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 사는 김모(15) 군은 아토피 피부염이 너무 심해 얼굴에 붕대를 감고 다닌다. 친구들 사이에서 ‘미라'라고 소문이 난 그는 얼마 전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런 김 군은 다섯 살 이후로 10년 동안 병원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다섯 살 때 동네 피부과에 다녔지만 엄마는 강한 스테로이드 제제 때문에 아이의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믿고 병원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0년 동안 간단한 ‘피부시험검사'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학교까지 그만두고 명랑했던 아이의 성격이 변하는 것을 본 엄마는 결국 병원을 다시 찾았다. 피부시험검사 결과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은 가장 흔한 ‘집 먼지 진드기'였다.
병원을 불신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스테로이드 연고의 부작용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를 바르면 키가 안 큰다', ‘스테로이드의 독성 때문에 피부가 더 가렵고 붉어진다' 등 부모들의 스테로이드 제제에 대한 걱정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김규한 교수는 “그러나 스테로이드 제제는 아토피 치료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스테로이드 제제는 사용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증상이 조금 완화되면 약을 임의로 끊어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치료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도 많다. 삼성서울병원 아토피센터 이상일 교수는 “아토피 치료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다른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으므로 한 의사에게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 보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기 쉽다는 것이다.
서울 응암동의 신모(34) 씨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들(3)을 위해 과도한 면역반응을 잠재워 준다는 ‘노루궁뎅이 버섯'을 인터넷을 통해 200만 원에 구입했다. 그동안 ‘야생 노니주스', ‘클로렐라' 등 건강식품을 구입해 먹였으나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하루 종일 몸을 긁어 대는 아들을 두고 나갈 수 없어 1년 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남편 혼자 벌이로는 생계가 빠듯한데, 아들의 치료를 위해 빚이라도 내야 할 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8년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2세 이하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아 933명을 조사한 결과 71.5%가 병원 치료 외에 대체요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요법으로는 목욕 치료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한약, 보조식품, 아로마 치료, 마사지, 침술, 기 치료 등이었다. 연세대 간호대 유일영 교수는 “대다수 부모가 대체요법을 병행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거의 없다. 인터넷 정보만 보고 잘못된 대체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 심각
대한소아과학회가 아토피 피부염과 관련된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www.asamo.or.kr)에서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게 추천하는 선식(현미2:찹쌀2:보리2:수수1:조1:대두1:밀1 비율)의 권장량 대비 섭취량을 평가한 결과, 칼로리는 108%, 단백질은 137%, 비타민 A와 C는 0%, 나이아신은 180%, 칼슘은 26%, 인은 212%, 철분은 132%로 나타났다. 적절한 칼로리가 공급됨에도 불구하고 영양성분이 불균형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 사이트에서 ‘영양식'이라고 추천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그 성분과 함량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시 아토피·천식 교육정보센터가 인터넷 등에 실린 잘못된 정보를 살펴본 결과 ▲ ‘해독요법', ‘체질개선' 등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불명확한 정보 ▲ ‘보습제를 바르지 말아라', ‘목욕을 하지 말아라', ‘스테로이드 연고는 독하므로 결코 사용하면 안 된다' 등 기본적인 아토피 치료법 부정 ▲ 계란, 콩 등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 식품을 먹어도 좋은 음식으로 분류하거나, ‘아토피는 유전되는 질환이 아니다' 등 과장됐거나 잘못된 정보들이 많았다.
오재원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은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질환이라는 생각 때문에 치료법이나 제품에 대해 상당수가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무책임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업자들은 단기간의 홍보를 통해 한몫 잡고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각한 식이 제한은 피하라
식품의 단백질은 아토피 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의 유력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도 모든 단백질을 차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당장은 알레르기 증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장이기 때문이다.
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나영호 교수는 “아토피로 진료를 받으러 온 아이들의 부모와 얘기해 보면 거의 대부분 아이에게 엄격한 식이 제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요즘엔 임신부들도 태어날 아이가 아토피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아토피 유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품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단백질 등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환자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30%가 칼슘, 단백질, 철분, 비타민 등이 부족한 영양을 섭취하고 있었다. 흔히 아토피 피부염에 제한하는 대표적인 음식은 유제품, 견과류, 해조류, 참깨, 달걀 등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중요한 단백질과 칼슘의 공급원이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근육과 신경조직 등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고 면역에 관련된 조직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칼슘이 모자라 키가 잘 자라지 않으며 나중에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도 높다. 보통 1세 미만의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 500mg의 칼슘이 필요하다. 영국의 한 보고에 의하면 소아는 유제품을 통해 하루 필요량 칼슘의 56%를 섭취한다.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편복양 교수는 “몇몇 식품들이 아토피를 유발할 수 있으나, 인터넷이나 각종 미디어 등을 통해 아토피 유발 물질이 아닌데도 그런 것으로 잘못 알려진 식품들도 꽤 많다. 더욱이 만 3세가 지나면 음식으로 인해 아토피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편 교수는 “아토피 환자 중 절반 정도는 음식으로 인한 것이 아닌데도 괜한 두려움과 잘못된 정보 때문에 식이 제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토피, 검사부터 해라
전문가들은 소문이나 불확실한 정보만 믿고 무턱대고 식이 제한을 해서는 안 되며, 병원을 찾아 아토피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나영호 교수는 “아토피 원인 검사를 받아 보면 쓸데없는 식이 제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토피는 반드시 원인 검사를 먼저 한 후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토피 유발 물질에 대한 검사는 보통 알레르기 피부 검사와 혈액 검사 두 가지가 있다. 알레르기 피부 검사는 아토피를 일으킬 만한 식품이나 기타 추정 물질을 검사지에 묻힌 뒤 피부에 대고 15~20분 후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병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적게는 5~6종에서 많게는 100종의 유발 물질을 검사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아토피 원인을 찾으려면 혈액 검사를 해 보면 된다. 혈액 검사를 통해 면역 글로블린의 수치나 백혈구의 수치 증감 정도 등을 확인한다. 이 검사를 받으려면 알레르기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을 찾는 것이 편리하다.
‘회피', ‘보습', ‘약물'이 최선
아토피 피부염은 일단 원인이 되는 물질을 피하고 보습제를 사용해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추가로 아토피 피부염이 악화될 때마다 ‘스테로이드 연고'나 ‘국소 면역 조절제'를 바른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아토피 피부염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치료제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피부의 모세혈관이 확장되거나 피부가 위축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테로이드가 부작용이 있다고 무조건 안 쓰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스테로이드를 남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절히 사용하면 스테로이드제만큼 좋은 약이 없다. 그러나 반드시 피부과 전문의에게 처방을 받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최근 개발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국소 면역 조절제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대신할 수 있는 약제로 효과는 중간 강도의 스테로이드 연고와 비슷하지만 장기간 사용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 2세 이상의 소아나 성인의 얼굴이나 목과 같이 피부가 얇고 약한 부위에 나타나는 아토피 피부염에 효과적이다.
◆ 아토피 피부염 이렇게 관리하라
1. 피부는 늘 깨끗하고 촉촉하게 유지한다.
2. 적절한 온도(18~21도)와 습도(40~60%)를 유지한다.
3. 면으로 만든 옷을 입고 손톱은 짧게 깎는다.
4. 정확한 진단을 통해 원인 물질을 찾는다.
5. 모유를 먹이고 이유식은 6개월 이후에 시작한다.
6. 집 안에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7. 전문의 진료에 따른 약물요법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8. 심한 스트레스나 급격한 온도 변화는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
9.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은 전문의와 먼저 상담한다.
10. 아토피 피부염을 올바르게 치료·예방해야 소아 천식과 알레르기 비염도 예방할 수 있다.
출처: 대한 소아알레르기 호흡기학회
- 이금숙 /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