야 하는 거야. 유유자적이니 느긋함이니 하는 말은 글자는 있어도 의미는 없는 말이 되고
말았지. 그런 점에서 요즘 사람들이 탐정 같고 도둑놈 같다는 걸세. 탐정이란
직업은 남의 눈을 속이는 한이 있어도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장사니까. 특히 자각심이 강하지 않으면 안
되지. 요즘 사람들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이득이 되고 어떻게 하면 손해가 되는지를 생각하니까. 탐정과 마찬가지로 자각심이 강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두리번두리번, 우왕좌왕.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한시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사람의 마음이야. 그야말로 문명의 저주지.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야.」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로세.」도쿠센 군이 말했다. 도쿠센 군은 이런 문제가 거론되면 그저 가만히 뒷짐만
지고 있는 사내가 아니다.
「구샤미 자네의 설명이 내 의견을 대변하고 있군. 옛사람들은 자신을 잊으라고 가르쳤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니, 전혀 다르지. 하루 종일 자신을 의식하느라 정신없어. 그러니 한시도 평안할 수가 없지. 일상이 초열지옥(焦熱地獄)이야. 천하의 명약이 무엇이냐, 자신을
잊는 것만큼 용한 약은 없지. <삼경월하입무하(三更月下入無我)>란 그 경지를 노래한 것일세. 오늘날 사람들의 친절함에는 자연스러움이
없어.(이하 생략)」
2.읽은소감
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화시기에 서양문학을 도입했다. 소세키 하면 권위를 의심하고 저항하고 도전했던 작가로 기억된다. 대표작으로
마음,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다.
도련님은 아직 읽지 못했다. 소세키는 1984년부터 20004년까지 1000엔 권 지폐에 초상이 실릴 만큼 아직까지도 일본인들에게
존경 받는다.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여 보수와 진보 모두가 소세키를 지지한다. 그리고 소세키는 49세라는 이른 나이에 죽은 걸로 알고 있다. 동경제국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전업 작가를 택한 이력도 지금 생각하면 특이하다. 작가의
지위가 그렇게 높을 때가 아니었는데 그랬다. 영문학은 빌려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설 창작에서 의미 있는
삶을 실현하겠다는 것인데 의미 있는 것을 위해서 허욕을 버릴 줄 안다. 소세키 이전에는 작가들이 주로 단편을
썼는데 소세키는 본격적으로 사실주의적 장편소설을 썼다고 평가 받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샤미 선생이
소세키와 거의 일치하는 인물 아닐까? 효율적, 적극적, 진취적… 등 서양의 근대 기풍을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인물. 앞으로 빨리 가지
않아도 세상은 저절로 된다는 생각. 그 당시 사회분위기에 반해서 서두르지 않는 모습일 거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자기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일상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지식인)들을 고양이의 눈으로 보고 해학적으로 그리려고 애쓴 소설이다. 그리고 인물들이
모두 부자연스럽다. 인간이란 자연스럽지 못한 억지스러운 존재, 맞다. 그러니까 대단한 존재처럼 폼 잡고 권위적으로 살지 말자, 그러는 것 아닐까? 작품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상은 누굴까? 여기서 생활력 있는 사람은 돈
많은 가네다 가족인데 하나같이 어리석은 인물로 희화된다. 소세키가 싫어하여 속물로 그린 것. 그리고 학생들과의 싸움이 인상적이다. 구샤미 선생이 어린 학생들 눈에 띨 정도면
특이한 사람이다. 평범하게 살기 어렵다. 그리고 구샤미 선생주변은 하나같이
백수다. 미학자 메이테이 선생, 철학자 도쿠센, 시인 도후군, 물리학도이며 음악을 예술로 추구하는 간게쓰군 등등.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439쪽. 이게
다 시대 풍조입니다. 선생님은 너무 고리타분하니까 무슨 일이든 어렵게 해석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럴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는 요즘 나의 생각? '갈망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지만 쓸데없이 고통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노년의 지혜 아닐까. 병원이 많아서 죽을 때를 놓치게 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늙으면 에로스가 없어서 생명욕을 감추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외려
천성적으로 의뭉스런 자들이 자제력 있게 보인다.' 책에 있었던 말인데 미망에 빠진 것을 깨달은 것으로 착각한다는
말도 갑작스럽게 떠오른다. 작가는 지금(21세기)보다 거친 삶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요즘보다 이른 나이에 삶을 관조하고 자각하고 성숙하였나 보다. 책을 쓸 때가 삼사십대였을 텐데 내가 육십대가 되어서 깨달은 것들을 이미 말하고 있다.
하기는 49세에 죽었으니까. *
첫댓글 잘 정리된 소감이 좋습니다.
나도 읽어봤는데 내 독서는 수박곁핡기였군요.
구사미 선생 주위가 모두 백수다 ㅡ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과 연암파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현대소설 계보가 나쓰메ㅡ아쿠다카와ㅡ하루키라니 큰 강의 흐름같은 전통이 부럽군요.
내면의 의식 흐름을
아주 자연스레 묘사합니다.
흐름-계보 - 맥-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