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인사 메일을 보낼려고 컴퓨터를 켰더니 아랫 글이 나타나네요. 강독회 함께 한 식구들께 혹시 참고가 될까하여 올립니다.
제가 존경하는 부경대 이정호 교수님(자치21 공동대표)께 야간대학원(국제대학원 정치언론학과) 강의를 들을 때 급하게 짜집기해서 낸 숙제인데, 시간 많으신 분은 심심파적으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추석 연휴 되시길 소망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의 특징
류광태
시작하며
고대 한 도시국가에서의 아주 제한적인 실험(?)이 범 세계적인 질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 중 헌법에 ‘민주주의’란 용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 1인독재와 절대권력 부자세습의 나라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없는 글로벌 상품이며, 현대 국가에서 전가의 보도다.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미명 하에 1당독재체제를 유지했었던 소련과 동구권 등 현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면서 다당제, 자유보통선거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세계화되어 가고 있다. 북한, 쿠바 등 일부 예외적인 국가를 제외하면 1당독재 또는 1인독재체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복수의 정당이 상호경쟁하는 자유민주주의의가 만개한 것처럼 보이나, 지구촌 민주주의의 앞날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시장과 자본으로부터의 위험이다.
레닌과 스탈린 동상은 무너지고 그 자리엔 맥도날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새로운 동상들이 세워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프리카의 오지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지구촌 민주주의의 특징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본다.
오늘의 지구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현재 지구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탈이념화, 각종 장벽 파괴와 시장통합 등으로 정리되는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 간에 존재하던 상품, 자본, 서비스,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인 장벽이 제거되어 세계가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는 추세가 이미 깊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 무역, 금융은 물론이고 문화 분야까지 세계화의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는 냉전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교통수단의 발전과 정보통신혁명 등이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정부의 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 노동시장의 유연화, 민영화 및 시장 개방 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시장팽창으로 국가의 자율성 침해, 불평등 확대, 사회안전망 축소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국제자본의 영향력 강화로 시민적 권리가 위협받을 수 있는 점은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새로운 도전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정보통신혁명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기회의 요인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의 특징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고 굴곡이 많은 만큼 지구촌은 다양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정부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극소수이긴 하지만 아직도 원시(?)부족적인 질서의 공동체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21세기를 맞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08년은 20세기의 유산, 잔재와 21세기의 새로운 현상들이 때론 충돌하기도 하고, 때론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21세기에도 지구촌은 독재자들로 가득하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지구상 국가의 3분의 2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정리하는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의 특징은 대부분 선진(?) 민주주의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것이며, 다른 지역들도 이런 흐름으로 변화해나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전망을 전제로 정리한 것이다.
1.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은 유권자들의 실질적인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지도자들이 심각한 좌절을 가져다주는 정책결정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시민들이 점차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또 정책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민주적 제도들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불신함으로써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재평가를 요구받고 있으며, 워린은 “모든 국가에서 새로운 형태의 대표와 공공참여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은 의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틀에서 시민들이 보다 완전하게 공공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여지를 확대시켜 놓았다.”고 분석했다.
2. 참여민주주의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발안 등의 직접참여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정책결정에 반영시키고 있으며, 인터넷은 다양한 사회문제와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제안하거나 비판하는 활동을 한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자원봉사활동, 서명운동과 시위 등 시민사회의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적 시민의 모습이 생겨났다.
NGO는 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하고 대의민주주의의 감시자 역할을 하며,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기를 바라는 시민의 참여 매개 역할을 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조장한다. 따라서 NGO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는 대의민주주의에 도전자라기보다는 비판, 견제, 감시 등의 기능으로 보완자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3. 거버넌스 패러다임
1980년대는 국가행동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관련되는 권력의 행사(government)를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사회를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더 중시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다. 즉 거버넌스(governance)는 한 조직 또는 사회가 스스로의 방향키를 조정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과 통제의 역동성이 핵심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결정 영역은 영리기업과 시민사회의 NGO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그룹이 동참하는 거버넌스 영역이 되고 있으며, 정당과 의회 중심의 의제설정이 다른 사회기관들, 즉 미디어, 행정부, 이익집단, NGO, 기업 등 서로 다양한 이슈 네트워크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4. 포스터 모더니즘
포스트 모던화의 과정은 경제적 이득의 극대화에서 주관적 안녕의 극대화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선거, 정치인 접촉, 정치집회 참여 등 관례적 참여방식 보다는 캠페인, 서명운동, 불매운동, 시위참여 등 비관례적 직접행동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새로운 정치문화의 핵심에는 시민이 등장한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좀 더 평등주의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면서 축적된 두드러진 동향이다.
5. 인터넷민주주의와 전자정부
인터넷은 전국적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시민들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주의 결손’을 보충해줄 수 있는 수단이다. 인터넷은 쌍방향소통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다양한 정치 토론과 여론 수렴, 시민의 적극적, 능동적 태도 등이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혁명은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 처방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이는 새로운 공론의 장을 제공하며 사회적 행위자들이 공동의 정치적 이해를 찾아 추구하도록 돕기도 한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장벽파괴를 통한 세계화로 기술과 금융,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져 민주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인터넷은 즉각적인 반응이 유용하긴 하지만 젊은 층과 부유층, 고학력자 등에게 기회의 폭이 넓다는 점 등, 소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서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보과잉의 문제와 첨단기술을 독점한 집단에 의한 조작 가능성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역사회의 요구에 보다 호응적이며, 소외계층의 요구에도 호응적인 거버넌스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결국 복지의 확대 없이는 전자정부의 실현도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6. 초국적자본의 영향력 강화
현대자동차 북경 공장이 있는 북경 순위 구(區)의 거리 곳곳에는 ‘현대속도(現代速度)’, ‘복무현대(服務現代)’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현대속도’는 중국 내 외국기업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설립허가와 공장준공, 자동차생산 등을 이루어낸 현대社의 속도를 배우자는 구호며, ‘복무현대’는 순위 구의 생산과 고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北京現代汽車를 위해 행정과 시민 모두가 우선 복무해야한다는 무서운 구호다.
순위 구의 사례에서 보듯 초국적 자본이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개발이 늦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정부정책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는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그룹 중 초국적기업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토마스 프리드만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낙관한 것과는 달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민해볼 점이 많아 보인다.
정리하며
임혁백은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에서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타고난 동반자인가?, 사귀기 힘든 친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정리했다. 타고난 동반자로 보는 시각과 사귀기 힘든 친구로 보는 시각이 상존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세계화는 전 지구적 문제의 대두와 지구적 정치세계의 필요성을 잉태했다. 따라서 동질적 국민집단을 초월한 서로 이질적인 지구촌 사람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과하는 초국경적 시민권 사상 또한 필요하다.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를 위해선 초국가적 국제기구들에게 민주적 원리를 적용하는 문제, 즉 지구적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자본과 권력의 자유를 무한정 허용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민주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민주주의는 자유의 행사에 영향 받는 이들이 그것을 통제할 권한을 갖는 것을 핵심원리로 하지만, 세계화는 이 권한을 박탈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 박탈당한 권한을 되찾는 일은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과정이 그렇듯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러나 세계화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것을 민주화해야만 한다. 민주화되지 않은 세계화로 인한 희생이 민주주의를 위해 요구되는 희생보다 절대 작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힘으로 구현된 것처럼, 지구촌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세계 모든 이들의 민주의식과 이의 실천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은 지역에서 직접 정치를 경험해야 하는 주민이자, 국가를 운영하는 국민, 지구촌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세계시민이다. 인간의 가치가 인정받고, 사회운영의 주체로 인식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지역의, 국가의, 전 인류의 공통 과제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 즉 브라질 남부 Porto Alegre市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예산제(3백 개의 도시를 넘어 미국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콥스(공공서비스를 위한 공동체, 스스로 문제 해결사가 되어 기업과 공조해 나가고 공동체를 살리는 조직), 깨끗한 선거 법안을 마련해 대기업의 권력조종을 막고 깨끗한 공직자를 뽑는 데 성공하고 있는 ‘just6dollars’ 사람들, 5백 개가 넘는 지역업체들을 참여시켜 지역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지속가능한 연대’ 사람들, 유기농 낙농회사 ‘오가닉 밸리(현재 천 개 농가가 공동 소유한 수백만 달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준 ‘유스빌드’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 기술을 학습하고 진화시켜 나가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지구촌의 직접 민주주의 성공사례와 경험, 교훈 등을 정리해서 확산시키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독재체제, 세계화와 그로 인해 질곡 받고 있는 지구촌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지구촌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서, 독재체제를 종식시켜 나가고 세계화가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충실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비판, 견제, 감시, 투쟁해 나가는 것도 또 다른 한 축이라 하겠다.
【참고 문헌】
21세기정치연구회.『정치학으로의 산책』중 ‘세계화의 빛과 그늘’(이정호). 한울아카데미
토마스 L. 프리드만 지음. 신동욱 옮김.(2003).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창해
주성수.(2006). 『시민참여와 민주주의』. 아르케
임혁백.(2000).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 나남출판
프란시스 무어 라페 지음. 우석영 옮김(2008). 『살아 있는 민주주의(Getting a grip)』. 이후
인터넷 네이버, 다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