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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마바흐체 궁전의 역사
보스포러스 해안의 돌마바흐체 궁전이 있는 장소는 17세기부터 시작하여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많은 별장을 세운 곳이다. 돌마바흐체는 정원으로 가득 찬 곳이라는 뜻이다.
아흐메드 술탄(1607~1617)이 현재의 궁전 자리에 작은 정자를 지은 이후 모조 건축물이 주변에 세워지고 정원도 잘 가꾸어지면서 돌마바흐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181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압둘 메지드 술탄(1839~1861)은 이곳에 세워진 별장들이 목재로 만들어져 볼품없고, 쓸모없다는 이유로 작은 별장들을 부수고 호화스러운 돌마바흐체 궁전을 세웠다. 압둘메지드는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으로 국가 재정을 아랑곳 하지 않고 궁전의 건축에만 몰두하였다.
이 궁전을 짓기 시작할 무렵 오스만 제국은 국력이 쇠약해져 서구 열강으로부터 개방 압력을 받고 있었고, 내적으로는 국력 회복을 위해 서구 열강과의 관계를 통해 군사 행정 등의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또 한 유럽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제국 내 소수 민족들의 독립을 위한 반란이 계속 일어나는 가운데 무거운 외채로 인한 국가 재정은 고갈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이처럼 오스만 제국이 국내외 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지어졌다.
이 궁전은 오스만 제국 말기인 1843년에 유명한 건축가인 카라벳 발얀과 그의 아들 니코고스 발얀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어 13년 만인 1856년에 완공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이전의 오스만 제국의 건축방식에서는 없었던 아름다운 정원 조경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궁전의 정원 분수대는 돌마바흐체 궁전이 유럽풍의 궁전이라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궁전의 내부 장식은 파리 오페라 건물을 디자인한 프랑스인 세샹이 맡았다. 이 때문에 돌마바흐체의 장식이나 가구들은 마치 프랑스 궁전의 내부를 연상케 한다. 불랑제, 게롬, 프로멘틴, 아이바소브스키, 같은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궁전의 내부그림 장식을 위해 총 동원되었다.
의전 홀의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매우 화려하고 사실적이며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돌마바흐체 궁전의 주요 구성 부분은 술탄이 사용하는 셀람륵(국사집행용), 의전이나 주요 행사를 위해 사용된 의전 홀(공식행사용), 여자들의 생활공간인 하렘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이 궁전의 2/3는 하렘이 차지하고 있다.
지하층을 포함하여 3층으로 구성된 돌마바흐체 궁전은 352개의 방, 18게의 홀, 6개의 목욕탕, 68개의 화장실을 갖고 있으며 1912년에 전기와 중앙난방이 도입되었다.
이 궁전이 자랑하는 소장품으로는 4.5t 규모의 샹들리에와 4455 넓이의 장인이 만든 헤레케 카펫이 있다. 헤레케는 이스탄불 인근에 있는 지방 마을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카페트는 옛날부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터키에서는 지금도 헤레케산 카펫을 최고급품으로 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샹들리에는 보헤미안 유리와 바카랏 수정으로 이뤄진 750개의 등이 매달려 있는데 러시아의 니콜라스2세 황제가 압둘메지드 술탄에게 선물한 것이다.
내부 장식에만 총 14t의 금과 40t의 은이 투입되었을 정도로 실내장식이 웅장하고 매우 화려하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 말기에 술탄이 국정을 집행하는 조정이자 그의 가족이 생활하는 저택이었다.
그러나 34대 술탄인 압둘 하미드 2세(1876~1909)가 신변 안전을 이유로 돌마바흐체 궁전보다 위쪽에 있는 일디즈 지역에 자신이 살 궁전을 지어 그곳을 사용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술탄의 저택이자 조정으로는 20여년 밖에 사용되지 못했다. 터키 공화국이 선포된 후 앙카라가 수도가 되자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는 이스탄불에 오면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궁전은 터키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877년 오스만 제국 사상 처음으로 개원된 의회가 이곳에서 열렸고, 터키의 국부이자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임종을 맞이한 곳도 이곳이다.
아타튀르크는 말년에 병이 들어 고생하다가 돌마바흐체 궁전의 보스포러스 해협이 바라 보이는 한 침실에서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사망하였다. 이방에는 그가 사망한 시간에 멈춰 서있는 시계가 놓여 있다.
사치를 좋아했던 압둘메지드는 돌마바흐체 궁전뿐만 아니라 다른 별장들을 지으면서 국가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세 딸의 결혼식을 국가의 재정난 속에서도 화려하게 치렀고 보스포러스 해안에 별장을 지어 딸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다.
압둘메지드 시대에는 외국에서 빌린 외채를 갚기 위해 고율의 외채를 또 빌려야 했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22년간 술탄직을 수행한그는 폐렴으로 1861년 38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그의 사후 50여년이 조금 지나 오스만 제국은 멸망하였고 압둘메지드가 보스포러스 해안에 세운 궁전들은 지난날 권세를 가졌던 왕들의 여흥장소라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앞에는 작은 사원과 시계탑이 있다. 높이가 27m에 달하는 시계탑은 4단으로 되어 있으며 샤르키스 발얀의 작품인데 네 면에 각각 프랑스산 시계가 있다. 시계판의 숫자는 아랍어로 되어 있다. 시계탑 옆에 있는 돌마바흐체 사원 역시 발얀의 작품이다.
4단으로 구성된 시계탑과 돌마바흐체 사원
돌마바흐체 궁전 입장료와 관람시간 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을 마치고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중에.....
술탄들은 부귀와 영화가 일장춘몽인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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