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0:16-28,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22.3.9, 박홍섭 목사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고 가나안을 배신했을 때 예루살렘 왕은 크게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자신과 다른 가나안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가나안 남부 지역의 네 왕을 규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합니다. 이에 기브온은 화친을 맺은 이스라엘의 도움을 요청하고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밤새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달려가 남방 다섯 왕과의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군대를 동원하여 적군을 교란하고, 돌 같은 우박을 내려 적들을 죽이며 태양과 달을 멈추어 낮을 길게 하고 밤을 억제하는 기적으로 가나안 남부 연합군을 무찔러주십니다. 혼비백산한 적들이 아얄론 골짜기에서 48km 떨어진 막게다 굴까지 도망가고 이스라엘은 계속 그들을 추격하며 공격합니다.
16-19을 보십시오.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가나안 연합군의 왕들이 도망가다 막게다 굴에 숨었는데 누가 그것을 발견하고 여호수아에게 알립니다. 여호수아는 굴 입구를 큰 돌로 막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적들을 따라가서 섬멸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우박을 돌덩이처럼 내리고 해와 달리 멈춘 사건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다섯 왕이 막혀 있는 막게다 굴에 숨어 들어간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고 그 모습을 발견하여 여호수아에게 알려준 것도 하나님의 역사이며, 나머지 군대들을 추격해서 무찌름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신 결과라고 19절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도망가는 가나안 연합군의 후군을 추격하여 거의 멸한 뒤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20-21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육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이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여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부분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자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힘이 있으면 교만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부로 혀를 놀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나안 족속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욕하고 헐뜯는 일이 전공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히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가 없습니다.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혀를 놀리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보고 있습니까? 얼마나 조롱하고 욕하고 비방하면서 교회를 대적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사 크고 두려운 교회의 영적 권위가 나타나서 교회를 우습게 보는 세상의 혀가 굳게 닫히는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22-28을 보십시오.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와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그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는 지휘관들에게 적군의 왕들을 굴에서 꺼집어내어 발로 목을 밟으라고 명합니다. 고대에서 적의 왕의 목을 발로 밟는 것은 완전한 정복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함으로 이번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여 그들을 정복했기에 다시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승리를 축하하고 기리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앞으로도 믿음으로 수행하는 모든 영적 전쟁에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가나안의 남부 다섯 왕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화친한 기브온을 공격하다가 죽어 나무에 달려 굴에 장사 되었지만, 아직 가나안의 나머지 왕과 주민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같이 해주신다는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에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한 지체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브온을 지키기 위해 직접 전쟁에 뛰어들어서 여호와의 군대를 동원하시고 우박을 동원하시고 태양과 달을 멈추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사 원수 마귀와 싸우게 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원수의 목을 밟아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주가 이미 사탄의 목을 밟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아직은 일시적으로 이들이 공중 권세를 잡고 세상의 가치관을 만들어 왕노릇 하면서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남부 연합군의 다섯 왕의 목이 밟혔지만, 아직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가나안의 다른 왕들이 남아 있듯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의 왕들이 혀를 함부로 놀리면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고 그의 몸 된 교회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의 놀리는 혀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권능과 역사로 “이와같이 해주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맛볼 수 있습니까?
거룩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문턱을 더 높여야 합니다. 교회는 어떤 죄인도 올 수 있지만, 아무나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한때 교회 문턱을 낮추자는 말이 유행했죠. 일리가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자도 올 수 있고 못 배운 자도 올 수 있고 힘없는 자도 올 수 있고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적 문턱은 낮춰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문턱은 높아야 합니다. 아무나 교회의 회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생하지도 않고 세상의 헛된 가치관과 욕망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의 거룩함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삶을 사는데도 힘이 있고 돈이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다고 세례를 주고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 시간이 지나 직분 자로 세워지게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교회를 욕되게 합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깁니다. 교회의 명예를 자신의 명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이름을 훨씬 소중하게 여기면서 크고 작은 범죄로 교회를 욕되게 하고 교회의 거룩한 권위를 다 땅에 떨어뜨리는 일을 자행합니다. 그들의 악행으로 세상이 함부로 입을 열어 교회를 욕하고 가볍게 대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부분은 없습니까? 거룩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의 옛 자아에는 가나안 남부 다섯 왕이 막게다 굴에 잠복해 있는 것처럼 죄 성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옛 성품을 육체의 소욕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활동하면 그리스도가 주신 승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육체의 소욕들이 우리의 막게다 굴속에서 머뭇거리고 활동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군대를 동원하시고 우박을 준비해놓으시는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나의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이 되게 하십시오. 내 욕심을 위해 여호와를 이용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가 사용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가나안 남부 연합군과의 전투의 결론처럼 “여호와께서 다 이와같이 하시리라”가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