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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직지(直指)를 출판하며 <끝>
직지는 한마디로 최상승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가르침입니다.
직지인심(直指人心)이 아니라 직지인신(直指人身)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처다 하는 것은 옛날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몸이 부처님입니다. 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 불성(佛性)이요 환화공신(幻化空身)이 즉 법신(法身)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번뇌와 무명이 즉시 부처님의 성품이고 허망한 이 육신이 곧 법신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부처다.” 라고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끝이 난 지 오랩니다. 이 몸이 그대로 부처라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 이 몸 외에 달리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을 그동안 우리는 몰랐습니다. 마음이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 몸 이대로가 부처가 아닐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한 마디로 이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지금 이 한 순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와도 바꿀 수 없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고귀한 억만금의 가치가 있음을 일깨우는 가르침입니다. “도는 말을 떠나 있다.” 라고 하는 시대도 끝났습니다. “말하고 관계없는 것이 도다.” 라는 말은 옛날 케케묵은 소리입니다. 언어가 즉시 도입니다. 말이 즉시 도입니다. 심지어 <제법무행경>에는 “탐욕(貪慾)이 즉시 도(道)다, 진에(瞋恚)도 또한 그러하다. 탐·진·치 삼독 이 세 가지에 일체 불법(佛法)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참선 한 시간 안 해도 우리는 이미 부처입니다. 기도 한 시간 안 해도 이미 우리는 부처입니다. 염불 한마디 안 해도 이미 부처입니다. 경전 한 구절 안 읽어도 이미 우리는 부처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대로가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부처가 아니면 그 어느 세월에 어디에 가서 부처가 되겠습니까? 3아승지겁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설정해 놓은 그 부처의 경지에 누가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런 경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3아승지겁을 닦아야 부처가 된다는 그 방편만을 이야기 하다 말겠습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깨쳐야만 한다는 방편만 이야기 하다 말겠습니까? 닦지 않아도 부처요, 깨닫지 않고도 본래 부처입니다. 팔만사천 번뇌로부터의 해방이며 온갖 죄업으로부터의 해방의 가르침이 직지인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인하여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세세연년, 매달매달, 매일매일, 매순간 매순간이 호시절인 것입니다. 태양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먹구름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억만 가지의 요소 중에서 불성인간(佛性人間)의 내용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물론 번뇌와 망상과 죄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참으로 언급할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시시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 이 얼마나 시원스럽습니까. 손 한번 들 줄 알고, 눈 한번 꿈쩍할 줄 아는 바로 이 사실에서 부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달리 어디에 가서 부처를 이해하겠습니까? 사랑과 질투와 기쁨과 슬픔에서 부처를 찾지 못한다면 어디에 가서 부처를 찾겠습니까? 3아승지겁을 기다려 왔지만은 그 외에는 달리 다른 부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 궁극의 가르침이며, 신대승불교의 가르침이며, 불교의 많은 견해 중에서 최극점에 이른 가르침이며, 최정상에 이른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세연년 매일 매순간 그대로 부처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 이미 우리는 부처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을 깨우쳐주는 내용입니다. 부디 이 사실을 알고 매일매일 억만금을 들여서 즐기는 축제의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생명, 우리 모두의 생명 그대로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직지는 바로 이러한 책입니다. - <2011년 10월 28일 직지출판기념법회 법문> -당신은 부처님 끝- |
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 無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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