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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즐거운 샘이 터지면(2245.2024.4.14)
느혜미야 8:8-12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제주도에서 열린 서부연회 함북지방회에 참석하고 은혜중에 왔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는 통일이 되면 함경북도 청진에 청진교회를 재건하라는 명을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통일이 일어나면 가서 청진교회를 재건할 것인데 그 교회 역사를 살펴보니까 애산 김진호 목사가 배재학당에서, 삼청교회와 궁정교회에 목회하다가 청진교회로 파송을 가서 7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주변에 5개 교회를 세웠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는 생략하고 김진호 목사가 68세에 청진으로 파송을 받았는데 그분의 출생지가 바로 상주출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진교회가 지금 우리 상주감리교회만 한 것으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통일이 되면 청진에 가서 교회를 재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청진교회 재건헌금도 조금씩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교를 마치고 나면 그 다음 설교를 바로 준비해야 합니다. 걱정하면서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오는 성도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까 늘 고민하며 걱정하며 준비를 많이 합니다. 한 시간은 설교해야 하는데 가끔 가다가 설교가 너무길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짧게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주일낮에 오셔서 한 시간 예배중에 설교가 40분정도인데 충분히 들을만한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럴때는 저도 속으로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려면 1시간 30분 봐도 떠들지 않고 졸지도 않고 가만이 숨죽여 보면서, 드라마 한편 볼때에도 시끄러우면 가만있어봐 하면서 집중해서 보는데 설교 한편 듣는데는 길다, 짧다, 졸다 그러는가 속으로만 그럽니다. ㅎㅎㅎ 한 시간 설교해도 너무 짧다라고 하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어떤 말씀으로 내게 주실까 기대하시면 설교가 짧을 것입니다. 상주교도소 들어가서 설교 할 때에도 1시간 예배중에 40분 설교합니다. 아멘도 잘합니다.
여선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에는 뭘 먹지 하면서 다음 밥 먹을 것을 고민합니다. 일주일 금방 가니까 교회 주방도 오늘 밥먹고 나면 다음주일에는 뭘 해오지 걱정을 하지만 대충 해오지 않을 것입니다. 반찬 솜씨 없어도 정성껏 준비하면 다 맛있게 먹습니다. 신기한 것은 때가 되면 다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주방은 조금 적게 하라고 해도 말 정말 안들어요. 그건 안들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푸짐하게 해서 먹이는데 감사해야 합니다. 저도 영적 밥상을 차려서 먹이고 싶어서 항상 기도하면서 준비를 하니 말씀도 푸짐하게 드셨으면 합니다. 영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가 끝나면 내일 새벽기도회 밥상 준비를 하고, 수요예배 설교밥상 준비 걱정하고, 수요예배가 끝나면 또 돌아오는 주일예배 두 번의 밥상을 걱정하고, 무슨 밥상을 차릴 것인가가 결정되면, 기도와 말씀 성경에 들어가서 시장을 보고 드디어 요리에 들어갑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10편을 설교해야 하는데 쉬운 것만은 압니다. 오늘은 느혜미야를 통해서 말씀의 밥상을 차렸으니 맛 있다 생각하고 잘 드시고 기쁨과 즐거움의 샘이 터져서 환하게 웃으며, 크게 기뻐하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 기쁨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웃어도 억지로 웃는 가식적인 웃음뿐입니다. 웃음치료도 보면 억지로 웃깁니다. 웃으면 좋다라고 해서 박수를 치며 하하하 하며 크게 웃곤 합니다. 사람을 만나도 기쁘지 않아 돌아서면 슬퍼지는 그런 시대입니다. 작게는 서로 믿지 못하는 인간관계의 문제요, 크게는 정치, 경제,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다 다 기뻐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쁨이 내 안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그 기쁨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 될 때, 어떻게 기쁨을 회복하며 그 기쁨을 누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집안에 혼자 가만이 있으면 기쁨이 찾아오지를 않습니다. 항상 이야기 하지만 집안에 가만이 앉아서 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우울증이 찾아와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햇빛도 보고 걷기도 하고 경치도 보고 북천냇가 가서 걷기도 하고 물 흐르는 돌다리도 건너보고, 물 수제비도 뜨고 해야 합니다. 저도 북천을 뛰다가도 가끔 돌다리 있는데 가서 수제비도 뜨고, 갈대 앞에서 사진도 찍고, 벚꽃이 활짝 피어서 사진도 찍고, 해뜨는 것, 해지는 것도 사진을 찍고 혼자서 잘 찍었네 하면 만족함을 누려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앙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웃음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면, 그 어떤 위기와 문제와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는 늘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느헤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여러분도 오늘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므로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번에 걸쳐 바벨론에서 고향땅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가장 먼저 주전 537년경,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약 5만 명이 돌아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건축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때문에 좀 늦어지긴 했지만, 17년 만에 성전건축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로 봉헌식을 올렸던 그 성전이 바로 솔로몬 성전에 이어 두 번째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두 번째 귀환은, 첫 번째 귀환 보다 약 80년 후인 주전 458년경에 있었습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약 5천 명이 돌아왔습니다. 에스라는 돌아오자마자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방여인과의 결혼이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요.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마저도 이방여인과 결혼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단순히 혈통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나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자신의 신앙도 잃어버렸고, 온 이스라엘 땅에 우상숭배로 물들였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일반화되어버린, 당시 사회의 영적인 타락을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귀환은 두 번째 귀환이 있은지, 약14년 후인 주전 444년경에 있었습니다. 세 번째 귀환의 중심인물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입니다. 어떤 말은 힘이 빠지고 실망도 되고 낙망도 되고 사이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를 인정해주고 올려주면 좋아합니다. 느헤미야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전 약 400년 전의 사람입니다. 바사 왕 아닥사스 왕의 술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옥에 있을 때 바로왕의 술을 관리하는 사람하고 떡을 관리하는 사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왕의술을 관리하는 사람은 왕이 철저하게 신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에 독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의 포로가 돼서 왕의 술을 맡고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출세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이름이라고 사람들이 날 안 좋게 여긴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포로 중에도 다니엘은 총리가 됩니다. 요셉도 팔려갔는데 총리가 됩니다. 굉장히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느헤미야도 왕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술을 관리하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우리나라에 보내줘서 성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왕이 보내줍니다. 얼마나 왕이 충성되게 보고 신임을 했으면 왕이 신하의 얼굴을 살피면서 원하는 대로 해줍니다.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포로들을 보낸지 100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2차적으로 스룹바벨로 가고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먼저 갑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에스라가 가서 성벽을 짓는 것과 성전 건축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훼방꾼이 많고 방해꾼이 많았습니다. 포로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렵고 지쳤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이 와서 나라가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느헤미야가 가슴이 불이 타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합니다. 직장에서도 적이 많습니다. 은근히 밀어내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성전건축에 많은 훼방과 방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백성들을 모아놓고 격려합니다. 성을 다시 건축해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권면 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느4:4절‘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비웃고 훼방합니다. 이렇게 보니까 하다가 중단하고 중단하고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이 비웃습니다.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더 강해집니다. 비웃음에 넘어갔다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방도를 생각하다가 성경(율법)을 가르치키로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주신 사명은 성벽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성벽은 건축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국권을 세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벽건축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방해와 살해 협박이 끊임없이 가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마음이 되어 52일 만에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은 성벽공사를 다 끝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흥회를 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8장 1절 이하에 보면, 7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율법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에스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외치면, 여러 명의 레위 사람들이 군중들 가운데서 선포한 말씀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가 선포한 말씀과, 레위 사람들이 해석해준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본문에서 보니까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를 다시 쌓는 일을 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간절한 사모함으로 말씀을 더 자세하게 배우고, 알고,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포로지에서 70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70년간이나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 갔었기에 어떤 사람은 히브리어를 알아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초기에는 회당이 있어서 활동을 활발했지만 제1세대가 죽은 후에는 점점 방탕과 향락에 빠지고 우상을 섬김으로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므로 사람들은 영적인 어둠의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학사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는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매우 침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에스라가 돌아오자마자 에스라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말씀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롬10:17절‘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말씀을 70년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믿음은 그야말로 공허한 믿음일 뿐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해야 합니다. 말씀 듣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대한 공경이 있을까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그 깊은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말씀대로 순종합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독교는 아무리 화려해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제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이 말씀과 더불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모여드는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다스리며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종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습니다. ‘아멘’이란 말은 ‘듣는 바 말씀이 진실로 그러하다’는 뜻이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말씀 앞에 나의 ‘모든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란 뜻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 있지 아니하면 그러한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신앙은 마치 모래위에 집과 같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살고 우리의 신앙이 살고 우리의 집이 반석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받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로 개인의 영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만큼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척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다루는 태도, 성경을 접근하는 태도, 말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을 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게 될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8-9절에 말씀을 듣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오늘처럼 기쁜 날 왜 우느냐’ 고 말씀하신 후에 오히려 축제와 잔치를 베풀라고 말씀합니다. 먹을 것도 준비하여 실컷 먹고 즐기되, 너희만 먹지 말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나누라고 말씀합니다. 말 그대로 잔치를 크게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나라가 기쁨이 넘치는 잔치를 열자는 것입니다. 10절‘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기쁨과 웃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우리 삶에 엄청난 힘이 됩니다. 주일날은 교회와서 울지말고 웃으라는 말입니다. 잔칫날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도 늘 기쁨으로 살면 건강하게 됩니다. 얼굴에 인상을 쓰고 얼굴 찌푸리고 사는 사람보다, 늘 웃으며 기쁘게 사는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삽니다. 그래서 암이나 그 어떤 중병에 걸린 사람일지라도 웃음을 통해서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몸이 아프다고 인상 쓰고 다니지 말고, 많이 웃고, 웃음을 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쁨과 웃음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영혼을 밝고 맑게 만듭니다. 성경에서도 말씀했습니다. 잠17:22절‘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만큼 좋은 약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쁘게! 늘 웃으면서 사시면 암덩어리도 치료가 되고 중병도 치료가 될줄로 믿습니다.
몇주전 집사람이 저한테 감사하다며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먹고 싶은 것 말하라고 해서 무슨 일인데 왜, 했더니 설교 끝나고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 받을 때에 드꺼운 불로 지져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팔 아픈 것이 낫다라고 물건도 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은 되었고 아프지 않도록 하면 돼 했습니다만 지나고 나니 그때 맛있는 자장면이라도 사달라고 할걸 ㅎㅎㅎ 여러분 믿고 기도받으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음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마음의 기쁨을 가지고 한번 크게 웃을 때, 평상시 움직이지 않던 근육 중 230개 이상이 움직이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산소와 영양분이 피부에 전달돼 피부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젊고 건강하게 사시려면 어찌하든 많이 웃으시고, 항상 재미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물론 웃음과 기쁨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웃음과 기쁨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쁨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것이라면, 웃음은 그 본질로부터 나오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애매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마음이 기뻐서 웃습니까? 웃으면 마음이 기뻐집니까? 정답은 둘 다, 둘 다 맞습니다. 우리 마음이 기쁘면 웃음이 나오고, 웃으면 마음이 기뻐집니다. 논리적으로는 마음이 기뻐야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기쁘지 않아도 웃으면 마음이 기뻐집니다.
어린 아기들이 해맑은 얼굴로 웃는 모습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천사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눈망울 초롱초롱한 천사의 모습과 같은 아기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웃으며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다 울면서 태어납니다. 웃으면서 태어난 아기를 보신 분 계십니까? 다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렇게 울면서 태어난 아이들이 천사처럼 방긋 웃는 것은 다 학습된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물론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애교 온갖 재롱을 다 부립니다.
아이를 웃게 만드는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까꿍’입니다. ‘까꿍’ 소리에 아이는 방긋 웃습니다. 이 까꿍은 어른들도 웃게 만듭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옆에 사람을 보고 까꿍 해보겠습니다. ‘까꿍’ 여러분 까꿍! 웃음은 배워야 합니다. ‘까꿍’하면서라도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까꿍 요법이 잘 안 될 때에는 고개를 몇 번 저으면서 ‘도리도리 까꿍’ 이라도 해서 웃겨야 합니다. ‘까꿍’요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웃음 요법이 있는데, 가위 바위 보 해보세요. 진 사람은 두 손을 번쩍 드세요. 이긴 사람은 간질러 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왜 간지럼을 타게 만드신지 아십니까? 웃으면서 살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늘 웃으며,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에도 눈물 질질 짜면서 나오는 것보다,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도 우리와 함께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데 자녀인 우리가 늘 울상을 짓고 있으면 주님 마음이 기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항상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말씀하셨습니다.(살전 5:15)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인상 쓰며 얼굴 표정이 굳어 있는 체로 사는 것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항상 웃고 사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 됩니다.
반대로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을 나 홀로 지고 가는 사람처럼, 항상 굳은 얼굴로 인상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웃으며 삽시다. 그러면 언제 기뻐해야 합니까? ‘항상 기뻐하라’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라.’ ‘건강할 때만 기뻐하라.’ 아닙니다.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고통스러울 때 기뻐하면 건강이 회복됩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뻐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불평스러운 마음이 들 때에 기뻐하고 웃어버리면 불평이 사라집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만 생깁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주일에도 기쁜 마음으로 나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드리는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하면, 하나님도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근심 걱정 다 짊어진 채, 인상 팍 쓰고 앉아 있으면, 그 예배는 열납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영생도 얻었고, 천국을 기업으로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찬송할 때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도 열납 된 줄로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예배를 두고 오늘 본문 10절‘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주님의 날에는 특별히 기뻐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주일을 지키면서 짜증내면 안 됩니다. 주일은 어느 날보다도 기쁘고 행복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날보다 많이 웃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은 잔칫날과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을 얻어 일주일을 승리하며 잘 살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행복해야 할 주일부터 기분이 상하고 짜증나면, 한 주간 내내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일에 많이 웃으며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쁘게 웃으며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기쁘게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봉사를 해도 기쁘게 봉사를 하고, 누구를 만나든, 환하게 웃으시면서 기쁨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의 부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웃으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살아가다가 이런 일 저런 일 당하고 살다보면, 기뻐할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좌절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주신다면, 나를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있어야 언제나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은 힘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은 육체적인 힘입니다. 이 육체적인 힘이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잘 먹고 체력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육체적인 힘도 강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힘, 세상적인 힘입니다. 이것은 물질, 세상권력, 명예의 힘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겐 이런 힘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부지런히 성공하고 출세도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힘은 영적인 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저 하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이 힘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힘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육체의 힘으로 살아가십니까? 인간적인 힘으로 살아가십니까? 육체가 병들면 그 힘은 금방 없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권력있는 자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추풍낙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은 잃어 가면서도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힘은 어떤 자에게 옵니까? 본문 9절‘그 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에게 온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의 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참된 힘이요, 보배요,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기뻐해야 할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아무나 하나님을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맛본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고 이 사실을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요15:11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의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기쁨은 어디에서 옵니까? 눅10:21절‘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예수님은 성령 충만하셨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도 보내주시면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으면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찬송할 수 있습니다.
찬191장 1절‘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좁은 길을 걸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령 충만하여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주님과 함께 늘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그렇게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힘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세상 소유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도 다 지나갑니다. 물질의 힘도 다 지나갑니다. 젊음의 힘도 다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다 변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기뻐함으로 오는 그 힘,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오는 그 힘은 영원합니다.
지금은 안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시하고 업신여길 수도 있습니다. 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올수도 있습니다. 상한 마음으로 직장에 갈수도 있습니다. 상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어떻게 돕겠습니까? 지혜를 주십니다. 높은 사람을 만나 해결하게 하십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되게 하십니다. 유명하게 하십니다. 역전을 주십니다. 돌파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축복을 해야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나라에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일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기분 나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 받을 은혜에 소망을 두어야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힘을 얻는 것이 여러분께 큰 축복입니다.
웃음을 선택하고 행복을 선택하면 우리는 늘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늘 기쁨과 웃음과 행복을 선택하여, 여러분의 삶에 기쁨과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여러분 때문에, 모두가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가족들이, 여러분의 직장이,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의 자녀들인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웃고, 항상 행복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항상 기쁘게 하고,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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