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고백 / 수필가 김 용 도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KBS주관 성금모으기 운동을 전개 하고 있는데, 성금함 앞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친구가 “부조리가 판을 친다고 하면서 어쩌니 해도 그건 극 소수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저렇게 선량하니까 국가가 발전되어 가는 모양이지?” 한다.
나는 이런 시간이 오면 양심의 가책을 제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친구들 들으라고 “나는 말이야! 저렇게 줄을 서서 성금을 내어 본 경험이 내 평생에 단 한 한 차례도 없다네, 연말연시, 구세군 냄비가 보이든가 하면 가던 길을 안 가고 돌아가 버리는 성질이지” 하였겠다. 양심고백을 하자면 나는 얼마간의 성금을 기탁해야 하는데도 비켜간 예를 다 들자면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가장 고맙게 해 준 사람, 도움을 주고 편리를 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 부모님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내 아내도 아니고 바로 <고 박정희 대통령>인 것이다.
나는 수년 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다며 모금운동을 펼친다기에, '에라, 이 기회에 좋은 일 좀 하자!' 싶어 빚을 내어서라도 기십 만원 성금을 기탁하리라 호언 장담을 한 적이 있다. 오호 통재라! 그런데 그 일마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늘상 숨기며 지내왔다. 그런데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는 것이 이런 일이다. 차라리 양심 고백을 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을...
오늘의 주재는 위에 언급한 이야기가 아니고 문우(文友)이자 고향친구인 석계(石溪) 윤행원(尹幸遠)의 <인간성>에 대한 언급이다.
나는 몇 년 전, 대구 가톨릭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는데, 수술실에서 죽느냐 사느냐,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무렵 석계 친구는 평택에서 대구까지 불원 천리하고 문병을 와 주었다, 문병을 왔으면 됐지 그것도 부족한지 거액의 병원비까지 놓고 갔다. 작년 연말 연시에도 시외 전화로 “니, 절대 오해하면 안된다이, 이상하게 생각 하지도 말고!” 하더니 상식을 뛰어 넘는 거금을 내 통장에 입금시켜 놓은 것이다. 또 한 번은 생활 용품을 마대에다 가득 채워서는 어깨에 메고 왔는데 “홀아비살림 살라카면 필요할 것 같아서...”하며 내려 놓는 것이다. 이런 예가 하도 여러 번이라 일일이 언급하기도 불가하다.
이 친구는 평택서 대구까지 왔으면 대구 친구들로부터 접대를 받고 가야 당연지사일 텐데 도리어 대구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는 자기가 한턱을 내고 간다. (한번은 대구 친구가 먼저 계산을 하고나니 기어이 내어주라 이르고 자기가 계산을 하는 것이다)
나는 유년시절 부터 조실부모하고 농촌에서 여러 형님 밑에 자라서 그런지 누구에게 고맙다든지 감동을 받아본 사연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일까, 지금도 누가 내게 선심 행위를 베풀어도 좀처럼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어물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석계가 베푼 일련의 호의야 말로 아무리 꽁꽁 언 내 가슴일망정 녹아내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벅찬 감동을 먹은 나머지 가슴이 저려와 가뜩이나 불면증이 있는 회복기의 환자로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론 물질적인 것도 고마운 노릇이지만, 그것 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은 석계의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무리 도와줘 봐야 한강에 돌 던지기기가 아닌가? 내가 죽고 나면 내 후손 중에서 석계를 알아 볼 녀석은 아무도 없다. 그건 고사하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을 석계는 하고 있다.
그래서 석계한테 “석계, 나는 말이야 아직 병문안 가서 ‘쾌유’라고 적힌 봉투를 디밀어 본 역사도 없고, 친구가 멀리서 찾아왔다고 해서 술을 받아 준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 현금을 봉투에 넣어 거마비 조로 건네 본 일이 절대 없다네, 그리고 말이야,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생각해 보건데 나는 석계가 하고 있는 것처럼은 절대 못한다는 사실일세” 하였더니, 석계는 “왜 안 해, 너도 닥치면 할 사람이야!”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것이다. 내 딴에는 그래도 <인간성>하나 만큼은 낙후되기 싫었는데 석계 앞에 서기만하면 왜 이리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노력한다고 해서 일조일석에 개선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개과천선하여 나의 도덕지수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합천신문 독자투고(2010년4월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