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아도나이(제 16 일 2026.3.31. 화)
마7:21-27 *찬양:88장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아도나이’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여’라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1절‘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직접해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할 때 ‘주여 삼창’은 하지 말아야 할까요? 주여 삼창을 하고 기도할 때 더 간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씀을 잘 읽어보면, 주여 삼창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눅6:46절을 보면 그 의미를 좀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 것은 히브리말로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냥 한 낱말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전적으로 소유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구주시고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합니다’라는 의미합니다. 창15장에 아도나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도나이(주)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을 주(아도나이)라고 부름은 ‘그분의 소유’라는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인생을 지배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구체적으로 도왔던 ‘인생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종교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철학적인 질문도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누가 결정하는가?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마다 부인이 생각나고 부인이 항상 결정해주면, 부인이 그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인생들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도 그 삶이 결코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남한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만약 북한 태어났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북한은 지독한 기아와 질병 때문에 6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인해 뇌가 축소되는 현상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못 먹어서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작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입만 열면 장군님의 은덕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주인을 잘 만나는 것은 머누나 중요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시145:10절‘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여기서 ‘주’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인데 ‘아도’는 주인을 의미하고, ‘나이’는 그 복수형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복수형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존경하는 훌륭한 분을 지칭할 때 그 사람을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둘째, 봇수일 때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즉 ‘아도나이’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위대한 주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홀로 게시는 하나님이 아닌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 삼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와 인생 속에서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른다면 나는 바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 나의 생명, 나의 재능, 나의 재물, 나의 능력, 이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내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말로만 주여 주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진짜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사는 것이요, 마음은 떠나있고 말로만 ‘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름은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철저한 복종관계입니다. 주인이 명령하면 종은 복종해야 합니다. 내 사정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려면 내 자리를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은 나였습니다. 내가 나를 지배하고 나를 다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은 행복하지 못했고 혼란스럽고 걱정근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의 보좌에 앉아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신다는 것은 그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옆에 무릎을 꿇고 주님의 지도를 받으며 인생을 인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다스리며 지배하시며 내 인생을 운행하십니다.예수님이 분명한 인생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 인생은 사랑이 넘치고 희락이 있고 화평이 있고 오래참음이 있고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가 넘치게 됩니다. 인격적 성숙을 맛보게 됩니다. 동시에 성령충만을 누리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인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이 주권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늙었을 때, 종을 보내서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해오도록 합니다. 보냄 받은 종은 아브라함이 명령한대로 브엘세바를 떠나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으로 갑니다. 참 먼 길입니다. 그러나 종은 가야 합니다. 그는 그곳에 도착하여 자기의 맡은 사명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는 리브가를 발견하고 이삭의 배필로 합당하게 여깁니다. 리브가의 집으로 들어가니 손님이라고 대접하려합니다. 그러나 종은 우선 자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리브가를 자기 주인의 아들과 혼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습니다. 이것이 종의 사명이요, 순종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종에게는 주인의 명령이 먼저입니다. 우선적으로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3.하나님을 주로 섬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었을 때 그는 자기의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으려합니다. 잘 이해가 안 되지요. 어떻게 종에게 자기의 모든 권리와 재산을 물려주려 했을까? 우리가 잘 몰라서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종은 고용된 하인보다 더 유리하고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종은 분명 주인의 소유요,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인은 그 종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부려먹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종의 먹을거리, 입을 거리, 심지어 결혼문제까지 주인이 책임져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의 모든 필요는 주인이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도나이’(主)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할 때, 하나님을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혜와 은사, 복을 내려주십니다.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더 능히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십니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시17:8절‘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61:4절‘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진정한 영혼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예배가 기다려지고 영혼을 섬기는 일이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섬김이 내 인생에서 진정한 부요로 가득차게 됩니다. 사람을 섬겨도 하나님을 향한 섬김의 은혜로 섬기게 됩니다.
시145:8-9절‘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145:14절‘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역경에 처한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45:16절‘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한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을 만나서 그분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삶인지를 체험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로는 ‘주여’라고 외치는데, 실재로는 ‘나여’하며‘나’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주여, 주시옵소서’하며 부르짖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기의 욕심만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분 좋으실 리가 없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아십니다. 문제는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정말 ‘주여!’라고 부르고, 아도나이 앞에 복종한다면,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도나이 하나님께서 눅6:38절‘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실 것입니다’여러분의 주인이신 아도나이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행복의 주인, 예배의 주인, 그리고 평생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되신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아가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넘치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시145:18절‘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자는 자기에게 구하는 자에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시145:20절‘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오늘도 나의 주인 되시는 ‘아도나이’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구하여 응답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