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화산불고기단지
먹는다는 것은 이제 상당히 발전한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의식주 해결을 위한 하나의 살기 위한 수단을 넘어선지 오래다. 때문에 복합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매스미디어들이 앞 다투어 먹는 문화에 대해 다양한 주제로 취급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주 화산불고기단지는 한 때 불고기를 먹으려는 인파로 심한 차량정체현상을 빚을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불고기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성황을 이뤘던 곳이다. 그러나 야채 위주의 힐링이라는 음식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로 화산불고기단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성업을 이루던 40여 점포가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10여 업체로 다이어트 됐다.
여전히 화산불고기 맛을 잊지 못하는 20년 이상 단골손님들이 있어 10여 업체는 명맥을 잇고 있지만 많은 식당이 폐업하거나 오리고기, 순두부, 장어구이 등의 웰빙식당으로 변신했다.
최근 화산불고기단지에는 음식문화와 함께 골프, 목공예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시대적 감각에 맞춰 경치가 뛰어난 곳에 식사와 차류를 함께 취급하면서 북카페 기능까지 갖춘 카페도 생겨나 손님들의 발길이 다시 몰려들어 옛 영화를 상기시킨다.
화산불고기단지가 다양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화산은 이제 새로운 힐링 명소로 이름을 올리는 곳 중의 하나가 손꼽힌다.
◆곶뫼 화산
경주 천북면 화산리는 강동면사무소에서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화산은 천북면 성지리 소리못과 왕신리 왕신못 사이에 있는 분지다. 본래 꽃뫼, 곳메, 곶마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산(花山)은 곶(꽃)과 뫼(산), 꽃이 가득한 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곶뫼 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한자로 풀이해 화산으로 마을이름이 등록됐다.
마을 동쪽 연화봉에서 내려다보면 분지를 중심으로 둘러져 있는 산들이 마치 꽃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계절마다 많은 꽃들이 피어 그렇게 불렀다고 전하기도 한다. 화산1리는 본래 꽃뫼와 용사골 안에 있던 ‘애재’와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 마을은 황씨와 문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애재마을은 1999년 왕신저수지에 수몰되어 사라졌다.
또 화산을 서고북저남유동탁(西高北低南流東晫)이라고 해석했다. 서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고, 동쪽에 해가 일찍 뜬다고 붙인 말이다.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데 옛 마을의 절반이 지금은 저수지로 변해 푸른 물결만 넘실거린다.
마을 동쪽 골짜기 계곡에 깊은 웅덩이들이 많아 생긴 모양에 따라 칼용치, 호박용치, 길용치, 함용치 등으로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제일 큰 웅덩이인 길용치에 살던 숫뱀과 그 아래 호박용치에 살던 암뱀이 서로 만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웅덩이를 용추라고 부른다. 계곡은 용추곡, 용사골, 용사곡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저수지를 막고 길을 내면서 모두 메워지고 없어졌지만 마을은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다. 용사골을 정비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숙원이다.
◆화산불고기단지의 불고기
경주 천북면 화산리에 불고기단지는 1993년 8월30일 4개의 불고기식당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불고기단지는 6개월이 지나면서 32개소까지 늘어나 성업을 이뤘다. 연접한 강동까지 합하면 숯불고기집이 50개 업체에 이르렀다. 화산으로 들어서면 골목마다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전국에서 한우 사육두수 제1의 도시 경주에 걸맞은 업종으로 소개되면서 손님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농민들도 호미자루를 던지고 앞 다투어 불고기집을 오픈했다.
그러나 영화는 길지 않았다. 21세기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화산불고기단지의 식당은 하나둘 문을 닫아걸어야 했다. 찾아오는 손님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뚝 떨어졌다. 2004년 불고기축제를 열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손님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에는 늦었다. 결국 20여년이 지난 지금 숯불고기집은 10여곳으로 줄었다. 대부분 농민으로 전업하거나 오리고기, 장어, 순두부 등으로 전환하는 업체도 7~8곳 된다.
지금 한우전문점으로 상가번영회에 남은 숯불고기집은 9개업소가 전부다. 처음 숯불고기집으로 문을 연 1호점 오복네숯불은 옛날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포크레인 기사로 전국 공사장 누비던 이동일(52)씨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2대가 함께 숯불고기집을 운영해 왔다. 화산불고기단지 상가번영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동일 회장은 “서해 바다, 당진 탄광촌 백석 캐는 작업 등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아버님의 부름으로 식당일을 시작했다”며 “지금도 마음은 답답하지만 직업으로 생각하고 고기를 만지고 있다”며 웃는다. 이 회장은 “둘째 아들이 식당에 대한 뜻이 있어 물려줄까 생각하고 있다”며 “3대로 이어지면 100년 되는 명문숯불식당이 되지 않겠냐”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오복네를 비롯 25년을 꾸준히 숯불고기집을 이어온 식당의 경영노하우는 대개가 비슷하다. 모두 한결같이 좋은 고기를 쓴다는 것이다. 또 산에서 캐거나, 직접 재배한 채소로 장아찌를 담근 나물들을 밥상에 올리고 있다. 특히 화산불고기단지의 고기는 특별히 맛이 좋고, 값도 비교적 착하다. 인근 포항, 경주시가지, 울산, 대구에서는 2만5천 원 정도 하는 고기가 화산에서는 1만8천 원 선에 소비자들을 만나게 한다.
접근거리도 좋은 편이다. 경주시가지는 물론 인근도시 포항, 영천에서도 모두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골프장들이 많아 골퍼들의 식도락처로도 인기다.
숯불단지에 들어서면 바로 길옆에 있는 청마루숯불은 문학의 향기가 짙은 식당이다. 들어서면 종이공예품들이 가득하고, 맞은편에 책장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상이 차려진 방에 앉으면 벽마다 안주인 임경순(54)씨가 쓴 글들이 시화로 걸려있다. 임경순씨는 오래 전 서울문학지에 수필가로 등단한 문학도다. 청마루숯불은 25년간 이어오면서 물김치, 콩잎 등 순수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숙성시켜 만든 밑반찬과 직접 담근 된장을 식단에 올려 단골손님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이 먹기 좋게 마늘은 구워서 상에 올린다.
화산불고기단지를 찾는 단골손님은 포항의 포스코, 울산, 부산, 대구 등지에서 꾸준히 25년간 인연을 이어오는 팀이 많다. 단골손님들은 “우선 어디에 가도 맛을 따라올 수 없는 고기 맛 때문에 화산을 찾아온다”면서 “일단 넉넉한 농촌인심과 깨끗한 먹거리, 옛날 어머니 손맛 같은 음식들을 맛볼 수 있어 찾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단골은 “소고기는 최고의 스테미너 식품으로 기력회복에 최고다. 소고기를 먹으면 왠지 힘이 난다”면서 “돈 벌어가 뭐하겠노? 소고기 사먹지”라는 연예인들의 우스갯소리를 한다.
화산불고기단지는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도 허탕은 없다. 집집마다 한 달에 한 번 쉬기도 하지만 365일 쉬는 날 없이 영업을 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과 수상스키
화산은 인근 도시에서 접근성이 좋고,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그래서 최근 문화예술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 레저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화산불고기단지 입구에 들어서면 동쪽에 골프연습장을 상징하는 푸른색 그물망이 높게 걸려 있다. 그물망을 따라 들어가면 산기슭에 화산쉐르빌 파3 골프장이 조성돼 있다. 식당과 커피숍 기능을 하는 하우스가 예술적으로 지어져 있고, 골프공을 때리는 청명한 소리가 주차장까지 들린다.
쉐르빌에서 라운딩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방 골프계에 입문하는 초급자들이 많다. 가끔 아이언의 감각을 익히기 위한 고수들의 방문도 더러 눈에 띤다. 골프채를 손에 잡은 지 얼마되지 않은 골퍼들은 일단 쉐르빌의 티샷그라운드에 올라서면 한 눈에 들어오는 넓은 들판을 지나 멀리 푸르게 겹겹이 둘러싼 듯한 산들의 경치에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쉐르빌은 시원하게 드라이브는 날릴 수 없지만 60~100m 파3홀과 230m까지 길게 조성한 파4홀도 준비돼 아연을 담금질하기에 좋다. 특히 오르막 내리막길이 적당하게 조성되어 있어 운동량도 제법 많다. 8번홀은 작은 소류지를 건너야 되는 난이도가 높은 코스로 초보자들의 애를 태우게 하면서 은근히 도전정신을 갖게 한다.
화산불고기단지 가운데에서 동쪽 산으로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다. 태영에서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고 있다. 골프장이 조성되면 화산불고기단지는 고기를 좋아하는 골퍼들이 몰려들어 한층 더 붐비게 될 것으로 기대가 크다.
화산불고기단지로 진입하는 강동 왕신저수지에는 수상스키와 다양한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수상스포츠타운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까지 수상레저를 즐기려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화산불고기단지를 찾는 손님들의 잠재고객을 유도하는 시설이다.
◆저수지 카페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꽃이 피네......’ 화산은 마을 이름에서 풍기듯 꽃동네다. 불고기단지에서 집집마다 숯불을 피워 불이 꽃을 피운다. 숯불고기, 오리고기, 우렁이쌈밥, 장어구이, 순두부 등등의 다양한 식당이 화단처럼 조화를 이룬다. 목공예, 골프장, 수상스키장 등의 스포츠, 문화예술촌까지 인근에 조성돼 화산은 꽃단지가 된다.
화산으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동쪽으로 난 좁은길을 따라 5분만 운전하면 이내 한적한 곳에 작은 연못이 나온다. 소리지다. 소리지 제방 끝에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 대문도 없이 ‘소리지571’ 이라는 생소한 간판이 서있다. 가로등을 대신하는 간판에는 ‘차와 식사’라는 소리지571의 성격을 알린다.
카페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전원적인 풍경에 1차 감탄하게 된다. 내부로 들어서면 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여기저기로 시선을 유도한다. 가운데는 책들이 쌓여 북카페로도 기능을 한다. 탁자를 앞에 두고 앉으면 사방이 훤히 트여 전망이 좋다. 특히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저수지와 야산, 하늘이 서정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카페의 메뉴는 일반적인 카페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소리지만의 특색이 있는 메뉴는 있다. 쇼윈도에 진열된 과일로 직접 갈아주는 과일쥬스, 삶은 고구마로 만들어주는 고구마라떼는 일품이라 할 수 있다. 또 식사로 나오는 돈까스는 손으로 직접 구워 만들어 맛이 부드럽고 좋다. 고기와 쌀 모두 국산을 고집한다. 풍경이 좋아서인지 한적한 곳이지만 주중인데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입소문으로 많이 알려진 듯하다.
경주 화산불고기단지는 20세기의 북적거리던 영화를 다시 찾고 있다. 웰빙에 밀렸던 화산이 힐링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화산불고기단지는 다양한 즐길거리로 새로운 경주의 힐링센터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