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이야기] 산괴불주머니
계곡의 봄은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주저하지 않지요. 들과 바다의 봄에 뒤질세라 채비가 야무집니다.
절벽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돌 틈에 둥지를 튼 야생초는 계절의 시간에 맞춰 거침없이 내달리지요.
물과 바람이 빚은 노랫가락에 맞춰 씨앗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얼음 풀리듯 세레나데로 움트는
계곡의 봄!
볕이 든 자리엔 어김없이 생명이 자라 길을 재촉합니다. 특별한 기별이 없어도 스스로 깨어나는 봄!
그 앞자리에 산갓으로 불리는 ‘는쟁이냉이’와 붉은 대에 샛노란 꽃을 피우는 ‘산괴불주머니’가 있습니다.
계곡의 봄을 여는 산괴불주머니는 두해살이 풀입니다.
꽃과 열매의 모양이 괴불주머니를 닮아 ‘산괴불주머니’로 불리며 잎과 줄기 뿌리 전체를 약재로 씁니다.
‘마씨자근’, ‘주과황근’, ‘국화황련’이라는 이칭을 갖고 있으며 ‘산뿔꽃’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린 순은
독성을 뺀 뒤 무침 나물로 먹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통증을 줄이고 진정시키는 약리작용과 함께 불면증 치료에 도움을 주며 민간에서는 중풍을 예방하는
약초로 소개됩니다. 신경안정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독성이 강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선군 항골. 그곳엔 겨울과 봄이 공존합니다. 음지와 양지 사이에서 계절이 넘나드는 특별한 공간.
겨울 속에 봄이 열리고, 봄인가 싶은데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곡의 변덕(?)이 까탈스럽습니다.
정선 땅에서도 특별한 항골계곡의 봄은 우렁우렁하지요. 산괴불주머니가 녹색의 숨을 틔울 때쯤
기다렸다는 듯 봄이 열립니다. 겨우내 가다듬은 계곡의 합창은 산괴불주머니의 움에서 시작돼
꽃 지는 초여름에서야 마침표를 찍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축제가 막을 내리는 것이지요.
4월에서 6월까지 계곡 전체를 황금빛으로 수놓는 산괴불주머니는 봄을 여는 개척자답게 강인한
생명력을 뽐냅니다. 그러나 ‘저 꽃은 내 꽃’이라고 ‘찜’할 정도는 아닌가 봅니다. 이런 안타까움을
김용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요.
“내 안에/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처음이에요/당신에게 나는/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라고.
항골계곡의 산괴불주머니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겨우내 외롭고 힘겨웠을 뭇 생명의 지킴이를 자처하지요.
‘저 꽃이 내 꽃이 되는 순간’을 온몸으로 웅변합니다. 스스로 봄을 완성하는 식물답게….
▲ 강병로 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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