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성을 가다 -8
2014년10월8일
태산 (泰山)에 오르다
태산(泰山)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잘 알려진 산이며 가까이 느껴지는 산이다. 양사언의 시
에 태산이 등장하기 때문일것이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이 태산과 공자의 고향이다. 그 중 오늘 태산을 오르게 된다.
가슴이 벅차다. 우리 일행은 모두 들뜬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맛있게하고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달려 태산 경내에 운행하는 샤틀버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출발 할 버스에는
우리 일행이 다 탈수없었다. 이미 현지인이 일부 타고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명의 일행과
샤틀 버스를 타고 태산의 계곡(아마 태산 뒷쪽으로 생각 됨)의 운치를 감상하며 한참을
달려 케이블카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머지 일행이 오지를 않는다. 30여분이 지났을
즈음 나머지 일행이 도착했다. 이유인즉 버스에 좌석이 한자리라도 비면 출발하지 않고 좌
석이 차야만 출발한다는 것이다. 돈은 비싸게 받으면서 서비스는 아직................
우리 일행은 케이블 카로 남천문 까지 올랐다. 남천문은 해발 1,460m로 원나라 중홍5년인
1264년에 대묘의 주지스님인 장지순이 창건하였다고한다.
거기서 도보로 옥황정까지 가기로 되어있다.
길은 산길이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완만하다. 그 만큼 관광객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일행은 뿔뿔히 다 흩어져 버려 나 혼자 사방팔방 돌아보며 시엄시엄 오르고있다.
그러나 산에 대한 매력이 별로없다. 중국의 황산이나 , 장가계, 천문산, 숭산, 운대산 등
내가 가본 산들은 무서울 정도로 웅장하며 깎아지른 절벽에 잔도가 놓여있고 한 눈에 풍광
도 감상 할 수 있었는데 태산은 보이는 것은 불교나 도교사원 그리고 바위에 새겨놓은 글
등 경치는 안 보이고 역사만 보이는 그런 느낌이다.
물론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와 버렸으니 진짜 풍광을 못 볼수 밖에 없었겠지.
태산의 등정은 우리같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던지, 7,400여개의 게단을 따라 오르던지
아니면 한국 산악회에서 개발한 한국루트(한국인은 계단으로 오르기를 싫어하니까 계단
아닌 등정 루트)를 따라 오르는 방법들이 있다고한다.
태산은 풍광을 보는 산이 아니고 영적인 산이라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산같은 느낌이든다
태산에는 22곳의 도교와 불교사찰, 819개의 비석, 1081개의 비문등이있으며 1987년에는
유네스코에의해 세계 복합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하니 이를 증명하는것이다.
현지 인들은 땀을 뻘뻘흘리며 글쓴 붉은 띠를 두르고 보자기나 가방에 잔뜩넣어 올라오고
있다. 옥황상제에게 기도하고 소원을 빌기위하여 올라오는 사람들이겠지. 내 예측은 틀림
없었다. 도교사원인 벽하사, 옥황정 등엔 현지인들이 향을 피우며 기도하고있었다.
나 중에 가이드한테 물어보니 현지인들은 그 기도를 위하여 남쪽 입구부터 계단으로 된
길을 따라 고행을 하면서 올라온다고한다. 그래야 기도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9,999계단(실제는 7,400여 계단 정도인데 인간이 갈수있는 계단의 마지막이며
그 위로는 신(神)의 영역이므로 인간의 한계점을 그은 것으로 생각 됨)을 일반사람이 걸어
올라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없이는 어려운 일인것같은 생각이든다.
나도 옥황정에올랐다. 넓지 않는 공간안 조그마한 사당에 옥황상제의 위패만 모셔져있고
그 앞에는기도하고 절하는 현지인들로 채워져있다. 마당 가운데는 기도 한 후 가져온 소원
의 글을 쓴 빨간리본(허리에 대각선으로 걸치는 띠나 긴 깃발)과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물통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할만큼 경내를 꽉 채우고있다. 다른 관광지의 자물통들 처럼
연인들의 약속일까? 아니면 내가 기도한 소원이 꼭 이루어지고 그 이루어진 소원이 영원히
지켜지길 바란다는 뜻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도 왔으니 증명사진 한장 찍어야지. 옆사람한테 부탁하여 1장 찰칵.
내려오면서 당마애(唐摩崖)라고 불리는 옥황정 오르기 전 절벽바위에 새겨진 서예조각도
감상하였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은 당 현종이 쓴 "기태산명(紀泰山銘)"이다.
서서히 내려오면서 송나라시대 지어졌고 중국도교의 성지인 벽하사 등을 구경하면서 집결
장소인 남천문에 오니 일행들 대부분이 먼저와 있었다.
모두 모여 다시 케이블카로 하산하여 대기하고있는 샤틀버스를 타고 아름다운 바위
(태산의 바위는 모두 무늬가있었음)와 맑은 계곡을 감상하며 주차장에 대기하고있는 우리
버스에 왔다. 그런데 다음차로 오는 우리 일행이 한시간 다 되어도 오지 않는다.
알고보니 갈때처럼 또 인원이 찰 때까지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나날히 발전
해도 이런 서비스는 아직 몸에 배지 않았는가보다.
우리는 태안 국제호텔에서 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인 공자의 고향 곡부를 향하여
달려간다.
태산은 풍광의 산보다 영산의 산이란 생각이 들어 태산에 대하여 좀더 적어보려고한다.
태산산맥은 100km에 달하며 돌산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우리가 태산이라고 하는 곳은
옥황정이 있는곳을 말한다. 태산의 높이는 1,545m이며 맑은 날씨에는 황하가 보이고 바다
가 보이며. 흐릴 때는산을 휘감고 도는 운무가 천하일경이라고 한다.
중국의 5대 악(岳)은 東岳인 산동성의 태산(泰山), 西岳인 섬서성의 화산(華山), 南岳인 호
남성의 형산(衡山), 北岳인 산서성의 항산(恒山), 中岳인 하남성 숭산(嵩山)이다. 그 중
으뜸은 태산으로 꼽는다. 그 이유는 태산이 높아서도 아니요, 험해서는 더욱 아니다.
태산은 岳山이며 名山일 뿐더러 제일 중요한 靈山이기 때문이다. 고래(古來)로 부터 중국
의 가장 동쪽 즉 해 뜨는 곳인 이 태산을 영산(靈山) 즉 성스러운 산으로 받들어 도교(道敎)
의 중심지가되어 중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산이기 때문이다.
태산 정상에는 도교 최고의 神인 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이라하여 옥황상제에게 제사올리는
행사가 수천년 계속 되어왔다. 요순시대 순(舜)임금이 중국의 5악 중 제일 먼저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있다.
천자(황제)가 흙으로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올리는 것을 봉(封), 땅에 대한 제사를 선
(禪)이라 하는데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中)이 관자(管子)라는 책에 봉선의식에 대하여
기록 되어있다고한다.
봉선대전은 황제가 천신과 지신에게 천하를 통치하는 운명과 명령을 받았음을 선포하고
고(告)하는 의식이며, 온 나라에 3년 동안 재해가 없어야하며, 국변이 없어야 의식을 거행
할수 있다고한다.
중국역사 가운데 72명의 황제가 이곳 태산에서 봉선대전을 올렸다고하는데. 그 72명 모두
가 태산 정상인 옥황정에서 봉선의식을 한 것은 아니고 황제의 대부분은 태산 기슭에있는
대묘(垈廟)에서 봉선의식을 거행하고 태산정상에서 옥황 상제에게 봉선을 올린 사람은 5황
제로 중국을 처음통일한 진시황, 한무제, 당 고종과 측천무후, 송 진종, 청 강희이다.
한무제는 태산을 오르던 중 병이나서 오르지 못하고 대묘에서 의식을 향하고 비석만 정상
에 세웠다는 설이있다. 그 비석이 무자비(无字碑)로 글씨가 새겨져있지않다.
대묘(垈廟)는 태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상 대묘는 보지 못했
지만 역사적으로 꽤 유명한 곳이다.
대묘는 북경의 고궁, 곡부의 공자 사당인 대성전과 더불어 중국 3大 목조건물의 하나이면
서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대묘는 동악묘(東岳廟) 또는 태산묘(泰山廟)라고도하며
역대 72제왕이 봉선대전(封禪大)과 동악대제(東岳大帝)에게 제사지내는 장소이다.
이번에는 대묘와 그일대를 못봤지만 다은 기회가 온다면 꼭 대묘를 봐야겠다.
아쉬움이있어 몇장의 사진을 맨 마지막에 올려봤다.
끝
남천문으로 오르는 도화원 케이블카 매표소
편도에 어른 100元으로 적혀있다
케이블카는 여기까지 오른다
남천문 케이블카 도착지점에있는 이정표
우리는왼쪽 도화원에 天街에서 걸어 남천문 까지와서
남천문 - 벽하사 -옥황정 까지 약1km 걸어 올랐다.
저 멀리 기상대가 보인다
그 왼쪽방향에 옥황정이있다
중국인들은 소원을 빌기위해 음식과 향과 소원을 적은 띠를
가지고 그 많은 계단으로 고행을 하는 심정으로 걸어올라 온다고한다.
기도 드리기위해 올라오는현지인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여기가 코스 중 가장 가파른 계단
소원을 비는 향의 연기가 피어로른다
당 마애(唐摩崖)
오른쪽 금분으로 쓰여있는 서각이 당 현종이 쓴"紀泰山銘"이다
벽하사 뒷편 대관봉에있다
한 무제가 봉선대전을위하여 산에 오르다가 병이나 오르지못하고
대신 무자비를 세워 오르지 못함을 옥황상제에게 고하였다는 설의 비석
비석에는 아무것도 새겨져있지않다.
계단 중 계단을 붙인것이 아니고 돌 자체를 파내어
게단으로 만들었다 일부에만 이런 계단이 보인다
옥황정으로 들어가는 문
옥황정 경내의 향피우고 기도하는 곳
뒤에 집은 옥확상제의 위패가있다
옥황정내의 옥황대제위패
옥황정 경내에서 증명사진 찰칵
소원을 적은 리본과 자물통들이 온 경내를 무겁게 짓누르고있다
옥황정 내에있는 태산 최 정상의 표지석
1,545m로 표시되어있다
도교의 성지인 벽하사
소원을 빈 참배객들의 기원문이 쓰인 리본이 걸려있다
내가 촬영 한것은 아니지만 정상에서의 석양도 멋있어서 올렸습니다
대묘(垈廟) 안으로 들어가는 문
대묘앞에 세워진 작은 사원인 요참정
당나라때 세워졌으며 황제들이 대묘에 들어가기전
참배했던 곳
"태산제일궁"이라 부르기도한다
대묘(垈廟)
역대 72황제가 여기서 봉선대전 의식을 치렀다고한다
대묘는 북경의 고궁(故宮), 곡부의 대성전(大聖殿)과 더불어 중국 3大 목조건물이다
대묘는 성벽처럼 둘러싸여있다
J에게-이석화.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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