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강사와 동문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요세미티 하프돔 동계 초등을 노리고 폭설 속에 등반에 나섰다. 하지만 악천후 때문에 등반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등반기간이 모자라자 이를 연장하기 위해 요세미티 밸리로 하산하던 왕준호 대원이 눈사태를 맞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경위와 과정을 고경한 대원의 위트 넘치는 글로 3회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글 | 고경한 사진 | 원정대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요세미티 밸리에 천상의 아리아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들리는 아리아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느끼게 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던 침엽수들은 고만고만한 높이로, 덜 다듬어진 잔디 모양 아침 안개를 머금고 바닥에 깔려있으며 좌우로 2000미터가 넘는 벽들은 앰프가 되어 음향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으니 영화는 ‘쇼생크 탈출’에서 어느덧 ‘플래툰’으로 넘어가고 있다.
꼬박 이틀간 내린 비로 물기에 흠뻑 젖었다가, 이제 갠 여명을 맞이하는, 시각적으로 선명한 형상을 보여주기 시작한 요세미티 밸리에서, 저 멀리 앨캡 방향으로부터 밸리 플로어를 지나 왼쪽으로 한 점 물체 나타나더니, 음향이 서서히 커지는 만치 물체도 선명해지고 커지기 시작한다. 물체보다 먼저 도착한 음향은 하프돔에 반사되고 다시 워싱턴 칼럼에 부닥치며 난반사를 일으켜 요세미티 밸리 전체를 완전히 깨워놓고 있다. 이런 장엄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헬리콥터다!!!!
왜 헬리콥터는 목표 지점으로 바로 오지 않고 주위를 삥~ 몇 바퀴 돌고 오는 걸까? 자신의 위용과 고마움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가?
당연히 나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메시아의 출현을 열렬히 고대해왔던 유대민족처럼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그것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의 기본 예의이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해 보자. 헬리콥터가 구조하러 갔는데 밑에서 피구조자들이 멀뚱멀뚱 쳐다본다든지 아니면 아예 헬리콥터를 무시하고 지들끼리 삼육구 같은 딴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성질 급하고 인간 수양이 덜 된 헬리콥터 조종사 같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삐져서 그냥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알 게 뭐냐, 세상일을.
헬리콥터 소리에 준호가 눈을 뜨고 한 마디 한다.
우리 조난당한거야? 응! 그래 이제 정신이드냐?
어제부터 준호는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등반하다 바닥 친 애들처럼 계속해서 횡설수설 했다.
바닥 친 애들의 공통점, 특히 머리를 부닥친 애들은, 내가 왜 떨어졌지? 내가 왜 떨어졌지? 대답해주는 사람의 인내성의 한계를 실험하는 양 계속해서 물어본다. 멀쩡한 놈이 그러면 이미 몇 대 맞았고 환자라도 정말 한 대 까고싶을 때까지….
마찬가지였다… 어제 준호를 발견했을 때. 준호는 얼음덩어리로 이루어진 눈사태를 맞고 100미터 가량 쓸려 내려갔던 것 같다. 살려고 다행히 묻히지 않고 눈 밖으로 밀려나와 있었는데 눈사태의 충격으로 왼쪽 대퇴부가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다리를 움켜잡고 우리에게 발견될 때까지 자그마치 4시간 가량을 하프돔 죽음의 슬랩에서 비와 추위와 죽음의 공포와 고독을 혼자서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2월 9일, 우리는 인천 공항을 떠나 위대한 어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처음 만난 미국의 인상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고 많이 비대해 보였다. 전 세계 인구의 6프로를 차지하면서 지구 전체 자원의 3분의 1을 소비하는, 참 맘에 안 드는 나라. 물론 내가 미국이 맘에 들든지 안 들든지 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요세미티 하프돔 등반을 하러 왔고 동계 초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하프돔을 보며… 구글에서 쓰리디로 관찰하며… 왜 아직까지 하프돔이 동계에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의아했다. 어프로치가 장난이 아니라서 그렇다는데… 원정이 장난인 것이 어디 있는가?
벽 밑에까지는 기껏해야 1000미터 정도 고도 올리는 것인데… 전체 하프돔의 높이도 3000미터가 안 되고 벽의 높이만 하면 600미터 정도의, 대략 인수봉의 3배 정도라는데… 로컬 애들이 추위를 많이 타고 게을러서 아직 동계 초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헌데… 로컬들이 하지 않으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이 동네…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산맥이 있는 곳… 내 미국의 지리에 밝지 못하여 정확히 아는 바는 없는데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하단다… 이곳은 여름은 덥고 건조한 사막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일 년 강수량의 전체를 좌우한다고 한다. 겨울에 오는 눈의 양으로 일 년 내내 농사도 짓고 먹고 산다 하니…
우리가 요세미티 밸리에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전에는 눈이 안 와서, 겨울 가뭄이라고, 한 해 농사를 걱정하고 있었단다. 아무튼 우리가 봄이 시작된 샌프란시스코를 통과해 모제스토와 머세드를 지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관문인 마리포사에 도착하니 서서히 눈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마을 마리포사는 곳곳에 곰탱이를 그려놓고 요세미티의 관문이라는 것 홍보를 하고 있었다. 옛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보다 더 오래 전에, 즉 늑대와 같이 춤을 추던 시절에 이곳 요세미티는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의 요새였다고.
점점 고도를 올리며 요세미티로 들어가다 보니 정말 이곳은 천혜의 요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요세미티의 바닥부분인 밸리에 도착할 때까지,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에 정착한 인디언과 우리 몽골리안의 인종적 관계, ‘요세미티’와 ‘요새 밑에’의 음절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무척 머리를 굴려보았는데… 머리만 아프더라.
요세미티 밸리는 눈으로 덮여있었다. 여름 성수기 때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캠프 사이트를 배정 받지 못한다 하는데 지금은 한량하다 못해 몇 개의 캠프장은 폐쇄가 되어있었다. 캠프에 짐을 풀어놓은 다음날부터 우리는 하프돔에 오르기 위하여 접근로를 찾기 시작했고 동계 하프돔 등반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정보수집 결과 : 정보… 별로 없더라… 겨울에는 안 한다 하더라… 이 동네 애들은.
등반시즌 중에는 벽 밑에까지 군데군데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벽 밑에까지 접근하는 데 시간이 워낙 많이 걸리고, 락 장비를 메고 1000미터 이상 고도를 올리는 것이 보통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지라, 대개의 클라이머들은 접근이 상대적으로 편리한 엘캐피탄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매일 눈이 내리므로 고정로프 작업을 해도 눈사태로 인해 로프가 눈에 묻혀버리고 매일 매일 새롭게 러셀을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 동네 요세미티 로컬이었다면 겨울에 하프돔 같은 데 안 갈 것 같다.

생각해 봐라… 겨울에 설악산에 매일 눈이 온다면 누가 죽음의 계곡 같은 데 들어가겠는가? 사고 후에 알았지만 우리가 사고를 당한 지점은 공교롭게도 이 동네 애들이 죽음의 슬랩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고정로프 작업과 짐 져나르기를 10일 가량 하면서 파키스탄이나 네팔 같은 데서 안 태어난 것에 대해서 감사했다. 산에 다닐 팔자였으면 거기에서는 매일 이렇게 짐을 져야되지 않았을까? 아침밥 지어먹고 땡칠이처럼 혓바닥 길게 빠져 벽 밑에 도착하면 하루 해가 저물었다.
해발고도 2700미터인 하프돔 밑의 벽은 2100미터 정도 된다. 벽에 도착했을 때 남들은 수직으로 솟아있는 하프돔의 위용에 겁을 먹어서 확 졸아들 것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밤에 잘 때 벽이 앞으로 쏟아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하는데 전혀 겁이 나지 않는다. 그냥 해볼 만 한 600미터 높이의 벽으로만 보인다. 얼마나 짐 져나르는 것이 힘이 들었으면 벽이 안 무서웠겠는가?
겁날 것도 없다! 짐 져나르는 것보다 등반은 훨씬 더 즐거운 놀이가 될 것이다.
이번 등반은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강사로 있는 왕준호가 기획한 것으로, 평상시 영상에 관심이 많고 작업도 몇 번 해본 그가 등반과 더불어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팀을 조직했다. 우리는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강사 김세준, 왕준호, 김성두와 동문 김두원, 고경한으로 기본팀을 구성하였고 여기에 인천 타기클럽 홍재숙, 이용순, 김용운 세 분과 뉴욕 한미산악회의 이충길형님 한 분이 합류하여 총 9명의 등반대가 3개조로 나누어 등반을 준비하였다.
한 팀 김용운, 이용순은 베이스에서 캠프를 관리하며 등반대와의 연락을 주고받고 등반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하기로 하였다. 촬영을 돕기 위하여 촬영용 고정로프를 먼저 설치하는 일은 김성두, 김두원, 이충길 이렇게 3명이 맡기로 하였고 준호는 촬영을 하고 등반대는 김세준, 고경한, 홍재숙으로 구성되었다.
등반대에서는 고경한과 홍재숙만 요세미티가 처음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요세미티 벽등반 경험이 있는, 어디다 내놔도 비교적 꿀리지 않는 팀이었다. 문제는 겨울에 하프돔에는 아무도 안 와봤다는 것과 우리뿐만이 아니라 아직 공식적으로는 동계 하프돔 등반 기록이 없다는 점이었다.
촬영팀이 먼저 3피치를 등반을 하고 짐을 끌어올려 포탈레지를 설치한다. 등반팀은 벽 밑에서 등반을 위한 장비 세팅을 끝마치고 식량 등 그 외의 등반준비를 한다. 그리고… 요세미티 밸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우리가 있는 곳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틀 동안 꼬박…… |
첫댓글 요담을 찾어야 하는데...ㅎ 워디가서 찾나?...
그래서 요담을 찾아 봤는데 못 찾겠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