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빵 냄새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을 지닌 빵. 속탈이 나서 밀가루를 자제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도 빵집 앞을 서성일 때가 있다. 빵, 국수, 라면…. 밀가루 음식을 빼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소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빵, 천연발효 빵이다.
다양한 천연발효종이 빚는 건강빵
천연발효 빵은 이스트 대신 천연발효종으로 만든다. 이스트는 인위적으로 효모를 대량 배양해 균일하게 만든 것이어서 똑같은 레시피를 쓴다면 빵맛은 누가 만들든 비슷하다. 하지만 천연발효종은 자연상태에서 효모를 배양하므로 곡물의 종류, 배양 환경, 배양한 사람에 따라 다채로운 풍미를 낸다.
최근 웰빙 트렌드에 따라 천연발효 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 먹음직스러운 모양내기 등에서 천연발효 빵은 이스트 빵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서 가격마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천연발효 빵을 찾는 소비자들은 늘고 있다. 이유가 뭘까?
화학첨가물 줄고 유익성분 늘고
천연발효 빵 전문점 창원 브레드 웜(Bread Warm)에서 만난 조미혜(53) 씨는 “이스트 빵에 비해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며 “한 번 먹어본 후로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조 씨는 “우리밀을 쓰고 화학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조 씨의 말처럼 천연발효 빵은 이스트뿐만 아니라 화학첨가물인 개량제와 유화제를 쓰지 않는다. 개량제는 반죽이 잘되도록 이스트에 영양을 주고 색을 내는 첨가물이고, 유화제는 물과 버터처럼 잘 섞이지 않는 재료들을 잘 섞어주는 첨가물이다. 천연발효 빵은 이런 첨가제가 필요 없다. 신선한 천연 재료와 시간만 있으면 살아있는 효모가 알아서 부피를 키우고 섞이기 때문이다.
브레드 웜 최장욱(36) 대표에 따르면 천연 효모가 서서히 자라면서 유산균 등 다양한 유익성분을 생산하고, 당과 전분을 분해해 소화를 돕는단다.
“천연발효된 효모가 다양한 유익균과 함께 필요한 효소를 만들어 냅니다. 제빵개량제와 같은 인공첨가물이 필요 없어요. 덕분에 밀가루 음식을 먹고 속이 더부룩한 사람이나 화학첨가물에 민감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빵입니다.”
반죽 숙성 최대 3일 ‘슬로푸드’
화학첨가제를 쓰지 않으므로 천연발효 빵을 만드는 제빵사는 기술력이 남다르다. 반죽과 맛내기 그리고 시간과 온도를 다루는 기술이 핵심이다. 시간과 온도는 발효종을 만드는 첫 단계부터 중요한 변수이다. 호밀과 밀, 건포도, 무화과 등 곡물과 과일을 발효시켜 천연효모를 얻은 후 물과 밀가루를 섞어 효모를 배양한다. 그 과정에서 하루 2차례 뒤적여 줘야 하는데, 효모가 자라는 데는 공휴일도 없고 밤낮도 없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효모는 죽어버린다. 최 대표는 “명절에도 효모 배양통을 안고 고향에 간다”고 말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발효종으로 반죽을 만들어도 또 시간과 온도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1·2차 발효와 숙성을 거친다. 짧아도 10시간, 길게는 3일이 걸린다. 제빵사에 따라 실온에 두거나 오븐에 두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원하는 반죽상태를 만든다.
“빵 종류에 따라 숙성 시간과 온도가 다 다릅니다. 천연발효 빵을 만드는 빵집마다 맛이 다르고 식감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실험과 경험치로 적합한 온도와 시간을 찾아내야 그 집 특유의 맛을 내는 대표 빵이 탄생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브레드 웜의 명물 ‘공주밤식빵’은 진열대에 오르자마자 동이 나는 일대의 유명 식빵이 됐다.
‘비싸다?’ 좋은 재료에 맛도 챙겨
천연발효 빵의 가격대는 이스트 빵에 비해 1.5배 가량 높은 편이다. 사실 복잡한 제빵과정 때문만은 아니다. 재료비가 2배 정도 더 든다. 최 대표가 자랑스럽게 내놓는 ‘공주밤식빵’의 경우, 빵값 5500원에서 재료비 비율이 65% 선. 단적인 예를 든 경우지만, 천연발효 빵의 재료는 발효종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은 우리밀이나 통밀을 기본으로 한다.
이스트 빵보다 부드러운 식감은 덜하다. 그런데 부재료가 다르다. 천연발효 빵은 단팥이나 크림 등 흔한 부재료보다 천연의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부재료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 딸기, 고구마, 호박, 시금치, 쑥, 올리브, 블루베리, 호두 등 원물 재료와 치즈 등이 주로 쓰인다. 물론 제철이 아닌 때는 냉동 재료를 쓰기도 한다. “비싼 것을 따지기 전에 좋은 재료를 살펴봐달라”는 것이 천연발효 빵 전문가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내 아이가 먹는다’ 제빵철학 담은 빵
“제빵사 경력 16년 만에 빵집을 차렸어요. 그때 마침 첫 아이가 태어났어요. 내가 만든 빵을 아이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최 대표가 천연발효 빵을 고집하는 이유다. 천연발효 빵은 주로 식빵, 깜빠뉴(프랑스 시골빵), 바케뜨, 통밀빵, 치아바타(슬리퍼 모양의 이탈리아빵)로 많이 만들어진다. 동그랗거나 길쭉한 단순한 모양이다. 천연발효 빵 반죽의 성형이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성형틀을 이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내기도 한다.
담백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기본으로 특유의 구수한 맛을 내는 덩어리 빵이 주종이지만, 제철 채소와 과일, 지역 농산물 등을 부재료로 써서 풍성한 맛을 내는 특별한 천연발효 빵을 진열대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갓 구워져 나왔을 때는 이스트 빵과 천연발효 빵의 맛 차이를 느끼기 어려워요. 그러나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맛의 차이가 확실해집니다. 천연발효 빵은 촉촉하면서 신선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깜빠뉴를 간판으로 건 진해 ‘카페 깜빠뉴’ 최덕렬(35) 부장의 말이다.
브레드 웜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245번길 13 ☎ 055) 262-7957
카페 깜빠뉴
창원시 진해구 충장로657번길 16-1 ☎ 055)543-3388
글 황숙경 기자