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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순례 안내
(이 구간 안내는 16.0 오수-남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7.1 남원에서 운봉까지 버스 타는 이유
충무공은 남원에서 운봉까지 갔다가 합천의 원수(권율)이 순천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구례를 향해 출발했다. 금오랑은 이 구간을 운봉에서 남원으로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운봉은 남원보다 고지대로서 내려가는 길이 보다 쉽기 때문이다. 6시 기상,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이 순례자의 기본적 오전 일과이다. 금오랑은 여관(스카이모텔) 주인에게 추어탕 잘하는 집을 묻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광한루 근처의 식당에 먼저 도착한 인송 팀이 상호를 알려 주었다.
“유명하다는 식당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을 안 열었어. 그 근처 다른 집인데 ‘친절식당’이라고, 이 집도 잘한다네. 유명세 탄 집은 외지인으로 북석일 뿐 실속이 없고 오히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집을 더 잘 간데.”
(사진) 운봉 우체국에서 버스 내려 60번 지방도로
추어탕은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수봉은 행동 간식으로 떡을 사겠다고 떡집 찾아 나섰다. 다른 순례자들은 1킬로미터 이상 북쪽으로 걸어서 시장의 농협 앞 버스정거장에 집합했다. 정거장에는 타려는 사람과 물건을 팔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운봉 가는 버스는 2, 30분마다 배차하는데 15분 후에 도착했다. 버스는 높은 고개를 굽이굽이 돌면서 넘었다.
“이 고개를 걸어서 넘는다고 생각해 봐. 질리지?”
검암이 고개 험함을 확인해 주었다. 그는 며칠 전에 이번 순례는 남원-운봉 코스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걱정했었다.
“여원치를 넘어야 하는데 자신 없어.”
그런데 금오랑이 확인하기를 운봉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순례를 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더욱이 구룡폭포와 구룡계곡의 아름다운 길로 간다니...
17.2 혼불에 묘사된 운봉
최명희 여사의 소설 혼불에는 남원 근방의 지형, 지리 묘사가 많이 있다. 예로서 운봉에 대한 것 중 일부만 보면
(혼불3권 237쪽)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운봉의 지형이다. 이렇게 높은 고원의 어깨마루 지대에, 운봉면과 아영면, 그리고 그 옆에 동면까지 삼개면을 이룰 만큼 넓은 평원이 여원치(女苑峙) 고개를 막 넘어서면 한눈에 풍요로이 펼쳐져 들어오는 것이다. (중략) 매안 마을이 있는 사매면은 남원읍에 맞닿아 인접한 곳으로 군의 복판에서 서북 간방으로 약간 빗기어 앉은 삼계면에 이어, 서쪽 손으로부터 북쪽 머리를 돌아 동쪽으로 띠를 이루며 삼태기처럼 주위를 에워싼, 대강면과 대산면, 그리고 덕과, 보절, 산동, 이백, 주천, 송동, 수지 같은 면들이 다 이 구릉지대에 속했다.
(혼불8권 14쪽) 정말로 운봉에는 놀랍게도 ‘순라로(巡邏路)’라 부르는 길이 나있었다. 그것은 운봉면 가산리에서부터 매요리, 권포리를 거쳐 가상촌 뒤를 돌아서 저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상 하 이중으로 확실하게 뚫려 있었는데, 이는 마한이 진한을 방어하기 위해서 일부러 설치한 국경경비도로였던 것이다.
(혼불8권 18쪽) “운봉이 그때는 신라 영지가 됐거든. 자고새면 빼앗고 빼앗기는 접전 전투 끝에 신라 땅이 되었겠지. 그래 신라에서는 백제를 막기 위해 운봉면 가장촌 뒤에 수정산성을 쌓고, 준향리 뒷산에는 준향산성, 장교리 뒤에다가는 합민성, 가산리 뒷산에 가산산성, 성리 뒤에는 성리산성 등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게끔 운봉에다 수많은 성을 쌓고 쌓았지. 이에 대비해서, 백제는 운봉면 가산으로부터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견고 면밀한 답사를 해서 두 겹으로 ‘순라로’를 설치하고는 대방군, 그러니까 주로 남원읍에다가 집중적으로 국방시설을 했을 것 아니냐?(하략)”
(혼불8권 21쪽) “숙종 34년에 전라좌영을 남원에서 운봉현으로 옮겼거든, 왜냐하면 그곳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제압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야.”
“거 운봉이 중요한 곳이구려.”
운봉면 화수리에는 1577년에 건립한 황산대첩비가 있다. 대동여지도에 대첩비로 표시된 곳이다. 1380년 이성계가 왜적 아지발도의 군을 물리친 곳으로 10배의 적과 싸웠음을 기념한 비다. 근세에 일제가 이 비를 파괴하여 파편만 남은 것을 1957년에 중건했다.
“전주 댁, 혼불 읽으셨겠죠? 최명희 작가와 동향이시니...”
“네. 초판본이지요. 한권, 한권씩 나올 때였어요.”
“재미있었죠?”
“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많은 민속과 역사 자료를 찾아 전개하느라고 부피가 늘어났어요.”
청호의 질문에 대한 나 여사의 답변이었다.
17.3 막걸리 대신 사과
버스는 30분 정도 달려서 일행을 운봉 우체국 앞에 내려주었다. 순례자들은 60번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운봉향교 입구를 지나니 멋진 소나무가 많은 삼산리에 이르렀다. 순례자들은 경치 좋은 이 마을에서 출발 사진을 찍었다.
명품 부업단지의 목기공방과 현대식 2층 건물에 기와를 얹은 건물 앞을 지나면서 수봉이 옛날을 기억했다.
“저기 보이는 저 집에서 목각 제품을 많이 샀어. 아내와 함께 왔었지.”
길가의 밭에서 배추를 수확하는 농부가 커다란 배추 한 포기에 1,000원이라고 했다. 올해 배추 농사가 풍년이라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운봉에서 4km 되는 지점에 지리산둘레길 말뚝이 보였다. 주천까지 10km를 알리고 있었다.
약간 오르는 길을 걸으면 덕산 저수지에 이른다. 탁 트인 저수지에는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아주 작아 몇 사람 못 오를 동그란 섬 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청호는 사과를 수확하는 과수원에서 사람 수 만큼 한 무더기를 샀다. 덤으로 새가 쫀 사과를 여러 개 더 받았다. 금오랑은 막걸리를 사려고 슈퍼를 찾았다. 요즘은 시골에서 가게를 만나기 어렵다. 농가 마다 차를 가지고 있기에 면사무소 근처의 대규모 농협마트에서 장을 보므로 구멍가게는 장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마침 가게를 만났는데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순례자들은 가게 앞에서 쉬면서 청호가 나누어 주는 사과를 한 개씩 받았다. 노작가가 덤으로 받은 사과를 깎아 나누어 주었다.
“막걸리 없어도 된다. 사과가 정말 물도 많고 맛있네.”
“원래 새가 쫀 사과가 맛있어. 새들은 한번 찍어 맛을 보고 맛없으면 다른 사과를 쪼아.”
“사과 누가 샀나요? 공금으로 계산하겠습니다.”
금오랑이 청호에게 만원을 건네주었다. 그는 회비를 걷지 않고 그때그때 계산하는 것을 선호한다. 미리 걷으면 금액이 커서 분실 시 위험부담이 크고, 지출을 꼼꼼히 기록해야 하는데 그러기 싫은 것이다.
17.4 구룡계곡 가는 길 찾기
구룡계곡 가는 갈림길: 노치마을 표지석
저수지 지나 삼거리에서 60번 도로는 직각으로 구부러져 남으로 향한다. 순례자는 비포장 도로를 취해 서쪽을 향해야 한다. 회덕마을 입구에 구룡폭포순환코스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여기를 보셔요. 운봉은 고도가 500m, 주천은 200m라는 그림이 있네요. 고도가 높은 운봉으로 차타고 오기를 잘했지요? 여기 보이는 둘레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룡폭포 쪽으로 갑니다.”
금오랑이 길을 확인했다.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구룡폭포 입구 주차장에 버스와 승용차가 여러 대 있었다. 폭포를 보려는 사람들이다. 금오랑은 순례자들에게 폭포를 보고 이 자리로 다시 오라고 일렀다. 구룡폭포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다. 10여분을 조심해 내려가면 폭포 가까이 오르는 계단이 또 있다.
“다시 올라와야 하니 배낭 놓고 가셔요. 내가 지킬 테니까.”
금오랑이 안내했다. 문 회장은 사진을 찍기 위해 폭포 앞까지 갔다. 노작가와 한산도 예까지 왔는데 다 못보고 갈 수 없다면서 배낭을 벗고 내려갔다. 남은 순례자들은 계단 중간의 좁은 쉼터에서 사과와 떡을 나누며 쉬었다. 다행히 벤치가 하나 있었다.
폭포를 보러 간 온 열성순례자들이 돌아오자 모두는 계단을 다시 올라 출발점인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혼란이 생겼다. 안내표지판의 지도를 보니 구룡계곡 코스는 아까 갔던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내가 폭포에서 오르다가 봤는데 구룡계곡 가는 이정표가 있었어. 계곡을 따라 주천까지 갈 수 있다고...”
“여기 위험구간이라고 표시한 길 말인가?”
“그래, 사람들이 그 쪽에서도 많이 올라오던데...”
한산이 설명했다. 그 사이 검암과 몇몇 순례자가 자동차 길을 따라 먼저 출발했다.
“검암, 이리 다시 오게. 그리 가면 멀어. 계곡으로 가자고...”
“계곡으로 가면 3.4km, 자동차 길로 가면 8km, 계곡으로 가자. 경치도 아름다울 것이고.”
“그래, 차도로는 못가. 너무 지루할 거야.”
금오랑이 소리쳤다. 순례자들은 허탈해졌다. ‘코스를 제대로 알고 안내해야지, 분명히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라 했건만. 그 가파른 계단을 다시 내려가라고? 얼마나 힘들게 올라 왔는데...’ 순례자들은 거의가 이런 생각이지만 죄인의 몸으로 감히 금부도사에게 속내를 비칠 수 없었는지 조용히 따랐다.
(지도) 구룡폭포-호경리-구룡탐방지원센터-춘향묘-호경삼거리-주천면소
17.5 바람에 날리는 폭포수
단풍의 절정은 지났지만 계곡은 아름다웠다. 좀 전의 ‘알바’에 대한 언짢은 기분이 풀어졌다. ‘이리 오기를 잘했다. 나도 많이 다녀 봤는데 이런 계곡은 처음이다.’
위험구간이라지만 계단을 잘 설치해 안전했다. 그들은 이미 순례자가 아니다. 탐방객이다. 20분 쯤 경치에 취한 탐방객들은 주위가 잘 보이는 바위로 올라가 쉴 자리를 잡았다.
“커피 마실 사람? 짐이 너무 무거워.”
청호가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커피를 탔다. 그는 무거운 짐을 빨리 해소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산이 원래 커피 담당 마담인데 안 보이네.”
“검암이 혼자 앞장 서 갔기에 뒤따라갔어. 명색이 위험구간이잖아.”
검암은 더 좋은 자리를 발견해 한산과 함께 쉬고 있었다. 비폭동 안내판이 있는 곳이다.
“저기를 봐, 바람이 불면 저 폭포수가 흐드러지게 날려갈 것 아닌가? 그래서 비폭이라.”
나 여사는 비폭 아래 너른 바위 위에 신발 벗고, 가부좌 틀고 참선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낙산이 그네에게 다가갔다.
“낙산, 참선하는 사람 방해하지 마라.”
17.6 춘향이가 정말 저기 묻혔나요?
유선대, 학선대 등 바위와 계곡물이 어우러져 만든 그림을 감상하며 가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봉이 우산을 안 가져온 인송에게 여분의 비옷을 주었다. 가을비는 심하게 내리지 않는다. 쉬었다가 가끔 씩 내린다. 탐방지원센터 를 지나 육모정에 가까이 가니 용호서원이 있고 신토불이 주점이 있었다. 낙산은 파라솔 아래 내 놓은 막걸리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이번 순례는 막걸리 없이 지나나 보다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눈에 띄였다.
육모정에서 건너편 높은 계단 위를 보면 춘향묘가 있다.
“저기에 정말 춘향이가 누었나요?”
“춘향은 소설 속의 여인이잖아요.”
낙산이 노 작가에게 대답했다. 막걸리를 한잔 걸친 탓이리라. 금오랑은 버스 정거장 근처의 식당을 찾기 위해 앞장서 빨리 출발했다. 그는 공영주차장을 지나 주천면소 바로 건너편에서 적당한 식당(토담골)을 발견했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3시 53분과 4시 20분이라고 했다. 그는 11명 좌석을 마련하고 안주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술이 두어 순 배 돌아간 다음 금오랑이 일어났다.
“순례자 여러분, 오늘 즐거우셨죠? 백의종군로가 세계적인 명소가 되려면 이렇게 아름다운 코스도 있어야 합니다. 다음번 순례는 주천에서 지리산 둘레길로 구례까지 갑니다. 그때도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우리의 멋진 순례를 위하여!”
“위하여!”
17.7 입석 타고 귀경
남원 가는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전 정거장이 종점이므로 중간에 지체될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버스는 남원역 바로 앞에 순례자를 내려 주었다. 다음번 순례 시 여기서 이 버스를 타면 주천면소까지 갈 것이다. 금오랑은 17시04분발 무궁화호의 입석표를 샀다. 토요일 저녁이라 승객이 많았다. 다른 회원은 한산이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했는데 금오랑은 예약을 안 하겠다고 우겼기에 이렇게 된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니 상경 시간은 오픈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오랑은 열차에 오르면 먼저 회계보고 준비를 하는데 이날은 보고할 일이 없다. 지출할 때마다 매번 계산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는 출발한지 한 시간 반쯤 지나서 식당 칸으로 갔다. 입석이므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빈 좌석이 있어 앉았는데 임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식당 칸에 가서 앉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입석이지만 걱정을 안 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식당 칸은 만원이었다. 젊은이들이 바닥에까지 앉아 있었다. 금오랑은 10여분 서 있다가 캔 맥주와 안주를 샀다. 그는 순례자들이 있는 칸으로 가서 사온 것을 풀었다. 좌석을 마주 보게 돌려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1박2일의 순례를 마감했다. 이제 마지막 1박2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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