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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나오는 지혜 구하라(2300.2025.3.23)
약1:5-8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날씨가 많이 풀려서 저 남쪽에서는 아름다운 꽃이피어나는 봄의 계절이 우리 눈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우리는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마음 화사해지기도 하지만, 또 꽃이 지는 때의 여릿한 모습을 생각하면 애잔한 심정을 가지기도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삶의 일상이란 화사한 면도 있지만 또 다른 아픈 면이 있는 법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이 있으면, 또 한 번 위로받을 면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겸손할 만하고 또한 위로받을 만합니다. 아무리 삶의 눈물이 겹쳐오는 것 같아도 그 가운데 먹장구름 속에 희끗희끗 비치는 햇빛이 있으니 우리는 위로받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리 일이 안되고, 혹은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은 삶이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찾아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련중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1:5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시련을 당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안하면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면 왜 이 어려움이 오는지, 또‘이럴 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자에게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고민하는 가운데 지혜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시험들과 싸워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꼭 인내만이 우리의 시험을 이길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내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 지혜는 우리에게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요셉이 나이 30세까지 죄수로 있다가 대제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귀족 출신이라서, 배경이 좋아서, 지식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뛰어난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남의 땅에서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되고 도지사들이 된 것은 배경이나 지식이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부부 생활도, 사업 경영도, 직장 생활도, 인간 관계도 잘 꾸려 나갑니다. 어차피 만나 더불어 살 사람들이기에 원수를 맺지 않고 골을 파지 않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인간 관계도 잘 컨트롤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렇게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야고보가 우리에게 가지라고 추천하는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사색하여 얻는 그런 값싼 지혜가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는 언제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 같아도 모릅니다.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잠3:5-6절‘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높은 지혜를 얻어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1.지혜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413회가 나오고, 잠언에서만 121회 나옵니다. 국어 사전에 ‘지혜’는 ‘사리를 밝히고 잘 처리해 가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칼릴레는‘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의 결핍이 아니라 지혜의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윌리엄 템플 경은 ‘인간의 지혜는 그의 가장 좋은 친구요, 어리석음은 그의 가장 악한 원수’라고 말했습니다.
지혜는 지식과 명철을 얻게 합니다. 잠2:5-6절‘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여기서 ‘명철’은 ‘이해하다, 분별하다’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즉 명철이란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하며,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주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명철은 ‘현자의 세상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만약에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확실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지혜는 정도를 걷게 합니다. 이 세상에는 바른 길을 가는 사람도 적지만 바른 길로 가려고 해도 죄악의 물결에 빠져서 헤엄쳐 나오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으로 바른 길을 걷게 해 주십니다. 근신과 명철로 보호합니다. 잠2:11절‘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여기 ‘근신’은 ‘사례 깊은 생각’을 말합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근신과 명철은 삶의 안전과 참 유익을 안겨 줍니다. 잠3:18절‘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고 했습니다. 계22:1-2절‘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실과를 맺히도록 하되 달마다 실과를 맺히도록 하고 그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여기서 ‘생명나무’는 온 인류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골2:2-3절을 보면 생명나무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몸과 마음, 영혼의 병든 것을 완전하게 치유하는 보화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천한 자를 존귀하게 하며, 없는 자를 부요하게 하는 보화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지혜는 세상 그 무엇으로도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고 진주를 산 농부처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2.어떤 사람이 어리석고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시14:1절‘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도다 하도다’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 속에도 자연의 섭리 속에도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와 능력을 다르게 주셨습니다. 얼굴이 다르듯이 역할도 다 다릅니다.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소유, 지식, 능력에 엄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지체의 역할이 다 다릅니다. 손과 발 머리 코 귀의 역할이 다 다릅니다. 목사의 역할, 장로의 역할, 권사의역할, 집사의 역할, 교사의 역할이 있습니다. 자기 역할은 다하지 못하면서 분수 없이 다른 일을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에서처럼 눈앞의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가치와 영생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너무 조급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성질이 급합니다. 동남아로 여행하다 보면 그 나라 음식점에서 한국말 하나 잘 아는 것이 있는데‘빨리 빨리’라는 말입니다. 한국사람들은 뭐든지 ‘빨리, 빨리’입니다.
한 농부가 신기한 거위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거위는 하루에 황금알 하나씩을 낳아주므로 점점 부자가 되었는데 이 농부는 매일 하나씩 낳는 것을 기다릴 것 없이 배속의 황금알을 한꺼번에 꺼내자고 생각하고 거위배를 잘랐더니 보통거위와 다른 바 없어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잠14:29절‘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목이 곧고 강팍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질과 세상의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못하고 아무런 준비가 없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현실에 불만을 갖고 감사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능력과 힘, 지식으로만 행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분노를 쉽게 내고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욥5:2절‘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시111:10절‘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지혜로운 사람은 죄와 악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죄와 악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반드시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다윗왕은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으나, 세상사는 동안 그 죄로 인해 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악을 떠남이 명철이며(욥28:28), 지혜로운 자는 악을 두려워합니다(잠14:16).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든 일이 때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친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바울은 엡5장에서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내가 누구냐’를 바로 알고 자기 나이를 아는 것은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시90:12절‘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자기가 생애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도 미래를 내다보고 구입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인가는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고 내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죽음 이후의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세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롬12:3절‘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마7:24절‘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기생 라합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위로 난 지혜가 있습니다. 이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3.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가 부족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지혜가 부족하고, 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말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삶속에서 느낍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지혜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일은 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재의 수준과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혜 이상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이며,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내 지혜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나 스스로를 부정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느끼는 겸손의 출발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충분히 은혜를 주실 능력이 있음을 믿고 또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내게 그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대한 믿음의 기대’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믿음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은 아버지를 잘 만나서 왕이 됩니다. 그러나 명장이요 지혜로운 아버지가 다스리던 나라를 젊은 사람이 다스리려니 부담이 됩니다. 왕의 자리가 부담되고 백성들을 잘 보살필지가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기브온 성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아룁니다. 일천 번제를 다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찾아오십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이 그것을 귀히 여기셔서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면 내가 주리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솔로몬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때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 귀하게 여기셔서 그 지혜와 더불어 ‘부’와 ‘귀’와 ‘명예’를 더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를 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바른 지혜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척척 해결하고 재판하니, 모든 백성이 깜짝 놀라며 왕에게 복종합니다.
어디 그뿐인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궁궐을 보고 솔로몬의 지혜를 들은 다음에 놀랍니다. ‘당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당신의 소문을 듣고 나는 믿지 않았지만 와서 보니 그 소문은 절반밖에 되지 않고 소문보다 더 뛰어나게 당신의 지혜가 지혜롭습니다. 복 되도다! 이 사람들이여. 복 되도다! 당신의 신하들이여. 날마다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으니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그리고 금 120달란트와 엄청난 향품과 보석을 선물합니다. 그 뒤에 천하 열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솔로몬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갖가지 귀한 보석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되는 집에는 가지에도 수박이 열린다고, 솔로몬의 집과 나라는 안에서도 잘 되고 밖에서도 갖다 주니 잘 되었습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 집에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있기를 바랍니다.
6절‘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하나님께 구할 때 의심치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과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 대해 말씀드리면 탕자는 백가지 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냥 괴롭혀서 아버지의 재산을 반분해서 가져가서 탕진하고 돼지치기가 되어서 주협열매를 먹고, 그것도 못 먹어서. 그런데 탕자가 한 가지 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인정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정말 내가 모든 것을 다 잘못했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이런 모습으로 가도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종중의 하나로 써달라고 하면 나를 받아 줄 거야. 내가 정말 이런 모습으로 가도 ‘나가 내 눈에 보이지도 마’ 하고 얘기하지 않고 나를 받아 줄 거야. 적어도 탕자는 아버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분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탕자의 모든 삶을 다시 한 번 바꿀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생명은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을 믿고 철저히 신뢰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기’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 못 얻는 것이지,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주십니까?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시험을 당한 자도 구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큰 시험을 만난 사람도 하나님께 구하면 필요한 지혜, 넉넉한 지혜를 주십니다. 믿은지 오래된 사람도 구하면 주시고,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구하면 주십니다. 큰 소리로 울며불며 부르짖는 자에게도 주시지만, 기도가 서툴러서 조용한 가운데 사근사근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차별 없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주시되 후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를 달라고 하면 열을 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언제나 더 주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요즘 이 지혜를 구하라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지혜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하심으로 돕고 세워 빛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형편없다고 생각하시고 우리를 판단해서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짜증내고 귀찮아하는 분이 아닙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사랑해 보셨습니까? 사랑하면 어떤 것도 짜증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기쁘게 돕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를 구할 때 ‘이제야 우리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셔서 기뻐 여기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운 분만이 아닌 사랑하고 돕고 인도하는 분으로 인정하시기 시작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려운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싫어하고 피하기 원하는 하나님께 우리가 뭘 구하겠습니까? 적어도 우리를 이해하고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감히 생각도 못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수준이 다릅니다. 나는 이 정도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무한한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고 못 박은 사람까지 예수님은 용서해 주셨어요.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수준이 다른 겁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의 육체를 괴롭히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몸을 아프게 만드는 질병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병을 내게서 낫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똑같은 제목으로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응답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하나님은 바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는지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자고 하지 못하도록,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바울은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7-8절‘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마음에 작정을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종된 우리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믿음이 도대체 뭘 믿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는 겁니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는 거잖아요. 내 죄를 속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는 겁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는 겁니다. 지혜라는 것은 사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실과 사실과 능력에 접근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상태에서든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큰마음의 소유자시고 어떤 상태에서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는 겁니다.
오늘 성경에서 왜 의심하지 말라고 할까요? 의심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우리의 구함에 대한 의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사랑의 베푸심에 대한 약속을 의심하는 겁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다’의 헬라어 ‘디아크리노메노스’는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서 저울질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심리적으로 두 마음을 품은 상태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므로 기도를 중단하게 되고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의 헬라어 ‘디프쉬코스’는 본문에만 나오는 말로서, 두 가지의 방법이나 생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마음이 항상 불안정하여 변하기 쉬우므로 하나님을 떠나기 쉬운 자들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오늘부터 의심하지 말고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로운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스승을 잘 만나야 하고,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잠13:20절‘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좋은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혜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지혜의 보고인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4.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까요?
성결한 삶을 삽니다.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됩니다. 가치관, 생각, 말, 행동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거룩하다, 성결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구별된 것처럼 세속적인 사람과 성결한 사람은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하십니다. 여기‘성결’이란 말은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기적으로 지식을 남용하거나 거짓된 지혜로 인간을 기만하지 않는 착한 행실을 뜻합니다. 세속적이고 거짓된 지혜는 ‘독한 시기’ 즉 그릇된 열심과‘다툼’과 자기를 드러내는 ‘자랑’과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약3:14).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악에서 떠나 회개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생명과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합니다(고전1:21).
우리가 성결함을 유지하려면 지혜의 하나님과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새벽이나 아침의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늘 우리 곁에 와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환영하고 모셔들이기만 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성결함을 지켜주십니다.
화평을 이루며 삽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올바른 관계로 이끌어 줍니다. 세상의 지식은 분쟁을 조장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사람들을 서로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아들로 부르셨습니다(마5:9).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여기에서 ‘화평’이란 말은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과는 물론이고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삽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는 우리는 남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낼 때마다 이 세상의 평화가 깨어집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자존감을 상실할 때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관용을 널리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우리를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기 ‘관용’이라는 말은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서 ‘용서’와‘온유’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정당한’, ‘공정한’이란 의미도 있는데, 이것은 ‘타인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남을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해줄 때 그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용서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관용하는 사람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토론이나 협상에 있어서 무조건 내 주장만 하지도 않습니다.
양순한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호소에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양보할 줄 알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여기 ‘양순’은 ‘좋게’란 말과 ‘순종하다’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잘 순종하는’ 혹은 ‘유순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은 ‘굴종’과는 달리 정의롭고 올바른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겸손히 낮춥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심으로 성부 하나님을 섬기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낮추며 기꺼이 봉사하는 ‘서비스 정신’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궁휼과 선한 열매를 맺고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지혜는 교만한 마음 대신 긍휼의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면 자연히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마7:17-18).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돕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여기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주는 마음입니다(약2:13). 지혜로운 사람은 도덕의 설교자만이 아니라 실천가인 것입니다. 지혜는 나처럼 남도 아끼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갈5:13-14).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약3:13절‘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정직을 추구하나 어리석음은 거짓을 따릅니다. 우리는 지혜의 아버지 하나님을 따라가야지 거짓의 아비인 마귀(요8:44)를 따라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감추어진 거짓은 언젠가 분명히 드러나서 수치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지혜는 ‘의의 열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세상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서로 경쟁하고 죽이는 데 사용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나도 살고 남도 살립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매일 시간을 투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며(시119:105)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딤후3:15),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시1:1). 지혜는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데서 옵니다. 잠9:10절‘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근본’은 ‘시작,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세상 적인 지혜가 많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지혜 충만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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