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아래서 박목월 시인과 산책
어쩌다 보니 참 오래된 이야기다 고희를 훨씬 넘긴 나에게도 추억어린 젊은 시절은 있었다 반백 년이 벌써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인 홍성의 모교에 첫 발령을 받고 초년 교사로 고향의 집에 살고 있던 총각 때 ,학창 시절 석초문학회에서 같이 활동하던 김명수 안홍렬 전민 문인지망 3총사와 선배인 윤석산 ,나태주 ,이장희 이관묵, 구재기 시인과 함께 동인회를 창립하자는 의견이 논의 되었다 몇몇은 수시로 공주, 서천, 당진, 홍성 등을 오가며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간밤을 같이 지새우기도 하였다 맏형격인 나태주 시인이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 가속도가 붙어 같은 해 겨울에 공주에서 새여울시문학동인회를 창립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학동인회가 별로 없어 문학인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쏠렸다 새여울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공주문화원에서 하였고 이학이라는 제법 큰 식당에서 축하연을 갖게 되었는데 한성기 박용래 림헌도 원종린 최상규 한상각 조재훈 문인 등 대전 충청의 문학인들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조연현 김윤성 문덕수 박재삼 등 책 속에서만 읽던 유명 문인들이 참석하여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당시 최고의 문학지인 현대문학 주간이신 조연현 평론가는 애송이 청년 문학도에 불과한 나의 골상을 점 봐주신다고 자청하여 그럴듯하게 풀이해 주시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고 박수도 받게 되었다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은 2년 후다. 나태주 시인의 결혼식에서 처음 뵈웠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스포츠 머리에 인자한 눈빛, 한마디로 멋장이었다 그 보다도 어려서부터 목월의 시를 찾아 읽으며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이었다 1973년 10월 21일 장항 미라미 예식장에서 나태주 시인 결혼식 주례를 보기 위해 오셨을 때 내가 사회를 보게 되어 가까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혼식장에서도 많은 문인들을 만났다 박재삼 ,박용래, 최원규 시인 등과 새여울동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결혼예식이 끝나고 승용차와 찝차 등 수배된 9대에 알맞게 나누어 타고 나태주 시인의 시골 고향 집 막동리로 향했다 집에서 잔치를 벌였다 사랑방 격인 큰 방에는 주로 문인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푸짐하게 차려놓은 잔치 음식과 동동주를 나누며 흥도 고조되었다 불과 열아홉 살 위인 형 같은 나시인 아버지도 아들 결혼이 생애 최고로 기분이 좋으시다며 참석해주신 여러 문인들에게 고마워 어쩔줄 몰라하셨다
박목월 주례선생님 옆에 앉아 음식 시중을 들던 사회자인 나에게 음식과 술도 잘 안하시던 목월 시인이 잠깐 산책을 같이하자고 청해오셨다 단둘이 시끌법석한 방에서 나와 나시인의 고향집 담장을 끼고 시나대나무숲이 우거진 조그마한 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대숲은 조용히 파도치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과 마음속 깊은 대화라도 나누는 듯 소곤재고 있었다 나 시인 고향 집 울타리는 키가 작은 시나대나무가 대신 보초 서주고 있었다 목월 시인은 나태주 신춘문예 당선 시인의 심사위원장이었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나태주 대숲 아래서 1연 전문
대숲 아래서 시의 모티브가 바로 이 대숲에서 나왔다고 혼잣말로 속삭이시며 나에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물어오셨다 대나무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사철나무의 빨간 열매며 온갖 풀꽃들의 생태까지 자세히 관찰하시며 여러 질문을 해오셨지만 나는 명쾌한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고 자라오지 않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한편 자신이 부끄러웠다 좋은 시는 모든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고 좋은 시인은 목월 시인과 같이 관심과 관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박목월 시인의 처가가 공주라는 것과 사모님과의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러브스토리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래서 그런지 경상도 태생 시인이 충청도에 대한 애정도 시어 곳곳에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여 흥미로웠다
나 무
박 목 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