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될 것 때문에
최 영 옥
나는 요즘 다섯 살짜리 첫 손녀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서투른 말씨가 귀여워 듣고 싶어서이다.
“따르릉”
‘멍머이 하머니!’
내 전화를 받는 손녀는 우리 집에 기르는 애완견 때문에 친할머니인 나의 호칭을 멍머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손녀 ‘시아’에게 입력된 그 멍머이가 요즘 들어 남편과 나에게 조금 귀찮은 식구가 되었다. 두 달에 세 번 정도 남편의 치료 때문에 우리는 서울로 간다. 그럴 때면 집을 이삼일씩 비우게 되어 동물 병원에 맡기게 된다. 약간 비만인 ‘다롱이’는 큰 집을 제공해 준다. 강아지 호텔이다. 거기에 나는 집에서 ‘다롱이’가 깔고 덮던 천으로 만들어진 집과 방석, 담요를 가져가서 다독여놓고서야 안심하고 맡긴다. 운동도 좀 시켜달라고 부탁도 한다. 동물이지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마음에 짠하다. 찾아 올 때는 보관료도 만만찮다.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어서 가족이 많을 때는 맡기는 일이 없었지만, 결혼과 직장 따라 다 떠나고 나니 때로는 짐이 되고 있다. 그냥 인연으로 받아 키우게 된 것인데, 요즘은 보관료가 껑충 올라 맡기고 찾을 때 부담이 된다. 우리 집 ‘다롱이’는 털 색깔이 온통 검고 두 눈 위에 누렁 색 점이 있고, 입 주위와 발주위도 누렁색이다. 털이 짧고 추위를 많이 타는 ‘도벨만미니핀’이다. ‘다롱이’가 뒷집에 있을 때 남편과 내가 너무 좋아했더니 뒷집에서 이사를 가면서 주고 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
당분간 조금 힘이 들어도 맺어진 인연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같이 지내고 있다. 날씬하면 누구에게 키워보라고 권유도 해보겠지만. 비만인 ‘다롱이’는 좋아하는 우리가 키울 수밖에 없다.
“애완견의 비만은 사육자의 책임이에요.”
라고 어떤 초등학생이 우리 강아지를 보고 지나가면서 얘기 하듯이.
몇 번 맡기고 찾고 했더니 이젠 훈련이 되었는지 맡길 때 떨지도 않고 주인을 믿는 것 같다. 어느 날 오후, 시내 볼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예쁜 옷을 입고 머리까지 염색을 한 강아지가 주인을 잃은 듯 서성이고 있었다. 아무도 주인 같은 사람이 안보였다. 나는 누군가 버린 강아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 강아지가 나가려고 했다.
“강아지 주인 없어요?”
하고 내가 큰소리로 말했더니 웬 할머니 두 분이 일반석에 나란히 앉아서, “놔두소 시에미 집 나가면 안 찾아도 강아지 집 나가면 신문에 내고 다 하요.” 라고 하는데,
“내가 주인이요.”
하는 중년 남자가 술에 취해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 두 분의 할머니말씀이 오래도록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 때 가족 서열에서 애완견이 시부모님 앞에 있다는 유행어가 떠돌기도 했다.
내가 서울에 딸이 사는 아파트의 승강기를 탔을 때 부산 사람을 만났다. 그 분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애완견을 안고는 “아이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야를 봐달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했다. 나는 순간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그 자녀들이 괘씸했다. ‘손자도 아닌 강아지를 보라고 친정 엄마를 부르다니’ 사정이야 있겠지만 강아지를 맡아주는 곳에 맡겨야지. 애완견을 봐 달라고 친정 엄마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불러올린 그 집과, 수시로 강아지를 맡기는 불편함을 겪고 있는 우리 집. 모두가 없어도 되는 강아지 때문에 싸서 고생들을 하고 있었다.
고령화 시대가 도래 한 지금, 하루가 다르게 ‘요양병원’ 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돌봐야할 노부모님을 조금만 편찮아도 병원에 의탁하게 되고 집이 아닌 그 곳에서 뵙고 온다. 그곳에는 중환자들도 있지만, 일시적인 치료를 위해 노인자신이 스스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가서 계시는 분들도 있다.
핵가족시대! 라는 시류 때문에 집안에 있어야할 가족이 집밖을 나가고, 애완이라는 이름으로 집 안에 못 들어갈 동물이 가족이 밀려나간 자리에 구청에 등록된 번호표까지 목에 걸고 가족이 되어 사람을 붙들어놓는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주소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른다. 3년을 집착해서 길렀던 말없는 난초(유정이) 때문에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며칠 후,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
나의 손녀가 그냥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도록 멍머이를 자연스럽게 이별 할 수가 있어야 할 텐데, ‘다롱이’가 이제 여섯 살 이니까 언제가 될지…….
없어도 될 것 때문에 우리는 안 해도 될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약력
최영옥
김해출생
2004 문학예술 수필로 등단
부산문인협회 회원
참수필 동인
첫댓글 애완용 동물이 아무래도 사회문제가 되네요.
독일에도 애완용에 드는 경제가 국가 비용과 맞먹는다는 비명을 들은 잇었는데요 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