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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여행 8월 1일 22시,마눌과 정애처제 그리고 나. 어둠에 젖은 광주를 떠나 여름여행을 시작한다.광산 IC를 진입하여 달리는데 야간운전이 어색하고 눈이 부셔 속력이 나질 않는다. 목적지는 강원도,작년에 이어 두 번째 강원도 여행이다. 벌곡 휴게소에서 휴식후,호남고속도로에서 경부,중부,영동고속도로다. 여주 휴게소에 들르니 깊은 밤인데 피서객들로 인해 밤이 깨어있다. 간단한 요기후 출발,작년에 저녁을 먹었던 평창송어 횟집,월정사,알파인 스키장,대관령곁을 스치고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수많은 터널을 지나 대관령 휴게소에서 휴식후 강릉,동해고속도로 진입한다.동해 휴게소에 들러 어둠에 묻힌 바다를 바라보며 일출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다. 오끼나와에 태풍이 상륙하고 남해에 근접, 전남지방은 태풍권역인지라 이 곳 역시 태풍의 가장자리다.추암해수욕장에 05시 쯤 도착,마을회관 앞에 염치없이 주차하고 촛대바위로 향하는데 일출을 보기위한 인파가 많다. 애국가 전경중 제일 먼저 나타나는 동해 추암해변곁에 있는 촛대바위, 30여분을 기다려도 해는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한 체, 전 날의 피곤함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추암해변을 둘러보며- 36년전 해군 근무시절에 삼척과 묵호를 합쳐 동해시로 승격 경축장에 참석해 팡파레를 날렸는데 묵호는 동해시로 남고 삼척은 삼척시로 분리된 것을 인식하며- 작년에 가려다 일정에 쫓겨 포기한 무릉계곡으로 향한다. 한 시간여를 달려 무릉계곡 향토 음식촌 주차장에 도착하고, 양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중 손님이 붐비는 영진회관에서 아침식사를 마친후 옆 편의점에서 청화대에 진상한다는 막걸리 한 통을 구입하고 관리사무소를 지나,양사언석각,금란정을 바라보며 무릉반석에 올라선다. 수 천평의 너른 반석위에 음각된 한자와 한글,무릉도원이 여기라더니 별유천지라 갑자기 신선이 된 기분이다. 암반위로 흐르는옥계수는 통명전의 샘물이요, 선녀 들의 욕수일져! 오염되지않은 청청수가 오염된 마음을 씻어내며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는데 육신이 가벼워지며 구름위로 오르는 기분은 뭘까? 청옥산과 두타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 주위의 아름드리 나무와 어울어져 선경을 이루고 계곡 물이 흐르는 바닥을 보면 까만 용오름 줄이 선명하다. 삼화교를 지나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삼화사를 휘휘 둘러보고 관음암 쪽으로 향한다. (무릉반석위) 전설에 의하면 산쥐들이 길을 인도하여 지었다는 관음암,쥐조암이라고도 하고,앞을 보면 두타산성과 마주하고, 절 뒤쪽에 기가서린 바위에서 기를 받아가라고 스님이 귀뜸을 해주는데 건성으로 듣고 신선바위로 향한다. 아름다운 무릉계곡의 경치를 구경하기위해 신선이 앉았던 자리인 신선바위,천기가 흐르는 엉덩이 모양앞에 앉아 천길 낭떠러지를 보니 어질어질해서 맞은편 산을 보니 단풍든 가을에 오면 신선이 될것같은 기분이든다. 한 없이 앉아서 명상에 젖고 싶지만 시간이 야속하고 저만치 가다보니 관음폭포라! “에게! 뭐냐?” 물 한방울 없이 말라버린 바위 음푹한 곳을 보니 폭포수가 지난 흔적만 희미하고 좀 더 가니 거의 수직에 가까운 하늘문에 도착한다. 300여개 가까운 철계단을 내려가기 아찔한데 오르는 이는 진짜 하늘문을 볼 것 같다. 문간재 사거리에서 신선봉에 오르려고 산을 오르다 뒤 돌아보니 란희와 정애가 힘이드는지 원망스레 바라본다. 문간재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고 지친 두 여성의 땀을 식혀준다. 신선봉 정상에 오르기전에 너럭바위가 있는데 평평하고 넓이가 열평쯤 보인다.거기 앉아 앞을 보니 시야가 좋다.광개토대왕비도 보이고 사랑바위도 보인다.바위에 앉아 사과와 천도복숭아.옥수수로 허기를 메우는데 다람쥐가 먹이를 달라한다.먹던 옥수수를 던져주니 볼가득히 옥수수를 집어넣더니 바위위에 올라가 볼에 저장한 옥수수를 씹어먹는 모양이 귀엽다. 청화대 진상막걸리를 셋이서 나눠먹고,아니 거의 내가 마시고 육송이 아름다운 신선봉에 오른다 신선봉 정상에 오르니 신선이 사는곳이 이 곳이구나하고 몸이 먼저 작용하며 바위사이로 솟아오른 적송의 자태와 건너편 절벽 사이로 솟구친 소나무의 용트림하는 자태에 매료 되며 그 강인함에 박수를 보내는데 죽은 소나무의 자태 또한 죽은 주목보다 그 모습이 수려하다. 신선봉을 내려와 문간재 ,문간재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장군바위 얼굴을 감상하며 조금 오르니 화강암 절벽사이로 선녀탕이라는 소가 다리밑으로 보이는데 음침하다는 느낌이 든다. 더 나아가니 관광객과 등산객의 수가 늘어나며 쌍폭포라는 곳에서 후레쉬가 요란하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의 계곡수 한줄기,그리고 청옥산과 고적대 사이의 계곡수 한줄기가 만들어내는 두 줄기의 폭포수,그런데 왼쪽 폭포수는 물량이 적어 오른쪽 폭포수와 확연한 차가 난다. 좀 더 오르면 용추폭포가 나타나는데 여기도 가뭄탓인지 물량이 적다. 용추폭포는 상,중,하 3단 폭포인데 하층 폭포에서만 관광객이 몰려있다,상,중폭포는 하폭위로 난 계단을 타고 더 올라가야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항아리 모양의 소로 떨어지는 2단 폭포가 이채롭다. 용추폭포를 되돌아,쌍폭,선녀탕,장군바위로 직진하면 평평한 길가에 두타산성 입구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저 길을 올라 두타산,청옥산의 백두대간길을 밟아보겠지 회상하며 옥류동,학소대를 지나 삼화교 ,금란정 ,관리사무소를 거쳐 “무릉일가”맛집에서 산채정식과 토속주로 피로를 풀고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로 향한다. (쌍폭포를 배경삼아,왼쪽 폭포는 가뭄이다) 삼척시 서쪽 오십천 절벽위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죽서루,작년 여름휴가 때 시간에 쫒겨 지나쳤던 곳,자연 암반위에 세운 기둥에 기대어 생각하다 사지를 대자로 누어본다. 천정에 걸려있는 수많은 글을 보니 그 옛날 양반들의 풍류의 소리가 들린다. 선사시대의 암각화와 용문바위,문무왕이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는데 동해의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다가 용문바위를 통해 승천했다는 재밌는 전설과 송강 정철의 비와 어울어진 녹음짙은 거대한 고목에선 매미소리가 정답다.여배우 손예진의 손도장도 보이고... (용문바위) 동굴의 고장 삼척을 떠나며 대금굴과 환선굴을 보기위해 훗날을 기약하며 동해시 중심부에 있는 천곡 자연동굴로 향한다.1991년 6월 24일 발견된 천연 석회동굴로 1.4Km중 700m만 단계적으로 개방 된다고 한다.안전모를 착용하고 철계단을 내려가니 선선한 바람이 더위를 날리며 지하궁전의 세계로 안내를 하는데 많은 인파로 인해 앞사람 뒷통수 보는 시간이 많아 답답하고 병목 구간이 이어진다. 전날 만장굴과 화암동굴등 규모가 큰 동굴등을 탐사할땐 산책하듯 즐겼는데 갑갑하지만 석순과석주,천정용식구등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지하세계를 흐르는 지하천이 답답한 가슴을 식혀주기에 거북이 걸음에 적응된다. (동해시내에 있는 천곡동굴내부) 천곡동굴을 나와 묵호항옆 수변공원에 주차하고 논골담길을 올라가는데 지열이 대단하다. 드라마 “상속자들‘의 촬영지였던 차은상의 집 근처의 그네가있는 논골담벽화를 보며 오르다보니 그 옛날의 골목길 그대로여서 정겹지만 이 곳에 사시는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걱정된다. 정상에 오르니 묵호등대 주차장이 나타나고 등대뒷편 문으로 오르려는데 수리중이다. 시원스러운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며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여객선인지 푸른바다를 가르고있다. 시야의 시원함과는 다르게 밀리는 인파와 지열로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로 목을 적신후 드라마 “천년의 유산”촬영지였던 ‘출렁다리’통하여 내려와 ‘횟집 명소거리’를 지나 강릉으로 향한다. (등대밑 드라마 ‘천년의유산’ 촬영지였던 출렁다리) 오후 5시가 지나 오죽헌에 도착한다.1975년 이던가?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들렀던 기억을 되새긴다. 버스에 내려 흙 길을 달려 도착한 초가지붕,집뒤로 둘러싸인 오죽들,그 것이 전부였다.우리나라의 위대한 철학가이며,정치가였던 이 율곡 선생이 태어난 집... 그 후 40년이 지난 지금 여기 다시서니 정겹던 옛스러움은 간곳없고 문명의 이기만 가득. 작년 대관령 오르다 신 사임당 시비를 보았는데 오늘은 그가 살고 율곡선생이 태어난 터만 보았네. 오죽헌을 나와 선교장으로 발길을 옮긴다.오죽헌이 인위적이라면 선교장은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효령대군의 11대손 이 내번이 지었고 3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원형이 잘 보전되어 기분 좋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는 주택과 조화를 이루고 무엇보다도 후손들이 지금도 거주하며 산다는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주택들을 휘 둘러보고 집 뒤의 동산에도 올라가 보는데 멋들어진 소나무의 자태는 고고하고 인공으로 파놓은 연못 곁에 지어놓은 활래정은 연꽃에 휩싸여 풍류를 즐기는이의 안식처가 될만하다.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는데 그래서 ‘선교장’이라는 이름이 생겼나보다.그 때의 호수는 논이 되고 옛 집에는 ‘한옥체험’이라는 민박집과 전통된장등을 판매한다는 글귀가 있어 정갑고 관광객가 하나되는 공간이 있서좋다 (선교장 활래정) 김시습 기념관을 지나 경포대로 향한다.수많은 사람들이 강릉 경포대를 갔다왔다고 하지만 정녕 경포대에 가본 사람은 드물다.선교장 동쪽 경포호 북쪽 둔덕위에 고려때 지어졌다는 경포대,관동팔경의 하나로 팔작지붕의 누각이 예사롭지않다.바닥 양쪽으로 복층구조로 되었는데 그 곳에서 바라보는 큰 호수가 경포호다.바다에서 불어오는 쉬원한 바람이 호수를 스치며 경포대 둔덕을 치며 올라온다. 누각을 내려와 초당 순두부촌을 지나 허난설헌의 생가로 향한다. 본명 허 초희,난설헌은 호란다.란과 백설의 조화인가? 강릉엔 신사임당과 허초희가 있다. 27세 요절했던 천재 여류시인,오빠와 동생의 어깨너머로 글을 익히고, 결혼한 남편은 난봉꾼에,두 아이를 잃고,뱃속의 아이마져 유산하고,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동생 허균마져 귀향을 가고,자신의 죽움마져도 예언했던 가련한 여인 허난설헌,생가앞에 그의 시비가있고 동상이 있다. 초희의 동상에 기대어 기념 촬영을하고 곁에 위치한 순두부집에서 모두부와 초당 순두부전골로 저녁식사를 한다. 초당이란 말은 허 초희 부친의 호란다. 허난설헌의 생가 시비공원을 나와 주문진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린다.강원 도립대학 근처에 위치한 ‘오션스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8월3일 아침 새벽5시에 눈을뜨니 태풍의 영향으로 세찬 비가 내린다.뜨거운 욕조에 경직된 근육을 맡긴후 하조대를 향하여 출발한다.새벽 5시가 조금 지났는데 도로변 중국집에선 피서객을 상대로 영업중인데 이색적인 풍경이다. (하난설헌 동상곁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주문진을 떠나, 비는 내리지만 ,동해 바다의 푸른품속의 백파를 감상하며 달린다남애항,동산항을 지나고 가시문항에 있는 3.8선휴게소를 지나며 5년전 1월1일 정동진 일출감상후 이곳에 들른 기억이 나는데 거센풍파속에서 바다를 헤엄치던 잠수부가 떠오른다. 양양땅 하조대 주차장에 도착한다.암석해안과 노송,등대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진곳,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잠시 머물렀다고 해서 하조대란 설이있고,하씨 총각과 조씨처녀와의 이루진 못한 사랑을 기리기위해 하조대라는 설이있단다.새벽 이른 시간인데도 관광객이 붐비는 곳을 보니 명소인가보다.어제 촛대바위 일출을 못보고 이곳 하조대와 무인등 대사이의 일출을 기대했는데 오늘도 일출은 빗속으로 사라졌나보다. (하조대 등대아래서) 하조대 주차장에서 왼쪽은 무인등대로 가는 곳이다. 철문을 통과하는데 출입통제시간이 적혀있다. 데크를 따라 올라가며 해안 바위들을 보는데 작은 금강산을 옮겨놓은 것 같다.등대옆바위위에는 돌고래상이 있고 바다헌장의 글이있는데. 돌고래는 금방이라도 바다를 향하여 나를 것같다. 등대를 되돌아나와 오른쪽 길을 50여미터 오르면 하조대가 있다.하조대 현판을 달고있는 육모정아래 기암절벽위에 서있는 노송은 기막히게 아름답다.척박한 환경속에서 해풍과 씨름하며 200년의 세월을 품고있는 노송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것같다. 하조대를 뒤로하고 양양남대천을 지나 낙산 도립공원,상천을 건너고 대포항,외옹치항을 옆으로 스치며 속초 아바이마을로 향한다 속초고속터미널,속초세관,교동주민센터 근처에 오니 네비가 작동을 하지않는다.갯배선착장 안내판도 보였는데 어딘지 알수가없다.청초호근처 대형주차장에 서있는 관광버스기사에게 선착장을 물으니 정반대편으로 가라고한다.석봉도자기미술관,청초호 호수공원,철새도래지 탐조대,엑스포축구장,이마트까지 청초호 3/4을 돌다 이상하여 네비를 다시켜보니 제대로 작동한다.오던길을 되돌아 목적지를 바로 곁에 두고 관광기사가 거짓안내를 했던것 같다.한 시간여를 헤맸는데 그 양반 덕에 청초호 구경 한번 잘했다.갯배선착장에 도착하여 ‘88생선구이’집 앞에 주차하고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 도착. 갯배이용료 200원을 내고 마을 구경에 나선다. (아바이마을 갯배) 실향민들의 아픔이 서린곳,통일에 대한 염원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이 곳에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드라마 ‘가을동화’주인공 이었던 송승헌과 송혜교 동상과 기념사진 찍는 관광객들 모습이다. 아바이 순대,명태를 이용한 명천 순대골목을 돌다가 새우튀김을 시켜먹고 다시 갯배를 타고 나오는데 이 갯배는 노나 동력이 아니라 와이어를 잡아당겨 움직인다.당겨보는데 재미있다.아바이 마을은 속초항 옆에있는 조그만 섬인데 청초호쪽으로 설악대교,속초항쪽으로 금강대교로 육지와 이어져있어 차로 갈수있지만 갯배의 여유로움과 옛 정취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한다.갯배를 나와 ‘88생선구이’집에서 생선구이를 먹는데 싱싱한 생선이 열 네가지다.아주머니가 전부 구워주는 것을 먹는데 비린내도 없고 맛이 좋다. 아침부터 많은 관광객이 넘치는 걸 보니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속초 국제여객터미널 근처의 영금정과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관동팔경의 하나인 고성의 ‘청간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용의 비늘을 단 적송들의 환대를 받으며 청간정에 오르니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는 ‘청간정’ 현판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누대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들어오는 동해의 시원한 모습,바다 저 멀리 보이는 죽도의 멋스러움,남쪽 천진리쪽 백사장은 여인의 고운 살결처럼 깨끗한데 백사장을 따라 쳐져있는 철책선은 분단의 아픔을 실감케한다. (청간정에서 천진리) 청간정을 나와 송지호를 지나 고성 왕곡마을 북쪽으로 난 길의 둔덕을 넘어가니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안에 왕곡 민속마을이 모습을 들어내는데 ‘ㄱ’자형 기와집과 초가집,그리고 항아리를 뒤집어씌운 굴뚝들이 이색적이다.양근함씨와 강릉최씨의 집성촌으로 길지중의 길지라는데 수백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고 한국전쟁과 최근 고성 대형산불에서도 전혀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마을 남쪽으로 난길을 따라가면 민박체험 관광객을 위해 산책 길을 잘 닦아놓았다. 석호인 송지호 갈대밭 사이로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는게 보인다. 송지호를 좌측으로 바라보며 남쪽 마을 초입의 둔덕에 서면 마을의 형상이 유선형의 배가 동해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방주형 길지여서 전엔 우물을 파지않고 샘물을 사용했다 전해진다.송지호 철새도래지 관망탑을 바라보며 남쪽 마을 입구 길을 거쳐 7번국도에서 다시 북진이다.통일 전망대를 향하여... (통일 전망대 출입신고소) 가진항,거진항을 거쳐 화진포,대진항,그리고 마차진 해수욕장지나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하는데 관광인파가 인산인해다.통일전망대 위치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안보교육도 받아야 한다.신청서는 인원에 관계없이 차량당 한 장 작성하고 주차료와 관람료를 내고 정해진 시간에 차를 몰고 출발하면 된다.11시에 차를 몰고 출발,꽤 먼거리를 가 민통선에 도착하면 군부대에서 통일전망대관광 표시증을 주는데 차위에 올려놓고 진행 하란다.드디어 민통선안이고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한다.신고소에서 여기까지 10여분 걸린 것같다. 주차장을 왼쪽에끼고 북쪽으로 난 마포가 깔린 둔덕 길과 계단을 오르니 광장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은 헬기장,불상,성모상이 있고,왼쪽엔 휴게소,학생관,교회가 있다. 곧 바로 직진해 계단을 오르니 북한관이다.비는 세차게 내리고,북한관 획 둘러보고,별로 볼게 없어서,북한관 건물 위쪽 전망대에 오르니 해금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모래사장의 철책선 위로 이념과 열강의 전쟁 전리품 배분논리로 분단된 민족의 눈물인냥 세찬 비가내린다.금강산 비로봉쯤 가늠하고 눈을 돌리니 금강은 모습을 보여주지않고 하얀 눈물로 화답한다. 단군 성조시여! 당신의 후손들을 어찌 하오리까? 오늘도 한 민족의 오장육부에 철책선을 두르고 둘로 갈려져 위정자들의 놀음에 놀아나는 후손들에게 마냥 적대감만 주시렵니까? (해금강을 배경으로) 휴게소에 들러 금강산에 관한 영상물을 보다가 밖에 나오니 세차게 비가내린다.그냥 비를 맞으며 주차장까지 걸으며 최북단 전망대 관련 양쪽 휴게소에 넘쳐나는 북한산 물품들을 그려본다.분단은 분단이고 사업은 사업인가 보다.세월호로 인해 국민들이 많은 고통을 당했겠지만 그 틈새로 부를 축척한 소수의 사업자도 있었을 테니까(?) 전망대를 나오다보니 명파교가 눈에 익다.최근 방송에서 자주 나오던 다리다.한 병사가 동료병사들을 사살하고 탈영하여 대치하던 그 다리다. 초도해수욕장,화진포 해양박물관을 지나 화진포의성 즉 김일성별장에 도착하여 화진포해수욕장을 바라보니 광개토대왕릉이라고 알려진 금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2006년 8월초에 휴가를 이 곳에서 보냈는데, 이기붕 별장 북쪽에있던 군인 아파트가 리조트로 변해있다. 8년전 여름 이 곳 해수욕장에서 놀던 큰 딸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한다. “부디 윤회의 고통없는 정토에서 성불하여 편한하거라!!~ 옴아모가바이로차나마하무드라마니파드마즈바라프라바를타야훔” 해안 절벽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잡은 성,1938년 독일 건축가 H.Weber가 건립하였고 예배당으로 사용하다 김일성이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아들 김정일,딸 김경희등 가족과함께 자주찾았다고 김일성별장이라 불리운단다.입구계단을 오르다보면 6살 김정일이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자리표시만 있다.가족 들이 사용했을 응접세트와 생활용품들이 침실에 전시되어있고 2층전망대 창틀에 비친 화진포 해변은 풍경화 자체다.옥상에서 바라보는 비취빛 바다색은 동해에서 보기힘든 색인데 오늘은 비가 내린다. (김일성 별장) 해안 숲속, 담쟁이 넝쿨을 뒤집어쓴 이기붕별장을 구경하고 3Km 떨어진 이승만 별장으로 향해 화진포교를 건너는데 이 다리로 인해 화진포호가 둘로 갈라진 느낌이다. 호숫가 주위 모래밭에 해당화가 많이 피어 화진포라는 이름이붙은 동해안 최대규모의 천연호수,길이가 16Km에 이르고,호수를 둘러싸고있는 울창한 소나무숲과 갈대밭이 절경인 곳,해질녁 붉게물든 하늘과 병풍처럼 둘러싸인 노송,춤추는 갈대밭을 상상해보라! 풍류시인 김삿갓이 이곳 모래밭위에 지어진 모화정각애서 호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연어 숭어 도미가 많아 낚시매니아에게 인기가 많은곳,오리 고니등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며 겨울이면 천연기념물 201호인 백조도 날아드는 곳,호젓한 산책로와 멋진 드라이브코스로 연인들이 즐겨찾는 명소란다. 이승만별장에 도착하도록 비는 멈추지않고 계속해서 나린다. 별장 내부로 들어서니 이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가 정겹게 담소하시다가 반갑게 미소지으며 우릴 맞는다.응접실,서재,침실등을 둘러보고 비내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다음 여행지를 생각한다. (이승만별장 응접실 대통령님부부) 별장 윗편으로 난 숲길을 따라나오니 금강산자연사박물관이다.좌회전하여 7번국도를 타고 내려오다가 거진읍에서 건봉사 방향으로 우회전 한다.송정리를 거쳐 산길을 오르다보니 민통선이다.나의 이름을 묻더만 반대편 민통선 초소에 전화를 하고 통과시킨다.아마 반대편 초소에 차량번호와 운전자 성명, 동행자 숫자를 알려준 모양이다.공기 좋은 비오는 민통선안을 달리는 기분이 색다르다.이 곳은 산악지역이라 통일전망대 바닷쪽과는 지형이 틀리다. 건너편 초소에 도착하니 초병이 나와 이름을 묻고 동승자 숫자를 묻더니 통과 시킨다. 얼마를 갔을까? 고성8경중 제1경인 ‘금강산건봉사’에 도착한다.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입구에 있는 건봉사.전국4대 사찰중 하나였으나 6.25전쟁때 완전 폐허가 돼버려 지금은 신흥사의 말사로 전락,과거의 영광을 찾기위해 복원중이다.신라 법흥왕7년(서기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로 창건,그후 도선국사가 중수한뒤 ,서봉사‘라 하였고 여말 나홍화상이 중수하여 ’건봉사‘로 개명하였다. 6.25전쟁때 치열한 격전지였고 임진왜란때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곳이다. 만해(한용운)스님도 건봉사 만일선원에서 하안거를 한 후 큰 깨달음을 얻어 만화스님으로부터 만해라는 법호를 받았단다. (건봉사 불이문) 입구의 멋진 금강송을 뒤로하고 만해선사의 시비와 가람위치도가 아닌 1920년도 건봉사 전경이 이색적이다.만해선사의 ‘사랑하는 까닭’을 보다가 선사의 오도송을 생각한다. “사나이 가는 곳마다 다 고향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나그네 설음을 겪고 있구나/ 한 소리 큰 할에 삼천세계를 깨뜨리니/ 눈 속에 복사꽃이 분분히 날리는구나“ 대단한 경지의 오도송이다.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보호수인 멋진 팽나무에 둘러싸인 ‘불이문’을 지난다. 유일하게 6.25 전란의 화마 속에서 건재한 옛 모습을 보여주는 문이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능파교를 옆에두고 직진, 양쪽으로 세워진 석주를 통과하니 길 양쪽으로 작은 연 못이 있다. 작은 연 들이 수줍게 꽃을 피워 인사를 나누고 더 오르니 ‘적멸보궁’이다. 실은 이 곳에 온 목적이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보기위해서다. 보궁 뒷 쪽의 사리탑에 삼배하고 전시된 치아사리를 보기위해 보궁 안 곳곳을 살펴도 스님 혼자서 수행중이시다. 다시 보궁 뒷 뜰로 가서 작업 중인 보살님께 물으니 대웅전 남쪽 법당에 모셔 있단다. 적멸보궁 전각앞에 피어있는 하얀 수국은 꽃봉우리가 너무커서 땅을 향해 처져있다. 보궁을 되돌아 나와 능파교를 넘어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마당 오른쪽 법당으로 들어서니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친견한다. 우리나라의 오대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오대산 상원사,설악산 봉정암,영월 정암사,영월 법흥사다.작년에 상원사와 봉정암을 다녀와 석존보궁을 전부 친견 한 줄 알았는데 여기서 통도사 양식의 적멸보궁을 보며 의하에 했다.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는 모두 15과였는데 스리랑카 불치사에 1과 봉안되었는데 스리랑카 국보1호다. 스리랑카 캔디 에살라 ‘페라헤라축제’가 매년 음력 7월에 성대하게 열리는데 이 치아사리를 친견하는 법회는 세계적 종교적 의미의 페스티발 역사중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통도사에 분안 되었던 부처님 사리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강탈해 간 것을 사명대사께서 일본에서 되찾아와 그중 치아사리 12과를 금강산건봉사에 봉안하였는데 도굴당하고 도굴꾼들이 한약봉지에 싸서 8과만 보내와 1996년(박현소스님이 주지) 8과중 3과를 사리탑에 봉안하고 나머지 5과는 일반인 들이 친견공덕을 지을 수 있도록 건봉사 염불당내 금제 사리함에 보관하고 있다. 건봉사 적멸보궁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의 역사를 말해주는 비석은 3등분으로 깨져있다.그렇다면 건봉사에 8과,도난당한4과,스리랑카에 있는 1과를 합하면 13과인데 나머지 2과는 어디있고 사라진 4과는 어디있을까? 능파교를 건너며 다리밑을 흐르는 흙탕물처럼 머리가 복잡하다.사명대사의 동상과 부도탑을 뒤로하고 진부령을 오른다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길 진부령 표지석을 지나 진부령 미술관앞에서 세찬 비를 뚫고 기념촬영후 진부령휴게소,용대리 자연휴양림 입구,황태마을을 지나니 미시령터널 쪽에서 나오는 차량들과 뒤섞인다.. 속도가 갑자기 거북이가 되고 인고의 기다림 끝에 백담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백담로따라 다리를 건너고 백담황태구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황태구이와 더덕구이를 시켰는데 갖가지 산나물과 순두부,황태국까지,황태산채 전문식당이 맞나보다.표고버섯,오징어젓갈,아주까리,샐러리,곰취,민들래,엄나무순,시래기.부지갱이,목이버섯등 이름모를 나물류가 많다.옥수수 동동주와 사임당 생막걸 리가 있는데 운전관계상 참으려니 고문이다.늦은 점심이라 배도 고팠지만 음식이 입에 달라 붙는다.배터지게 먹고나서니 정애처제가 백담사에 가잔다.백담사에 가려면 작년 10월에 하룻밤 묵었던 청호팬션근처에 있는 백담 탐방 지원센터에 가야한다.황태구이집을 나와 백담사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백담 탐방 지원센타가 나온다. 부리나케 주차장에 주차하고 버스티켓을 구입하여 백담사행 셔틀버스에 오른다. (백담사옆 수렴동계곡) 백담 매표소를 출발하여 구불구불하고 좁은길을 기막히게 운전하는데 외길이다.중간 중간에 넓은장소가 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차와 어쩜 그리도 시간이 잘맞는지,곡예운전의 대가이긴한데 안전이 걱정이다.두태소가 있는 백담계곡을 지나고 수렴동계곡,청룡담을 지나 20여분만에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작년 10월초 봉정암과 대청봉 왕복산행 하느라 왔던 곳이라 더 정갑다.이 곳 주차장과 매표소를 운행하는 버스는 출발시간이 정해진게 아니라 손님이 만석이 되어야 출발한다. 비내리는 주차장을 올라와 백담사와 연결된 수렴동계곡위 다리를 지난다. 외설악에 천불동계곡이 있다면 내설악엔 수렴동 계곡이 있다.백담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의 골짜기를 수렴동계곡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담과 소,기암괴석등이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는 계곡이다. 상류의 가야동계곡,그리고 백운동계곡과 합수되는구곡담계곡의 두줄기 물줄기가 수렴되는 수렴동계곡. 그 계곡 하류 백담사곁 넓은 골짜기의 물이 흐르지않는 곳에 수천개의 돌탑들이 있는데 압권이다. 누군가의 소망과 혼을 담은 크고 작은 돌탑들을 보며 비내리는 금강문에 도착한다. 백담사는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서기647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였고 1772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심원사,선구사,영취사로 불리우다가 1783년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데서 일컽게 되었다고 한다. 금강문을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종각과 만해기념관과 만해당,선원, 중앙 사천왕문을 지나면 나한전,법화실,극락보전,산신각,화엄실,헌다실, 왼쪽으로는 만해교육관과 만복전,적산당,선열당,만해도서관 그리고 연구원이 3개있는데 오른쪽에 제1연구원,왼쪽에제3,제2연구원이 있다. 만해스님의 흔적이 흠뻑서린 절같다. 만해기념관에 들어서니 내부수리를 하고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1905년 이 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깍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고,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했다. 일제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한 이 곳은 독립운동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비오는 사찰안을 기웃거리다보니 12.12사태의 주역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문곳이라는 표시가 있는 화엄실도 보인다. 절을 나오니 비가 그쳤는지 산봉우리에 걸린 운해가 장관이다. 두타연을 가려다 포기하고 인제를 떠나 동홍천까지 가는데 국도가 주차장이다.동홍천 춘천 서울간 고속도로를 타는데 강촌IC부터 정체다.설악,서종,화도,덕소,미사IC를 지겹게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려다 하남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잘못진입하여 헤메다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지친 운전대를 란에게 넘긴다. 정읍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도착하니 03시 30분이다. 백담사에서 11시간이 걸렸나보다. 내년을 기약하며 올 여름여행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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