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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제1시집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
목 차
1 부: 사랑의 언어
사랑의 言語.1
사랑의 言語.2
사랑의 言語.3
사랑의 言語.4
저 銀밭에 빨간 꽃송이를
석고상
안면도 소나무
달맞이꽃
월광곡
아내의 꿈
가자, 오월에
빈바다
가을꽃
눈 내리는 날
눈밭
겨울 산사엔
雪夜
새벽-눈-별리
여름달
흙비
산사풍경
그 이후
춤 한판 꽃 한 송이
思美人曲
2 부: 저울산 밑의 풍경화
근황
진달래꽃
일기
변명
披瀝.1
披瀝.2
披瀝.3
여름산
바닷가에
대나무
밤바다
선인장
산파도 소리
가을 나비
回想別曲
가을 나들이
不惑
날보고, 산이
세모에
저울산 밑의 風景畵
제 3부 : 사는 방법
勝負時代
요새 듣는 말
일과표
벽(壁)
사는 방법
가야산
아들놈의 잠든 곁에서
視感
住民登錄證을 更新하며
흔들리는 두 肖像畵
실수
약국집 할아버지
이서방 이야기
느티나무집 술 이야기
愛妓峰에서
獨立紀念館에서
세월산책
바람일기
廣川장날
1 부: 사랑의 언어
사랑의 言語.1
사랑의 言語.2
사랑의 言語.3
사랑의 言語.4
저 銀밭에 빨간 꽃송이를
석고상
안면도 소나무
달맞이꽃
월광곡
아내의 꿈
가자, 오월에
빈 바다
가을꽃
눈 내리는 날
눈밭
겨울 산사엔
雪夜
새벽-눈-別離
여름 달
흙비
산사풍경
그 이후
춤 한판 꽃 한 송이
思美人曲
사랑의 言語.1
1
누에는 제 몸을 뽑아
껍질을 織造하지만
사랑은 영혼을 뽑아
진실을 가두는 慈善을 베푼다.
2
내어주는 아량보다
베풀어 받는 恩惠의 색깔
잃은 것을 그리워하기보다
아까와만 하는 그물에
밀물이 썰물을 덮쳐
네 마음 걸려 들어오고.
3
바랐던 것, 실뿌리
잎마디 숨소리까지
보듬고 가꾸기를 원했던 것은
네가 나의 봉오리로
여직껏 머물러 준
고마움 때문이었다.
4
돌개바람 이었다
산파도 소리 때문 이었다
외로운 님의 무덤가에
영혼 되어 돌고 돌다가
남은 것은 알갱이
빈껍데기만 날아갔다.
사랑의 言語.2
1
깊은 가슴
숨긴 가생장이
언질 없이
솟은 싹 한 촉
봄비, 흙비, 눈비 받아
새 순 반 치 뻗어
잎 하나 돋고.
2
잎 꼭지
간질이던 샛바람
열세 바퀴 회오리바람
쌓인 열정 몰아
온몸 훑어 갈 때
뿌리 몰래
잎 떨어지는 팔
낯 설은 꽃망울
대신 피어오르고.
3
초여름
제 몸 흔드는 푸르름에
지쳐 떨어지는 잎
한가위
달빛 너무 눈부셔
뒤에 감춘 꽃송이
안으로만 만났다가
철 다르게
가고 오는
잎사귀와 꽃송이의 진실
4
꽃
먼저 떨어져
안개로 감싸와도
이름 붙여진
다른 잎으로는
눈부신 빛
가리지 마오
잎
발길 돌려 이승 떠난 뒤
보플은 가슴
꽃송이라 해도
네 이름 밝혀
저승 밝히리.
사랑의 言語.3
1
촛불은 심지를 태워
불꽃을 피우지만
사랑은 영혼을 뽑아
가슴을 더웁힌다
목마른 빛을
당신에 내품는
<보노니아>의 돌.
2
꽃은 봉오리
달은 초승빛
사랑은 귀먹은 소경, 벙어리
잠긴 빗장을 빼려다
수백 번 기진해
별 한 번 훔쳐보며
다시 일어나서
마셔보는 한 움큼의 너.
3
땡볕에 말라가고
파도에 씻겨가고
불타 없어져
패인 자국 위에
하얀 눈 뚫고
뽀족이 솟아 나오는
파란 싹.
4
품에 넣지도
꺼내지도 못하는
중심점은
완벽한 원을 낳는다
이름도 없으면서
관계도 못 찾으면서
둘러처진 생울타리
그 안에
쏟아지는 햇살
맴도는 意味.
사랑의 言語.4
속뼈 시린 겨울나무 알가지
눈 고픔에 지친 그믐달
숲 속에서 내려온 청노루
바람 타는 그리움
목마른 해질녘
아픈 살갗 도려
새살 빚는
하얀 바다
봄의 눈
이슬 받은 잿더미
헤집고
푸르륵 날아간
불새.
저 銀밭에 빨간 꽃송이를
빗바람 쌔리는 소리
그 소리를 재우려는 속소리
천둥 번개 치는 소리
대답하는 조그마한 목소리
그래도 못다 핀
깊숙한 내 소리
두었다가
얇다란 네 겹 망사
벗으면 하얀 속살 깊이
훔쳐온 匕首처럼
숨겨 두었다가
버선발 흰 구름 차며
비단 폭 치마 너울거리시며
그 이가 오시는
간 밤 꿈결에
장미꽃 피우자
저 銀밭에 빨간
꽃 한 송이를.
석고상
언제 부터인가 여직것
만지작거리던 遺像
계절 잃은 여인 하나
빛바랜 과거를
석양에 反芻하고
陰影을 채운 까만 눈
앙금이 된 이슬방울
무지갯빛 따라
통 굵은 거미줄을 치며
스쳐만 가던 바람
내 것 되어 잠시 머물 때
꿈처럼 피어나는
또 하나의 像.
안면도 소나무
밤 파도 소리
가슴 파고들 때엔
제 몸 부벼
새벽같이
솔바람 일구고
멀어져 가는
뱃 등불과
까치발로 서
눈 맞춤 하다
목이 길어진
안면도 소나무
「파도야」
「바람아」
천년
내 맘 휘지마아.
달맞이 꽃
화려한 꿈은
색깔이 없습니다
총천연색의 꿈은
아예 꾸지 마십시오
요란스런 출발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위대함이 베풀어준
빛의 그늘 아래
꽃대궁 반쯤 열고
잎새기 반쯤 쫑긋
꽃손 모두우며
상현달을 향해
안으로만 채울 뿐
고운 볼
깨칠세라
울지도, 웃지도 못 합니다
달빛 아래
소복한 여인의 머리칼
너무도 곱습니다.
月光曲
창 밖에 흐르는 달빛이
너무도 고와서
혼자 보내기 아까울 때엔
친구야, 찬란한 불은 끄자
불 꺼진 이웃들
떠나간 자리에
건초더미 숨죽듯
속마음 타박타박 타들면
파문 따라 촛불 심지 불 붙여라
풍만한 보름의 기쁨보다
비린내 채 가시지 않은
무지개 꽃 피는 소녀의 가슴
타들어 가는 내 마음 속
깊은 뜻을 더 사랑 했었다
창문 너머 하늘 끝에는
물 긷던 누나 깨트린 쪽달
울안 그 다락마루 벼갯머리엔
달빛 받아 좋은 촛불
내 마음밭엔 별빛 되어 날아가
가을 하늘 지켜주는 그대의 눈.
아내의 꿈
달빛 가까워 좋은 푸른 언덕에
조그마한 빈터 하나 마련해 두었다가
모은 돈 더 늘리거든 둘 마음에 딱 드는
파란 대문에 당신 문패 단 하얀 집 지어요
안 뜨락에는 사철 푸른 나무 심어놓고
간간에다 장미 국화 사르비아 봉숭아
꽃을 바라보는 우리 둘의 마음은
보름밤 호숫가에 돛단배가 될거예요
담장 안 남은 땅에다가는
상추씨 뿌려두고 여름을 기다리며
고추씨 심거 놓고 가을을 맞으며
노랑 나비 뒤웅벌도 불러들이고요
얕으막한 담장 위에는 호박넝쿨 박넝쿨
으름나무 석류나무 등나무 뒤엉켜
얼싸 안은 우리 아이들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四時長春
의좋게 무럭무럭 뻗어가고요.
가자, 오월에
산으로 가자
송화 가루 날리는
찔레꽃 화사한 언덕 넘어
솔산으로 가자
가서 맘껏 들이키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엔
사철 푸른 솔나무가 싹 터오고
풀꽃들이 피어오르고
오월의 노래는
초록가루를 싣고
나의 노래는
그 가루를 툭툭 맺혀 영글린다
가자
검정 고무신짝 벗어들고
「순이」와 피라미 몰던
호띠기 나무 늪 시냇가
소 꼴 먹이던 긴 냇둑 위
풀피리 늴리리
오월의 하늘은
투망에 걸린 고기 떼
많은 별들이
옛 추억처럼 반짝인다.
빈 바다
물 빠진 갯벌엔
파도를 그리는 빈 배가
한 폭의 그림으로 머물고
목 쉰
갈매기 두어 마리
고향을 부른다
빈 바다는
알 살 홀딱
드러내놓은 여자
일, 그 후에
곤히 잠에든 아내
썰물이
훑어줄 속살을
고히 어둠으로 입는다.
가을꽃
비로소
내가 너에 멎었을 때
너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사랑스러울수록
멀리서 바라만 보던
옛 여자처럼
너무나 아까워서
보고만 피워온 꽃
이른 봄 새벽부터
내 마음의 텃밭에
자리를 물려주고
눈만 조아려도
옷고름 입에 물던
새새댁 수줍음
오직 꽃에서 꽃으로
머물기를 바랐던 네가
양가슴 흩트린 채
돌개바람에 안겨
달려와 , 눈 쏘아부치고
몸쓸 웃음 남겨둔 채
둥실둥실 춤을 추면서
오늘도 내 앞에서
맴을 돌고 있네.
눈 내리는 날
첫눈 내리는 아침
둘이는 처음으로 만났지요
하햫게 덮인 눈밭을 바라보며
이 세상 그렇게 살아가자고
꽃은 보는 것, 꺾는 것이 아니고
눈은 받는 것, 밟는 것이 아니고
童貞은 갖는 것 , 주는 것이 아니고
그 후로는 그 때처럼 그렇게
하얀 눈이 내리지 않았지요
성스럽게 보지를 못했는지
정결한 눈을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이 저당 잡혔었는지
내리는 눈도, 보는 눈도
예전 그대로인데
그를 둘러싼 빛이
본래의 자기 빛이 못 되었는지
훨씬 그 후에
둘이는 새처럼
다른 길로 날아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나무 빈가지에 꽃이 되었지요
눈이 참 아름답다고
아름다움을 찾는 눈은 더 아름답다고
그러나 고통이 될 수도 있다고
고통은 후회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태어난 후회는
뿌려진 씨앗을
썩힐지도 모른다고
싸락눈이 내리는 날 저녁
둘이는 말없이 돌아 섰지요
세월이 罰이 되었듯이
순간이 罪가 된다는 가정을
가슴 깊이 묻으며, 다독이며.
눈 밭
그림 속으로 가자
풍경으로 잡히자
어머니 품속처럼
다사로운 얼굴
뽀얗게 품어놓은
고향의 입김
돌아서서
조끼, 바지에 돌아서서
눈을 꽁꽁 뭉치면
눈밭은
나의 소학교 운동장.
겨울 山寺엔
흰 눈 가득 덥힌
산사로 살며시 찾아 오렴
눈길을 뚫고
고드름 녹는 양지 곁으로 오렴
겨울나무 가지 위에 맺힌
백합송이를 힘껏 안아봐
볏집 깔아 놓고
얼어뭉친 침묵 깨어지는
그 순간 기다리자꾸나
눈 꽃송이 활짝 핀
겨울 산사엔
언 땅을 헤집고 막 트려는
어린 싹들의 파란 소리가 솟는다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설레임 있을까.
雪 夜
타들어가는
촛불 심지 돋구며
질화로 불돌 달궈가는
깊은 이 밤
하얀 이마
길다란 머리칼 흩날린 채
기척도 없이 찾아온 손님
저고리 고름
지긋이 입에 문
새아씨처럼
수줍은 내 시가 되고
여인이 되어
가슴속 깊이 안긴다
창밖은 저리도
고운 꽃을 피워대고
너무도 정결해서
피하는 그에 대한 찬 손.
새벽-눈-別離
흰 눈 소복이 쌓인
첫 새벽길을
뚫고 떠나시는 그의 뒷모습이
그렇게도 고와 보일 수가 있을까
아침 햇살이 훑고 난 뒤엔
하얀 눈이 물들고
황톳길이 들어납니다
-어서 빨리 딛고 가십시요-
헤여저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떠나시는 그의 발길에
곱게 뿌려주신
간밤의 축복
確信은 그 위에 더욱더 빤짝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끝나고
다시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여름 달
들마루에 누워
쫓아가본 초승달
갓 시집온 새 각시
동물 치는 울안
닦은 속살 간지럼 치다가
쑥 타는 냄새
모깃불 연기 감싸주다가
정자나무 밑
장기판 읽어 주다가
들창문 열어
긴 발 걷고 넘어가
합죽선 손에 든
옥색 치마 날 올 따라
바람처럼 흐르는.
흙비
1
당신이 나 몰래
나에게 걸어준
당신의 시간엔
천년 묵은
해변의 돌너덜이
물손에 너울거리고
당신의 고운 생각만을
캐내려다가
냉큼 뽑히지 않아
버려둔 밑둥가지
그 속 깊이에는
황하의 먼지가
돌처럼 굳어
사멸직전의 새벽빛을
목 조르고.
2
지난 겨우내 열린
땅을 헤집고
고이 뿌려둔 씨앗 한 톨
하루 열댓날
밤낮으로 지켜 서서
다독거리며 들여다보며
언 땅을 불며
막대고챙이 같은 된서리
마구 난폭해질 때
대장간 골풀무
파랑개비 소리
천둥번개 섞어칠 때
겨우사
트이는 움의 시도
당신의
새벽 빛 한 줌
이른 아침
자각에 흔들리는
제 줄기 빛을
더 아름답게
지울 수는 없을까
3
당신의 굳게 닫힌
철창을 열고 들어서면
잽싸게 결박하는
산파도 그 소리
綠苑齊의 뒷뜰은
다시 반란이 일기 시작하고
아무 욕심 없이
소속에서 풀리며
당신의 발끝에
돌처럼 채이다가
비바람에 깎이어
모래가 되고
바닷물에 씻기다가
돌풍에 날려
흙비가 되고
당신의 머리칼
칼, 가닥마다
차분히
내 또한
전율되어 오고.
*綠苑齊(녹원제) :홍성군 은하면에 있는 필자의 고향 생가집.
山寺 풍경
저녁노을 침묵으로
나비 되어 산사에 내려앉고
외진 승방 감아 도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외지에서 찾아온
수녀 한 분이
동양화 한 폭으로 머물러 있다
-석가여래상과 동안의 이 수녀님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도수 높은 안경을 눌러 쓴
무척이나 키가 큰 스님 한 분
다갈색의 바리때 닦아들고
승방 안쪽 문을 들어선다
수녀님과 스님의 두 눈 빛은
한 점에 멈춰 포개지고
무섭게도 조용한 시간은
어둠처럼 덮여가고
불교학원을 나와
수녀가 된 그녀와
수도원을 나와
스님이 된 그이의 그 이후는
서로가 말하지 말자는
오직 하나의 그 무엇으로
화석 되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노을 나비 되어
동양화 한 폭에
말없이 내려앉는.......
그 이후
1
막차가 떠난 철길
반대쪽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꽁무니에서 내뿜던
매캐한 애증도
북풍받이 언덕에서
훔쳐본 뒤통수의 매무새도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그늘 짙게 깔려오는데
칠팔월 복중에도
어김없이 찾아들던
오슬오슬 살 추위.
2
때로는 앞보다도 더
뒤를 돌아보았다
때로는 빈자리
메꾸며 마냥 서있었다
얼마고 서있었다
꽃불 난 봄 동산
불사르는 사르비아꽃 여름
타고 남은 재 알 모으던 가을
텅 빈 가슴 불타고 있는 두 장작
모든 것 다 버리고 나도
더욱더 세게 불어오던 바람
세월과 거래하지 않으며
삥삥 돌아오던 바람.
춤 한판 꽃 한 송이
Ⅰ.살풀이/민들레
1
곱게 빗어
흘린 머리
옥양사 하이얀 치마
폭마다 맺힌
여인의 천년 恨
옷섶 깊히 깊이
주름 잡힌
테 굵은 응얼
속저고리 안고름 풀리듯
조금씩 풀려간다
光陰을 돌아서
순간에서 숨쉬고
치마끈마저 풀어져
만주벌판 뒤흔드는
고구려의 북소리.
2
별은 떨어져
땅 위에 민들레꽃
내 너를 마음껏
임금 되어
짓밟고 서있다
앉은뱅이 미움드레
뿌리만은
깊이깊이 더 속 깊이
빼앗긴 별의 혼을 찾아
하얀 날개 펴고서
푸른 하는 마음껏 날고 싶은
명들레
문들레야.
Ⅱ.장녀춤/동백꽃
1
가슴에서 배꼽까지
애그머니 저걸 어째
소복이 솟은 통배에
가랑이 타진 단속곳
엉덩이 덮은 봇짐
꽹과리 꽝꽝
신 난다 신바람 나
重光스님 손을 잡고
북소리 뚱따당 뚱
호습구나 이 한 세상
가렷던 진실
허물 벗듯 풀고 나면
산다는 곳은 무대 위
인생은 가면극.
2
봄은 예 없다
아름다움은 남의 여자
여름도 없어졌다
가을마저 도망첬다
선택의 자유는
내 차지가 아니다
꽃이 없는 계절
향기마저 돌아가
벌과 나비는
자격이 상실 됬다.
바닷바람 얼어붙은
진눈깨비 쌔리는
돌섬 언덕배기
靑松에 핀 눈꽃
건너편 붉은 꽃
연두색 흰 테눈박이
수안나 동백꽃 위에 앉아
겨울은 내 지킬테니
너희들은 다 가란다
봄, 여름, 가을
다 가란다.
Ⅲ.소고춤/튜울립
1
나비 되어 나르다가
꽃으로 피어나는
신들린 손놀림
나릇나릇
울렁울렁
소복한 여인
내딛는 한 뼘
물러서는 반 발짝
장구잡이 아지배의
저도 모르는 어깨춤
하늘에서 구경 온
仙女님도
새납 소리에 맞추어
飛翔시간 잊고
함께 춤을 추네.
2
하늘 아래
작은 산동네
눈이 맑은 소녀
이승에서
왕자님의 금관도
흑기사의 용검도
부잣집 도련님의 황금상자도
한 떨기 꽃으로만 받아들였네
꽃잎은 금관
잎사귀는 용검
뿌리는 황금
마음은 비, 바람 가려 필 줄 아는.
Ⅳ. 밀양북춤/복숭아꽃
1
겨울 눈 녹거들랑
씨앗 뿌려 봄눈 틔우고
중의적삼 적신 후에
줄기 뻗고 가을 맞아
햅살로 소시루 떡
천곡지신 드신 후에
밀대방석 돌고돌며
어개 잡고 마당놀이
복채 잡은 할아배
호두나무집 수염
얼굴 붉히는 할매
설익은 열일곱 살 마음
2
울안에 배꽃 피면
담 넘어 복사꽃
이 세상 어디엔가
골짜기 물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흐느끼게 살기좋은
복숭아꽃 핀 마을
기다리고 있다던데
백 살 노인은 언제나
홍안의 소년이고
生 ,老, 病, 死가
사전에도 빠지고
도연명이 놀다가고
황진이도 살고 있는.
담 넘어 복사꽃 지면
울안에 배 떨어지고.
Ⅴ. 학춤/난초
1
샛하얀 긴 목
갓 받쳐 쓴 품위
도포자락
길다히 드리운
가녀린 운치
두고온 솔밭 그리며
한 발 쳐들어
세상 받친 긍지
땅에서
머리가 너무 멀어
비켜가는 열구름
매일 그렇게
쫓아보고 있나.
2
한 세상
욕심 채워 살려면
못할 일 뭔가
모래 섞인 물에
눈부신 빛 막아 줄
벽 하나 있으면 되지
짧은 생애
광내며 살려면
못 살거 있나
곧은 줄기
있어서 흐뭇한 친구
꿈의 향기 찾아주면 고만이지
젊은 문지기가
아무도 모르게
공주님의 머리에
꽂아준 선물
난초꽃.
思美人曲
1. 할머니
오랜만에 고향 집에 가면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울으셨다
거친 바람 불어오는 북북서 쪽
손자 사는 쪽만 바라보며
하루해를 넘기신다 하셨다
곁을 떠나 바람 이는
이곳으로 돌아올 때는
산모퉁이 지나 차턱까지
불편한 몸 이끌고 따라 오시며
당신과 함께 살 수는 없느냐고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지금 마음먹고 고향에 가도
그 할머니는 안 계시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이
양지 바른 산소 위에 잔디처럼
노랗게 노랗게 뻗어 갈 뿐.
2. 思, 부모
당신들의 마음밭에
싹을 못 틔운 씨알
당신들의 가슴 속에
날지 못하는 한 쪽 날개
이웃보다 못나지 말라 못살지 말라
무딜 대로 무디어지신 세월
손과 발 주름살 흰 머리
내가 받은 사랑처럼
베푼 은혜 하나 없어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쯤이면
계신 쪽을 향해 머리 숙인다
세 아이들의 아비가 되어서야
바다 담은 마음 조금은 짚으며
나도 당신들처럼 그 보다 더
내 아이들을 잘 키워야지.
그리고는
최소한 너희들로 하여금
부모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말자.
3. 아내
버들강아지 봄내 뽑아
보름을 향해 물오르는.
냇물에 씻긴 상현달
慈惠의 손, 아침 햇살
천년 다져온 마음의 약속
모닥불 피어오르는 자리
숲속 돌 틈에서 샘물이 솟아
봇도랑 물 넘쳐 흐른다오
산 새 몇 마리
행복의 시알을 몰고 와
우리 곁에 뿌리고 가오
석벽 위의 돌개바람
눈 속에 핀 여린 꽃이라도 좋소
달빛 섞어 타는 촛불 세워
새벽별 주워 담은 바구니
깊이 높이 들어 올립시다
4. 새해
우리 새해는
새해를 맞을수록
새해답게 새로와진다
처음으로 너를 맞아
항시 처음으로 시작되는 너
삼백 예순 다섯 날이
하나로 뭉처진 너
그래서 더 소중한 너
기차는 레일이란 궤도가 있단다
새해는 새해의 길이 있다
다소곳이 혜틈 없이
비갠 뒤의 가을 하늘처럼
맑고 곱고 높게 피어난
꽃 속의 향기이어라.
*새해: 첫 딸의 이름
5. 보람
내 보람은
네가 더욱 여자스러워서다
말수가 적은 넌
눈밭에 핀 매화
한 촉의 난초
매화와 난초는 고결한 반면
약한 감이 있음을 알자
一片丹心 들국화
뻗어가는 죽순
민둥산 소나무의 강인함을 배우자
눈 속에 핀 매화 향기로
이른 봄 맞을 채비를 차리자
*보람: 둘째 딸이자 막내 딸
6. 가람
흰 눈이 산을 쌓고
들을 덮더니
드디어 너를 이루었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줄기
희망 찬 바다로 이르는 길
너에게는 오직 하나
이 넓은 길이 주어진다
꼿꼿하게 멈추지 말고 흘러라
부딪치는 모든 것을 헤쳐가라
힘에 겨울 땐 삥 돌아가는 지혜를 가져라
삭막함엔 굳센 물살로
범람하는 곳엔 찬찬한 自制로.
*가람: 장남이자 막내아들 이름
2 부: 저울산 밑의 풍경화
근황
진달래꽃
일기
변명
披瀝.1
披瀝.2
披瀝.3
여름산
바닷가에
대나무
밤바다
선인장
산파도 소리
가을 나비
回想別曲
가을 나들이
不惑
날보고, 산이
세모에
저울산 밑의 風景畵
近 況
내 한참 어렸을 때
장터 가신 할머니
성황당 고개까지 마중 나와
장바구니 미리 펼쳐보기 까진
그렇게 가슴이 떨렸었다
내 한참 나이 들어
너 보고 싶어 편지 쓸 때
무너지는 봇뚝물
가슴 쥐어짜내 틀어막을 때
그래도 한 구텅이는 남아
몸 전체가 침전되어 갈 때
내 마음은 그렇게 파도가 일었었다
떠날 사람 모두 떠난 시간
남은 사람만 남아 지키는 자리
떨릴 일도 하나 없는 지금
어제는 낙엽 진 겨울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오늘은 흰 눈 쏟아지는 동학사 계곡을 생각하며
고장 난 신호등의 네거리에 나 여기 서 있오.
진달래꽃
샛바람 불면
젖꼭지 간지러워
길가 언덕
맴도는
연달래
꽃불 난
앞뒤 산
두견새도
밤잠 잊었나
북으로는
고구려의 만주 벌판
남으로는 신라의 한라산
몸으로 지켜온
正 五品의 그 절개
蘭달래
진달래꽃.
일 기
오늘 한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희미한 껍질 한 쪽
들어와 차지 않는다
안개 낀 거리의 골목도
겨울비를 맞으며 걷다가
목노에 앉아 입술을 마주치던
따스한 유리컵의 촉각도 되살아나는데
화단에 꽃씨를 묻고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몇 년 전 사귀었던
안경 쓴 여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바람 부는 날
내 속 깊이 일렁이던
파도 너비가 떠오르지 않는다.
여직껏 미뤄온 중대발표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변 명
거센 물결을 피해서
禍를 모면하거나
삥 돌아서 건너가는
재주를 아직 배우지 못했네
똑바로 건너다보이는
불 밝은 저 건너
언젠가 가서 쉬어봄직한
지금은 자네들만의 곳
건너편 그 기쁨이
스스로 와 주는 행운을 차지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딱 맞는
세상 깊이를 찾아내
허벅다리 걷어 부치고 건너가는
용기를 부리지 못하며 내 여지껏
삼십 칠년을 장승처럼 여기 서있었네.
披 瀝. 1
1.
산초 열매 반쪽 벙글어
별빛 채워 아무는
백양나무숲 개울가
조약돌 씻는 마음에서
손 탐 없이 지켜온
풋머리 산 그림자
비린내 채 가시지 않은
무지기 소녀
일곱 층 끝 단
참새 떼 날아와
노란 햇씨를 뿌린다.
2
비 갠 잔디밭
풀잎마다 열린 무지개
미끄럼 타며 노는 물방울
휘파람 곱게 불면
일제히 水液을 펌프질하는
나무들의 행진
화강암 굴 바닥에
솟아오르는 돌순처럼
톡톡 솟아나오는 샛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와 같이 나를 위하여
童貞을 지키듯
잃지 않은 눈매
마음밭 깊은 곳엔
사철 푸른 소나무가
다른 방에는
때가 고조된 아내가
나를 기다리듯
고향 따라 뻗어가는 싸리순
고향 하는 지켜주는
그녀와의 눈맞춤.
披 瀝. 2
1
산새 발자욱이
꼭 한 번만 스치다 박혀버린
산소리 울리며
배어든 돌 모서리
냉엄한 신의 말씀은
기차바퀴처럼 달려오고
솔삭정이 떨어지는 새벽
풋잠 깬 천둥 번개
알몸에 제 혼 부며
산파도 일으킨다
숨겨둔 속살 깊이
그래도 못다 핀
칸칸이 들어찬 뜻
첫눈 되어 내리는 날
촛불 심지 돋우며
질화로 불돌 달궈
차가운 가슴 더웁히자.
2
빨강 눈꽃 열매 속에는
통살을 헤집고 차오르는
파란 숨결이 모인다
맵새 한 마리
달빛 향내 목에 걸고
솔포장 사이 하얀 눈에
부리 씻고, 귀 닦고
사랑스러울수록 멀리서
바라만 보던 그 녀
보고만 그리던 山頂
동굴차고 나온
겨울제비 한 마리
날개를 털고 일어선다.
披 瀝. 3
1
사생아의 울음소리
진달래 꽃불 난 양지 뜰
고삐 풀려 말 달리고
맨살로 부벼대는
기나긴 밤 개구리 떼
피 말린 울음 속에
긴 그림자로 사리어온
등걸밭, 쓰러진 고목
젖꼭지 물고
잠시 움돋는 곁가지
냉혹한 오늘의 처단
도끼 되어 내려찍을 때
자라목처럼 떨어져
꿈틀거리는 어린 체온
끊긴 핏줄 따라
얼마나 더 따뜻할까
2
잠든 동산 골짜기
사막에서 뿌리 굳힌
기존의 질서를 간음한
크레인과 불도저
만삭이 된 아내의 배 위를
뱀처럼 지나갔다
흩어진 영혼의 시신 위에
깃발 되어 펄럭이는
윤사월 등걸밭.
여름 산
첫 여자를 어르듯
여름 산을 탔다
속 샛길 옴팡진 계곡마다
숨은 돌 돌 물
물돌아 흐르고
산새소리 풀꽃 내음
뿌리박힌 가슴
흐르지 못하여
더 데워진 세월
낮달 빠져
차가와진 피
너럭바위 틈새로
되쏘는 빛살
치마끈 푸는 俗離
여름산은
바닥난 샘이 아니다
새로 솟는 발견이다.
바닷가에
미역 냄새 해초 내음 갯골 타고
촉촉이 불어오는 솔숲 언덕에다
행주치마 너비만한
초집 한 채 오뚝이 마련하고
둘이는 하나처럼 살겠네
토방 위엔 세파에 깎인 조가피와
천년 씻긴 조약돌이 가득하고
나는 철없는 내 아이들처럼
맨발로 모래밭을 휘젓다가
갯흙이 묻은 손끝으로
원고와 책들을 매만지며
책갈피 작은 바다 파도 따라
갈매기 되어 나를래
뭍을 떠난 꿈의 통통선
피안에 와 닿을 때
밤파도 소리는 일기시작하고
비워둔 또 하나의 방에는
상현달빛 외줄기
멀리서 들려오는 영혼의 속삭임을 부르며
가냘픈 맨살을 창틀에 부벼대며
제 몸 앓고 있을걸세.
대나무(竹)
곧게만 자란
외로운 성미
휘어진 매디마다
대롱진 기도
-꽃과 열매를 주십시요
-떨어뜨려 썩혀도 좋은 금쪽 열매를
칸칸이 들어찬 속말
뚫려다
뚫려다
뚫리지 못한 채
안으로만 커가는
고뇌의 뿌리
나를 키우는
양식인가요.
밤 바다
금빛
물랑을 켜던
바닷 노을
독에 빠젔나
하늘이 내려와
검은 포장을 덮고 있네
쎈 빛에 시든
그믐달 쪽
하나
어둠 위에 건져
모래밭에 뉘일 때
밤 바다는
헛 토약질을 하며
녹아 떨어져
코를 고는
巨人.
선인장
아파트 4층 베란다 위
흙냄새, 아침 햇살, 목 태우다
스쳐가는 석양으로
남국 향한 그리움 채우며
忍苦의 푸른 가시
안으로만 커간다
고향도, 사랑도, 은혜마저
5촉 전깃불에 맡겨버린
욕탕 안 세면대 위
번뇌의 이슬 받아
欲情 가누며
스스로 생 빛을 뽑아
제 몸을 찌르고 있는.
산파도 소리
순결을 빼앗긴
내 여인의 속마음에서부터
독수리 발톱에 찢긴
신라 여인의 치마폭에서부터
길 잃은 겨울 나비들의 날개깃에서부터
일기시작한 말 없는 소리
불 꺼진 밤
외로운 님의 무덤가에
영혼 되어 돌고 돌다가
산을 뒤흔들고 솔밭을 출령인다
마침내는
이 산마저 산산이 휩쓸어 가고야 말
저기 저
산파도 밀려오는 소리
이승에서 못다 한 모든 소리.
가을나비
모두들 툭툭 털고 일어서
저만큼 날아가거든
한 구새통에 꾸겨져있던
나의 나비야
찢긴 날개 펴고서
꽃 宮으로 오거라
반란의 소리 멈추고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울안에 간간히 들리거든
불 꺼진 밤
잊혀진 노래를 챙겨
떨어지는 꽃잎파리
그 위에 모이자
눈보라 찬 서리
매섭게 쌔려올 때엔
우리 모두 어차피 숨어야 할
나의 가을 나비야
나는 오늘을
너의 꽃으로서 만족하마.
回想別曲
녹원제를 떠난 지
십년이 훨씬 넘었다
처음에는 미아처럼
타는 입술 먼지 나도록 깨물었다
참한 동네 처녀 하나 구해
떡두꺼비 같은 증손자 하나 얻어
남들처럼 오순도순 사시자며
한없이 흘리시던 할머니의 눈물
지금 녹원제에는
온상에서 키운 싹이
비바람에 꺾일까, 센 빛에 시들까
자식 걱정에 긴 밤 지새우시며
손발이 부르트신 부모님이
나의 할머니 대신
내 어린 것들의 할머니로
살고 계시고
녹원제를 떠난
산새 한 마리
날개를 접고 둥지를 튼다
가로등 아래, 오늘의 주제를.
비바람이 쌔려도
쎈 빛이 눈부셔도
발로 박찬 고향 냄새 찾아다가
미뤄온 중대발표 한데 몰아
천년 웅크린
거센 파도 삭는
내일 아침에는
간밤 태우고 태우던
집념의 불꽃을 모아
내 아이들의 고향에
둥우리를 틀어주어야지.
가을 나들이
1
가을비 촉촉이 받으며
외진 들길 돌고 돌다가
산디사방 흩어진
별꽃 이야기 모아놓고
두 팔 양 날개 펼쳐
하늘 높직히
훨훨 날으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2
잎 지는 오리나무숲
풀 바람에서 익힌 몸짓
돌개바람에 똘똘 뭉쳐
❲정읍사❳망부석 위에
퉁수 불고 앉았다가
목 타는 사막 위에
전설되어 돌아왔다.
3
불 꺼진 밤
시베리아로 날아간
어미새
둥우리엔 첫눈이 내리고
실향민의 마을
잔주름 밑에서
밀알을 품고 있는
나는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은
한 마리의 새.
不 惑
세상사는 깊은 뜻
내 아직 모를 때
불개미 떼의 행렬을 쫓아
물을 부어가며 흩어지는 모습 따라
너털웃음 웃어도 보고
꺼먹 고무신 두 발로
싹싹 문질러 흔적도 없애고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
완벽한 神이 되었었지
세상사는 깊은 뜻
내 아직 모를 때
춤추는 고추잠자리
보는 대로 잡아다가
두 날개를 비틀기도 하고
한 쪽 날개만 찢어 놓기도 하고
끝내는 양쪽 날개를 모두 떼어
파닥이는 몸뚱이
뒤트는 생명에
박수치며 너털웃음 맘껏 베풀어주던
절대 神, 나였었지.
그저께는 대홍수가
배고픈 몇 백 명을 휩쓸어 갔고
어제는 빈창자가 터지고
들어간 눈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인도의 가스 폭발 사고가 있었고
오늘은 갓 태어난 아기마저
천 길 깊이 묻어버린
콜롬비아, 화산 폭발
내일은 무근 罰들이 또
기다리는 사람 없이
준비되고 있을까
내 나이 이제 불혹
아직 세상사는 깊은 뜻
깊게는 모르지만
불개미 떼의 행렬을
엄숙히 지켜보며
갈대 깃에 찢긴 고추잠자리의 날개도
떼어주고, 때로는 기워도 주고
쓰러진 패자의 얼굴
터진 코, 피 흐르는 입술에
볼도 부벼주고 싶고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정말로 용서해주고 싶고
던지는 돌팔매의 표적에
대신 맞아주고도 싶은.
날 보고 , 산이
아침 산 위에
또 다른 한 산을
그려가는
비 갠 뒤의 송이구름
삼십년 미룬
천둥 번개
엊저녁 고이 달래놓고
움켜둔
마음 펼쳐
날개 달린 詩나 쓰며
거센 파도 삭는
내일 아침에는
숨겨둔 씨줄 한 올을 뽑아
미뤄둔 날줄 한 올을 뽑아
짜투리를 짜며
넌, 아무 말 말고
예 살란다.
세모에
해낸 일은 해낸 대로
못다 한 일은 못다 한 그대로
가던 길 잠시 멈춰
쓰다듬어보는 길목입니다
부족함은 부족한대로
뿌듯한 마음은 마음 그대로
앉아있는 너븨 만큼으로도
넓게 볼 수 있는 풍요입니다
돌팔매 자신 있는 사람
과녘 될 운명에 처한 사람
베풀어주고 용서 받아서
가족 되어 살고 싶은 때문입니다
지워져 가는 추억과
엮어서 모이는 새 역사도
아쉬움과 절실함 모두를
묻어 재워두는 오늘입니다.
저울산 밑의 風景畵
청둥호박 밀가루 범벅
쑥 개떡 호밀 수제비
代代로 이어 받아
통사발 쭉쭉 빨고 있는
안산 넘어 巨人
풋보리 열무김치
홑바지 베 등걸
飽滿의 용트림으로
코를 골고 있는 저울추는
만져도 깨워도
할미 젖통처럼
입 다문 새 각시처럼
동네 처녀, 아낙, 할멈
도라지 캐러 산에 가고
남자들은 막장에 나가고
뒤 처진 남정네들
국수내기 뽕 치러 주막 가고
사립문안 남은 아이들마저
시엉, 잔대 캐려 빠져 나오고
댓돌 위에 강아지만 졸고 있는
들마루 위엔 수탉만 활개 치는
글방 훈장도 하고
갱엿도 고아 파는
웃뜸 김선상댁, 상뜸 조씨네
큰 아들 서울 나가
미장공 되어 까딱없는 방서방 댁
속바지 속속 깊이
고린 紙錢 숨겨 있을 거라고
냉천 빨래터 뛰뚝이는 바윗돌 위
윤초시 맏며느리는
깊은 한숨 꺼내 휑궈빨다가
구 구장 만나러 지나가는
면서기 박주사 자전거 뒷바퀴 따라
굴렁쇠 되어 쫓고 있었다.
산밭에 몸 파는 이웃들
참도 안되 밭둑으로 길옆으로
오뉴월 갯벌에 능정이처럼
사카린 탄 단물에다
질커덩이 삶은 보리감자
꺼진 삶 임시 속일지라도
일평생에 단 한 번
자식은 공부시켜
붓대 잡은 월급쟁이
검은 양복에 흰 칼라
면서기, 조합서기 되는
꿈으로 채워 가는.
새경으로 받은 암송아지
뼛골 팔아 키운 금송아지
읍내 장터에 내다 팔던 날
허리춤 깊이 감춘 돈 뭉치
두 손을 떼지도 못한 채
삼 십리 길 단숨에 달려와
옥양목 세 폭 깊이 싸
빈 뒤주 속에 감춰놓고
맷돌을 올려놓고
도구통도 엎어놓고
맏아들 예쁜 이마 위
가운데 中자 별처럼 반짝이는 날
어렵게 넘어가던
목 부러진 성황당 고개 위의
헹가래 치던 뭉개구름
송이송이 꽃송이
송이구름 피어나고 있었다.
잎담배 엮어 가는 사랑방
눈 맞춘 이씨 댁과 머슴이
파리 빠진 팟죽
이 빠진 밑둥
건져내면 그만이고
다시 나면 닥상인 도회물결 타
온 몸 휘감겨 뒤틀고 있을 때
방에서 쫓겨난 아이들은
깎아놓은 생고구마
새크맣게 물들도록
옆집 골방에 숨어
꺾어온 갈대꽃으로
깊은 몸 벗은 살에
은은한 간지럼치기 놀이
별 뜻 없이 우물 파다 건진 흙
뽑아낸 돌 뭉치
뫼 흙 파다 밥 짓고
잔듸풀 빤질빤질
병사공 문중묘지 위에서
미끄럼 타던 몇몇 애들은
북새풀 긁어모아
성냥불을 켜댄다
콧구멍이 새크맣게
머리칼이 뽀얗게
밭 갈던 산지기 김씨
쟁기 놓고 작대기 들고
칠팔월의 뇌성병력
몰이꾼에 밀리는 산토끼
총소리에 놀란 장끼
솔포장 사이 새로
독수리에 쫓기는 병아리들.
무수 밭으로 가자
배차 꼬리 도리러 가자
잘생긴 장대 무우 하나 덥썩 뽑아
딸려 나오는 흙
발바닥에 툭툭 털고
옆구리에 쓱쓱 문질러
엄지손톱으로 겉껍질 돌려 벗겨
어금니 깊이 깨물며
단지, 베속것 땀 젖어
벗고 잔 댓가로
꿀 찾다 얻은 맹물
덤으로 쌓인 자갈밭.
산비탈 말 타는 녀석
맨손으로 짱아 잡는 녀석
갈아입은 솜바지 조끼
몽땅 적셔 볕에 벗어 말리는 녀석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녀석
유별난 남자애들은
전봇대 위에 맨발로 기어올라
철사줄을 몰래 끊어다가
미끈한 생소나무 중대가리 마구 베어다가
쓰깨또를 마련하고
새침뜨기 계집애들은
굴뚝 밑 양지 뜸에
깨어진 새금파리 바가지 쪽
헤어진 고무신짝 모두 모아
찰흙으로 떡 빚고
사랑방으로 모이자
여물 솥에 보리감자
군불 지펴 삶아 놓고
아랫목 짚북데기
북석북석 달아오를 때
웅크린 다리 맘껏 뻗고
묵은 달력 뒷판에 윷판 그려
도, 개 , 걸, 윷, 모
무나물에 생명태국
해위쌈에 달걀부침
기다리던 조씨네 밤 제삿밥
소식 감감하자
굴뚝에다 살그머니
메꾸리 덮어 애먹이고
닭서리 나간 녀석들
도둑고양이 되어
개울뜸 넘어 헤집다가
달빛 받아 맑은 물에 세수하고
제집 닭 하나 목 비틀어 오면
흰 연기 검게 피어
보름달 뒤덮는 밤
김과부댁 솔가지동
샛서방 모르게 동이나도
저울산
저울산 밑의 風景畵는
만져도 깨워도
할미 젖통처럼
입 다문 새각시처럼.
제 3부 : 사는 방법
勝負時代
요새 듣는 말
일과표
벽(壁)
사는 방법
가야산
아들놈의 잠든 곁에서
視感
住民登錄證을 更新하며
흔들리는 두 肖像畵
실수
약국집 할아버지
이서방 이야기
느티나무집 술 이야기
愛妓峰에서
獨立紀念館에서
세월산책
바람일기
廣川장날
勝負時代
자선을 베풉니다
원하는 분은 모이시오
소낙비 몰고 올 먹구름처럼 모이시오
받으려는 욕망은 베풀려는 의욕보다
한 발 치 앞에 서 있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돌아보지 못하는 땅은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전투에서 이긴 자에게는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는 하나의 완벽한 몫을 부여 합니다
몫이 없는 자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빼앗긴 이름은 꽃이 필 수 없습니다
이름이 붙여진 꽃은 청구서를 내시오
자선사업에 나타난 청구서의 위력을 아십니까
돌아서는 지성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왼쪽 날개에 붙은 불꽃은 비상이 될 수 없습니다
갈대밭에 파닥이는 날개를 찾으셨습니까
고정관념의 줄을 잡은 구원의 손에 갈증 품은
연대의 화살촉이 날라갑니다
양보는 패배보다 더 약한 권리입니다.
요새 듣는 말
여러 해 만에
잊혀젔던 얼굴 속에 끼어보면
출세한 친구, 돈 번 친구, 이름 날린 친구들
우산 받쳐주 듯 하는 말
-요새 그렇게 살아서 되나
얄팍한 월급봉투에도
겉 표정 변함없이
시장통 구석구석 다리품 팔던 아내가
-요새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대요
이 세상 누구보다 우리 아빠 최고
저 또래들에 우쭐하던 꼬마
어디서 누구한테 얻어온 배움인지
한 팔 잃은 작은 인형에게
-너에게 난 울아빠처럼 살아주지 않을께.
일과표
우리가 현재 딛고 있는 땅
당신이 그리던 오늘의 하늘
엇갈린 초점이 맞춰준 거리
너무 멀고 흐르지 않습니까
지구를 받친 발은 날카롭게 흔들리고
하늘을 찍으려는 두 눈은
너무 무디어 있지 않습니까
신라의 바람에 흔들려야하고
흩어진 아라파트에 눈 돌려야하는
당신과 나의 일과표
낯설은 오늘의 주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수은주 높이만큼
그려져 가고 있습니다.
벽(壁)
닫힌 유리벽 안에
길 잃은 별 한 마리
현존의 벽을 들이박으며
몸부림, 소리치고 있오
너와 나와의 거리
나와 너의 모든 것과의 거리
유리벽은 너무도 두껍소
창밖의 그리움을 내재에 못채운 채
지치고 허기져
땅에 떨어지는 벌 한 마리
딛고 있는 발의 위치와
향하는 눈의 초점은
숨바꼭질이 시작 되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현실과
꼬리에서 빛을 뿜으며 비상하는 하나의 이상은
술래들의 놀이터가 되지요.
사는 방법
산이 좋아
산과 함께 살다보면
산사람 되어
들꽃 향기 아쉽고
들이 좋아
들과 함께 살다보면
들사람 되어
솔바람 소리 그립고
어제는
산을 올랐고
오늘은
들로 내려오는 참이다
비슷하게 사는 방법 없을까
이 세상 어딘가엔
두 팔 뻗고 노래 부를
그러한 곳이 있다는데
이 세상 어딘가엔
아까운 것 다 털고 일어서도
부러운 것 하나 없는 곳도
정말로 있다던데
황금 나팔을 불며
달려오는 쌍두마차는
내 차지가 아니라 해도
간간히 흐르는 실구름 한 점
얻어 두었다가
참참히 나르는 산비둘기
들 멧새 날개 깃 하나
빌어 두었다가
저 딴 세상 얘기
훔쳐 들으며
살아도 좋은.
가야산
하루에도 열댓번 씩
눈 맞춤 하다
정이든 산
성문봉
바람 불어
단풍 들던 날
숨겨둔 숲
다람쥐 개암알 몰며
으름쪽 파던
산새 쫓고
속 샛길 너는
고히 나에게 내주었지
산 아래 마을
긴 토담 벽 굴뚝엔
빛 좋은 연기가 곱게 피어오르고.
아들놈의 잠든 곁에서
네 살짜리 아들놈은
애비를 당황케 한다
국군이 되어 나라도 지키고
의사가 되어 늙은 부모도 보살피고
텔레비전 속의 박순경도 약속하더니
갑자기 조용필 아저씨가 되겠단다
누나들이 소리쳐 만든 우상이 되고 싶단다
아들놈의 잠든 곁에서
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꼭 되려고 하던 의지가 적어서
박수도 받지 못해서
그러다가 하나도 그럴듯하지 못해서
네 잠든 머리에 그려진 네 아비
초라한 그 애비의 아들 너만은
박수쳐 받은 愚想이 아니라
偶像이 되어 받은 박수
받을 때를 정확히 알고 받고
나머지는 거두워줄 줄 아는.
설흔 일곱 살 애비는
네 살 난 아들을 당황케 한다.
視 感
現實
보는 눈은 둘
像만 하나로 멈추오
잠자는 호수는 등이 가렵고
소리 없는 냇물은 속이 타오
외길만이 최고는 아니지
용트림 하는 탁류이면 어떻고
쓰레기더미 휩쓸어 갈 대하이면 어떻소
눈과 귀나 닦고, 찌든 머리도 좀 빨아내고
외길, 두길, 삼거리, 사거리를 걷다가
오거리로 달려 가거나, 실려 가거나
주제가 있는 강은 흐르는 역사라오
귓속말 때로는 높여 소리도 질러보고
천년 굳은 먼지 안아 털어도 보고
모진 돌 모서리 다독여 친구도 하고
냇물은 강이 되고 강물은 바닷물이 되어
물의 주제를 안고 출렁이고 있소.
住民登錄證을 更新하며
現住所를 찾으러 동사무소에 갔다
모처럼만에 흘러 거슬러 가본 수 십 년.
밤꽃 향기 음악 되어 흐르는
가난해도 흡족한 내 고향, 錦菊里
깜장 고무신짝에 파닥이던 피라미는
지금도 솔밭 건너 긴 모랫벌
겨울 소나무 내품는 깊은 소리
산파도 몰고 오는 雙流 골짜기
여름밤 돌 틈에 가재 찾아가듯
꺼져가는 추억 속에 불 붙여 들고
남의 부인이 되어 버린 옛 여자를 잠시 훔쳐
희미해져가는 자욱들을 찾아보고도 싶고.
달빛 쫓다 키가 너무 커진 미류나무
물소리 새소리 뒤섞인 몇 아름의 의미
복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면사포 쓴 新婦를 간음하는 주례처럼
發芽하는 싹눈을 떼어가는 꽃샘바람
쌀집 뒷방에서 꿈꾸던 무지개꽃
길가 옆 문간방, 고개 넘어 김 과부댁 건넌방
부표 되어 떠다닌 수십 년
가난으로 무디어 피지도 못한 채
꽃보무라지 옛 모습 그대로 화석 되고.
내가 혼자에서 둘로 셋으로 넷으로
세포 분열 하여가며 하나가 아님을 느낄 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서
성장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지
오고가는 사람 선별하지 않고
대문 없이 통하는 유리창, 미닫이문
닫힌 듯 열어 두었던 海美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도 바닷바람은 불어오고
고리대금 하다 새벽에 떠난 목사부인
전세값 올려주고 살던 집 빼앗아간
계산속 환한 수학선생 사모님
부인에 비해 꽤 인정 많아 반갑던
정년퇴임 면서기 한 계장 아저씨
그러나, 邑城을 돌며 찾은 깊은 뜻
심어줄 값진 보물 하나 얻어 길렀어
현주소를 챙기려 동사무소에 가
수줍음 타는 새 각시의 젖을 만져가듯이
엣 주소를 은밀히 더듬던 나
현실 앞에 소스라쳐 놀랐다.
“나는 범인이 아닙니다”
“도피자도 아닙니다”
“거센 삶의 파도를 타고서
바람 쎄지 않은 순한 곳을 찾아
돛이 없는 배를 수 십 년 저어왔을 뿐입니다.“
주소 기입란이 벅차게 살아온 날들
한 번도 눈 돌리지 않고 지켜온
맨 위 본적지, 내 고향 錦菊里 376
그 아래로 쓰인 주소 마르기도 전에
다시 쓰여 지고 또 지워진 일곱 개의 주소
세상물정 모르면서
흙먼지 뒤범벅이 되어 뛰놀던
나의 어린 것들은 그래도 지워진 그 때 그곳들이 좋았단다.
강물은 바다의 어데로
얼마만큼 차지해 흐르고 있나
새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아파트 4층 내가 앉을 자리에는
어린 것들과 장난감 로버트가
양지 바른 묏 기슭 내가 놀던 그 자리에는
낯모르는 아이들이
깨끗하게 새로 쓰여진 현주소
하늘과 땅의 힘이 맞닿아
줄다리기 하는 가운데 지점.
흔들리는 두 초상화
1
알맞게 탄 목탄 하나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뽑아
정성껏 다듬어온 솜씨로
화첩 위에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면 그려갈수록
까맣게 타 버리는 순수
칠하면 칠해갈수록
분간할 수 없는 음영
신작로 네거리에서
욕심 없이 놓아준
한가위 대보름달도
짚누리 모채에서 띄워보낸
꼬리 긴 지연도
그림 속에는 잡히지 않고.
2
비 갠 하늘 아래
마음결 한 모퉁이에
천사의 날개와
눈이 큰 여인을 그렸다
사람들은 말했다
독수리 날개가 접혀 있다고
보헤미안의 후예가
졸고 있다고
낭패한 화첩 안의 그림에는
무지개빛도 비춰오지 않고
3
바람도 불지 않는 밤
벽 한 복판에 표구된
초상화 두 점이 흔들린다
유년의 꿈도 흔들리고
꿈의 날개마저 흔들린다
보석을 캐듯 사랑을 찾다
자기마저 잃고 헤매는
내, 마리아상이 흔들린다
검은 눈동자의 위치가 흔들린다
그림 밖의 모두도 하나다.
실 수
꽤 밝은 내 두 눈에다
안경을 걸었다
도톰한 유리알의
遊戱
제 1알은 욕망의 문
제 2알은 자제의 문
콧잔등을 지나는
두 출구의 이음선
몸체에 얽어맨
양 귓테의 고정선
바람이 심한 날엔
고정선이 흔들린다
집념의 두 손을 들어
위치를 확인할 때
뚝 떨어져 시멘바닥에 뒹구는
나의 짧은 왼손
좁고 긴 골목에서
여자를 만났다
최후의 손을 내민다
제 1알에 비친 상은
옛 그 님의 따스한
입김을 흡입하고
제 2알에 비친 상은
굴다리 밑 탕녀의
마지박 처리를 반사하고
이음선은
거리를 좁히며 당기고
고정선은
귓불을 뚫고 얽힌다
한 손을 들어
이를 중재할 때
발등에 떨어져 깨어지는
욕망의 문
자제의 문
빛이 조각조각 흩어진다
땅에 떨어지는
마지막 나의 긴 오른손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피돌기를
나는 바라보고 있다.
약국집 할아버지
아라비아 왕자인가
흰 수건 위에 헌 맥고모자
별을 흔들고
논두렁 밭고랑
숙, 냉이, 송사리, 미꾸라지
일집 반찬거리 마련해 주시고
요새 저녁 진지는 어떻게 하시냐고 인사하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것이 다 먹을 것 뿐인데요
오지화로 위에 찻물 다려놓고
지나는 사람 크게 부르시는 약국집 할아버지
지난날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어깨 위 지팡막대
대롱대롱 대바구니
개암, 잔대, 익모초, 산치자, 구절초
동서남북 흩어진 먹을 것이 되고
목마른 사람 찻물이 되지만
약국집 할아버지의 과거는 되 주지 않는다.
이서방 이야기
사시장춘 밤낮 없이
베잠뱅이 땀 젖게 살아온
우리 동네 이서방
산비탈 다랭이 논 아홉에다
딸만 아홉인데
기름진 물갈이 논 반 다랭이
장군 닮은 아들 하나 기다리다가
딸 하나에 다랭이 논 하나
흰 머리털 둘
딸 둘에 다랭이 논 둘
흰 머리털 넷
딸만 열이 됬고
반백이 되었지만
진흙 바닥 헛디딜까
푸른 하늘 흰 구름에
마음 주며 살고 있지.
느티나무집 술 이야기
삼거리 집 주막에서 얼마 되지 않는
크다락한 느티나무 안집엔
술 담그는 아내와 술 마시는 남편이
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지
코 끝이 빨간 쉰 목소리의 그이는
주막으로 통하는 밭골을 다져왔고
흰 머리카락이 퍽 유난 했어
동네 사람들은 주독이 들어
코끝이 빨갛게 익었다 했고
술만 마시면 무서운 게 없는 그이를
이 동네 돈키호테라 이름 했지
오늘도 술병 든 양손이 출렁출렁
홀짝홀짝 맛보다보면
대문짝 걷어차기도 전에
가던 길 되돌아 와야 했고
그러다보면 해도 달도 크게 지첬어
게춤의 쌈지는 비어만 가고
공부를 파하고 몰려오는 아이들 앞에
여덟팔자 그려놓은 그이를
아내는 눈물로 몰아댔지만
그이는 그저 빙그레 웃었어
아내는 그 자리에 풀썩 앉아
지는 해 붙잡고 소리 내 울 때
돈키호테의 금이빨 두 개는
유난히 석양에 반짝였지.
愛妓峰에서
아, 저기가 어딘가
텃밭에서 김매다
막걸리 통 물에 띄워
두 팔 뻗어 헤엄쳐 나르던
강 건너 이웃마을
저기가 여기 아닌가
쪽배 타고 동네 마실갔다
남이 되었고 , 적이 되었고
가슴에 총을 겨누다
이승을 떠났을지도 모르는
혹시, 살아 있다면
호호백발 할멈
복실이 엄마는?
어리어리한 실안개 지나
역력히 눈에 들어오는
북녘땅, 오싹하는 6월 하늘
풀벌레소리, 산새 울음에다
냉랭하게 찢어지는 스피커 소리
눈도, 귀도 정신마저
안개 속에 휩싸이는데
산새들은 산에서 강으로
물새들은 강에서 산으로
남에서 북, 북에서 남으로
똘강물 흘러 개울물
개울물 모여 임진강, 한강
말없이 흐르는 서해바다
천 길 깊은 바다속 마음
우리가 여직것 풀지 못한
삼십 몇 년 굳은 응얼인가?
獨立紀念館에서
1
숨통 휘어잡는 한증막
밖에는 뼛속 시린 눈보라
흐르는 물줄 잡아 눕히고
화석으로 얼어붙은
서른여섯 해 ×365일
남모르게 뱉은 한숨에다
스물 네시간만 곱해줘도
피다 멈춘 풀꽃봉
팔월 보름 달빛의 무게가 되고
계룡산 굽이굽이 흐르는
지아비와 아낙의 눈물 높이가 되고
예까지 따라온 마지막 등식의 최종 답이 되고
2
한 눈은 감고 반만 뜬 채
거슬러 가본 그만큼의 길이
어름깡 풀린 샛강에
황새처럼 날아온 봄
골골이 묻혀 있는 체온
손톱 빠지도록 캐내어
충청 땅 목천 양지 뜸에
눈 헤집고 솟는 봄 쑥처럼.
기념관 주춧돌
다시 한 번 쓰다듬으며
돌기둥 한 아름
으서지도록 품어보며
흑성산 다시 올려다보며
그래도 못다 찾은
어머니의 몸통
남북으로 찢어진 恨
동그마니 노송 위에 앉아 있네.
세월산책
1
바로 몇 해 전으로만
오던 발길 되돌아 가 봐도
나의 친구들은 울고 있었다
울타리 밖, 남의 슬픔을
대신 아파하고 있었다
딸라 캐러 사막에 들어간
미장이 박씨 아저씨가
미사일의 표적이 되고
봉제공 영자 아가씨는
구식 재봉틀 밑에서
젊음의 꽃이 숯검정으로 변했어도
책가방 내동댕이치고
거리에 뛰쳐나온 대학생과
고구려의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현대의 바람을 막고 있는
오늘의 거리는 식탁 위의 고정메뉴
그후 얼마 뒤
친구들의 아들들은 모여 있고
2
백결선생의 옛이야기는
지난 역사에만 기록된다
현대의 거문고는
이야기속의 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주리던 배 채우고 나면
유명상표 꼬리표 붙은 옷
남 보이며 자랑하고 싶고
눈에 들어오는 작은 나무
마구 흔들어 보고 싶고
꽤나 높으신 어떤 분은
손 안 닿은 곳 별로 없어
다 걷우어 잡수시었어도
치과 한 번 안가고
배탈 한 번 안 났다고
화제의 인물로 명성이 드높은데
사촌, 육촌, 팔촌, 이웃마저
시골 논밭 산떼기 사놓고
피아노와 자가용도 들어오는데
밀어 닥치는 돌개바람
생 몸으로 바람막이 되어
오늘 하루 땜쟁이하며
삐뚤어진 넥타이 위치나
열심히 바로 잡아보는
3
삼십 몇 년을 하나같이
십 몇 년을 살 맞대고
한 몸 되어 살아오면서도
무슨 커다란 비밀인양
깊이깊이 숨겨놓은
아내의 눈물
둘째 아이
유치원 소풍 가던 날
셋째 아이
아파서 병원 가던 날
봇물 터져 나오는
진실의 원액을
실안개 피어오르는
가냘픈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또 하나의 발견 이었다
4
양다리 두 팔 쭉쭉 뻗고
짚방석 위에 팔베개 하여
지나가는 뭉게구름
쫓아도 보고
콧노래 흥얼거리면서도
별이 되어
남아 있고 싶지도 않고
달빛처럼 내리 비추고 싶지도 않은
가지고 있는 것
갖고 싶은 욕심 모두
손 탁탁 털고 일어서도
아깝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고
거추장스러운 갑옷
묵직한 칼집
벗어 버리고, 끌러 팽개처도
알 몸통 있는 그대로가
사람들의 눈에
부끄럽지도 않고
화살촉이 두렵지도 않은.
5
만나보고 싶은 사람
만나면 할 말 별로 없어도
쓰고 싶은 詩
써보아 별 기쁨 못 찾아도
진실은 진실 그대로
간절함은 간절함 그대로
배고픔은 배고픔대로
못한 일은 못한 그대로
따뜻하고 추움은 그대로
해낸 일은 해낸 그대로
조용히 같이 온 세월
손이나 꼭잡고
오던 길 되돌아 와
푸른 하늘 푸른 산 맞닿은 곳
바라만 보고 싶은.
바람일기
1
골바람도
삥 돌아서만 지나치던
그 산 넘어 이 골탱
막 피어오르던
꽃봉오라지 소낙비 그리며
화석 되어 굳어있고
구석구석마다
새새틈틈이 숨겨놓은
슬픔의 깊이와
꿀꺽꿀꺽 삼켜버린
깊은 숨의 넓이를
한 번만 곱해줘도
천지에서 백록담을
몇 번씩은 오고 갔을 턴데
최종 등식은 풀리지 않고
바람은 돌아만 가고
2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름밤 하늘의 별처럼
6.25 사변 통에
아들 잃고 딸마져 빼앗겨
홧병나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되어
한 곳에 머물러
자리 잡지 못한다
바람은 정이 많아
더웁혀진 가슴 속에
깃발로 펄럭이다가
고향의 짙은 냄새며
날라 간 그리움의 날개깃을
쫓아나서 보기도 하고
바람은 첫 정을 심어놓고
자취를 숨기어 버린
그녀의 현주소를 찾아
함석 대문도 흔들고
유리 창문도 구드려본다
3
역사를 한 바퀴
힘겹게 돌아온 새바람이
세상의 문들을 두드렸다
빗장을 풀으셔요
마음도 열어 놓으셔요
내 찾아올 수 있음은
그대 만나 볼 수 있다는 희망이고
얼굴 마주 볼 대상이 되기 때문이고
가슴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고
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역사는 인내를
인내는 바람을
바람은 물결을
물결은 대화를
대화는 사랑을.
4
깨물던 입술
되짖물다 핏멍 맺혀
풀꽃으로 피어오르네
재우던 가슴팍 열기
타고 타, 재티마저 불 타
젖꽃판 몽실리네
불 꺼지는 마을
제 빛 뽑아
얼굴 밝히는 그믐달
쎈 빛에 시들은
별들이 나와
바람에 몸을 닦는다
반짝이는 4월의 노래여.
5
까투리 날아든
솔포장 사이 새
노랑나비 찾아와
그림으로 잡힌 장다리밭
청보리 보듬히
배불러 오고
하얀 아카시아 향기
푸른 종소리 업고
아침 이슬 줍는다
호밀밭 깊숙이
산비둘기 알 벽 깨어
푸른 세상 한 번 날고 싶고
갈잎들의 기지개
청솔방울 떨어뜨려
이웃 한 번 놀래보고 싶은
5월의 노래여.
廣川 장날
어김없이 찾아와
닷새마다 성항을 이루던
삼십년 전 우리 집 바같마당
지금은 하루에 꼭 한 번 씩
크락숀을 크게 울리며
돈 먼지를 내품고 지나치는
의원님, 의원님, 통대의원님
김 서방네 양조장 술 차 뿐
이십 구년 전 추억은
달력에도 지워지고
기억에도 삭아가고.
쫓아가보면 신바람이 나고
가지 못하면 안달하다가
돌뱅이병이 더치어
넘어가는 서녘에 붙잡고
눈물 홀짝이던 하루
읍내 장터 까지는 이십리 길
지나던 장꾼들
냉견물에 목 축이고
등멱하고 밤나무 밑에 다리 풀며
울할머니는 때 맞춰
찐 고구마와 보리개떡도 내오셨고
물바가지는 성할 날 없었지
묵은 상여집 고랑에서
도깨비불 켜 있는 것도 보고
으스스한 소리도 들었다는
샛바위 근처에서
큰 짐승 눈에 불 켜고
으르렁거리며 지나치는 것
똑똑히 두 눈으로 보았다며
그 발자국은 어른 손바닥만 하다는
지금은 그렁그렁한 이야기
숨죽여 주워들으면서
쇠장수 발끝 밟고
샛길로 가야 이십리 길
미군부대 제기산 넘어
오소산 아득히 보이고
그 아래 첫눈에 들어오는
석탄 먹는 증기기관차
화통은 입김 풀어 먹구름 일고
표호하는 기적소리
조양 성냥 공장하며
자유당 말기 먹고 보자
김의원님 사기그릇 공장 굴뚝하며
장터목에 다다르면
상지다리 그 아래
능정이 활개치는 갯벌
물 빠진 갈대숲이
배 꺼진 참 먹을 때
새우젓 하면 마포, 광천 독배
원산도 처녀, 안면도 총각
부푼 가슴 푸는
부산항보다, 인천항보다
이태리의 나포리보다 더.
피보리 두서 말에다
콩 되나 팥 되나 묶어
어깨 끈 꼭 붙잡고
정신 차려 지나가면
억지 큰 사람이 이기는
질거리 장사꾼들
빛바랜 지전 몇 닙
땡그랑 돈 몇 냥
땀 젖어 배게 쥐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
결국에는 쇠전 옆
쇠똥 썩는 냄새마저
때 맞춰 입맛 돋구는
뚱보네 막걸리 집
쫓아온 아이들은
길다란 널판 의자에 앉아
이 빠진 대접에다
먹음직한 국수말이
돼지고기 몇 첨도
아깝지 않게 덥썩 넣어 주었고
허리끈 풀어 놓고
오랜만에 맞아보는 포식
대체사람 부럽지 않게
등에 달싹 붙은 배를
있는 힘껏 쑥 내밀면
나는 사장님
요원한 게트림도
자주 해댔지.
구경 구경치고는 약장사
떠돌이 약장수 독판치는
싸전 골목 확성기 아래
병에 들은 것, 봉지에 싼 것
약 판 위에 쭉 벌여놓고
약장수는 입담으로
부인은 서투른 춤으로
아이들 몇은 약을 돌리고
구경꾼들 도끼 썩는 줄 모르며
어깨 너머 자리를 지켜주다가
먹어도 마셔도 허한 속
나른 나른한 삭신에다
기어들어가는 정력
한 번 탁 털어 넣으면
백두산까지 나를 듯
한라산 안개 걷힐 듯
속바지 깊은 호랑 뒤집어
몇 삼년 접어 모셔두었던
꼬기꼬기 지전 하나
만지작, 설레이다가
장영자 돈 풀리 듯
누구처럼 중대 결심하여
마구 푼다, 마구 푼다.
배꼽을 거머쥐고 듣던
떠돌이 약장수의 재담도
입으로는 불을 품고
새끼손가락으로 제무시를 끌고
깨진 소주병 위에서
맨발로 진주라 천리 길
차력사의 위용도
엄청난 눈요기였지만
곡마단이 들어온다는 말에
며칠씩 잠을 설치며
눈이 석자는 빠젔었지
긴 냇둑 건너 공터에다
군데군데 말뚝을 박고
새끼줄도 늘려놓고
채일 몇 개 높게 처놓고
문 앞에는 난쟁이랑
살 다섯 가마에 팔려 간
서 서방 딸 큰 애기
닷가마는 투전판의 아침거리로
아배는 둘째 딸 크기만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다고.
돈 없는 아이들은
어른 가리쟁이 사이로 들어가다
표 받는 문지기의 험한 인상에
기겁해 도망을 치다가
영락없이 붙잡혀 나오고
새끼줄 너머에서 까치발하고 서
남쪽의 이산가족 북녘 하늘 바라보듯
찢어진 채일 틈새로
여름밤 이브의 방 넘보듯
엿봐도 봐봐도
시간은 남아 흘렀지
닷새장 구경 나왔다가
약장수 말씀 강의 듣다가
곡마단에 들어갔다가
총각, 처녀 눈쌈 일어나고
앵두나무집 순이는
호미자루 내던젔고
김과부댁의 소복소복
불러온 배가 우물가 화제
돌팔이 의사 최서방은
속병 난 이생원 둘째 며느리
배를 쓸다가 배꼽을 쓸고
그 아래를 지나서
물오른 버들강아지
속가지를 건드리고
장날이면 남 몰래
꽃도 꺾는다는 귓속이야기
꺾인 꽃송이는
꽃병에서 피어
비로소 꽃이 되고
양잿물 지푸락지에 묶어
한 손에 치켜들고
간 배인 고등어 몇 마리
회푸대종이에 싸서 옆에 끼고
배부르게 먹은 것
신나게 좋은 것
뾰족한 수 별로 없어도
남부럽지 않게 흐뭇하던 닷새장
신발장수, 옷장수들의 쉰 목소리
삶의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기미독립만세 소리보다
더 절실한 삶의 소리.
석양을 등에 지고
가던 길 되 걸어오는 이십리 길
샛길은 빠져 밭이 되고
갇힌 것은 삼십년 전 추억뿐
우리 집 바깥마당은
가운데로 길이 뚫려
도회지로 나가 돈 푼깨나 번
자가용 족 대체바람 일며
먼지나 뽀얗게 일구며
여름밤 별똥 지나치듯
먼지는 쌓여도 흙이 못되고
바람은 찾아도 얼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