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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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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한.북위 시기의 낙랑군 위치
백랑 추천 0 조회 160 14.07.04 14:36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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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7.04 16:21

    첫댓글 " '남의 글 문제점에 대해 집중 토론, 비판만 하겠다'고 한다"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마시고...."(백랑수님께서) 더 이상의 비판이 없게 논증하겠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리고...'지겹다'고는 하셨지만,...'어쨋든 좋다'라고 하셨으니,...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토론해 나가시지요...

    그리고,.."처음부터 너무 '100% 완벽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고양이 쥐 생각하는 사족'이 아니고,...."역사상 실제로 낙랑군이라는 행정체가 실존하지 않았었었기 때문에 '100% 완벽한 근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였었습니다. 표현이 미숙해서 오해를 드렸군요..죄송^^

  • 14.07.04 17:01


    우선, 위의 '바탕지도[중국전도]`가 백랑수님께서 '현,난하부근에서 늘림작업(?)'을 하신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저번 토론에서는 근본적으로 '백랑수님께서 임의로 땅을 늘려서 지도를 그리셨기 때문'에 한참 혼란을 겪었었던 적이 있어서요...
    [아마.../(일제가) 1916~1917 년 사이에 지명조작(?)을 하기 위해 제작한 '중국여도'와의 차이/...를 대비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보이므로 위의 '중국전도'는 '임의로 늘리지 않으셨을 것'으로 여겨집니다만,...앞으로 ‘지도의 늘림작업(?)’이 등장할 것 같아서 미리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 14.07.04 16:52

    어쨌든, 위의 본문에서의 핵심지명은 일단, '요하'와 ‘낙랑군’이 되겠네요... 그리고 현재의 위치를 잘 알 수 있게 현대지도 위에 두 지명을 잘 표시해 주셨네요...그래서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간단한 질문을 먼저 드리겠는데,...두 지명을 한꺼번에 취급하기에는 너무 버거우니,.. 하나만 먼저 선택해서 언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요하 : ‘기원전 3 세기부터 기원후 20 세기 초까지 약 2100 여 년 동안의 요하’의 위치가 ‘지도의 청색 실선’으로 비정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그 중에서 ‘가장 이른시기(기원전 3 세기경)의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거기서부터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14.07.04 16:52

    [2] 낙랑군 : ‘한 시기의 낙랑군’의 위치가 ‘붉은색 원1 지역’으로 비정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가능하면, ‘가장 이른시기의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거기서부터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람님께서도 함께 참여해서 의견을 주시면 더욱 좋겠네요...[뭐든지요...]

  • 작성자 14.07.06 09:46

    임의로 땅을 늘려서 지도를 그렸다?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을.

  • 14.07.07 10:46

    @백랑 옛날, 카오스가 지도까지 그려서 백랑수님께 잘 설명해 드린 것을 모두 지워 버렸었군요. 아쉽네요. 그리고선 이제 조금 다른 각도로 비슷한 말씀을 주장하시는군요. 어쨋든 백랑수님 주장의 근간은 변함이 없는 것 같으니 그 주장의 허구를 밝혀 드릴테니,..'백랑수님의 주장[ http://blog.daum.net/elpaso57/8111392 ]'을 이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지요.

    아니면, 스스로...'<중국여도> `장북``승덕``심양``흥경``장백``북경``노룡``여순``평양` 표제의 개별도'를 모두 인쇄해서 풀로 붙여서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 보시면.... '문제점'을 금방 알수 있을 것이니 그리 해 보시던지요. (괜히 컴퓨터 화면에서만...'도표(?)에 현혹'되지 마시고요.)

  • 작성자 14.07.04 23:07

    <후한서/군국지> 유주 속군 상곡.요서.요동군의 본주에서,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각각 3200 리, 3300 리, 36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지요.
    상곡은 지금의 북경 바로 북쪽이였고 이와 비슷한 거리의 요서군엔 갈석,영지,고죽,난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동군에는 2100 리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 그리고 대요수의 서남쪽 지류인 백랑수가 우북평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대요수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 요동군 동쪽에 패수가 있고 이어서 낙랑군이 있었으며 820 리의 열수가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로 들어갔습니다.
    그 염난수는 바로 지금의 란하였고 대요수는 염난수의 동쪽 지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작성자 14.07.04 23:16

    <후/지>에 낙랑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지만 어쨋든 요동군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또 <통전/변방문/고구려>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압록수는 염난수로 흘렀고 이 압록수는 곽박이 열수가 요동에 있다고 조금 불명확하게 설명하였지만 <한서/지리지>의 낙랑군을 흐르는 820 리 열수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동군 동쪽에 있고 820 리 열수가 흐르는 낙랑군은 지금의 대릉하 상류 지역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7.04 23:30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난수와 염난수의 차이를 설명하겠습니다.
    <청사고/지리지>에서는 난수 길이를 반고가 <한서/지리지>에서 설명한 염난수 길이인 2100 리를 차용했습니다. 하지만 <청/지> 편찬자들의 착오일 뿐이고 아무튼 난수와 염난수는 발원지와 입해처는 거의 같지만 경유지는 현저하게 차이를 보입니다. 난수는 어이진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며 어양군 요수.백단현을 거쳐 우북평군 노룡색도를 경유하여 요서군 영지.고죽성을 지나 루현에 있는 갈석산 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반고가 설명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는 현토군의 지류인 마자수를 받아들인 후 요동군 서안평현으로 흘러듭니다.

  • 작성자 14.07.04 23:38

    즉 반고가 설명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지금의 란하이고 란하 하류가 시작되는 지금의 승덕.평천 사이에 대요수가 흘렀으며 염난수와 대요수가 합쳐지는 곳이 요동군의 서안평현,무려현,방현,험독현,안시현 등이였으며 바로 이곳이 200 리 진흙뻘인 요택이였습니다.즉 <한서/지리지> 요서군의 난수 (유수라고도 읽음)는 <수경주>의 난수이고 지금의 란하 서쪽에 따로 흘렀습니다.

  • 14.07.05 13:53

    우아!
    거론하신 근거자료만해도 <후한서/군국지>,<통전/변방문/고구려>.<한서/지리지>.<청사고/지리지>.<수경주> 등 5가지이고,...거론되는 지명들만 해도 유주,상곡(군),요서(군),요동군,낙양.북경.갈석,영지,고죽,난수.염난수.대요수.백랑수.우북평군.패수.열수.란하.압록수,대릉하,어양군,백단현.노룡색도.영지.고죽성.루현.현토군.마자수.서안평현.승덕.평천,무려현,방현,험독현,안시현.요택.유수 등 36개나 되며, 거론하시는 시대만해도 기원전~현대까지 무려 2천년을 종회무진 왔다갔다 하시네요. 예, 이건 만일 도중에 한두군데만이라도 오류가 있어도 전체가 모조리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성’일 수도 있으니 아주 다루기 어렵겠네요.

  • 14.07.05 14:01

    @카오스 이는,... 아무리 용량이 큰 컴퓨터라도 ‘모든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소화해 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 카오스가 ‘가능한한 가장 이른시기의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최초의 근거에서부터 하나하나 짚어서 후대로 내려오다보면 지금 우리가 아는 통설들이 과연 ‘모래성’인지? 아니면 ‘철옹성’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카오스는 백랑수님이 위에서 자신있게 ‘oo는 xx다’라고 단정하시는 것들의 대략95%는 ‘아니다’라고 봅니다. [물론, 그건 백랑수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실사가 아니다'라는 의미이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 14.07.05 14:11

    @카오스 어쨌든, 너무 방대하고 광범위하며 장구한 시대가 연결된 ‘지명’은 다루기 힘듭니다. 그러니 ‘가능한한 가장 이른시기의 근거’를 간단히 한가지만 제시해서 거기서부터 시작하시지요. 그리고 항상 ‘근거는 원문’을 함께 제시하는 것‘으로 하시지요...해석의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원문이 틀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이 게임은 제3의 심판자가 없으므로 토끼(주창자)가 아무리 빨리 목적지에 먼저 가 있어도 거북이(반론자)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졌다'고 인정해야만 게임이 끝나는 것이므로 (느리고 멍청한?) 거북이를 잘 몰아 가시는 테크닉도 필요하실 것입니다]

    [참고 : '遼水(요수)'와 '遼河(요하)'는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14.07.06 10:33

    저것이 무엇이 방대하단 말입니까?
    우리 고대사를 말하는 사람치고 저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선. 삼국. 고려.후조선의 영역을 논할 땐 서쪽 경계인 한 시기의 대요수이며 요 시기 이후의 요하 부근의 지형지세와 지리를 반드시 언급해야 하며 당연히 2000 여년 간을 한꺼번에 논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며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시점에서도 재차 느끼는 것이지만,
    시기와 지리의 언급이 너무 광범위하여 한꺼번에 소화하기 힘들어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앞으로의 토론도 하나마나일 것입니다.

  • 작성자 14.07.06 10:48

    또한 내가 단정하는 것의 근거 사료 95% 정도를 부정한다는 것 같은데,
    참 어의가 없군요.
    바닷가 자갈밭에서 커다란 자갈 하나 찾자는 생각 하지말고 바다와 자갈밭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를 먼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글을 이어봐야 광범위하여 소화하기 힘들다고 할테고,
    또 제시하는 근거 사료의 거의 대부분을 부정하고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고
    나도 할 말은 대충 한 것 같으니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님께서 어떤 것이든 마음에 드는 한가지를 골라 그에 대해 논증하면,
    내가 그에 대해 수긍이든 비판이든 해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참고 글은 영락없는 사족이군요.

  • 14.07.06 17:18

    ,,,/바닷가 자갈밭에서 커다란 자갈 하나 찾자는 생각/...이 아니고...'위사구도를 아셔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서의 위사구도를 모르고 접근하면 '백전백패'입니다...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이니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카오스는 현재, 님이나 사람님에게 무엇을 주장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묵묵히 '발표준비'를 하는 중입니다만, 님들이 매우 열정적이어서 '위사에 대한 힌트'를 조금 드릴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참고 : '遼水(요수)'와 '遼河(요하)'는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遼水(요수)'와 '遼河(요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실사는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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