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진료를 통해 환자를 직접 돌보고 있는 내과,
외과같은 임상의사가 있고,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같은 진료자원
부서의 의사도 있다. 관료의 길을 가거나, 병원행정을 맡거나, 외과대학교
교수같은 의사들은 환자진료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의료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한다. 임상의사들 가운데 개원의, 중소병원, 대형종합병원에 봉직
하고 있는 의사들의 입장과 사명이 각자 달라 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에서 가해지는 극도의 제재나, 사회에서 받는 오해와 질시등
으로 임상의사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한편, 진료권 밖에 있는
의사들은 약간 혁명가(?)적인 성향이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임상의사들의 존재감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의사선생님」보다 「의사아저씨」
란 단어가 쉬 입에서 팅겨 나오는 현실을 어찌하겠나, 그러니 인술(仁術)
이라는 올가미에 씌어진 박애(博愛)의 포로들은 더더욱 벼랑 끝으로 밀릴
수밖에..... 질병의 진단명은 하나같이 간결하게 보인다. 그러나 찾아가는
길은 미로 같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훌륭한 의사가 되기까지 고된
훈련과 개인생활을 희생할 감내가 요구되는 것이다. 지난달, 밤늦게 하복부
동통을 주소로 젊은 여자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성교(性交)가 끝난
직후에 발생했다는 환자의 이야기로 미루어 방광염 요도염이 의심되었으나
통증이 예사롭지 않아 당직선생은 입원해서 경과를 관찰하길 권유하였다.
환자는 막무가내로 검사와 입원을 거부하고, 진통제 주사만 요구하고 귀가
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 환자는 내과 외래 환자 대기실에서 끙끙
거리며 앉아있었다. 우연히 내과과장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응급검사(CT)를
시행하였다. 혈복강(血腹腔)으로 뱃속에 피가 가득 차 응급수술이 요할
상황이었다. 기존의 난소 낭종이 터져 발생한 것으로 진단되어 응급후송
조치한 바 있다. 시체말로 ‘밤새안녕?’에 해당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임상의사들 머릿속엔 환자생각 뿐이다. 경험이 더해갈수록 단순해진다.
도(度)가 지나쳐 냉혈한 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다쟁이 의사가 좋아보이기는
하나, 진짜 훌륭한 의사는 성실하고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 멋없이 보이는
의사들이다. 의사가 환자곁에서 멀어져갈 때 인간에 대한 연민, 의사로서
숭고한 자의식(自意識), 사회에 대한 책무(責務), 인류에게 대한 원시적
포부는 사라져간다. 희생, 봉사, 헌신의 자리에 채워지는 것은 투쟁,
혁신 뿐이다. 요즈음 잘나가는 시골의사 박경철이 그렇고, 히포크라테스선서
를 분명히 하고, 의대를 졸업했을 안철수 교수가 그렇다.
외과전문의 박경철은 이렇게 고백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평생동안 경험하는 희노애락의 양은 일반인의
백배, 천배, 아니 만배 쯤 된다. 그러다가 그런것들에 너무 둔감해지거나
민감해지면, 스스로 의사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란,
이러한 감정들에 적당히 느슨하다가도 가끔은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당겨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것에 실패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병들어 힘든 환자들의 삶에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그는
이미 의사가 아니다. 주식분석가, 베스트셀러작가, 방송진행자........
‘시골의사’라는 그의 온라인 필명(筆名)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스스로
지워야 할 때다. 그가 누리고 있는 명예와 명성에 의사(醫師)라는 단어는
이미 닳아빠진 벽걸이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